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詩방/★좋은시★

사랑시 모음

by 미스커피 2010. 2. 15.

좋은 시모음 - 사랑에 관한 9개의 詩




사랑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죄 짓는 일이 되지 않게 하소서

사랑으로 하여 못 견딜 두려움으로

스스로 가슴을 쥐어 뜯지 않게 하소서

사랑으로 하여 내가 쓰러져 죽는 날에도

그이를 진정 사랑했었노라고 말하지 않게 하소서

내 무덤에는 그리움만 소금처럼 하얗게 남게 하소서.


- 안도현




사 랑


사랑이란 멀리있는 것

멀리 있어 안 보이는 것

그렇게 바라만 보다 고개 숙이면

그제서야 눈물 너머로 어렴풋이 보이는 것

그래서 사랑은

더 사랑하는 사람의 것

상처 속에서만 살고 있는 것


- 원태연




사랑


꽃 피어도

나비 

오지 않는다


봄의 적막이

속에 든다


춥고 

외로와 

사랑하고저 하나

내밀어 볼

팔 

없다 


온 마음

맨몸이 죽도록

거리를 걷는다

피투성이로 걷는다

사랑하고저. 


- 김지하




사 랑

                                 

기다린다는 건

차라리 죽음보다 더 참혹한 거

매일 매시 매초, 내 마음은

너의 문턱까지 갔다가

항상 쓸쓸히 되돌아온다


그러나 죽지 않고 살고 싶은

이 기다리는 고통은

아직 네가 있기 때문이다


비굴을 넘어서


- 조병화




사 랑

                      

봄 물보다 깊으니라

가을 산보다 높으니라.

달보다 빛나리라

돌보다 굳으리라.


사랑을 묻는 이 있거든

이대로 말하리.


- 한용운




사 랑


소리없이 와서

흔적도 없이 갔건만

남은 세월은 눈물이다

무쇠바퀴 돌아간 마음 위에

그대 감아 버린 가슴은

울음으로 녹아 있고

서로 먼 마음 되어 비껴 지나도

그대 마음 넘나드는

물새가 되고

물과 물이 썩이듯

섞인 마음을 나눠 갖지 못하면서

하지 않는 사랑이다


- 김초혜




사 랑


그대는 내 슬픈 운명의 기쁨

내가 기도할 수 없을 때 기도하는 기도

내 영혼이 가난할 때 부르는 노래

모든 시인들이 죽은 뒤에 다시 쓰는 시

모든 애인들이 끝끝내 지키는 깨끗한 눈물

나는 그대를 사랑하는 날보다

원망하는 날들이 더 많았나니

창 밖에 가난한 등불 하나 내어 걸고

기다림 때문에 그대를 사랑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그대를 기다리나니


그대는 결국 침묵을 깨뜨리는 침묵

아무리 걸어가도 끝없는 새벽길

새벽 달빛 위에 앉아 있던 겨울산

작은 나뭇가지 위에 잠들던 바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던 사막의 마지막 별빛

언젠가 내 가슴 속 봄날에 피었던 흰 냉이꽃


- 정호승




사 랑


어둠 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변치 않는

사랑을 배웠다 너로 해서


그러나 너의 얼굴은

어둠에서 불빛으로 넘어가는

그 찰나에 꺼졌다 살아났다

너의 얼굴은 그만큼 불안하다


번개처럼 

번개처럼 

금이 간 너의 얼굴은


- 김수영 <1961>




사 랑


당신과 헤어지고 보낸

지난 몇 개월은

어디다 마음 둘 데 없이

몹시 괴로운 시간이었습니다.

현실에서 가능할 수 있는 것들을

현실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우리 두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당신의 입장으로 돌아가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잊을 것은 잊어야겠지요.

그래도 마음속의 아픔은

어찌하지 못합니다.

계절이 옮겨가고 있듯이

제 마음도 어디론가 옮겨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추운 겨울의 끝에서 희망의 파란 봄이

우리 몰래 우리 세상에 오듯이

우리들의 보리들이 새파래지고

어디선가 또

새 풀이 돋겠지요.

이제 생각해보면

당신도 이세상 하고 많은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을 잊으려 노력한

지난 몇 개월 동안

아픔은 컸으나

참된 아픔으로

세상은 더 넓어져

세상만사가 다 보이고

사람들의 몸짓 하나하나가 다 이뻐보이고

소중하게 다가오며

내가 많이도

세상을 살아낸

어른이 된 것 같습니다.

당신과 만남으로 하여

세상에 벌어지는 일들이

모두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고맙게 배웠습니다.

당신의 마음을 애틋이 사랑하듯

사람사는 세상을 사랑합니다.


길가에 풀꽃 하나만 봐도

당신으로 이어지던 날들과

당신의 어깨에

내 머리를 얹은 어느 날

잔잔한 바다로 지는 해와 함께

우리 둘인 참 좋았습니다.

이 봄은 따로따로 봄이겠지요

그러나 다 내 조국 산천의 아픈

한 봄입니다.

행복하시길 빕니다.

안녕. 


- 김용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