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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방/유명시

나그네 /박목월

by 미스커피 2012. 1. 4.

 

나그네

희망의 문학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희망의 문학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

 

술 익은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희망의 문학 요점 정리

희망의 문학 지은이 : 박목월

희망의 문학 갈래 : 자유시. 서정시

희망의 문학 성격 : 회화적, 관조적, 서정적, 낭만적, 풍류적, 향토적

희망의 문학 심상 : 시각적, 후각적 심상

희망의 문학 어조 : 체념과 달관의 어조

희망의 문학 특징 : 명사로 끝맺는 체언 종결의 간결한 형식미와 변형된 수미상관의 구성 방식을 취하고있으며, 전통 서정시의 3음보 민요조의 내재율을 가지고 있다.

희망의 문학 구성 : 변형된 수미 상관의 구성

1연 - 향토적 배경           

2연 - 체념과 달관의 경지

3연 - 외로운 여정(旅程)

4연 - 향토적, 풍류적 정서

5연 - 체념과 달관의 경지

희망의 문학 제재 : 나그네

희망의 문학 주제 :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룬 달관의 경지

희망의 문학 출전 : <상아탑>(1964)

 

 

희망의 문학 내용 연구

강(江)나루 건너서 / 밀밭 길을 : 향토색 짙은 밀밭을 배경으로 이 시의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짐작할 수 있게 해주고 밀밭길은 나그네의 여정을 나타낸다.

구름에 달 가듯이 / 가는 나그네 : 남도의 자연 배경으로 유유자적하는 나그네의 모습을 구름에 비유한 표현으로 달은 어떤 것에도 구속 받지 않는 달관의 존재로 세상을 버린 자의 애닯도록 맑은 정신(지은이의 자작시 해설 '보랏빛 소묘' 참조) 悠悠自適하고 行雲流水한 서정 - 풍요롭고 우아함. (나그네-억압된 조국 하늘 아래서의 우리 민족의 총체적인 얼. 바람같이 떠도는 절망과 체념의 모습(자작시 해설 '보랏빛 소묘')

길은 외줄기 / 남도 삼백 리 : 길은 외줄기라는 말에는 나그네의 고독이 적막하게 배어 있다. '길은 외줄기'라는 말은 '끝없는 한 가닥의 길'로, 선명한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나그네의 고독감을 더하고 있다. 여기서 남도는 충청, 경상, 전라 3도를 일컬을 수 있는 향토적 색채가 담겨 있지만 '삼백 리'는 실제의 거리보다는 작자의 서러운 정서와 감정으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 추상적, 심리적 거리로 보는 편이 바람직하다.

술 익는 마을마다 / 타는 저녁  놀 : 술 익는 마을과 타는 저녁놀의 조화 속에서 인간과 자연이 동화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술 익은 마을은 향토적 분위기를 조성하고, 인간과 자연의 조화(후각적 이미지와 시각적 이미지의 결합-승화된 미감)의 이미지 전개(자음운이 맞으면서 이미지가 연결되는 시어 '밀밭 길 →술 익는 마을→타는 저녁 놀')를 전개하고 낯선 길손을 배척하지 않고 포용해주는 따뜻한 느낌을 준다.

구름에 달 가듯이 / 가는 나그네 : 반복를 통해서 주제를 강조하고, 이 시의 특징인 명사형의 종결어미(2,3,4연)를 사용해서 이미지의 유동성을 막으면서 감동의 집중감을 보여줌.

희망의 문학 이해와 감상

 이 시는 향토적 공간을 배경으로 체념과 달관의 경지에 이른 나그네의 정서를 간결하게 형상화한 작품으로 작가는 "일제 말기 암울한 상황에 처한 우리 민족의 총체적 얼을 상징한 것"이라고 작가는 말한 바 있다. 시대 상황과 연결시켜 볼 때, 작가의 무색무취한 시적 태도가 비난을 받을 소지가 있다. 다시 말해서 생산 현장으로서의 우리 농촌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시인의 관념 속에서 미화(美化)된 이상적인 자연이라는 말이다.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하는 이 시는 간결한 시적 어휘의 구사를 통해 한국적인 서정의 세계를 효과적으로 드러내어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이 작품은 조지훈의 "완화삼(玩花衫)"에 화답한 시로 "완화삼"의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가 이 시에 와서는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로 변화되었다. 두 번이나 반복된 '구름에 달 가듯이 / 가는 나그네'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이 인간은 자연에 비유되어 행운유수(行雲流水)하는 유유자적함을 보여 준다. 주인의 자리를 빼앗기고 나그네 신세가 되어 떠돌 수밖에 없는 이의 슬픔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는다. 강나루를 건너 밀밭 사이로 난 외줄기 길을 삼백 리나 걸어가서 만난 것은 '술 익는 마을마다 / 타는 저녁 놀'이다. 이 낭만적인 풍경은 그 자체로 아름답기는 하다.

 식민지 현실 속에서 주권을 상실한 민중들의 비참한 삶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그려내지 못했다는 비판은 있지만 한편으로는 주권을 잃고 '나그네'로 전락한 백성으로서 국토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 나라 사랑의 한 방편이었으리라는 짐작도 가능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간결한 시어로 이런 작품을 쓴다는 것은 박목월의 시인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면서도 동시대 청록파 시인의 한계이기도 하다.

 

희망의 문학 심화 자료

희망의 문학 보라빛 소묘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 '나그네', <청록집(靑鹿集)>

'나그네'는 '청록집(靑鹿集)'에 수록한 내 작품들의 가장 바탕이 되는 세계다.

그 즈음, 나는 '강나루 건너서 밀밭'과 '술 익는 강마을'과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의 그 향토적이며, 한국적인 정서가 어린 풍경을 묵화적(墨畵的)인 고담(枯淡)한 필치로 표현하려고 애를 썼으며, 묵화에서 점 하나를 소중히 하듯 말 하나를 아꼈다.

'나그네'의 주제적인 것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였다. 그야말로 혈혈단신 떠도는 나그네를 나는 억압된 조국의 하늘 아래서, 우리 민족의 총체적인 얼의 상징으로 느꼈으리라. 나그네의 깊은 고독과 애수, 혹은 나그네의 애달픈 향수 그 나그네가 우리 고장에 봄가을이면 드나드는 과객(過客)들이거나 혹은 신라 때부터 맥맥히 내려오는 우리의 구슬픈 핏줄에 젖어드는 꿈이거나, 혹은 한평생을 건너가는 인생 행로의 과객으로서 나 자신이거나, 그것을 헤아리지 않았다.

다만, 생에 대한 가냘픈 꿈과 그 꿈조차 오히려 체념한, 바람같이 떠도는, 절망과 체념의 모습으로서 나그네가 내게는 너무나 애달픈 꿈(영상)이었다. 더구나, 우리는 세상을 다 버리고 떠도는 자를 나그네라 부르는, 그 버리는 정신, 그것은 모든 소망을 잃은 자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버리는 것'으로서 스스로를 충만하게 하는 그 허전한 심정과 그 심정이 꿈꾸는 애달픈 하늘, 그 달관의 세계.―이런 뜻의 총화적인 영상으로서 나그네를 꿈꾸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설명하기 위한 설명일지 모른다. 내가 '나그네'를 쓸 무렵에는 오히려 뜻을 따져서가 아니다. 다만 막연하게 답답한 심령의 세계가, '나그네'로 말미암아 '울음'이라는 구원의 통로를 얻게 된 것이며, 통곡함으로써 얻는 후련한 위안을 이 작품에서 느꼈으리라 믿는다.

위에서 '나그네'의 주제적인 모티프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라 했다. 그러나 사실은 구름 사이로 빠져나가는 그 맑은 달의 모습이라 함이 정확하리라.

새까만 구름장 사이로 달은 씻은 듯 말갛게 건너간다. 바람이라도 불어, 구름이 빨리 흐르면 흐를수록 날개가 돋친 듯 날아가는 달의 그 황홀한 정경. 그 달의 모습에서 나는 세상을 버린 자의 애달프게 맑은 정신을 느낀 것이다. 그러므로 '구름장 새로 흐르는 달'이 곧 나그네며, 나그네가 구름을 건너가는 달이었던 것이다.

이 체념과 달관의 세계에서 오히려 일말의 애수를 띄운 것을, '강나루를 건너, 퍼런 밀밭머리의 길'이나 혹은 '술이 익듯 저녁놀이 타는 마을'같은 향토적인 풍경 위에 수를 놓아 보려고 애를 썼다.

과연, 그것이 어느 정도 성공했는지 나 자신은 모르거니와, 어떻든 '나그네'는 내게 한 편의 작품으로서가 아니라, '청록집(靑鹿集)'에 수록한 작품들과 모조리 통하는, 그 무렵의 내 정신의 전 우주 같은 느낌이다. 이것은 작품으로서의 좋고, 나쁜 것을 따지는 것이 아니다. '나그네'에 잠겨 있는 세계가 그렇다는 뜻이다.

이 '나그네'에서 표현의 특이한 점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 혹은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등, 구마다 명사로 끊은 점일 것이다. 그것은 '나그네'에서만 아니라 나의 다른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대로의 독특한 표현 방법이다.

이것을 쉽게 설명하면, 구를 고정시키고, 구에 어린 정감량을 확립시키기 위한 것이다. 가령,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이 한 구로 예를 들면, 이 구의 실린 의미와 감동이 '가는 나그네'라는, 그 '나그네'에 집중되는 것이다. 만일 '나그네가 가네' 하면, '나그네가 가는 것'에 의미와 감동이 실리게 되므로, '나그네'에 쏠리는 감동의 집중감이 희박해지기 쉽다. 이렇게 구마다 끝에 주어를 놓고 그것에 '의미와 감동의 악센트'를 쏠리게 함으로 구마다 감동의 집중감을 돋우게 한다. 또한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처럼, '길은……'하는 구를 '삼백 리'로서 끊어 실렸는 정서가 다음 구로 유동하는 것을 막아, 고정화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윤사월(閏四月)'에서도

송화 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역시 첫구를 '봉우리'로 끊음으로써 다음 구로, 의미나 감동이 번지는 것을 막는 것이다. 그래서 한 구는, 구로서의 독자성을 강하게 하고 구간의 여백을 절연(絶緣)시키는 것이다. 구간의 절연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 절연을 넘어서 정서나 의미의 암시가 깔리게 되면 한결 '생략의 여음'이 돌게 되는 것이다.

시의 구간에 깃드는 '생략과 여음'이야말로 시를 더욱 생기가 돌고, 함축이 강하게 이루는 것이리라.

또한, 가락으로서도, 명사로 끊는 것이 보다 오묘한 것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나그네'는 7·5조의 안이성을 만일 이 작품에서 느끼지 않는다면 그것은, 조사를 달지 않은 명사로서 구를 끊는 그 효과일 것이다.

'나그네'를 읊는 경우에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 /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하고, '건너서', '길을', '가듯이', '길은', '타는', '가듯이' 등에서 길게 뽑아 이렇게 호흡을 늦추더라도, '가는 나그네', '삼백 리', '저녁놀'에서는 완전히 호흡을 멈추었다가 새로 모아서 다음 구를 시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호흡이 면면히 이어지지 않고, 구마다 다급하게 끊어지는, 심한 호흡의 굴곡이 구마다 정감을 모으게 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작품이 가락에 쉽사리 유동 융합되는 출렁거리는 가락으로서 흘러 버리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읊으면서 안으로 새겨지는 힘'이 깃드는 것이 아닐까. 그것은 이렇게 구절구절이 제대로 뚜렷이 살아나게 함으로 '가락에 맡겨 버려지는 것'을 거부하고, 그 의미나 회화적인 이미지를 한결 확립시키는 소임을 할 수 있는 또 하나 길이 될 것이리라.

실로 '나그네'는 가락에 맡겨서 이룬 것만이 아니다. '구름에 달 가듯이'를 반복한 것은 음악적인 조화만을 위한 것이기보다 한 편의 작품에 '정감의 균등과 그 비중을 살펴서 구성상의 배의(配意)에 유의한 것이리라.

그리고 '남도 삼백 리'라는 구의 '삼백 리'가 말썽이다. '남도 삼백 리'가 어디서 어디까지냐고 묻는 이가 있기도 했다. 그러나 이 '삼백 리'는 원 노트에 '남도 팔백 리'로 되었던 것을 발표 때 '삼백 리'로 고친 것이다. 이것은 '삼백 리' 혹 '팔백 리'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예이츠(W.B.Yeats)의 '이니스프리'라는 작품 중에,

나는 일어나 바로 가리, 이니스프리로 가리,

외 엮고 흙을 발러 조그만 집을 얽어

아홉 니랑 콩을 심고, 꿀벌은 한 통

숲 가운데 비인 땅에 벌 잉잉거리는 곳

나 홀로 거기서 살으리.

<박용철 편>

라는 구절이 있다. 이 경우에 '아홉 니랑 콩을 심어'의 '아홉 니랑'은 아홉 개의 밭이랑이라는 뜻이 아니다. 평화로운 그 꿈의 섬에서 가난하게 충만히 살 수 있는 '가난한 충족'을 꿈꾸는 그야말로 가난한 행복의 면적이다. 다시 말하면 가난하게 행복된 감정이 실감하는 수량 ― 그것이 아홉 니랑이다. '나그네'에서 남도 삼백 리도, 내 서러운 정서가 감정으로써 받아들일 수 있는 거리 ― 그것이 남도 삼백 리일 따름이다.

끝으로, 이 '나그네'를 내가 처음 썼을 무렵의 노트를 그냥 초(抄)하면 다음과 같다.

나루를 건너서

외줄기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달빛 어린

남도 삼백 리

 

구비마다 여울이

우는 가람을

 

바람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첫 구는 설명이 지나친 것 같아 '밀밭 길'로, '달빛 어린 길'은 진부한 것 같아 수정했고, '구비마다……'는, 지훈의 '완화삼(玩花衫)'에서 화답시를 이루고, '바람에 달 가듯이'는 이미 '구름에 달 가듯이'와 중압된 것 같아 고쳤다.

이렇게 작품에 손을 댈 적마다 생각나는 것은, 추천을 받을 때, 그 선자(選者)가 한 말이다. 옥의 티와 미인의 이마에 사마귀 한 낱이야 버리기는 아까운 점도 있겠으나, 서정시에서 말 한 개 밉게 놓이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 <현대시의 비밀>

 

·묵화적(墨畵的)인 : 먹으로 그린 동양화 같은.

·고담(枯淡)한 : 속되지 않고 아취가 있는.

·과객(過客) : 지나가는 길손.

·모티프 : 문학 및 예술 작품에 자주 반복되어 다루어지거나 나타나는 제재나 내용, 또는 문구나 낱말, 작품의 주제를 구성하고 통일감을 주는 중요 단위임.

·체념 : 바라던 대로 이루어지기 어려우리라 생각하고 더이상 기대하지 않게 되는 것. 단념.

·달관 : 사소한 일에 얽매이지 않고 사물의 진실을 꿰뚫어 봄으로써 세속을 벗어나 높은 경지에 이르는 것. 또는, 그러한 경지.

·절연(絶緣) : 인연이나 관계를 끊는 것.

·배의(配意) : 관심을 가지고 도와 주거나 보살펴 주는 것.

·초(抄)하면 : 베껴 기록하면.

·선자(選者) : 문단에 자신을 추천한 사람.

·'구비마다……'는 ∼ 화답시를 이루고 : '완화삼'의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가 이 시에 와서는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로 변화됨. 

1. 작품 선정의 취지

 이 글은 '나그네'라는 시에 특정 시어나 리듬, 표현 방법 등을 차용한 이유와 개작(改作)의 과정 등을 밝힘으로써, 이 시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탄생했는지, 그리고 작가의 문학적 취향과 상상력, 감수성, 언어 감각 등이 어떻게 시로 형상화되어 나타나는지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 자작시(自作詩) 해설이다.

 이 글을 통해 학생들은 한 편의 시가 완성되기까지의 창작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문학작품의 미적 구조를 구성하는 내용, 형식, 표현 등의 요소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문학 창작에 어떠한 원리나 방법을 적용해 볼 수 있을 것인지를 판단할 수 있게 될 것이다.

2. 지도의 핵심

 이 단원은 학생들이 창작의 원리나 방법을 익혀서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문학 작품으로 창작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므로 작가가 어떠한 원리나 방법으로 한 편의 시를 썼는지를 확인하는 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작가가 한 편의 시를 쓰는 과정을 살펴보면서 학생들 스스로 작품 창작의 원리나 방법을 깨닫게 하고, 이러한 원리나 방법을 적용하여 실제로 작품을 창작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지도한다.

3. 작품 연구

 이 글은 박목월의 해설집 '보랏빛 소묘'(1959)에 실린 글로, '나그네'라는 한 편의 시가 완성되기까지의 창작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자작시(自作詩) 해설이다.

 이 글에서 작가는 '나그네'가 조지훈의 '완화삼(玩花衫)'에 대한 화답(和答)시라고 밝히고, '나그네'라는 시에서 가장 핵심을 이루는 '나그네'가 모든 것을 버리고 떠도는 존재의 이미지로 만들어진 것은 일제 강점기에 꿈과 소망을 잃어버리고 살아야만 했던 현실에서 비롯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향토적이고 한국적인 정서를 드러내기 위해 '강나루', '밀밭 길', '남도 삼백 리', '술 익는 마을'과 같은 시어를 사용했고, 의미나 감동이 번지는 것을 막고 정서나 의미의 암시를 통해 '생략의 여음'이 돌게 하기 위해 명사형 종결 어미를 사용했으며, 서정시에서 말 한 개 밉게 놓이는 것을 용서할 수 없어 시어의 선택과 구성상의 배의(配意)에 유의하여 개작(改作)했다고 밝히고 있다.

친해지기

'나그네'라는 시에 나타난 '나그네'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 보자.

지도 방법 : 이 활동은 자작시 해설을 읽고 자신이 생각하는 '나그네'의 이미지를 떠올려 보게 하는 활동이다. 같은 현상이나 사물에 대해서도 느낌이나 생각이 다를 수 있으므로 자유롭게 이미지를 떠올려 보도록 하고 그러한 이미지를 떠올려 본 이유도 생각해 보게 할 필요가 있다.

예시 답안 :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라는 구절에서 모든 것을 버리고 어디론가 유유자적(悠悠自適)하게 떠도는 나그네의 모습이 떠오른다.

한 편의 시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탄생하는지 생각해 보자.

지도 방법 : 이 활동을 하기 전에, 사람마다 느낌과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창작의 동기나 과정이 같을 수 없고, 창작의 방법에는 정해진 왕도가 없다는 사실을 먼저 주지시킬 필요가 있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그동안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어떠한 방법으로 시를 써왔는지를 생각해 보게 하고, 앞으로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시를 써야 할지를 생각해 보게 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예시 답안 : 시를 쓰는 사람의 체험이나 사상을 바탕으로 글감을 찾고, 주제를 선정하여 진솔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다. 그리고 연, 행, 시어의 순서로 필요 없는 부분을 삭제하고 강조할 부분이나 중요한 부분을 중심으로 추가할 내용을 찾아 쓴다. 그 다음에 운율을 고려하여 시어를 다듬어 표현한다.

꼼꼼히 읽기

이 글은 '나그네'라는 한 편의 시가 완성되기까지의 창작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자작시(自作詩) 해설이다. '나그네'라는 시에 특정 시어나 리듬, 표현 방법 등을 차용한 이유나 개작(改作)의 과정 등을 밝힘으로써, '나그네'라는 시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탄생했는지, 그리고 작가의 문학적 취향과 상상력, 감수성, 언어 감각 등이 어떻게 시로 형상화되어 나타나는지를 알 수 있게 해 주는 글이다.

1. '나그네'가 모든 것을 버리고 떠도는 존재로서의 이미지로 만들어진 것은 작가의 어떠한 현실적 체험과 의식에서 비롯되었는지 말해 보자.

지도 방법 : 이 활동은 특정한 시어의 이미지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를 파악하기 위한 활동이다. 교사는 본문에서 주어진 문제의 답을 찾아서 확인하는 수준에 머물지 않도록 지도하고, 이미지의 개념이나 이미지의 표현 방법, 이미지의 기능 등을 환기시킬 필요가 있다.

풀이 : 모든 소망을 잃어버린 일제 강점기라는 현실적 체험과 그러한 현실에서 버리는 것만이 살길이라는 의식에서 나온 것이다.

도우미(지배적 심상과 주제의 암시 기능) : 이미지의 기본적인 기능은 감각적 체험을 되살리는 데 있다. 이런 기본적 기능 이외에 이미지는 보이지 않는 관념들을 구체적 형상을 통해 암시하는 기능을 하게 된다. 이러한 이미지를 지배적 심상(이미지)이라고 한다. 지배적 심상이란 작품과 직결되는 구체적 형상 또는 그 형상에 내포된 관념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배적 이미지는 작품 전체를 통하여 반복 등장하여 시상의 흐름을 지배하며, 독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 준다. 그리고 시의 주제를 암시적으로 드러내는 역할을 하게 된다.

2. 작가가 '나그네'에서 향토적이고 한국적인 정서를 드러내기 위해 어떠한 시어를 사용했는지 찾아보자.

지도 방법 : 이 활동은 작가가 한국적 정서를 드러내기 위해 사용한 특정한 시어를 찾아보는 활동이다. 교사는 학생들이 주어진 문제의 답을 찾는 데에 그치지 않도록 하고, 각각의 시어에 담긴 의미를 파악하는 데까지 나아가도록 지도한다.

풀이 : 강나루, 밀밭 길, 남도 삼백 리, 술 익는 마을

도우미('나그네'에 사용된 시어의 의미)

 

·나그네 : 일제 강점기하에서 억압받는 우리 민족의 표상. 시대 현실과 관련된 비극적 인간상.

·구름에 달 가듯이 : 행운유수(行雲流水), 유유자적(悠悠自適)의 이미지.

·길은 외줄기 : 나그네의 고독연상.

·남도 삼백 리 : 추상적 정감의 거리, 나그네가 가야 할 길의 아득함.

·술 익는 마을 :  한국인의 정서가 잘 드러나 있는 마을. 생활의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던 당시의 사정을 고려해 볼 때, 현실과는 다소 동떨어진 표현으로, 비판의 여지가 있음.

탐구 / 문학 창작의 원리와 방법

 작가는 자신이 살았던 시대적 배경과 문화적 관습을 바탕으로 내용, 형식, 표현 등을 긴밀하게 구성하여 하나의 미적 구조를 지닌 작품을 창조한다. 작품을 구성하는 내용은 작가 개인의 구체적인 경험과 의식에서 나오고, 형식은 문화적으로 형성된 문학 고유의 체계와 관습에 기반을 두며, 표현은 작가가 살던 당시의 언어적 관습이나 작가의 참신한 발상에서 나온다.

문학 창작의 방법

(1) 내용 : 인간의 삶과 관련된 주제 의식에서 나오므로 내용을 잘 구성하기 위해서는 사물을 주의 깊게 관찰하여 소재를 포착하고, 순간의 감흥을 불러 일으켜 진지하게 기록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2) 형식 : 문학 고유의 체계와 관습에 기반을 두고 있으므로 기존 작가들의 작품을 읽으면서 관습화된 형식을 익히고 창조적으로 발전시켜 나간다.

(3) 표현 : 창의적인 발상에 의해 나오는 것이므로 기존의 표현들을 익히고 발상의 전환을 통해 창조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개발한다.

지도 방법 : 문학 작품의 미적 가치를 구성하는 요소에는 내용, 형식, 표현 등이 있음을 주지시키고, 이 들을 잘 구성하여 작품을 창작하기 위해서는 풍부한 체험과 문제 발견 능력이 필요하다는 점과, 창의적인 형식이나 표현 방법을 익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3. 작가가 '나그네'에서 명사형 종결 어미를 사용한 이유를 말해 보자.

지도 방법 : 이 활동은 각 시구를 명사형으로 종결한 의도와 그 효과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기 위한 활동이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주어진 문제의 답을 찾는 데에 그치지 않도록 하고, 만약 학생들 자신이 시를 쓴다면 시구를 어떠한 방법으로 마무리할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도록 유도한다.

풀이 : 시구를 명사형 종결함으로써 의미나 감동이 번지는 것을 막고 정서나 의미의 암시를 통해 '생략의 여음'이 돌게 하여 시를 더욱 생기 있고 함축성 있게 표현하기 위함.

4. 작가가 '나그네'라는 시를 개작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시한 것은 무엇인가?

지도 방법 : 이 활동은 개작의 과정에 드러난 작가의 문학적 취향을 살펴보게 하기 위한 활동이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작가가 시어를 어떠한 방식으로 선택하고 배치했는지를 살펴보게 하고, 이를 참고로 하여 자신이 시를 쓸 때 시어를 어떻게 선택하고 배치할 것인지를 생각해 보도록 유도한다.

풀이 : 시어의 선택과 배치

시야 넓히기

다음은 '나그네'를 탄행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작품이다. 이 작품을 읽고, 아래의 활동을 해 보자.

차운산 바위 위에 하늘은 멀어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칠백 리(七百里)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여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 조지훈, '완화삼(玩花衫)'

(1) '나그네'가 '완화삼'에서 어떠한 영향을 받았는지 구체적으로 지적해 보자.

(2) '나그네'와 '완화삼'의 표현의 차이를 구체적으로 분석해 보자.

지도 방법 : 이 활동은 '나그네'의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완화삼'과 '나그네' 두 작품의 영향 관계와 표현의 차이를 비교해 보는 활동이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기존의 작품을 모방하거나 기존의 작품에 감명을 받고 한 편의 작품을 쓸 때 좋은 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지도할 필요가 있다.

풀이 :
(1)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칠백 리 →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
·술 익는 강마을 저녁 노을이여. →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
(2)'나그네'는 명사형 종결 어미를 사용하여 간결하고 객관적인 묘사로 향토적 특징을 지니나, '완화삼'은 영탄조의 종결 어미를 사용하여 유려하고 주관적이며 풍류적인 특징을 드러낸다.

도우미

조지훈의 '완화삼'

 이 시는 목월의 '나그네'를 탄생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작품으로, 암담한 현실 속에서 달랠 길 없는 민족의 정한을 스스로 나그네화하여 아름다운 시어, 시각적 이미지, 고전적 가락을 통해 탄식과 체념이 담긴 낭만적 시정(詩情)으로 노래하고 있다. 여기서 시제 '완화삼'은 '꽃을 보고 즐기는 선비'를 의미한다.

 일제 강점기하라는 비극적 현실 상황을 상징하는 '차운산 바위'에 존재하는 화자는 '하늘'과 같은 이상을 꿈꾸어 보지만, '산새'로 표상된 화자는 '하늘'을 바라보며 구슬피 울고 있을 수밖에 없다. 이상 세계에 도달할 수 없다는 현실적 제약으로 인해 정처 없는 나그네가 된 그는 '칠백 리 물길'을 따라 긴 유랑길을 떠나게 된다. 그 유랑길의 한 여정인 어느 강마을에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이르렀을 때, 마침 술 익는 냄새와 함께 서산에선 붉은 노을이 물들고 있다.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라는 시행은 나그네와 꽃, 곧 시인과 자연이 합일된 경지이자, 이 시의 제목을 '완화삼'이라 한 이유를 알게 해 준다. '완화삼'이란 본디 '꽃무늬 적삼을 즐긴다.'는 뜻으로, 이 시행의 '소매 꽃잎에 젖어' 있는 것 같은 무념 무상의 경지를 표상한다. 그런 다음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자연에 동화되어 하염없는 나그네 길을 다시 떠나는 그는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며,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여'와 같은 애상감에 젖는 것이다.

 이 시는, 세속적인 집착과 속박에서 벗어나 구름처럼 흘러가는 나그네의 고독과 무상감이 7·5조, 3음보격의 전통적 가락과 낭만적 분위기, 감각적 이미지의 시어와 함께 간결한 시행 구조에 완전히 용해됨으로써 전통적 서정시의 전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 출처: 김태형·정희성, '현대시의 이해와 감상'. 문원각. 1994

표현하기

'보랏빛 소묘'의 내용을 바탕으로 '나그네'라는 시를 한 편의 그림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어떠한 내용을 부각시켜서 그릴 것인지 다음의 사항과 관련하여 토의해 보고, 모둠별로 그림을 그려 보자.

(1) 그림의 재료는 무엇을 택할 것인가?

(2) 나그네를 어떠한 모습으로 그려 낼 것인가?

(3) 시간적 배경과 공간적 배경은 어떻게 설정하여 전체적인 분위기를 드러낼 것인가?

지도 방법 : 이 활동은 작가의 자작시 해설과 작품의 내용을 종합하여 한 편의 그림으로 표현해 보는 활동이다. 교사는 소규모 모둠을 지정해 주고, 모둠별로 그림의 중심 소재인 나그네의 정서가 잘 드러나는 그림으로 표현하도록 지도한다. 한국적인 정서를 표현하기에 적합한 재료가 무엇일지를 충분히 고려하도록 하고, 전체적인 분위기를 살릴 수 있는 배경 설정에도 신경을 쓰도록 지도한다. 그리고 완성된 작품을 모둠별로 돌려보고 서로 평가하도록 한다.

예시 답안 :

생략

도우미

 그림은 한국적인 정서를 잘 표현할 수 있는 수묵화로 하는 것이 좋겠다. 구름, 달, 밀밭, 강나루 등 한국적 정서가 잘 드러나 있는 배경에 힘없이 걸어가는 나그네의 모습을 그림에 담을 수 있을 것이다.

'청노루' 자작시 해설

머언 산(山) 청운사(靑雲寺)

낡은 기와집

 

산은 자하산(紫霞山)

봄눈 녹으면

느릅나무

속잎 피어나는 열두 굽이를

 

청(靑)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

 이 작품을 쓸 무렵에 내가 희구(希求)한 것은 '핏발 한가락 서리지 않는 맑은 눈'이었다.

나이 오십이 가까운 지금에는 나의 안청(眼晴)에도 안개가 서리고, 흐릿한 핏발이 물들어 있지만 젊을 때는 그래도 '핏발 한 가닥 서리지 않는 눈'으로 임을 그리워하고 자연을 사모했던 것이다. 또한 그런 심정으로 젊음을 깨끗이 불사른 것인지 모르겠다. 어떻든 그 심정이 '청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을 그리게 하였다.

 이 작품이 발표되자 '청노루'가 과연 존재하느냐 하는 의문을 가지는 분이 있었다. 물론 푸른 빛 노루는 없다. 노루라면 누르스름하고 꺼뭇한 털빛을 가진 동물이지만, 나는 그 누르스름하고 꺼뭇한, 다시 말하자면 동물적인 빛깔에 푸른빛을 주어서 정신화된 노루를 상상했던 것이다. 참으로 오리목 속잎이 피는 계절이 되면 노루도 '서정적인 동물'이 될 것만 같았다.또 청운사나 자하산이 어디 있느냐 하는 것도 문제가 되었다. 어느 해설서에 '경주 지방에 있는 산 이름'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한 것을 보았지만 이것은 해설자가 어림잡아 설명한 것에 불과하다. 기실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완전히 내가 창작한 산명이다.

 나는 그 무렵에 나대로의 지도를 가졌다. 그 어둠과 불안한 일제 말기에 나는 푸근히 은신할 수 있는 어수룩한 천지가 그리웠다. 그러나 당시의 한국은 어디나 일본 치하의 불안하고 바라진 땅뿐이었다. 강원도를 혹은 태백산을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어느 곳에도 내가 은신할 수 있는 한 치의 땅이 있을 것 같이 않았다. 그래서 나 혼자의 깊숙한 산과 냇물과 호수와 봉우리와 절이 있는 마음의 자연 지도를 그려 보게 되었다.

 마음의 지도 중에서 가장 높은 산이 태모산(太母山), 태웅산(太熊山), 그 줄기를 받아 구강산(九江山), 자하산(紫河山)이 있고 자한산 골짜기를 흘러 내려와 잔잔한 호수를 이룬 것이 낙산호(落山湖), 영랑호(永郞湖) 영랑호 맑은 물에 그림자를 잠근 봉우리가 방초봉(芳草峰), 그곳에서 아득히 바라보이는 자하산의 보랏빛 아지랑이 속에 아른거리는 낡은 기와집이 청운사(靑雲寺)다.

 이것은 '청노루'라는 작품을 해설한 나 자신의 설명이지만, '청운사'나 '자하산'은 내가 명명한 상상의 세계의 산이요, 절이다. -박목월, '보랏빛 소묘', '현대시의 비밀', 권명옥 편, 이회, 1998.

박목월의 '나그네'

 한국말 가운데 아름답게 들리는 말은 대개가 다 세 음절로 되어있다. 거족적으로 치렀던 행사 때마다 새롭게 등장한 조어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서울 올림픽의 '호돌이'. 대전 엑스포의 '꿈돌이'와 '도우미'가 그렇다. 유행가 가사나 시에서 사랑을 받아온 '나그네'란 말 역시 세 음절이다. 더구나 유음인'ㄴ'자가 앞뒤로 포개져 있어 음색도 곱고 부드럽다.

 이 세 음절의 미학을 최대한으로 살린 것이 박목월의 '나그네'이다. 그의 시에서는 '나그네'라는 말이 '강나루', '밀밭길'과 같은 낱말들과 세 음절을 기저로 한 리듬을 타고 그 말의 아름다움이 더욱 증폭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목월은 '나그네'를 음악적 휴지부로 삼고 있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의 시행에서 나그네라는 말은 맨 마지막 자리에 못박혀 있다. 그렇다. 나그네는 최종적인 울림으로 못 박혀 있는 종지부다. '있다', '있었다', '있을 것이다'와 같이 한국말의 종결 어미는 모두 '다'로 끝난다. 그래서 현재형이든 과거형이든, 혹은 미래든 글의 끝에 이르면 언제나 다 -다 -다의 기관총 소리를 낸다. 그러니 시의 목숨이라고 할 수 있는 말운의 효과와 변화를 어떻게 기대할 수 있겠는가. 시는 그만두고 산문이라 할지라도 한국말로 글을 쓰다 보면 누구나 '다'에서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런데 목월은 단조롭고 멋없는 '다'의 종결 어미를 그야말로 깨끗하게 종결시켜 버린 것이다. '나그네'의 시행은 총 10행이지만 '다'로 끝나는 행은 단 한 개도 없다. '나그네', '삼백 리'. '저녁 놀' 등 모두가 다 체언으로 끝나 있다. 그래서 시각적 이미지만이 아니라 박목월의 나그네는 '다'의 돌뿌리에 채이는 법 없이 달처럼 조용히 무중력 상태에서 떠서 흘러간다.

 시의 음악성만이 아니다. '강나루(강물)→밀밭길→술익는 마을'로 이어져 가는 공간의 이미지는 남도 삼백 리의 외줄기의 길로 이음새 없이 연결된다. 그리고 '타는 저녁놀'에서는 아침 해가 떠서 지기까지 온종일 걸어가고 있는 나그네의 지속하고 있는 시간이 내일 모레로 순환하는 시간으로 이어져 간다. 그러한 공간과 시간의 이음새를 보면 그것을 결코 산문적이 '다'의 종결어로는 아우를 수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마을에서 마을로 황혼에서 황혼으로 끝없이 이동하고 지속하는 그 시간과 공간의 궤적을 스냅숏으로 찍은 원거리 풍경……. 그러기 위해서는 초점거리는 무한대로 놓아야 하며 셔터는 열려져 있어야 한다.

 그때 비로소 땅과 하늘을 나란히 놓은 비유법, '그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의 모습이 떠오른다. 밀밭이 구름이라면, 나그네의 모습(둥근 머리)은 달인 것이다. 그리고 달과 같은 나그네의 동작을 유포니(유쾌하고 듣기 좋은 소리)로 나타낸 것이 '밀', '달', '길', '술', '놀', '마을'과 같은 'ㄹ'자로 끝난 시어들이다. 그래서 '나그네'의 음운 조직은 곧바로 나그네의 움직임을 보여 주는 시각적 이미지(구름에 달가듯)와 부합한다. 나그네의 시적 리듬은 바로 나그네가 길을 걷고 있는 도보의 리듬과 일치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시에 있어서의 음이나 이미지를 최종적으로 결정짓는 것은 의미의 요소이다. 시에 있어서의 소리가 '의미의 메아리'라면 그 이미지는 '의미의 그림자'인 것이다. 우리의 시선은 그 메아리와 그림자를 가로질러 의미의 심장으로 향한다. 그리고 나그네 뜻은 무엇인가라고 묻게 된다. 본래 나그네라는 말은 '나간 이'. '나간 사람'에서 온 말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일상적 차원에서 보면 결코 좋은 의미가 아니다. 나그네를 뜻하는 영어의 트러벨러(traveller)가 고통이라는 말과 관련이 있는 것처럼 교통이 발달한 오늘날이라 하더라도 나그네는 '길 고생'을 함유하고 있는 말인 것이다. 하물며 도보의 여행자, 그리고 농경 시대의 정주형 문화 속에서 살아있다. 나그네의 함축적 의미는 결코 긍정적일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이 시적 차원으로 보면 그 고통과 외로움과 물질적인 결핍마저도 새로운 의미로 역전된다. 산문적 의미로 보면 김삿갓은 거지이지만, 시적 차원에 놓으면 사랑받는 방랑 시인이 되는 것과 같다. 나그네는 집을 나간 가출자에서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 내는 창조자가 된다. 나그네의 한발짝 한발짝은 고통이 아니라 새로운 풍경을 펼쳐가는 보행이다. 운명과도 같은 지평의 둘레는 나그네의 보행에 의해서 변화하고 물질의 결핍은 오히려 가벼운 붓짐이 된다. 멈추지 않는 것, 소유하지 않는 것, 모든 방향으로 열려진 도주로(스키조라인)를 지니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바로 나그네다. 쟁기로 굳어버린 흙을 뒤엎듯이 시인은 일상적 의미의 밭을 갈아 새 흙을 들어낸다. 의미의 경작자인 이 시인의 영토에서는 모든 나그네들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걷는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멀리 보인다. 그것이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이며, 그 걸음이 멈춰 서는 곳이 저녁놀이 타는 술익는 마을이다.(중략)

 '나그네'(인간)- '저녁놀'(시간)- '술익는 마을'(공간)이 '소리'와 '이미지'와 '의미'의 세 가지 요소로 융합한 연금술 속에서 한국말, 한국 마을, 그리고 고통스러운 나그네의 모습은 우리가 한 번도 만져 보지 못한 신비한 광석으로 결정한다. -이어령, '다시 읽는 한국시', <조선일보>, 1996.5.12. 

희망의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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