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오장환
여수(旅愁)에 잠겼을 때, 나에게는 죄그만 희망도 숨어 버린다.
요령처럼 흔들리는 슬픈 마음이여!
요지경 속으로 나오는 좁은 세상에 이상스러운 세월들
나는 추억이 무성한 숲속에 섰다.
요지경을 메고 다니는 늙은 장돌뱅이의 고달픈 주막꿈처럼
누덕누덕이 기워진 때묻은 추억,
신뢰할 만한 현실은 어디에 있느냐!
나는 시정배와 같이 현실을 모르며 아는 것처럼 믿고 있었다.
괴로운 행려(行旅) 속 외로이 쉬일 때이면
달팽이 깍질 틈에서 문밖을 내다보는 얄미운 노스타르자
너무나, 너무나, 뼈없는 마음으로
오-- 늬는 무슨 두 뿔따구를 휘저어보는 것이냐!
요점 정리
작가 : 오장환
성격 : 애상적
구성 :
1연 : 여수에 잠겨 추억을 떠올림
2연 : 현실을 모르며 살아온 삶에 대한 자책
3연 : 괴로운 행려 속에서 느끼는 향수
제재 : 방랑 모티프
주제 : 고향에 대한 그리움, 방랑 속에서 느끼는 향수(鄕愁)
특징 : 자연물의 행위에 빗대어 화자의 심정을 드러냄
내용 연구
여수(旅愁)[나그네 설움, 객수(客愁), 기수(羈愁), 객한(客恨)]에 잠겼을 때[화자의 현재적 처지], 나에게는 죄그만 희망도 숨어 버린다.[절망적인 현실]
요령[일명 솔발로 놋쇠로 만든 종(鐘) 모양의 큰 방울]처럼 흔들리는 슬픈 마음이여!
요지경[확대경을 장치하고 그 속의 여러 가지 재미나는 그림을 돌리면서 구경하는 장난감 /'내용이 알쏭달쏭하고 복잡하여 뭐가 뭔지 이해할 수 없음'을 비유하는 말.] 속으로 나오는 좁은 세상에 이상스러운 세월들[지나온 세월에 대한 화자의 부정적 인식이 드러남]
나는 추억이 무성한 숲속에 섰다. - 여수에 잠겨 추억을 떠올림
요지경[1연에서 세상의 모습을 비유한 표현이 장돌뱅이의 오락 기구 명칭으로 환치됨]을 메고 다니는 늙은 장돌뱅이[장돌림을 낮추어 이르는 말로 각처의 장으로 돌아다니면서 물건을 파는 장수]의 고달픈 주막꿈처럼
누덕누덕이 기워진 때묻은 추억,
신뢰할 만한 현실은 어디에 있느냐![신뢰할 만한 현실은 어디에도 없다는 절망감]
나는 시정배와 같이 현실을 모르며 아는 것처럼 믿고 있었다.[화자의 자기 반성이 드러남] - 현실을 모르며 살아온 삶에 대한 자책
괴로운 행려(行旅) 속[괴롭고 외로운 화자의 처지] 외로이 쉬일 때[자신의 방랑을 돌아보는 때]이면[화자는 각박하고 외로운 삶을 살고 있고, 그 때문에 문득문득 향수를 느끼게 되는 것]
달팽이[화자의 분신] 깍질 틈에서 문밖을 내다보는 얄미운 노스타르자(노스탤지어 : nostalgia - 고향을 그리는 마음. 강한 향수)[화자의 향수를 달팽이의 모습에 빗대어 표현함]
너무나, 너무나, 뼈 없는 마음으로
오-- 늬[달팽이]는 무슨 두 뿔따구[뿔, 달팽이의 더듬이 / 노스타르자]를 휘저어보는 것이냐![껍데기 속에서 내미는 달팽이의 뿔처럼 고향에 대한 향수가 솟아오르는 것으로 화자의 정서를 사물화함 / 자신의 향수를 이입시켜서 화자의 심정을 표현] - 괴로운 행려 속에서 느끼는 향수
이해와 감상
이 시는 현실에 대한 비판 의식을 바탕으로 방랑의 시간에서 체험한 절망의 순간과 그때마다 솟아오르는 추억과 향수를 통해 내면을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이다. 화자는 새로운 미래를 만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고향을 떠나지만 여수(旅愁)에 잠길 때면 마음이 흔들린다. 앞날에 대한 희망이 모두 사라지고 때묻은 추억만이 곁에 있기 때문이다. 화자는 자신이 현실을 모르며 아는 것처럼 믿고 있었을 뿐이라는 점을 깨닫고, 앞으로의 길이 막막해 공허함과 괴로움을 느낀다. 그리고 그 속에서 선명하게 추억을 떠올리며 향수에 젖어 든다. 무엇보다도 오장환의 시에 나타난 고향 의식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비판적 대상이면서도 그리워하고, 버리는 대상이면서도 찾고 싶어하는 것이 바로 그의 고향이다. 또 그의 고향 찾기는 자아 찾기와 병행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에게 고향은 자신을 부정하고 떠나온 곳임과 동시에 생명과 세상에 대해 긍정적 가치관을 두고 돌아가는 곳이기도 하다.
심화 자료
오장환
1916∼? 시인. 본관은 해주(海州). 충청북도 보은 출생. 휘문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일본 메이지대학(明治大學) 전문부를 중퇴하였다.
1933년 휘문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조선문학 朝鮮文學≫에 〈목욕간〉을 발표함으로써 시작 활동을 시작하였지만, 1936년 서정주(徐廷柱)·김동리(金東里)·여상현(呂尙玄)·함형수(咸亨洙) 등과 ≪시인부락 詩人部落≫ 동인으로 참여하면서 본격적인 시작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 뒤 월북하기까지 10년 남짓 동안에 ≪성벽 城壁≫(1937)·≪헌사 獻辭≫(1939)·≪병(病)든 서울≫(1946)·≪나 사는 곳≫(1947) 등 네 권의 시집과 번역시집 ≪에세닌 시집(詩集)≫(動向社, 1946)을 남겼다. 월북한 뒤의 시작 활동은 거의 밝혀져 있지 않으나, 다만 시집 ≪붉은 깃발≫이 있다는 사실만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
그의 시적 편력은 대체로 네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비록 습작품이기는 하나 초기 작품 〈목욕간〉·〈캐메라 룸〉·〈전쟁〉에서 보여주듯이, 새로운 세계를 동경한 나머지 전통과 낡은 인습을 부정하는 세계이며, 둘째는 시집 ≪성벽≫·≪헌사≫의 시편과 같이 낡은 전통과 인습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 해항지대(海港地帶)를 방랑하고 관능과 퇴폐를 바탕으로 하는 탈향지향(脫鄕志向)의 세계이다.
셋째는 시집 ≪헌사≫의 시편 일부와 ≪나 사는 곳≫의 시편이 보여주는 탈향지향에서 귀환하는 귀향의지의 세계이며, 넷째는 시집 ≪나 사는 곳≫의 시편 일부와 ≪병든 서울≫의 시편들이 보여주듯이 그가 광복 후에 좌경 단체에 가담하여 좌경적 이념과 사회주의를 노래한 프롤레타리아 지향의 세계이다.
그의 시적 변모는 과거의 전통과 풍습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데서 출발하여 그 반명제로 탈향지향의 세계를 도모하다가 다시 고향으로 귀의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성벽≫·≪헌사≫에서 보여준 도시적인 이미지와 보헤미안적 기질은 ≪나 사는 곳≫에 와서 전원적인 이미지와 향토애로 바뀐다.
하지만, 광복 후 좌우 이념의 대립과 갈등이 심화되면서 그는 현실에 참여하여 당시 상황을 웅변적으로 토로하게 한다. 이밖에 평론으로 〈백석론 白石論〉(1937)·〈자아(自我)의 형벌(刑罰)〉(1948) 등이 있다.
≪참고문헌≫ 吳章煥硏究(金0xCC53東, 詩文學社, 1990)
≪참고문헌≫ 濁流와 音樂-吳章煥論-(金東錫, 藝術과 生活, 博文出 版社, 1915)
≪참고문헌≫ 吳章煥의 詩集 ‘獻辭’(金光均, 文章 8, 1939.9.)
≪참고문헌≫ 吳章煥의 詩集 ‘城壁’을 읽고(金起林, 朝鮮日報, 1937.9.18.)(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