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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꽃 당신 /도종환

미스커피 2012. 1. 4. 22:19

접시꽃 당신

희망의 문학

옥수수 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 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 나갑니다.

씨앗들도 열매로 크기엔 아직 많은 날을 기다려야 하고

당신과 내가 갈아 엎어야 할

저 많은 묵정밭은 그대로 남았는데

논두덩을 덮은 망촛대와 잡풀가에

넋을 놓고 한참을 앉았다 일어섭니다.

마음놓고 큰 약 한 번 써보기를 주저하며

남루한 살림의 한 구석을 같이 꾸려오는 동안접시꽃

당신은 벌레 한 마리 죽일 줄 모르고

악한 얼굴 한 번 짓지 않으며 살려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내가 함께 받아들여야 할

남은 하루하루의 하늘은

끝없이 밀려오는 가득한 먹장구름입니다.

처음엔 접시꽃 같은 당신을 생각하며

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은 듯

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떨려 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에게 최선의 삶을

살아온 날처럼 부끄럼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마지막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압니다.

우리가 버리지 못했던

보잘것없는 눈높음과 영욕까지도

이제는 스스럼없이 버리고

내 마음의 모두를 더욱 아리고 슬픈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날들이 짧아진 것을 아파해야 합니다.

남은 날은 참으로 짧지만

남겨진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듯 살 수 있는 길은

우리가 곪고 썩은 상처의 가운데에

있는 힘을 다해 맞서는 길입니다.

보다 큰 아픔을 껴안고 죽어 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엔 언제나 많은데

나 하나 육신의 절망과 질병으로 쓰러져야 하는 것이

가슴아픈 일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콩댐한 장판같이 바래어 가는 노랑꽃 핀 얼굴 보며

이것이 차마 입에 떠올릴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마지막 성한 몸뚱아리 어느 곳 있다면

그것조차 끼워 넣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

뿌듯이 주고 갑시다.

기꺼이 살의 어느 부분도 떼어주고 가는 삶을

나도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옥수수 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굵어집니다.

이제 또 한 번의 저무는 밤을 어둠 속에서 지우지만

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습니다.

 

희망의 문학 요점 정리

희망의 문학 지은이 : 도종환

희망의 문학 갈래 : 자유시, 서정시

희망의 문학 성격 : 애상적

희망의 문학 어조 : 애절하고 애처로운 어조

희망의 문학 제재 : 병든 아내

희망의 문학 주제 : 아픔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랑의 소중함

희망의 문학 표현 : 산문적인 형식에 애상미(哀傷美 : 슬프고 감상적인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아름다움)가 담겨 있고, 담담한 고백조의 표현으로 감정이 절제되어 있다.

희망의 문학 출전 : 접시꽃 당신 실천문학사(1986년)


 

희망의 문학 내용 연구

옥수수 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불치병에 걸린 가녀린 생명을 표현하기 위해 '나리다'로 바꾸었음]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힘들게 살고 있음을 의미함]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때까지[고단한 인생의 여정]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시적 화자의 아내가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음 / 일장춘몽]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 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아내]의 몸을 우수수 빠져 나갑니다.[죽음을 앞두고 있음]

씨앗들도 열매로 크기엔 아직 많은 날을 기다려야 하고

당신과 내가 갈아 엎어야 할

저 많은 묵정밭[오래 묵혀 거칠어진 땅으로 시적 화자와 아내가 살면서 해야할 일들]은 그대로 남았는데

논두덩을 덮은 망촛대와 잡풀가에

넋을 놓고 한참을 앉았다 일어섭니다.[암담한 화자의 심정] - 불치병에 걸린 '아내'와 이를 바라보는 시적 화자의 암담한 심정 - 기

마음놓고 큰 약 한 번 써보기를 주저하며

남루한 살림의 한 구석을 같이 꾸려오는 동안[넉넉하지 못한 생활 형편]

당신은 벌레 한 마리 죽일 줄 모르고

악한 얼굴 한 번 짓지 않으며 살려 했습니다.[가난하지만 순수하고 착한 마음으로 살아옴]

그러나 당신과 내가 함께 받아들여야 할

남은 하루하루의 하늘은

끝없이 밀려오는 가득한 먹장구름[시련과 고난으로 화자의 절망감을 표현하기 위해 '구름'보다는 '먹장구름'이라는 어휘를 사용]입니다. -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로 인한 절망감 - 승

처음엔 접시꽃 같은 당신을 생각하며

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은 듯

주체할 수 없는 신열[병으로 인하여 오르는 몸의 열이지만 화자의 절망감을 의미]로 떨려 왔습니다.[병든 아내를 바라보는 화자의 절망감]

그러나 이것이 우리에게 최선의 삶을

살아온 날처럼 부끄럼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마지막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압니다.[죽음과 이별이라는 부정적 상황을 긍정적인 태도로 받아들이고 있음]

우리가 버리지 못했던

보잘것없는 눈높음과 영욕까지도

이제는 스스럼없이 버리고

내 마음의 모두를 더욱 아리고[마음이 몹시 고통스러움을 말하는데 아내의 고통스런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화자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 어휘가 아니다. 화자는 불필요한 영욕에 미련을 두었던 지난날의 삶을 버리고, 자신과 아내보다 더 아프고, 더 고통스러운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몸뚱이 일부라도 떼어 줄 수 있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화자 스스로 자신과 아내의 불행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정신적으로 극복하려는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따라서 '더욱 아리고 슬픈 사람'은 아내가 아닌 주변의 고통받는 사람들을 표현한 말이다.] 슬픈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날들이 짧아진 것을 아파해야 합니다.[다른 사람을 위하는 삶 / 살신성인의 자세 / 연대의 정신]

남은 날은 참으로 짧지만

남겨진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듯 살 수 있는 길은

우리가 곪고 썩은 상처의 가운데에

있는 힘을 다해 맞서는 길입니다.[적극적인 삶의 자세 - 넓은 사랑의 실천이며 타인을 위한 연대의 정신이 담겨 있음]

보다 큰 아픔을 껴안고 죽어 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엔 언제나 많은데

나 하나 육신의 절망과 질병으로 쓰러져야 하는 것이

가슴아픈 일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콩댐한[불린 콩을 갈아서 들기름 따위에 섞어 장판에 바르는 일. 장판이 오래가고 윤과 빛이 난다] 장판같이 바래어 가는[시들어 가는] 노랑꽃 핀 얼굴[생기를 잃어 가는 아내의 모습을 표현한 말] 보며

이것이 차마 입에 떠올릴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마지막 성한 몸뚱아리['몸뚱이'의 속된 말로 자신의 몸을 아낌없이 줄 수 있음을 강조하며 스스로에게 다짐하기 위해서 표현한 말] 어느 곳 있다면

그것조차 끼워 넣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

뿌듯이 주고 갑시다.[자기 희생의 정신과 애타(愛他) 정신]

기꺼이 살의 어느 부분도 떼어주고 가는 삶을

나도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 현실의 불행을 겸허하고 수용적인 자세로 받아들이고자 함 - 전

옥수수 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굵어집니다.

이제 또 한 번의 저무는 밤을 어둠 속에서 지우지만

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습니다[영원한 사랑의 다짐]. - 죽음을 초월한 영원한 사랑 - 결


 

희망의 문학 이해와 감상

 도종환의 시들은 슬픔의 법도를 잃지 않는다. 그의 시들은 아내의 죽음을 통해 살아 있는 자신의 삶의 무거움을 새로이 깨달으며, 자신의 애통함이 이러할진대 더 어려운 처지의 이웃들은 어떠할까 하는 구체적인 연대감과 목숨 있는 것들의 소중함에 대한 각성 속에 서 있다. 니아가 슬픔을 감당해 내는 시인의 태도는 참으로 진실하고 결백하며 또 그런 만큼이나 사사스러움 없이 의연한 것이어서, 이 방면의 근래의 어떤 시들과도 비교될 수 없는 진정성을 획득하고 있다.

 이 작품은 아내의 죽음이라는 개인적인 불행 앞에서 끝까지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겸허하고 희생적인 자세로 받아들이며, 타인을 위한 보다 넓은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겠다는 화자의 삶의 자세가 드러나 있다. 도종환의 애절한 작품은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희망의 문학 심화 자료

희망의 문학 도종환

  1954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충북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충남대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89년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 투옥된 이후 교육운동을 해왔다. 1998년 해직 10년 만에 복직해 덕산중학교에서 시골 아이들과 즐겁게 생활하고 있다가 건강상의 이유로 퇴직했다.

  1984년 동인지 <분단시대> 제1집에 '고두미 마을에서' 등 5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다. 1985년 첫시집 <고두미 마을에서>를 시작으로 <접시꽃 당신>,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지금 비록 너희 곁을 떠나지만> 등을 펴냈다. 산문집으로 <지금은 묻어둔 그리움>, 시선집 <울타리꽃> 등이 있다. 제8회 신동엽창작기금을 수여받았으며 제7회 민족예술상, 제2회 KBS 바른 언어상을 수상했다.  

희망의 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