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이한직
눈을 감으면
어린 때 선생(先生)님이 걸어오신다.
회초리를 드시고
선생(先生)님은 낙타(駱駝)처럼 늙으셨다.
늦은 봄 햇살을 등에 지고
낙타(駱駝)는 항시(恒時) 추억(追憶)한다
―옛날에 옛날에―
낙타(駱駝)는 어린 때 선생(先生)님처럼 늙었다.
나도 따뜻한 봄볕을 등에 지고
금잔디 위에서 낙타(駱駝)를 본다.
내가 여읜 동심(童心)의 옛 이야기가
여기 저기
떨어져 있음직한 동물원(動物園)의 오후(午後).
요점 정리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율격 : 내재율
성격 : 회고적,
심상 : 시각적
표현 : 직유법. 은유법
구성 :
1연 회상의 시작
2연 선생님 회상
3연 선생님에 대한 추억
4연 낙타를 통한 추억
5연 동심의 세계 동경
제재 : 동물원 낙타의 모습
주제 : 어렸을 적 은사에 대한 회고, 동심의 세계 동경. 은사(恩師)에 대한 회고와 동심에 대한 동경
특징 : 낙타를 매개로 하여 낙타와 선생님의 관계를 낙타와 시적 자아의 관계로 전환시킴으로써 시적 자아와 선생님을 간접적으로 동일시하게 되도록 하는 과정이 시의 전체 구조를 이루고 있다.
출전 : <문장>(1939)
내용 연구
눈을 감으면(회고의 자세)
어린 시절 선생님이 걸어 오신다.
회초리를 들고서 - 옛 은사에 대한 회고
선생님은 낙타처럼 늙으셨다.(은사님의 늙은 모습 = 낙타의 늙은 모습, 굽은 모습에서 유사점을 유추함)
늦은 봄 햇살을 등에 지고(따스하고 정겨운 분위기, 정지용의 '향수'에도 유사한 시 구절이 있음 -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낙타는 항시 추억한다.
낙타와 닮았던 옛 은사님의 모습 - 낙타 같았던 은사의 모습
-옛날에 옛날에- (은사님도 옛 이야기를 항상 하셨다)
낙타는 어린 시절 선생님처럼 늙었다.('낙타의 모습 = 선생님의 모습 = 나의 늙은 모습'이 같이 오버랩되고 있다)
나도 따뜻한 봄볕을 등에 지고
금잔디 위에서(자아의 현재의 위치) 낙타를 본다.
내가 여읜 동심의 옛 이야기가 (핵심어)
여기 저기(문득 문득 떠오르는 은사님에 대한 기억이 동심에 젖게 한다.)
떨어져 있음 직한 동물원의 오후.
(동물원에서 동심에 젖는 자신의 모습 - 평온하고 따뜻한 느낌을 준다.) - 은사처럼 늙은 내가 과거를 회고함
이해와 감상
동물원에서 낙타를 보며 지난날의 늙은 은사(恩師)를 회고한 작품. 시인은 동물원이라는 낯선 공간에서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한 낙타의 모습과 늙으신 옛날 선생님의 모습을 중첩시키면서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이러한 회상을 통해 예전에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선생님에 대한 그리움과 연민이 조금 쓸쓸하게 떠오른다. 이 쓸쓸한 연민은 동심의 세계를 잃어버리고 메마른 삶을 살아가는 시인 자신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에는 옛날 선생님과 낙타 그리고 나 사이의 교묘하게 형성되는 동질화(同質化)를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 과정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시인은 동물원에서 낙타를 보다가 옛날 은사님을 회상한다. 옛날 은사님의 늙으셨던 모습과 낙타의 늙은 모습에서 연상에 의한 동질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옛날 선생님께서는 지난날을 회상하기를 좋아하셨던 모양인데, 쓸쓸해 보이는 늙은 낙타의 모습 또한 무엇인가를 추억하고 있는 것 같다. 여기까지 와서 시인은 자기 자신 또한 `따뜻한 봄볕을 등에 지고' 낙타를 보며 옛날을 회상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 역시 천진난만하던 동심의 시절로부터 멀리 떠난 어른이 되어 현재의 위치에 와 있다. 주위의 사물들에 별다른 흥미가 없이 우두커니 서서 무엇인가를 추억하는 듯한 낙타의 쓸쓸한 모습은 이제 어른이 되어 삭막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시인 자신의 모습과도 그다지 멀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이런 심리적 전이 과정을 거쳐 오면서 `옛날 은사님'과 `낙타' 그리고 `나' 사이에는 일종의 연대 관계가 성립한다. 그것을 가리켜 우리는 `메마른 세계 속에 쓸쓸하게 살아가는 존재들에 대한 연민'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이 작품은 위의 주제를 함축하면서도 심각하지는 않다. 오히려 그런 심각한 느낌을 가볍게 처리하는 재치와 기발한 착상이 신선하고도 따뜻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고 있다. [해설: 김흥규]
심화 자료
이한직(李漢稷)
1921∼1976. 시인. 본관은 전의(全義). 호는 목남(木南). 경기도 고양 출신. 아버지는 진호(軫鎬)이며, 어머니는 김숙경(金淑卿)이다. 1939년 경성중학을 졸업하고 같은 해 일본으로 건너가 게이오대학(慶應大學) 법학과에서 수학하였다.
광복 후에는 한때 종합잡지 ≪전망 展望≫을 주재하였으며, 6·25 때에는 종군 문인으로 공군에 소속된 창공구락부(蒼空俱樂部)의 일원으로 활약한 바 있다.
또한, 서울이 수복되어 환도가 이루어진 다음에는 조지훈(趙芝薰) 등과 함께 ≪문학예술 文學藝術≫의 시 추천을 맡아보았으며, 1957년에는 한국시인협회에 관계한 바도 있다. 그 뒤 1960년 문공부의 문정관으로 일본에 건너가서 그곳에 눌러앉았다.
그의 문단 활동은 1939년 학부재학 때 ≪문장 文章≫의 추천제에 응모하여 그해 5월호에 시 〈풍장 風葬〉과 〈북극권 北極圈〉이 뽑히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 때 추천자인 정지용(鄭芝溶)은 그의 작품에 대하여 “패기도 있고 꿈도 슬픔도 넘치는 청춘이라야 쓸 수 있는 시”라고 하면서 “선이 활달하기는 하나 치밀하지 못한 것이 흠”이라는 것과 외국어를 많이 쓴 것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같은 해 ≪문장≫에 시 〈가정 家庭〉과 1940년 3월호에 〈놉새가 불면〉을 발표하였다.
그는 등장 초기부터 경향시의 정치 지향성과 모더니즘계 시에 대하여 모두 반발하면서 그 나름대로의 순수시를 쓰려는 자세를 보였다. 추천완료 소감으로 발표한 〈나의 작시설계도(作詩設計圖)〉(문장, 1939.9.)에서 이러한 자세를 표명한 바 있다. 그는 과작(寡作)의 시인으로 생전에는 시집을 내지 않았으나 죽은 뒤 1976년 ≪이한직시집≫이 발간되었다.
≪참고문헌≫ 韓國現代詩史 2(金容稷, 한국문연, 1996). 李漢稷의 詩와 人間(崔光烈, 詩文學, 1977.5.), 黃海 또는 마드리드의 娼婦-李漢稷의 悲哀-(金春洙, 韓國文學, 1977.5.).(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