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화/이형기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 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인 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1연 : 낙화의 아름다움, 떠나야 할 때 떠날 줄 아는 이의 아름다움 2연 : 낙화, 사랑하는 대상의 소멸 3연 : 낙화, 결별에 대한 축복 4연 : 낙화, 청춘의 꽃다운 소멸 5연 : 아름다운 헤어짐 6연 : 이별의 슬픔을 극복한 정신적 성숙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낙화를 보면서 이별과 죽음을 생각함 / 다른 존재와의 이별)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사소한 이해타산에서 벗어나 훌쩍 떠날 줄 아는 사람)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낙화의 아름다움을 통해 떠나야 할 때 떠날 줄 아는 이의 인격과 여유가 느껴진다는 역설적 의미 내포, 이별도 참된 의미를 알고 이루어질 때는 아름다울 수 있음음을 의미한다.)[작품 전체의 주제와 인상을 집약하고 있는 부분] - 낙화의 아름다움, 떠나야 할 때 떠날 줄 아는 이의 아름다움 봄 한철(젊은 날) 격정을 인내한(아름다움을 마음껏 자랑한 꽃잎, 시적 자아의 청춘 젊은 시절)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꽃과 서정적 자아의 합일. 지금 지는 것은 꽃뿐이 아니라 진한 사랑을 나눈 서정적 자아의 사랑까지 포함)- 낙화, 이별의 상황, 사랑하는 대상의 소멸 분분한(여럿이 한데 뒤섞여 어수선한) 낙화(축복의 이미지)……[① 향기로운(芬芬) ② 제각각이어서 갈피를 잡을 수 없는(紛紛)]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역설적 표현으로 이별로 인한 정신의 성숙을 의미, 역설적 표현이란 표면적으로 모순되거나 불합리하게 보이지만, 면밀히 고찰해 보면 깊은 의미의 진실을 지니고 있다는 표현법으로 '결별'이라는 부정적 상황을 긍정적 의미의 '축복'과 연관지음으로써 논리적 모순을 일으키고 있는데, 이를 통해 내적 성숙을 가져 오는 이별의 긍정적 측면을 밝히기에 역설적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지금은 가야 할 때(낙화와 헤어짐이 하나가 됨 - 미련을 버리고 떠날 때임을 강조함) - 낙화, 이별의 도래, 결별에 대한 축복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 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녹음과 열매를 위하여 낙화가 필연적임)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낙화로 결별을 결연한 태도로 받아들임. 이별을 긍정적으로 수용함, 성숙과 결실을 위해 서정적 자아의 청춘의 희생인 이별이 필연적임을 암시) - 낙화, 청춘의 꽃다운 소멸, 이별에 대한 당당한 태도 헤어지자(담담하게 받아들임)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꽃잎이 떨어지는 모습 - 이별의 모습을 형상화) 하롱하롱(말이나 행동을 다부지게 하지 못하고 실없이 자꾸 가볍고 달뜨게 하는 모양 / 가볍게 흩날리는 모양) 꽃잎이 지는 어느 날(헤어짐의 순간과 아름다움) - 낙화와 이별의 아름다운 모습, 아름다운 헤어짐 나의 사랑, 나의 결별(결별의 슬픔이 성숙의 과정임을 믿고)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이별로 인한 슬픔의 눈물을 흘림으로써 성숙해지는 내 영혼 - 영혼(내면 세계)을 샘터에 비유함, 내면의 추상적 사고를 가시적 정경으로 나타내고 있음] 내 영혼의 슬픈 눈.(내면의 성숙을 위해서 고통을 인내해야 함을 알면서도 슬픔을 부정할 수 없음을 드러내는 표현으로 고통을 이겨내려는 서정적 자아의 의지와 고뇌가 담김)- 이별의 아픔과 정신적 성숙, 이별을 통한 영혼의 내적 성숙
사계절의 순환이 뚜렷한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인생의 한 단면을 계절의 순환현상을 통해서 유추해 보이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다. 이 시는 `무성한 녹음'의 계절을 예비하면서 떨어지는 꽃송이를 통해 인생사에서의 이별과 더 나아가서는 죽음에 대한 깊은 통찰을 일깨워 주고 있다. 시인은 지금 떨어지는 꽃을 보며 그 꽃의 사라짐을 사람 사이의 만남과 헤어짐으로 바꾸어 놓는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 분명히 알고 가는 이'란 낙화를 의인화한 표현이다. 낙화가 아름다운 것은 때가 되면 피었다가 지는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기 때문이다. 이 시의 뛰어난 점은 이러한 낙화의 정경에서 모든 인간사의 이별, 죽음의 원리를 통찰해 내고 있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시인은 `지고 있다, 가야 한다, 죽는다, 뒷모습, 낙화, 결별, 가을' 등 비관적인 시어와 이별을 뜻하는 시어들을 주로 선택하여 사용함으로써 작품 전체를 쓸쓸함으로 채색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애상적 분위기 자체가 시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의 전부는 아니다. 이별의 아픔과 슬픔이 아련하게 채색될수록 그에 따르는 영혼의 성숙은 값지고 빛나게 된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즉 이면적으로는 `아픔 속의 성숙'이라는 역설적인 깨달음을 읽어낼 수가 있는 것이다. `무성한 녹음, 열매, 가을'은 모두 낙화가 있기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꽃이 떨어진 다음 수목은 더욱 우거져 여름날의 무성한 녹음과 가을날의 소담스런 결실로 발전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랑과 이별의 열병을 거쳐 청춘의 한 고비를 지날 때 우리의 삶도 원숙해져 무성한 녹음과 보람찬 결실을 맞이할 수 있다. 마지막 6연과 7연은 이러한 깨달음을 심미적인 영상으로 표현하였다.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꽃잎이 진다'라든가,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이라든가 하는 표현은 고통을 견디며 성장하는 인간 내면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것이다. [해설: 조남현] 이해와 감상1 자연의 섭리로 이별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보이는 시로 성숙함과 아픔이 어우러진 서정시이다. 이 시는 '낙화'와 '결별'의 두 축이 유사성에 의해 결합되면서 시상이 전개된다. 꽃이 피고 지는 것은 자연의 섭리이다. 그것은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이다. 봄에서 이행되는 계절의 순환 또한 자연의 이치이다. 그러나 그것이 소멸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낙화는 결실을 위한 준비이다. '개화→낙화→결실'로 이어지는 변증법적 논리로 자연의 법칙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 자연의 법칙에 인생의 법칙이 투사된다. 인생도 '만남→헤어짐→더 큰 만남'으로 지양되어 간다고 여기는 것이다. 더 큰 만남을 예비하기 위해 헤어짐은 만남의 시작이 되는 셈이다. 이런 의식에서 이 시는 펼쳐진다. 1연 : 갈 때는 알고 미련 없이 떠나는 일은 아름답다. 뒷모습의 비애감을 아름다움으로 인식하는 태도가 보인다. 2연 : 가슴에 쌓인 사랑의 아픔을 남겨 둔 채 이별의 시간이 도래했다. 3연 : 분분한 낙화의 광경. 꽃이 지는 하강의 이미지를 축복의 의미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여전히 이별의 아픔이 느껴진다. 화자는 이별의 고통을 극기의 자세로 이기고 있는 것이다. 실상은 슬픔에 잠겨 있는 것이다. 4연 : 여름과 가을의 녹음과 열매가 예비되어 있고, 또 그것을 위해 떠나가기 때문에 '꽃답게' 죽는 것으로 인식한다. 이별을 수용하는 정신적 인내가 읽어진다. 5연 : 이별을 미화시키고 있다. '섬세한 손길', '하롱하롱'에서 순정한 아름다움이 드러난다. 6연 : 아픔을 동반하는 성숙의 의미가 읽어진다. 성숙이 슬픔과 함께한다는 데서 이별을 단순히 아름다움만으로 보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꽃이 지는 것은 열매를 맺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낙화는 새로움을 위한 성숙한 결별의 의식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별의 아픔을 동반한다. 이것이 자연이 주는 의미이자 동시에 생명의 유한성(有限性)이다. 쓸쓸한 낙화는 화자의 삶에 대한 인식과 일치한다. 가야 할 때를 알고서 결별의 의식을 치르는 것은 성숙한 삶의 자세이다. 봄날 격정적인 사랑도 가을을 향해 지고 있다. 이제는 떠나야 할 시간. 나의 사랑을 향한 작별. 그것은 성숙한 태도이지만 그래도 내 영혼 가득히 차 있는 슬픔이기도 하다. 결별은 성숙에의 통과 의례(通過儀禮)이지만 그와 함께 아픔을 준다.
시인. 경남 진주 출생. 동국대 불교학과 졸업. 초기에는 유미적, 전통적, 서정적 경향의 시를 쓰다가 후기에는 격정적이고 예리한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을 창작하였다. 시집으로 <적막강산>, <풍선심장>, <그 해 겨울의 눈> 등이 있고 수필집으로 <바람으로 만든 조약돌>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