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방/유명시

바위/유치환

미스커피 2012. 1. 5. 14:01

바위

희망의 문학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愛憐)에 물들지 않고

희로(喜怒)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 년 비정(非情)의 함묵(緘默)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遠雷)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희망의 문학 요점 정리

희망의 문학 지은이 : 유치환(柳致環)

희망의 문학 갈래 : 자유시. 서정시

희망의 문학 율격 : 내재율

희망의 문학 성격 : 상징적, 의지적, 관념적, 남성적

희망의 문학 어조 : 강렬하고 단호한 어조

희망의 문학 구성 :

   1행    화자의 의지 표명

   2-3행  바위의 특성

   4-9행  인생의 희로애락을 드러내지 않겠다는 침묵에의 의지

   10-끝  비정의 처절한 의지

희망의 문학 제재 : 바위

희망의 문학 주제 : 현실 초극(超克)의 의지, 절대적 초월의 경지에 도달하려는 의지, 삶을 초월하려는 의지

희망의 문학 출전 : <생명의 서(書)>

 

 

희망의 문학 내용 연구

바위( '구름'이나 '원뢰'와 대비되는 속성으로 유동적이고 가변적인 이미지를 띠는 반면, '바위'는 항상 그 자리에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서, 고정적인 것, 변하지 않는 것의 이미지를 떠오르게 하고, 이런 이미지는 응결의 이미지를 갖게 한다. 바위는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강인함'의 표상이고, 이념과 의지의 표상으로 "허무(인간 생존의 무의미성) 극복 의지"를 상징하며, 내적인 고행, 초인간적인 굳건함, 견고에의 집념을 표상함.)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단도직입적 표현으로 극적 상황을 설정해 자신의 의지를 강조하고 있으며, 죽어서 다시 환생한다면 무엇보다도 나는 바위가 된다는 말은 시의 발상을 일으킨 대목이다. 가상적으로 '나는 - 바위가 되련다'가 아니라, '내 몸이 변신할 수 있다면, 나는 바위가 되어 자아를 구원하겠다'는 속뜻을 지닌 말이다. 따라서 '바위'는 의지의 응결체로서 등장하고 있고, 그 어느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의지의 표상이다.)

아예 애련(愛憐 : 가엾이 여겨 정을 베풂, 사랑과 연민)에 물들지 않고

희로(喜怒 : 기쁨과 분노로 애련과 함께 인간의 일반적인 감정을 의미하면서 화자의 초월적 의지를 위한 극복의 대상)에 움직이지 않고[아예 애련(愛憐) - 움직이지 않고 : '절대로 슬프다거나 가엾어 하거나 하는 감정에 빠지지 아니하고' 또는 '기쁨이나 노여움 등의 감정에도 움직이지 아니하고'의 뜻 2행이 병렬되어 제 5행의 '비정(非情)'이 어떤 세계인가를 구체적으로 해설하고 있는 대목이다. 애련 . 희로는 모두 인간 감정의 속성들인데, 이를 모두 거부하겠다는 것으로 의지의 표현이다.]

비와 바람(시련)에 깎이는 대로

억 년 비정(非情)( 영원히 감정이 없음, 영원히 인정이 없음)의 함묵(緘默 : 입을 다물고 침묵을 지킴, 침묵)에[억년 비정의 함묵 : 여기에서 '비정'은 긍정적인 의미로 쓰였다. 즉 인간적인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강하고 억센 의지를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내적인 단련)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드디어는 자신의 존재마저도 망각하고, 자신의 존재와 관련된 모든 것을 잊을 정도의 강한 의지로 외부 상황과 대결하는 비장함이 드러나 있다. 또는, 생명의 초월을 의미하기도 함.)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遠雷 : 멀리서 울리는 우렛소리)[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 머언 원뢰(遠雷) : '오직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자연의 섭리에 좇아 오래고도 오랜 냉정심을 굳게 지니는 영원한 침묵만으로 내심(內心)을 안으로 안으로만 억눌러서, 드디어 내 생명이 갖고 있는 모든 애정과 집착을 초극하여 초월해 버리고, 흐르는 구름 따라 먼 원뢰 소리만 울리게 하고'의 뜻. 바위의 세계, 의지의 세계가 어떤 내용인가를 구체적으로 서술한 곳이다. 핵심이 되는 구절이 '비정(非情)의 함묵(緘默)'인데, 일체의 감정이 개입하지 않은 침묵으로서, 이는 생명도 인간도 태어나기 이전의 원시적 침묵의 세계를 뜻하고 있다. 희로애락의 온갖 감정을 청산하여 원시적 침묵에 살겠다는 것이다. '흐르는 구름 / 머언 원뢰(遠雷)'는 지극히 짧은 표현이지만, 짧은 그것을 다시 2행으로 나누어 배치함으로써 시적 긴장을 일단 완화시켜 주고, 자연 섭리만이 지배하는 원초적 세계를 간결하게 보여 준다. 즉 생략과 긴축을 겸한 고도의 기교적 표현이다.]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 바위가 되리라. : 어떤 이상을 가진다 하더라도 감정을 드러내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 파멸(죽음)이 온다 하더라도 비명을 지르거나 불평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는 뜻. 시의 결구로서 꿈이나 파멸도 초극한 바위가 되겠다는 의지를 다시 다짐하고 있다. '비정의 함묵'의 구체화]

 

 

희망의 문학 이해와 감상

 사람들은 유치환을 가리켜 흔히 `비정(非情)의 시인' 또는 `의지의 시인'이라고 한다. 「바위」는 그에게 왜 그러한 호칭이 따르게 되었는가를 이해하는 데 썩 알맞은 작품이다. 그가 여기서 노래하는 바위는 바위 그 자체로서보다 어떤 이념 또는 의지의 표현으로 나타난다. 그것을 단적으로 말한다면 `일체의 감정과 외부의 변화에도 움직이지 않는 초탈의 경지'를 상징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주제에 적합하게 그는 단호한 어조로 시상을 전개하여 나아간다.

 작품의 서두는 아주 갑작스럽게 시작된다 ―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그 이하의 부분은 이 의지적 선언의 이유를 노래하는 내용이다. 그러면 그는 바위에 대체 어떤 의미를 부여하기에 그렇게 노래하는가?

바위는 무엇보다도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강인함의 표상으로 여겨진다. 그것은 애정과 번민에 흔들리는 일도 없으며, 기쁨이니 성냄이니 하는 것들에도 움직이지 않는다. 바위는 비와 바람을 맞으면서도 모든 것을 묵묵히 견디어 내는 비정함 속에서 자신의 단단함을 지킨다. 유치환은 이러한 모습을 의인화하여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라고 노래한다. 그리하여 바위는 마침내 스스로의 생명조차 잊고 모든 흔들림을 초극하는 경지에 도달한다. 그에게는 감정의 움직임만이 아니라 계절의 변화에도 춥고 더움이 없다. `흐르는 구름 / 머언 원뢰'라는 구절은 이 초월적 경지를 동양화적인 수법으로 간결하게 암시한다.

 이 대목에 등장하는 `구름', `우뢰 소리'는 바위의 경지에 도달한 미래의 시인에게 주어지는 어떤 외부적 자극을 암시한다. 그러나 모든 감정과 번뇌에서 초탈한 그에게 이러한 자극은 아무런 흔들림도 일으키지 못한다. 구름은 다만 먼 하늘을 흘러 지나가는 풍경의 하나일 뿐이며, 멀리서 들려오는 희미한 우뢰 소리 또한 그의 고요함을 깨뜨리지는 못한다. 다시 말하여 바위가 된 그는 이 모든 것에서 조금도 동요를 느끼지 않는 초연함을 가진다. 구름이 흘러가든 우뢰가 울리든 바위처럼 무심하여 아무런 흔들림도 나타내지 않는 달관의 경지를 그는 이렇게 노래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은 흐름을 거쳐서 「바위」의 주제는 끝에서 다시 한 번 확인된다. 그는 어떤 간절한 소망, 즉 꿈이 있어도 결코 그것을 밖으로 드러내어 노래하지 않고, 스스로가 깨뜨려지는 아픔 속에서도 한 마디 소리조차 하지 않는 바위가 되기를 의지적으로 선언하는 것이다. [해설: 김흥규]

이해와 감상2

 이 시는 현실적인 삶의 평안이나 아스라한 꿈을 추구하며 살기보다는 그러한 것을 모두 초극하여 '생명도 망각'하고 '비정(非情)의 함묵(緘默)' 속에 살아 갈 것임을 노래하고 있다. 시가 인간의 아름다운 성정을 노래하는 것이라는 관점에 길들어 온 독자라면 이 시의 강렬함이 낯설게 느껴지기 쉬울 것이다. 관념적인 시어와 '흐르는 구름/머언 원뢰(遠雷)'와 같은 구체적 표현을 효과적으로 배치하여 시적 긴장감을 획득하고 있음에 유의하며 읽어야 할 것이다.

이해와 감상3

 이 시는 일상적인 삶의 안락함이나 아스라한 꿈을 추구하며 살기보다는 그러한 것을 모두 초극하여 '생명도 망각'하고 '비정과 함묵' 속에 살아갈 것임을 노래하고 있다. 이러한 주제 의식은 시가 인간의 아름다운성정을 노래하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는 관념적인 시어와 '흐르는 구름/머언 원뢰'와 같은 구체적인 표현을 효과적으로 배치하여 시적 긴장감을 획득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하였고,이를 통해 주제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고있다. 이 시는 연 구분 없이 12행으로 이루어진 형태를 취하고 있으나 1행과 12행을 제외하면 나머지 행은 바위의 속성을 열거함으로써 자신이 지향하는 삶의 모습을 구체화하고 있다. 이 시는 이러한 수미 상관적 구성을 통해 시적 효과를 더욱 높이고 있다

 

희망의 문학 심화 자료

희망의 문학 청마의 시 세계  

 '일월'에서 우리는 그의 시 세계의 내용과 더불어 그 풍격(風格)이 연유하는 근원을 짐작할 수 있다. 즉 그의 시 세계의 내용이란 우주와의 교감과 생명에의 열애와 애련에서의 초탈이며, 그 풍격이란 애련을 치욕으로 여기는 비정(非情)의 태도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시 세계나 시에 있어서의 태도는 바로 한 인간이 인생을 사는 자세 그대로에 불과하다. 따라서, 청마에게는 시적인 태도나 시적인 프로그램이 따로 없다. 그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마음먹은 바가 그대로 그가 시를 쓰는 데 있어서 마음먹은 바가 된다. 그리하여 그의 시는 그가 한 인간으로 인생을 살면서 생각하고 느끼고 사랑하고 미워한 바가 따로 시적인 굴절을 겪지 않고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이야기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가 시인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  (출처 : 김종길,  '비정의 철학')

희망의 문학 유치환의 시의 정신 지향

 청마의 시에 빈번히 등장하는 '원수'는 우선 제도적 부조리인 사회악(社會惡)이다. 구체적으로는 일제, 자유당 독재 정권과 그에 빌붙어 아유구용(阿諛苟容 : 남에게 아첨하여 구차스럽게 굶. 또는 그런 모양.)하는 세력들이다. 그러나 결국 그는 질타하던 사회적, 제도적 불의(不義), 부정(不正)의 근원이 인간의 본성에 잠재한 어둠(부정)의 자아, 곧 원초적 부조리에 있음을 알고 좌절한다. 그에게는 그 부정적 자아를 구원할 '위대한 정신적 지주(支柱)'가 될 형이상학이 없었던 것이다. 이 점이 청마의 시가 높은 윤리 의식을 바탕으로 했고, 고도의 정신적 수준을 유지하면서도 위대성을 얻지 못한 이유이다.

희망의 문학 생명의 서  

 유치환(柳致環)의 제2시집. 작자의 서문 외에, 2부로 나누어, 1부에  '귀고(歸故)',  '편지',  '춘신(春信)', '출생기(出生記)' 등 34편, 2부에 '절도(絶島)', '해바라기', '밭으로 가려오', '들녘', '우크라이나 사원(寺院)','육 년 후(六年後)' 등 28편, 모두 62편을 수록하고 있다. 광복 전의 만주(滿洲)에서의 삭막했던 생활을 소재로 한 작품이 대부분이며, 광복 직후의 시단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후기에서 "시는 항상 불가피한 존재의 숙명에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라고 하였다.

희망의 문학 '생명파'에 대하여

연대 : 1930년대 후반  

문인 : 유치환(柳致環), 서정주(徐廷柱), 오장환(吳章煥)  함형수(咸亨洙), 김달진(金達鎭), 김상원(金相瑗) 김동리(金東里), 윤곤강(尹昆崗), 신석초(申石艸)

특징 : 생명의 본질, 본능적 조건을 기초로 한 인간에 대한 이해와 인식을 추구함.· 순수시파, 유미주의의 관념성, 모더니즘 시의  반생명성에 대한 도전

의의 : 시적 성공을 거두어 오늘날의 한국 문학에 영향을 끼침. 휴머니즘 문학(김동리의 주장)은 순수 문학론으로 발전, 계급주의 문학과 대결하게 됨.

희망의 문학 유치환과 서정주의 시

 이 두 시인은 인간과 인생 자체의 본질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두 시인을 인생파, 혹은 생명파로 묶은 것은 나름대로 타당성이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이 두 시인은 각기 독특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 서정주는 인간의 삶 속에 내재된 본능적 충돌과 관능의 세계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여 주는 데 반해, 유치환은 생의 근원에 자리잡고 있는 허무와 그 허무를 극복하기 위한 의지를 표현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따라서 유치환의 시는 사변적(思辨的)인 성격이 강한 데 반해 서정주의 시에서는 관능적인 성격이 강하게 드러난다.

희망의 문학 '바위'와 시대 의식

 흔히 유치환을 '생명파 시인', '의지의 시인', '허무의 시인', '대결의 시인' 등으로 부른다. 생명파로서 그는 주로 생명의 본질에 대한 탐구에 집중하였다. 즉 어떻게 사는 것이 참된 것인가. 어떤 것이 삶의 본질인가를 탐구하고 그 길을 가고자 노력했던 것이다. 그가 살았던 시대가 일제 강점기라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유치환에게 있어 삶의 환경은 언제나 부조리하고 불의하고 부정한 것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시대에 올바르게 사는 것은 결코 흔들리지 않는 의지를 가지고 불의한 시대에 맞서 싸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인간적인 감정이나 외부적인 시련, 유혹 등은 이러한 의지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된다. 이런 장애물은 인간을 나약하게 만들고 결국 허무주의에 물들게 하며 나아가 현실과 타협하게 만든다. 따라서 이런 허무 의식과 대결하기 위해서라도 유치환에게는 바위 같은 강한 의지가 필요했던 것이고, 그러한 유치환의 각오가 '바위'라는 시로 형상화된 것이다.

희망의 문학 이육사의 시 '교목'과 비교

 '바위'는 시적 화자가 자신의 강인한 의지를 자연물에 투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교목'과 비슷하다. 그러나 '교목'과 비슷하다. 그러나 교목의 화자가 현재의 시점에서 교목을 통해 자신의 결연한 의지를 밝히고 있는 반면 '바위'의 화자는 '나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에서 알 수 있듯이 미래의 소망을 노래하고 있다. 즉, '교목'이 일제에 맞서 싸우는 육사 자신의 현재의 삶과 태도를 나타낸 것이라면, '바위'는 애련과 희로에 사로 잡혀 있는 현재의 처지에서 벗어나 반드시 도달해야만 하는 미래의 이상태(理想態)를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희망의 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