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전봉건
피아노에 앉은 여자의 두 손에서는 끊임없이 열 마리씩 스무 마리씩 신선한 물고기가 튀는 빛의 꼬리를 물고 쏟아진다.
나는 바다로 가서 가장 신나게 시퍼런 파도의 칼날 하나를 집어 들었다.
1연 : 피아노 소리의 생동감 넘치는 심상(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는 여인의 손가락에 대한 강렬한 이미지를 신선한 감각으로 표출하고 있는데, '튀는 빛의 꼬리를 물고/ 쏟아진다.'는 시구는 마치 피아노의 선율이 들리는 듯한 느낌을 준다. 소리를 물고기가 쏟아진다고 시각화하였으므로 공감각적 심상에 의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2연 : 화자의 행위로 표출된 감동(파도가 칼날로 보인다고 표현한 것은 그만큼 선율을 통해 화자가 느끼는 감동의 힘이 강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피아노(자유연상의 매개체)에 앉은 여자(이 시는 '여자 - 피아노 소리 - 화자의 반응'이 중심축을 이루며 전개됨)의 두 손에서는[피아노에 ~ 두 손에서는 : 피아노를 치는 여자가 제시되어 있는데, 이 시는 피아노를 치는 여자와 피아노 소리. 그것을 듣는 '나'의 반응이 감각적인 이미지로 전개되고 있다. ] 끊임없이 열 마리씩 스무 마리씩 신선한 물고기가(피아노 소리의 역동성, 생명성의 이미지) 튀는 빛(격렬한 피아노의 소리를 시각적으로 표현)의 꼬리를 물고 쏟아진다.[신선한 물고기가 ~ 쏟아진다. : 격렬하고 빠른 피아노의 선율을 싱싱한 물고기들이 튀어 오르는 것에 비유하여 시각적으로 드러낸 부분이다. 청각의 시각화인 감각의 전이가 이루어진다. ] - 피아노의 선율 나는 바다(물고기의 이미지에서 발전됨. 피아노의 선율이 느껴지는 공간, 또는 피아노 선율에 감동받은 마음의 바다. 신선한 생명의 바다)로 가서 가장 신나게(가장 깊게 음악에 심취됨) 시퍼런 파도의 칼날(선율의 절정, 감동의 극치) 하나를 집어 들었다.[파도의 칼날 ~ 집어 들었다 : 제 1연의 내용이 완전히 화자의 주정(主情)으로 바뀐 부분이다. 화자는 피아노 소리가 가득 찬 연주 장소에서 '물고기'가 가득 찬 '바다'를 떠올리고 '물고기'의 '튀는 빛의 꼬리'에서 '파도'를 연상하고 다시 '파도'의 형상에서 '칼날'을 떠올리고 있다. 이러한 '칼날'을 '가장 신나게' '집어들었다'는 것은 피아노 소리에 대한 감동이 극에 달하고 있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피아노 소리와 화자의 물아일체의 경지를 엿볼 수 있다. ] - 피아노의 선율이 주는 정서적 감동
이 작품은 신선하고 생기 있는 피아노 소리의 감각과 이에 대한 감동을 대담한 시각적 이미지로 표현한 시이다. 시인은 피아노의 생기찬 소리를 시각화하여, 마치 싱싱한 물고기가 연이어 튀는 것으로 묘사했다. 빛의 이미지를 대담하게 구사하는 이 수법은 둘째 연에도 계속된다. `가장 신나게 시퍼런 / 파도의 칼날 하나'란 피아노 소리를 들으며 그의 마음 속에 느껴지는 감동에 대한 비유적 표현이다. 사용된 이미지가 강렬하면서도 돌발적이기 때문에 이 시는 다소 난해한 느낌을 준다. 마치 강렬한 빛깔의 조형으로 이루어진 추상화(抽象畵) 같은 시다. [해설: 김흥규] 이해와 감상1 이 작품은 내용의 흐름이나 관념적 메시지보다는 감각적인 이미지에 의한 표현이 중심을 이루는 작품이다. 즉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는 여인의 손가락에 대한 강렬한 이미지를 신선한 감각으로 표출하고 있다. 1연에서는 피아노를 연주하는 여인의 손가락을 물고기가 쏟아지는 것으로 표현하였다. '튀는 빛의 꼬리를 물고 쏟아진다'는 시구를 읽으면 마치 그 피아노의 선율이 들리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러한 청각적 표현을 물고기가 쏟아진다는 시각적 표현으로 나타내어 소리를 시각화하였으므로 공감각(共感覺)적인 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신선한 물고기'라는 표현을 통해 생동감을 더하고 있다. 2연에서 '나'는 1연에서 연상되는 바다의 모습에 다가선다. 가장 신나게 일고 있는 파도를 집어든다. 이것이 칼날로 보인다는 것은 그만큼 그 선율을 통해 화자가 느끼는 감동의 힘이 강렬하다는 것이다. 살펴본 바와 같이 이 시는 연상에 의해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 그 이미지는 '피아노 선율→물고기→바다→파도→칼날'로 연결된다.
1928∼1988. 시인. 평안남도 안주 출생. 공무원이었던 형순(亨淳)의 일곱째 아들이다. 1945년 평양 숭인중학교(崇仁中學校)를 졸업하고, 1946년 월남하여 형 봉래(鳳來)의 영향으로 문학 수업을 시작하였다. 1950년 ≪문예 文藝≫에 시 〈원 願〉·〈사월 四月〉·〈축도 祝禱〉가 서정주(徐廷柱)와 김영랑(金永郞)의 추천을 받음으로써 시단에 등단하였다. 등단 직후 6·25로 군에 입대하였고, 1951년 중동부전선에서 부상하여 제대한 뒤부터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1950년대의 시는 참전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전쟁의 비인간적 부조리를 고발하고, 평화에 대한 갈망을 노래하면서 리프레인(refrain, 후렴)의 사용으로 음악성을 추구하였다. 초기 시로 분류되는 1950년대의 작품은 김종삼(金宗三)·김광림(金光林)과 함께 낸 연대 시집 ≪전쟁과 음악과 희망과≫(1957)와 첫 개인 시집 ≪사랑을 위한 되풀이≫(1959)에 수록되어 있는데, 후자로써 1959년 제3회 한국시인협회상을 받았다. 1960년대에 시론집 ≪시를 찾아서≫(1961)와 장시집 ≪춘향연가 春香戀歌≫(1967)를 출간하였다. 한편, 방송시극에도 관심을 가져 〈꽃소라〉(1964)·〈모래와 산소(酸素)〉(1968) 등을 발표하였다. 또, 1969년 월간 시 전문지 ≪현대시학 現代詩學≫을 창간하여 죽기 전까지 그 주간으로 일하였다. 1960년대 시의 특성은 초현실주의적인 수법으로 내면세계를 표현하는 것이며, 시집 ≪속의 바다≫(1970)에 그러한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1970년대에 접어들어 그의 시는 동화적 순수성과 정신주의의 추구라는 두 가지 특성을 드러내는데, 1980년 대한민국문학상을 수상한 시집 ≪피리≫(1980)와 선시집 ≪꿈속의 뼈≫(1979)가 그러한 작품을 수록한 저서이다. 1980년대에는 실향민의 향수와 수석(水石)에 대한 관심을 상상력의 원천으로 하는 시를 썼는데, 전자는 시집 ≪북(北)의 고향≫(1982), 후자는 시집 ≪돌≫(1984)에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1980년대 중반부터는 또 6·25의 비극적 체험을 민족사적 차원에서 형상화하는 연작시 〈6·25〉를 계속 발표하다가 끝을 맺지 못하고 작고하였다. 이외의 저서로는 선시집 ≪새들에게≫(1983)·≪전봉건시선≫(1985)·≪트럼펫과 천사≫(1986)·≪아지랭이 그리고 아픔≫(1987)·≪기다리기≫(1987)와 산문집 ≪플루트와 갈매기≫(1986)가 있다. 1984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을 수상하였다. ≪참고문헌≫ 추락과 상승의 시학(李昇薰, 새들에게, 高麗苑, 1983), 실존하는 삶의 역사성(崔東鎬, 아지랭이 그리고 아픔, 惠園出版社, 1987), 어둠속을 나는 꿈의 새(李炯基, 기다리기, 文學思想社, 1987). /李炯基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전봉건의 예술 의식은 언어에 대한 실험적 접근 의식과 기교주의적 측면에서 보다 구체화된다. 그의 시에는 자연 묘사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김춘수가 독자적인 묘사에 의하여 이른바 무의미 시로 나아간 데 비하여, 전봉건은 어어의 톤에 따라 난해시로 들어간다. 전봉거 시의 탐미적 측면이나 오건한 수법의 원용(援用)은 그의 시가 현대성에 기인하고 있음을 보여 주며, 이는 완전한 난해가 아닌, 적절한 의미 부여 면에서 묘(妙)를 얻고 있다.(출처 : 조남익 저 '한국현대시 해설') 산골짜기에서 자랐다고 하였다. 그는 이따금 난처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위로해 주려고 했다. 그러면 그는 말하였다. '소새끼가 죽었을 게야 ‥‥‥‥ 나는 그를 위로해 주러고 했다. 탄대의 빈 자리가 메꾸어졌다. 몇 번이고 그는 철모 밑으로 숲을 들여다보았다. 서로 가지를 펴는 나무와 나무 사이와 반사하는 금속과 일광도 보았다.
호들을 발견하였다. 그는 오른쪽 포킷에서 연필과 수첩을 끄집어내었다.
85 밀리였다. 불발탄 한 알이 굴러내렸다. 나는 진출하였다. 11시 방향으로 40분간이 지나고 ‥‥‥ 나는 정면 낮은 능선 위에서 가만히 낙하하는 따발총을 보았다. 나는 다시 왼쏙 눈을 감았다. 숨을 그쳤다. 손가락이 다시 내가 모르게 방아쇠를 당겼다. 제 1보초선으로 보였다. 나는 또 한 번 160야드의 사정을 재어 보았다. 나는 그와 격발요령에 대해서 이 야기하였다.
얼굴에 흙과 풀뿌리와 돌조각이 와 닿았다 가쁜 숨소리가 가까와졌다가 멀어졌다. 야간포격이 끝난 아침에 비행운이 걸려 있었다. 피리와 탱크와 지뢰원주변에서 바람이 곤두섰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소새끼가 죽었을 게야 ‥‥‥‥ 헬리콥터가 남으로 기울어져갔다. 그는 그의 산골짜기가 북으로 7마일 가량 남았다고 하였다
19시 반 쯤이었다. 그는 재미나는 추격전에서 웃으며 달리다가 꼬꾸라졌다. 저격이었다. 눈을 감았다. 그는 왼쪽 눈을 감았다 그리고 오른쪽 눈을 감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