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무 /신경림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 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조무래기들뿐
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 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산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 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라리를 불꺼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꺼나
요점 정리
지은이 : 신경림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성격 : 사실적, 묘사적, 현실 비판적, 참여적, 산문적
어조 : 절망과 분노의 심정이 느껴지는 목소리, 산업화에 밀려 소외된 계층의 애환을 울분과 분노의 목소리로 표출
표현 : 감정을 직설적으로 토로하고 비애가 담긴 어조를 구사함, 민요적 가락이 두드러지고 역설적 상황 설정과 심리의 반어적 표출, 이야기적 요소의 재미와 희곡적 요소와 사실적 수법의 배합
제재 : 농무('농무'는 농민들의 춤 또는 농악춤을 의미한다. 농무는 모든 민속춤이다. 다 그렇듯이 제의적인 기능과 풍농을 위한 축원적 기능을 보여준다. 그러나 산업화가 되면서 농촌은 소외되고 따라서 농무의 기능도 소멸하게 된다. 산업화 시대에 농촌에서 행해지는 농무를 소재로 한 이 시에서는 제의성이나 축원성이 아니라 근대화 과정에서 소외된 농민들의 절망을 노래한다. 이것은 근대화 과정이 안고 있는 사회적 모순을 비판하는 작가 의식의 발로이다.)
구성 : 시간의 흐름에 따른 서사적 구성
1∼6행 : 공연 후 답답하고 공허한 마음을 술로 달램.
7∼10행 : 농악패에 대한 예전과는 다른 냉담한 반응
11∼16행 : 피폐한 농촌 현실에 대한 울분
17∼20행 : 신명난 농무를 추며 삶의 고뇌와 울분 토로
주제 : 산업화 시대에 소외된 농민들의 한과 울분, 암담한 현실에 대한 분노와 소외된 농민들의 한
출전 : <농무, 창작과비평사, 1975>
내용 연구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막이 내리는 상황 설정, 작품의 정조를 비탄으로 이끌어감, 막이 내리는 장면으로 시작함으로써 작품의 전체적 정조를 이루는 비탄과 허탈감을 효과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 텅빈 운동장 : 막이 내리는 장면으로 시작함으로써 공간적 배경에 대한 묘사를 통해 소외된 농민의 현실과 화자가 느끼는 작품의 전체적 정조를 이루는 비탄과 허탈감을 효과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징이 울린다'라는 작품의 첫 구절은 '농무'라는 제목과 합쳐져 공연의 시작을 기대하게 하지만, 바로 다음에 나오는 '막이 내렸다.'라는 표현은 이와같은 기대를 깨뜨린다. 이와 같은 이 작품의 시작을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라는 말은 즉 끝났다는 표현으로 '종친 인생', '막내린 인생'이라는 연상을 일으킨다. '가설 무대'가 주는 초라한 느낌,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빈 운동장'이 주는 썰렁함도 이와 마찬가지로 표현 의도를 가지고 있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 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빈(소외감과 공허감) 운동장
우리는(집단의 성격) 분이 얼룩진 얼굴(화자의 심리 반영으로 분노, 우울함을 말함)로
학교 앞 소줏집(울분의 표출 장소)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심리의 직접적 표출로, 현실에서 소외된 농민의 한과 울분을 직설적으로 표현한 부분으로 구체적으로는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나 지으면서 살아가는 자신들의 처지와 그런 삶을 강요하는 현실에 대한 불만을 가리키며, 이 작품의 직접적인 모티브가 된다. ) - 답답하고 고달픈 심정을 술로 달래는 모습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조무래기들뿐(젊은 남자들은 도시로 떠남)
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 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꽹과리를 -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서 농촌 공동체의 전통이 붕괴되었음을 나타내는 부분이다. 이 시의 제목인 '농무'는 원래 농촌에서 농번기의 공동 작업인 두렛일을 하고 나서 두레패가 함께 즐기던 농악 연주와 춤을 말한다. 그러나 화자와 그 패거리의 농무에는 농촌 공동체의 아무런 호응도 나타나 있지 않으며, '처녀애들은 - 철없이 낄낄대는구나'라는 표현을 통해 화자 패거리가 느끼고 있는 모멸감만이 드러날 뿐이다. 피폐화된 농촌 현실 때문에 흥이 나지 않는 분위기] - 장거리에서의 농악 공연 모습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화자의 분노의 심정)[꺽정이처럼 울부짖고 : '꺽정이'는 조선조 명종 때 구월산을 무대로 활동한 백정 출신의 의적인 임꺽정을 가리키는 것으로, 그는 엄격한 신분제 사회의 모순에 저항한 민중적 영웅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꺽정이처럼 울부짖'는 것은 바로 모순된 현실에 대한 불만과 울분을 직접적으로 토로한다는 뜻이다. ]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권력에 빌붙어 임꺽정을 배신한 인물)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어떤 녀석은 -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 꺽정이와 서림이는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에 나오는 인물로 '꺽정이'는 조선 명종 때 구월산을 무대로 활동한 백정 출신의 의적. '서림이'는 한때 임꺽정을 모셨으나 종내 권력에 빌붙어 그를 배신한 인물. 전자는 사회 모순에 저항한 민중적 영웅이고, 후자는 일신의 영달을 추구한 인물. 여기서의 '울부짖음'은 모순된 현실에 대한 울분의 격정적 토로를 뜻하고, '서림이'는 임꺽정의 모사였으나 결국 권력에 빌붙어 임꺽정을 배신한 인물로 모순된 현실에 편승해서 일신의 영달과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람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
산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보름달은 - 발버둥친들 무엇하랴 : 농민들이 느끼는 소외감과 울분, 자포자기의 심정을 표현한 부분이다. '보름달'은 달이 차고 기우는 주기에서 절정에 해당하는 것이므로 화자의 소외된 처지와 상반되는 이미지를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한심스러움과 자조가 담겨 있음, 다시 말해서 현실에 대한 체념을 자조적으로 표현한 구절이다. 아무리 불만을 토로하고 몸부림쳐 봐도 자신(농민)들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현실의 질서를 바꿀 수 없다는 체념적 인식의 표현이다. ] - 피폐한 농촌 현실에 대한 울분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채산성이 없는 농사. 피폐한 농촌의 현실을 표현하고 있고, 산업화로 인한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와 사회적 모순을 고발하고 있는 부분이다.]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 두고
쇠전[우시장(牛市場). 소를 파는 시장.]을 거쳐 도수장[도살장. 짐승을 잡는 곳]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흥겨운 신이나 멋)이 난다(집단적 한풀이로 분노의 반어적 표현으로 울분과 허탈을 말하고 있으며, 이는 빠르고 격렬한 악기의 소리와 춤이 어우러지면서 신명을 돋우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춤을 추는 것이 현실에 대한 불만과 울분을 풀어 버릴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므로 미친 듯이 춤에 몰입해서 자신을 잊어버리려고 하는 의식적인 노력의 결과이기도 한다. 일종의 자기 정화 기능으로도 볼 수 있다.)[쇠전을 거쳐 - 신명이 난다. : 농무의 신명이 고조됨을 표현했지만, 살의가 느껴진 정도의 농민의 분노가 내재되어 있는 표현이다. ]
한 다리를 들고 날라리(전통 악기 '태평소'의 속칭)를 불꺼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꺼나[이까짓 - 어깨를 흔들거나 : 분노와 울분에서 나오는 반어적인 신명이 표현된 부분이다. 전통적으로 우리 농촌에서는 소를 가족과 같이 친밀하고 소중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쇠전', 즉 우시장은 그 소를 내다 파는 곳이고, '도수장', 즉 도축장은 소가 죽어 쇠고기로 바뀌는 장소이다. 작품 창작 당시에 우리 나라에서는 산업화를 위해서 농촌과 농민을 희생시키는 중공업위주 정책을 지속적으로 시행했고, 그 결과 농민들은 몰락하고 그 농민들 역시 도시로 유입되어 도시의 하층민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농민들은 소를 팔 수밖에 없었고, 같이 더불어 살던 소들은 한갓 고기에 지나지 않게 되어 버린 것이다. 여기서 '쇠전', '도수장'이라는 공간은 작품 안에서 이와 같은 농촌의 현실을 함축하고 있다. ] - 농무를 추며 울분을 신명으로 승화시킴
이해와 감상
신경림 시인은, `농무'란 원래 없는 말인데 이 시를 쓰면서 지어낸 것이라 했다. `농무'란 농악을 할 때 추는 춤을 가리키는 것일텐데, 말은 시인이 지어낸 것이지만 그 몸짓은 이미 있던 것이다. 이 시에는 1960년대의 농촌 모습이 잘 담겨 있다. 사실 그 모습은 여러 정황을 볼 때 오늘날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놀이의 분위기가 작품을 가득 채우고 있지만 그 놀이는 즐거움으로 충만한 것이 아니다. 놀이와 춤이 분풀이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농부들은 학교 운동장에서 무슨 약식 공연을 했던 모양이다. 공연은 끝났고, 학교 앞 소주집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들에게 허탈감이 밀려왔고, 그들 모두 장거리에서 다시 춤판을 만드는 과정이 찬찬히 그려지고 있다. 아이들과 처녀애들만이 춤판을 구경하고 있을 뿐이지만 보름달 아래 농부들은 임꺽정의 주인공들처럼 신명을 낸다. 술자리에서 장거리의 춤으로 이어지는 춤판의 과정 묘사에 끼어드는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라는 구절이나, `이까짓 산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라는 구절은 농촌의 현실과 농부들의 심정을 잘 전해 준다. 그래서 현실의 불우한 조건을 넘어선 흥겨운 축제를 표방하고 있는 이 시의 표면적 주제는, 뒷면에 숨겨진 당대의 사회·정치적 현실을 다분히 문학적인 방식으로 고발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고발의 방식은 문학을 압도하지 않으며, 독자들에게 충분히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시상의 진전과 더불어 나아가다 보면, 우리도 어느새 시 속의 농무와 함께 `한 다리 들고 날라리를 불'고,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게 된다. 그리고 그 공감과 참여가 현실을 잊고 얄팍한 위로에 몸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그 현실의 착잡함을 이겨내는 민중의 생명력을 확인하는 일에 귀결됨을 깨닫기란 어렵지 않다.
이 시는 좋은 민중시, 농촌시의 전범으로 손색이 없다. 장르의 특성상 시는 사실주의의 가능성에 열려 있는 편이 아니다. 그러나 그 가능성을 아예 부정할 수 없다면 그 방도는 신경림이 개척한 시의 영역과 매우 가까이 있을 것이다. [해설: 이희중]
이해와 감상1
1970년대 초반 산업화의 여파로 파괴되어 가는 농촌 공동체의 모습을 그들의 놀이인 농무의 신명에서 찾고 있는 시로, 사회적 현실의 변화를 비교적 객관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미 공동체적 분위기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신명나지 않는 농촌 생활과 이를 안타깝게 지켜보려는 농민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농무가 끝난 뒤 소줏집에서 답답하고 고달픈 심정을 술로 달랜다(제1∼6행). 그러다가 장거리에 나서면 조무래기들만 따라붙고 처녀애들이 담벽에 붙어 킬킬댈 뿐이다(제7∼10행). '우리'로 표현된 농무를 추는 무리들은 비료값도 잊으려는 듯 울부짖거나 해해대고 있다(제11∼16행). 그럼에도 농무를 추면 신명이 난다(제17∼20행).
위의 각 부분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더 구체적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6행 : 징이 울리고 막이 내리는 장면이 서두에 제시되어 있다. 구경꾼들이 모두 돌아간 '텅빈 운동장'에서 느껴지는 공허함, '분이 얼룩진 얼굴'의 우울함 속에 답답하고 고달픈 삶에서 느끼는 농민들의 비탄과 분노가 잘 나타나 있다.
7-10행 : 장거리에서의 농무 장면이다. 지난날의 농무는 온 동네 사람들의 신명나는 축제였다. 그러나 요즘의 농무는 피폐화된 농촌의 현실 때문에 흥이 나지 않는다. 젊은 남자들은 대부분 도시로 떠나고 없다. 농무를 추어도 아이들의 흥미거리밖에 되지 못한다. 산업화 초기의 농촌에 남아 있는 농민들의 서글픔이 잘 나타나 있다.
11-16행 : 피폐한 농촌 현실에 대한 울분을 임꺽정 설화에 빗대어 표현했다. 일년 내내 농사를 지어 봐야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이고 보니, 젊은 남자가 농사에 매달린다는 것은 참으로 한심스러운 일이다.
17행-20행 : 농무를 추고 있노라니 신명이 난다고 했다. 그것은 앞에 제시된 비탄과 울분의 분위기로 볼 때, 역설적이다. 그러나 그 신명이 한풀이의 성격을 지닌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안 되는 바도 아니다. 신명난 농무가 이루어지는 공간적 배경이 '도수장'임을 생각하면 살의의 전율마저 느껴진다.
끝으로, 이 시는 농민들이 자신들의 생활 공동체를 지키려는 몸부림을 사실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소박한 농민들의 정취와 정감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농촌의 일상에서 쓰이는 언어들을 효과적으로 구사하여, 서정성을 제고시키기고 있다. 또, 시적 화자의 감정을 표면에 드러낸 다음에는 농무의 동작이나 농악기의 소리로 시상을 정돈하여 절제된 시의 내면 공간을 이루고 있다.
이해와 감상2
신경림의 시는 농촌의 이미지를 쉽게 우리에게 환히 보여 주고 있다. 시집 <농무>에 실린 40여 편은 모두 농촌의 상황시라 할 수 있다.
한국의 현대시가 반세기 후에 얼마나 남을 것인지 예언할 수 는 없으나, 오늘의 농촌을 반세기 후에 시에서 보려면 시집 <농무>에 그것이 있다 하겠다.
그의 이른바 농민시는 서사적 성격을 띠고 있으며, 쉬운 언어를 통해 민중의 삶을 노래한다. 산업화에 밀려 소외된 계층의 애절한 목소리로 노래하는 가운데, 울분과 분노를 표출한다. 이 시는 그런 것의 대표작이 되는 셈이다.
이 시는 산업화 이후의 이농(離農)으로 인한 농촌의 공동화(空洞化) 현상과 분배의 상대적 불평등을 주제로 삼았다.
시의 전편에 감도는 분위기는 절망적이다. 모두가 떠나고 난 허전한 자리, 그 공간에 남은 사람들의 소외감, 그 절망을 잊으려 하는 농무의 춤사위가 비극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시의 주된 제재는 농악 놀이이다. 학교 운동장에 설치한 가설 무대에서의 공연이 끝나고 소줏집에 몰려가 술을 마시는 행위는 서글픔을 잊고자 하는 절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장거리로 농악대의 행렬이 나서면 철없이 웃어 대는 처녀애들은 그들의 애환을 모른다. 답답하고 고달픈 삶에서 오는 원통함과 술과 춤으로 달래야만 하는 처절한 아픔을 이해하지 못한다. 사람의 절망감에서 울부짖는 그들의 아픔은 농촌의 궁핍 현상에서 온 것이다. 이미 농촌을 떠나 버린 사람처럼 그들도 모든 것을 훌쩍 털어 버리고 떠나고 싶어한다.
그러나 농촌은 그들의 터전이며 삶의 원천이자 전통적, 문화적 환경에서 정서가 길들어진 곳이다. 쉽사리 버릴 곳이 아니다. 바로 그 농촌이 봉쇄되어 가는 현실 앞에 그들이 받는 피해는 물질적 차원을 떠나 정신적 공허감으로 이어진다.
농촌의 문화적 전통과 농심(農心)의 상징이 바로 농무(農舞)이다. 그 농악이 사라져 가는 쓸쓸함을 딛고자 농악 가락에 농무를 후줄근하게 추어 보며 절망을 잊어 보려 한다. 그러나 그것은 근본적 치유가 될 수 없음은 분명하다. 그러기에 더욱 농악에 신명을 내어 그 속에 몰입하는 사람들의 애환이 절실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심화 자료
농민의 울분과 아이러니 상황
1970년대 농민시(혹은 민중시)의 대표적 작품으로, 피폐된 농촌의 현실과 농민의 울분을 사실적으로 보여 준다. 텅빈 운동장, 철없는 조무래기들만 따라나서는 장거리에서의 농무, 채산성이 없는 농사 등은 농민의 소외감과 울분을 효과적으로 보여 주는 시적 상황 설정이다. 그런데 마지막에서 그 자조와 한탄이 '신명'으로 전환되고 있다. 그것은 표면적으로 흥겨움의 표현이지만, 이면적으로 살의가 느껴질 정도의 분노의 감정이다. 뿌리 깊은 좌절감과 울분을 농무의 신명이라는 역설적 상황을 통해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신경림 시에서의 '울음'의 의미
신경림의 다른 시 '갈대'가 보여 주는 울음은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라는 표현에서 잘 확인되는 바와 같이, 외면화된 외침이 아니라 내면화된 울음이다. 이러한, '모든 삶은 내면화된 정적 울음이다'라는 인식론적 각성은 '억압받는 혹은 소외된 자들의 삶은 정적 울음이다'라는 명제로 발전한다. 즉, 억압받는 자들의 울음의 현장을 정시하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농무'가 보여 주는 '울음'은 이와 같이 소외받는 자들의 비탄과 울분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신경림 시집 '농무'
신경림(申庚林)의 시집. A5판. 120면. 작자의 첫 시집으로 초간본은 1973년 월간문학사(月刊文學社)에서 간행되었고, 이를 증보하여 1975년 창작(創作)과 비평사(批評社)에서 재간본(B6판. 116면.)이 간행되었다.
초간본의 체제는 1부에 〈겨울 밤〉·〈씨름〉·〈잔칫날〉 등 13편, 2부에 〈전야 前夜〉·〈산 1번지 山一番地〉·〈서울로 가는 길〉 등 11편, 3부에 〈장마 뒤〉·〈귀로 歸路〉·〈산읍일지 山邑日誌〉 등 10편이 실려 있다.
4부에는 〈산읍기행 山邑紀行〉·〈친구〉 등 4편, 5부에 〈갈대〉·〈묘비 墓碑〉·〈그 산정(山頂)에서〉 등 5편으로 총 43편의 시와 백낙청(白樂晴)의 발문(跋文)이 수록되어 있다.
재간본의 체제는 1∼4부까지는 초간본대로 하고, 5부에 1편을 추가하여 6편, 6부에 〈밤새〉·〈강 江〉·〈그 여름〉 등 9편, 7부에 〈어둠 속에서〉·〈산역 山役〉·〈동행 同行〉 등 8편을 첨가하였다.
그리하여 모두 61편의 시와 백낙청의 발문, 김광섭(金珖燮)의 〈제1회만해문학상 심사소감 第一回卍海文學賞審査所感〉과 저자의 후기(後記)인 〈책뒤에〉를 수록하였다.
이 시집은 신경림의 초기 작품세계와 이후 작품의 방향성을 보여 주는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것은 농민으로 대표되는 민중들의 삶에서 신명을 되찾고자 하는 시세계였다.
특히 시 〈농무〉에서 1960∼1970년대 산업화와 근대화의 와중에서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자신들의 삶의 방식이 붕괴되어 가는 농민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형상화함으로써, 이 땅에 터를 잡고 있는 농촌 민중들의 삶의 실상을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다.
즉, 농민들은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농무)는 절망적이고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이런 현실을 농민들이 신명난 춤사위를 통하여 극복하려는 의지를 그려낸다.
그렇게 함으로써 시인의 성장 기반이 되었던 농촌 사회에 대한 애정과 시인의 현실 인식을 표현하고 있다. 이런 모습은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한 다리를 들고 날나리를 불거나/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거나”(농무)에서 엿볼 수 있다.
더구나 이런 시적 형상은 시인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민요적 리듬과 쉬운 시어를 구사하여, 이후 1970∼1980년대 민중문학의 기반을 형성하게 된다.
≪참고문헌≫ 신경림 문학앨범(웅진출판, 1992), 신경림 문학의 세계(구중서·백낙청·염무웅 엮음, 창작과 비평사, 1995), ‘농무’ 기타(홍신선, 현대시학, 1973.5.), ≪농무≫의 시사적 의의(조남현, 문학과 비평, 1988. 여름.), 현대시인 집중연구-신경림 시인편(시와 시학, 1993. 봄.).(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