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문 강에 삽을 씻고/정희성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 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 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 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1-4행 : 강물에서 인생 의미 발견 - 강물에 퍼다 버리는 삶의 고뇌 5-8행 : 삶의 무력감과 실의감 - 삶에 대한 무력감과 실의 9-12행 : 평생을 노동으로 살아온 삶 - 평생을 노동으로 살아온 삶에 대한 반추 13-16행 : 가난한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음 - 암담한 현실에 대한 체념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인간의 삶, 특히, 화자의 자신이 속한 노동자의 삶 역시 물과 같다는 의미) 우리(시적 화자 자신으로 노동자 계층을 말함)가 저(흐르는 강물)와 같아서[소외된 소시민의 삶] 강변에 나가 삽(노동의 도구, 가난의 표상)을 씻으며(강물에 삶의 고뇌를 씻어내는 행위)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강물이 고뇌 해소의 통로] - 강물에서의 일상의 생활, 강물을 통해 발견한 인생의 의미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 가는 강(인생을 의미)을 보며[노동자의 비애가 쌓여감]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삶에 대한 무기력함과 체념 그리고 탄식의 목소리) 나는 돌아갈 뿐이다.(가난을 벗어날 수 없는 노동자의 삶의 비애와 소극적인 태도)[스스로 깊어 - 돌아갈 뿐이다 : 노동자가 차별 받는 현실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채 무력감만 드러내 보이는 구절로 이는 벗어날 수 없는 노동의 삶에 대한 비애감을 심화시키면서 절제된 선비의 목소리가 되게 한다. 다른 관점에서는 모순 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적극적인 대응 태도가 필요하다고도 볼 수 있다. ] - 무력감과 실의에 빠진 삶 삽 자루에 맡긴 한 생애(화자가 평생을 노동에 바친 중년의 노동자임을 암시)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황혼녘 = 생활고, 발전 없이 반복되는 삶] 샛강[큰 강에서 줄기가 갈려 나가서 중간에 섬을 이루고, 아래에 가서 다시 본류와 합류하게 되는 지류] 바닥 썩은 물(모순된 세상, 열악한 노동 환경으로 산업화와 도시화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드러남)에 달이 뜨는구나[삶을 적극적으로 이끌지 못하고 소극적으로 방관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자인(自認)하고 있다.] - 노동으로 살아온 삶의 반추, 노동자로 늙어 가는 삶 우리가 저와 같아서('우리가 흐르는 강물과 같아서'와 '우리가 반복해서 뜨는 달과 같아서'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부분으로 이 시의 첫 행과 의미상 호응을 이룬다)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신성한 노동을 예비하는 제의적 행위이면서, 순리의 역사와도 같은 강물의 흐름에다 삽을 씻음으로써, 삶의 청정을 지향하는 자아 성찰적인 행위이다)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화자가 처한 궁핍한 현실을 암시, 산업화의 혜택을 받지 못한 노동자들의 삶)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당위적 종결로 의지의 표현이 담겨 있음. 또는 도시 빈민의 서글픈 삶인 현실을 수긍하는 태도). - 가난한 현실로의 복귀, 가난한 집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삶
1 다음은 정희성의 시 '저문 강에 삽을 씻고'와 그에 대한 비평문이다. 읽고 아래 제시된 활동을 해 보자. 1. "이 시는 1970년대 우리 사회의 산업화가 본격화되던 시기 도시 노동자층의 삶의 실상에 대한 하나의 보고서와도 같은 작품이다. 당시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신분이 보장되지 않은 열악한 환경과 저임금에 시달리며 뿌리 뽑힌 삶을 영위하였다."라는 (나)글을 참조하여 (가) 시의 특징을 다음 측면에서 정리해 보자. 이끌어 주기 : 작품을 감상할 때 초점을 어디에 맞추느냐에 따라 주제에 대한 해석이 달라질 수 있음을 알고, (나)의 비평이 (가)시를 어떠한 입장에서 해석하고 있는지 유의해서 살펴보도록 한다. 예시답안 : 작품의 내용상 특징과 효과 : 이 시의 노동자가 하루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강물에 삽을 씻으며 인생의 의미를 성찰하고 있는 시이다. 노동은 신성하고 가치 있는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기보다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부당하게 취급받고 있다. 노동 가치에 대한 부당함은 시인이 분노하고 개탄하는 직접적인 원인이다. 시인은 현실에서 느끼는 분노와 고통을 흐르는 물에 삽을 씻는 행위를 통해 삶을 반추하는 계기로 삼고 있다. 작품의 형식상 특징과 효과 : 이 시는 노동의 현장에서 오는 삶의 고통을 '강'이라는 심상에 연결시켜 표현하고 있다. 쉼 없이 '흐르는 물'의 심상은 시간의 흐름과 동등한 의미를 지닌다. 저문 강에서의 하루는 인생의 저묾과 중첩되고, 묵묵한 노동의 성실함이 있는 후의 성찰은 '삽자루에 맡긴' 인생의 저묾에 대한 성찰과 대응한다. 흐르는 물은 하루의 고단한 노동을 되돌아보는 성찰의 순간과 연장을 씻듯 노동의 삶에 깃들인 슬픔을 씻어 내는 정화의 의미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생각은 저문 샛강바닥 썩은 물에 달과도 연결된다. 인간에 의해 썩어가는 강에 비친 달에서 노동의 피로와 우울한 심경을 위로받을 수 있는 것이다. 2. 위의 기준에 의거해서 감상한 내용을 정리한 뒤 작자의 삶의 현실에 비추어 작품의 주제를 말해 보자. 이끌어주기 : 작품의 주제는 작자의 삶의 현실과도 연관됨을 인식하면서 자기 감상의 결과를 토대로 정리해 보도록 한다. 작자의 삶의 현실이란 곧 작품을 창작한 시대적 배경과 작자의 현실 인식을 가리킨다는 것을 이해하도록 한다. 예시답안 : 산업화가 한창 진행 중이던 1970년대, 십자루에 한 생애를 맡긴 노동자인 화자는 일이 끝나면 스스로 깊어가는 강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웠다. 그것은 신분이 보장되지 않는 열악한 환경과 저임금에 시달린 뒤의 탄식과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화자는 흐르는 물은 곧 시간의 흐름이며, 썩은 물에서 뜨는 달은 희망의 상징처럼 보인다. 화자는 반복과 순환하는 두 자연물을 통해 노동의 삶에 깃들인 자신의 인생을 묵묵히 완성해 나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여기게 된다. 따라서 이 시의 주제는 '강물에 삽을 씻으며 느끼는 인생의 의미'라고 정리할 수 있다. 구성창작 : 이 작품의 주제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중심으로 한 편의 비평문을 작성하여 발표해보자. 이끌어주기 우선, 이 작품의 주제가 무엇인지 찾아보도록 한다. 그리고 작품의 분석과 그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바탕으로 조리 있게 논의하는 글을 써 보도록 지도한다. 예시답안 : 작자는 차분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우리가 처한 노동 현실을 통해 삶의 궁극적인 가치를 묻고 있다. 작자는 도시 근로자의 지친 삶과 무거운 비애를 노래한 시들을 많이 발표하고 있다. 이 시에서도 그러한 면이 부각된다. 한창 시절을 넘긴 중년의 노동자가 흐르는 강물에 삽을 씻는다. 화자가 중년의 노동자라는 것은 9,10 행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는 흐르는 강물에서 인생의 의미를 발견한다. 그에게 있어 극복될 수 없는 슬픔이 삽을 씻는 동안에는 사라진다. 그러나 힘든 노동의 대가는 언제나 보잘 것 없다. 육체적 노동은 항상 천시당하고 노동자에게 그런 현실에 정면 대응할 결단이나 용기는 없다. 무력감과 실의뿐이다. 적극적인 현실 극복의 의지가 없는 그에게는 강가에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돌아가는 일이 고작이다. 적극성의 결여됨은 '스스로 깊어가는 강',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등에서 잘 나타난다. 이 시는 물의 이미지와 화자의 세계 인식이 병행되어 전개되고 있다. 강물의 이미지는 곧 화자의 세계관을 대변한다. '강'은 도회를 흐르고 있으며, 시간적 배경은 저물녘이다. 맑게 흐르는 강이 아니라 썩어서 흐르는 강물이다. 그 강물은 스스로 썩어간 것이 아니라 썩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기 때문에 그러했던 것이다. 이는 산업화, 도시화라는 문명적 속성의 부정성을 암시한다. 문명 이전의 청정과 정체성은 산업화에 의해 침해당하고 오염되며 그 부정성은 누적되어 간다. 물이 흐르듯이 소외 받은 소시민의 삶도 정체성을 지니지 못하고 유동적으로 흘러간다. 삶의 애환을 가슴에 가득 안은 채 강물처럼 흘러가는 것이다. 하루의 노동이 끝난 뒤 삽을 씻으며 삶의 슬픔 또한 씻어 본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게 쉽게 씻겨 나가는 아픔이 아니다. 그것은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며, 일시적인 현상도 아닌 것이다. 9~12행은 젊은 시절부터 중년의 나이에 이르기까지 그의 노동자 생활이 아무런 발전 없이 반복되어 왔음을 말해준다. 그 세월 동안 세상은 계속 썩어 왔음을 '썩은 물'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그래도 어김없이 달은 뜬다. 달은 날이 어두워졌다는 것을 인식하게 하고, 그것은 노동자에게 가난한 집이지만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한다. '우리가 저와 같아서'라는 구절은 의미의 모호성을 가진다. 행의 위치로 보아 이것은 '우리가 흐르는 강물과 같아서'라는 의미와 '우리가 반복해서 뜨는 달과 같아서'라는 중의적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전자의 의미로 본다면, 샛강처럼 '우리' 노동자들 또한 뿌리박지 못한 유동적인 삶을 살고 있으며, 생활고에 지쳐 비애를 느끼고 있다는 진술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후자의 의미로 본다고 해도, 그러한 삶의 반복으로 인해 삶의 비애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고백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정희성은 차분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우리가 처한 노동 현실을 통해 삶의 궁극적 가치를 묻는다. 정희성은 도시 근로자의 지친 삶과 무거운 비애를 노래한 시를 많이 발표한 시인이다. 여기에서도 그러한 면이 부각되고 있다. 이 시는 물의 이미지와 화자의 세계 인식이 병행되며 전개되고 있다. 강물의 이미지는 곧바로 화자의 세계관을 대변한다. '강'은 도회를 흐르고 있으며, 시간적 배경은 저물녘이다. 맑게 흐르는 강이 아니라 무겁게 흐르는 강물이다. 이 샛강은 썩어서 흐른다. 그 강물은 스스로 썩어간 것이 아니다. 썩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은연중 산업화, 도시화라는 문명적 속성의 부정성을 암시한다.. 문명 이전의 청정과 정체성은 산업화에 의해 침해를 받고 오염되며 그 부정성은 누적되어 간다. 물이 흐르듯이 소외 받은 소시민의 삶도 정체성을 지니지 못하고 유동적으로 흘러간다. 삶의 애환을 가슴에 가득 안은 채 강물처럼 흘러간다. 하루의 노동이 끝난 뒤 삽을 씻으며 삶의 슬픔 또한 삽을 씻듯 씻어 본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게 씻겨 나가는 아픔이 아니다. 그것은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며, 일시적 현상도 아니다. 오랫동안 누적되어 온 생활고이며, 쉽사리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님을 스스로 인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비애감은 강물처럼 무겁게 드리우는 것이다. 저녁 무렵, 강물이 깊어만 보이는 배경은 애상을 충분히 자아낸다. 달은 어둠과 대조적 성격을 지닌다. 그러면서도 서러운 정감을 더해 준다. 어두운 강물 위에 달이 뜨듯 생화의 희망을 잃지는 않아야 한다. 삶이 비록 서럽더라도 삶을 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괴로움과 절망 속에서도 삶을 지속해야 하는 것이 또 하나의 서러움이다. 가난한 마을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도시 빈민의 서글픈 삶이 애상적 분위기 속에 드러난다.
이 시에서 '저문 강'이라는 시간적·공간적 배경은 노동자로 살아온 화자의 삶과 연결되고 있다. '흐르는 물'의 심상은 시간의 흐름과 동등한 의미를 지니는데, 흐르는 물은 자신의 노동을 돌아보게 하는 동시에 노동의 도구인 '삽'을 씻듯 노동의 삶에 깃든 슬픔을 씻어내는 정화(淨化)의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그리고 하루의 힘든 노동을 마치고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저문 강'은 일용 노동자로 살아온 인생이 저물어 가는 것에 대한 성찰로 볼 수 있다.
이 시는 산업화 시대를 고되게 살아가는 민중의 삶의 현장을 시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 시의 화자는 어느 노동자로 볼 수 있는데, 시인 스스로가 시적 화자로 설정되어 있어 시인 자신이 노동 현장에서 직접 경험한 일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설정은 일부의 다른 민중시가 가지고 있는 시적 화자의 목소리와 시적 상황의 불균형을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또한 고통스럽고 비참한 현실에 대해 절규하거나 직접 토로하는 대신 절제되고 조용한 목소리를 통해 우리가 처한 노동 현실을 그리며 삶의 궁극적 가치를 묻고 있다는 점에서, 참여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작품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여러 평자들의 지적처럼 정희성의 시세계의 중심은 한 마디로 말하자면 선비적 전통이다. '무섭도록 싸늘한 절개의 노래이며 또한 죽어서도 눈감지 못하고 하늘 위를 떠도는 원혼들을 추모하는 노래'인 '답청'이나 '핍박받는 사람들의 슬픔을 자신의 개성적인 목소리로 차분하게 노래 부르는' '저문강에 삽을 씻고'나, 또 '그리움과 기다림의 시'인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등 그의 모든 시에서 곧곧한 선비의 목청이 공통되게 울려나오고 있다. 이 점과 관련해서는 그의 시에서 우선 이육사적인 풍모를 쉽게 찾을 수 있다. 표나게 드러나는 부분만 보아도, '매헌 옛집에 들러'에서 '나라는 기울어 /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고 /'라는 구절의 뒷부분은 이육사의 '광야'의 표현 그대로이다. 매화의 이미지도 그러하려니와, 이육사가 유달리 선비적 풍모를 지닌 시인이라는 점에서도 정희성의 지사적 분위기는 쉽게 드러난다.(출처 : 김윤태, '한국 현대시와 리얼리티')
시인. 경남 창원 출생. 서울대 국문과 졸업. 197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변신"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엄숙한 선비의 목소리와 구체적 현실에 몸담은 노동자의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시인이란 평을 받을 만큼 폭 넓은 시를 쓰고 있음. 시집으로 <답청>(1974), <저문 강에 삽을 씻고>(1978),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1991) 등이 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