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은
삼각산(三角山)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漢江) 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鐘路)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頭蓋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恨)이 남으오리까.
그 날이 와서 오오 그 날이 와서
육조(六曹)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鼓]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行列)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요점 정리
지은이 : 심훈(沈熏)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참여시(저항시)
율격 : 내재율
어조 : 절절한 호소, 강인한 의지, 도도한 의기(義氣)의 자세와 목소리, 비장(悲壯)하고, 격정적인 어조
심상 : 시각적. 청각적, 비유적. 촉각적. 역동적 심상
성격 : 저항적, 의지적, 지사적[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제 몸을 바쳐 일하려는 뜻을 가진 사람], 원망적(願望的), 직서적[상상이나 감상 따위를 덧붙이지 아니하고 있는 그대로 서술], 희생적, 역동적, 격정적
구성 :
1연 환희의 그 날 염원 - 그 날이 오면 죽어도 한이 없음
2연 광복의 염원(반복) - 그 날이 와서 기쁨이 우렁찬 소리를 듣기만 하면 당장 죽어도 원이 없음
제재 : 민족의 해방
주제 : 환희의 극한, 절정이 될 광복의 그 날을 염원하는 간곡한 절규. 조국 광복에 대한 간절한 염원
특징 : 미래 가정의 서술, 1연과 2연의 대응, 극한 상황의 설정, 경어체의 종결어미 사용. 격정적 감정의 직접적 표출. 반복법, 과장법, 대구법 등을 사용, 시적 형상성이 다소 떨어지고 관념성이 두드러지는 것은 이 시의 약점이지만, 이 시는 본래 공동체의 미래에 대한 긍정적 조망과 신성한 기원으로 비전(vision)을 제시하기 때문에 예언적 기능도 가지고 있다.
의의 :
일제 시대에는 오늘날 상상도 하기 힘들 정도로 가혹한 검열 제도가 존재했다. 이 때문에 모든 문학 작품들은 검열을 통과해야만 발표될 수 있었다. 따라서, 일제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이나 저항의 의지를 담은 시들이 발표되기는 대단히 어려웠다. 흔히 저항시의 대표격으로 알려져 있는 이육사나 윤동주의 시에서도 직접적인 저항과 비판의 자취를 찾기 어려운 것은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날이 오면'을 포함하여 '통곡 속에서' 같은 심훈의 시가 그 시대에 발표되지 못하고 사후인 1949년에야 발표되었던 것은 이러한 사정 때문이다. 그러나 발표 시기가 늦어졌다고 해서 이 시의 가치가 손상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비판의 강도와 저항성 때문에 검열을 통과할 수 없었던 사정 자체가 이 시의 가치를 역설적으로 말해 주기 때문이다
출전 : 심훈의 유고 시 수필집 <그 날이 오면>(1949)
내용 연구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은(가정적 미래의 시제를 사용하여 조국 광복의 날을 간절히 기다리는 마음을 반복하여 강조. 반복법)
삼각산(三角山 : 북한산의 별칭으로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것으로 육조와 동일함 / 시적 화자의 정서를 구현하는 객관적 상관물은? : ① 삼각산 ② 한강물 ③ 까마귀 ④ 북)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역동적 이미지]
한강(漢江) 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이[삼각산이 일어나 - 용솟음칠 그 날이 : 무심한 조국의 자연까지도 해방의 기쁨을 이기지 못해 살아 움직일 듯하다고 의인화한 표현으로 과장적이고, 역동적 표현임으로 '삼각산'과 '한강'은 우리나라를 의미하는 소재로 대유법이 쓰임.]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하량이면(한다면, 할 양이면)
나는 밤하늘(암울한 일제 강점기 시대)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까마귀'는 암울한 시대를 살아가는 시적 화자의 고독하고 비장한 모습의 상징으로 죽음과 희생, 헌신의 이미지이다.)
종로(鐘路)의 인경(人磬 : 옛날, 밤에 통행금지를 알리기 위해 치던 보신각 종/ 뒤에 나오는 '북'과 같은 의미)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인경(북)은 우리 민족 의식을 일깨우는 전통적 소재이며, 청각적 이미지로 화자의 헌신과 희생을 상징하고, 상원사 동종에 얽힌 전설을 차용한 것으로 자신의 희생을 통해 '새날'이 밝아 오고 있음을 알리겠다는 화자의 비장한 의지가 담겨 있다./ 이 시의 분위기를 숭고하고, 신성하게 해 줌.)
두개골(頭蓋骨 :머리뼈)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광복에의 강한 열망에 찬 서정적 자아의 정서를 짐작할 수 있는 구절로 과장법이 사용됨. 비장감 사용)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恨)이 남으오리까[광복으로 인한 기쁨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부분으로 비극적 황홀감이 직설적으로 표현됨]. - 그 날을 위한 자기 희생의 의지
그 날이 와서 오오 그 날이 와서(가정적 현재의 시제를 사용하여 격정적인 호흡이 느껴지는 부분)
육조(六曹 : 고려와 조선 왕조 때 국무를 보던 여섯 관부. '육조 앞'은 지금의 광화문 거리, 경복궁 앞)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춤, 용솟음과 호응하고, 극한적, 역동적 표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가슴이 찢어지듯 슬픔을 느끼는)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두개골과 호응)이라도 벗겨서[극한적 시어 사용, 조국 광복을 위해서는 날카로운 칼에 살가죽이 벗겨지는 고통도 감수하겠다는 결연(決然)한 의지와 대의(大義)를 위한 희생 정신의 표현이다. 강한 촉각적 심상으로 전율감을 극대화함.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선구자적 이미지]
커다란 북[鼓(고) 화자의 헌신과 희생을 상징 / 1연의 ‘인경’과 2연의 ‘북’은 감격을 널리 알리는 역할]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광복의 그날을 기다리는 우리 민족]의 행렬(行列 : ‘그 날’이 개인적인 기쁨의 날일 뿐 아니라 민족 공동체 전체의 축제의 날임을 암시하는 시어)에 앞장(서정적 자아의 기쁨)을 서오리다.[서정적 자아의 기쁨은 민족 공동의 환희]
우렁찬 그 소리(광복을 외치는 소리 / 해방의 만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극한적 어구 - 화자의 의지 반영) 눈을 감겠소이다['울리오리다. 남으오리까, 서오리다. 감겠소이다.'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시에서는 극존칭 종결어미를 사용하여 경건한 분위기를 조성하여 화자의 염원을 강조하는 효과를 얻고 있다.]. - 그 날에 대한 염원
[1연과 2연의 차이점은? 1연은 미래에 대한, 2연은 현재화된 가정(假定)이다]
[그 날의 기쁨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 시어는? ① 삼각산 ② 한강 ③ 북 ④행렬]
[‘인경’과 ‘북’은 광복의 기쁨을 전파하는 동시에 민족을 하나로 묶어 세우기 위한 이념적 메시지를 상징한다.]
1. 심훈의 시 '그날이 오면'이다. 시를 읽고, 아래 제시된 활동을 해 보자.
활동의 취지와 지도 방법
'그날이 오면'은 일제 하 대표적인 저항시라는 점에서 우리 문학의 민족 문학으로서의 가치를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작품이다. 이 시를 통해 작자의 신념이나 철학, 세계관이 작품에 투영됨으로써 독자적인 가치를 획득한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1) '그날'에 대한 화자의 심정과 태도는 어떠한지 생각하면서, 그와 관련하여 이 시의 주제를 하나의 완결 된 문장으로 써보자.
이끌어주기 : 작품이 창작되었던 일제 강점기에 우리 민족이 당면한 문제가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해 보고, 작자의 세계관이 작품의 구체적인 형상화를 통해 어떻게 구현되었는지를 살펴보도록 한다.
예시답안
나(우리 민족)의 간절한 희망과 바람은 그날(광복)이 오는 것이다.
(2) 토의·토론
이 시가 민족 문학으로서 가치를 갖는 이유는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현재 우리 민족의 상황에서 이 작품이 지니는 또 다른 의미에 대해 모둠별로 토의해 보자.
이끌어주기 : 우선, 현재 우리 민족이 당면한 문제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도록 한다. 그리고 그 문제에 관해 이 시의 내용과 같은 심정을 가질 수 있겠는지 논의해 보도록 한다.
모둠별 활동 과정은 다음과 같이 예시할 수 있다.
1. 대표 모둠에서 민족 문학의 개념과 의미에 대해 연구하여 발표한다.
2. 각 모둠별로 신문이나 기타 자료를 활용하여 현재 우리 민족이 당면한 핵심과제가 무엇인지 한 가지씩 정리하여 제시한다.
3. '그날'의 의미를 각 모둠이 제시한 과제와 연결시켜 제시된 시의 의미를 재확인한다.
4. 모둠 상호간에 그 문학적 의미가 무엇인지 민족의 삶이라는 측면에서 논의해 본다.
5. 대표 모둠이 논의 과정을 정리하여 제시된 시의 민족 문학적 가치에 대해 발표한다.
예시답안
소설 '상록수'의 저자이기도 한 심훈의 시 '그날이 오면'은 일제 강점기에 조국 해방의 의지를 가장 적절하게 노래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3·1운동에 참가했다가 옥살이를 겪고 상하이로 망명까지 했던 작자의 이력은, 이 시의 진정성과 절박함을 담보하고 있다.
그러나 그 절박함은 역으로, '그날'의 요원함에 대한 뼈저린 회한을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 그날이 오면'은 우리 민족이 처했던 절박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민족의 일원으로서 가지는 간절한 희망과 바람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민족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우리 민족의 또 다른 염원은 '통일'이다. 우리 민족이 바라는 '그날에 대한 염원을 절절하게 노래하고 있는 이 시는 현재 우리의 이러한 민족적 상황과 염원에도 여전히 적용된다.
(3)구성·창작
각자 자기가 바라는 '그날'은 어떤 것인지 마음속에 그려보고, 그것을 이 시의 첫 행을 시작으로 하여 다음과 같이 한 편의 시로 표현해 보자.
이끌어주기 : 주어진 시처럼 국가적이고 민족적인 소망을 담아서 표현하는 것도 가능하고, 개인적인 소망을 표현해 보는 것도 가능하다. 주어진 시는 소망의 절실함을 드러내기 위해 극단적으로 과장된 상황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예시답안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어머니 눈에 눈물 가시고
무덤에 누우신 할아버지라도 벌떡 일어나 춤추실 그날이
언제라도 와 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저 돌거북처럼
평생을 엎드려 감격의 기도만을 올리오리다.
내가 돌이 되어 다시 일어나지 못한다 해도
동생이 일어나기만 한다면 무슨 한이 되오리까.
2. 우리나라 여자 프로 골프 선수의 경기 모습을 가지고 만든 공익 광고의 한 장면이다.
이 장면의 배경음악으로 나오는 다음 노래를 염두에 두고, 아래 제시된 활동을 해 보자.(노래 : 상록수)
(1) 이 광고가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가 무엇인지 사진의 측면과, 노랫말의 측면으로 나누어 생각해 보자.
이끌어주기 : 프로 골퍼 박세리가 미국에서 개최된 한 프로 골프 대회에서 보여 준 장면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국난인 IMF 시대를 맞아 온 국민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다. 박세리는 자신이 처한 위기 상황을 잘 극복하여 우승함으로써 고국의 온 국민에게 희망과 기쁨을 안겨 주었다. 이러한 현실적 상황을 고려하면서 이 광고가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요인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지도한다.
예시답안
사진의 측면 : 공이 물에 빠져 벌타(罰打)를 하나 받은 후, 연못 위 풀섶에 공을 놓고 다시 쳐야 하는 어려운 순간이다. 골퍼는 과감히 양말을 벗고 물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간다. 그리고 흔들리는 표정 없이 내심 이를 악물고 홀을 쳐다보며 퍼팅을 시도한다. 선수의 강인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노랫말의 측면 : 돌보는 이 없어도 자신의 고난을 잘 극복하여 스스로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는 들판의 푸른 솔잎. 이 노랫말은 당시 솔잎과 같은 고난에 처한 우리 국민을 상징한다. 비록 IMF 시대를 맞았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잘 극복해 내면 끝내 이긴다는 관념적 진술이 독자(청자)에게 희망적인 주제를 전달하여 감동을 준다.
(2) 우리의 생활 주변에서 이 광고가 전달하는 의미가 적절하게 적용될 수 있는 구체적 상황을 각자 세 가지씩 적어 보자.
이끌어 주기 : 우선 각자의 삶에서 겪을 법한 일을 떠올려 보도록 한다. 아울러 2-(1)을 통해 광고가 전달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인식한 후 활동할 수 있도록 지도한다.
예시답안
불의의 사고로 신체적 장애를 입게 된 경우, 당장은 고난이 크겠지만 꾸준한 노력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한다.
갑작스러운 가장의 실직으로 가정의 해체라는 위기가 발생하더라도, 가족 구성원 각자가 제자리에서 꾸준히 노력하여 가족애를 잃지 않도록 한다.
이해와 감상
이 시는 한국 현대시의 역사에 저항시의 맥을 잇는 중요한 작품으로서 그 중에서도 가장 격렬하게 조국 광복의 환희와 감격을 상상적으로 노래한 작품이다. 제목이 웅변하듯 광복의 그 날에 대한 열망이 직접적으로 표출된 작품이다.
이 시는 1930년 3월에 창작된 작품으로 시가 및 수필집 '그 날이 오면'에 실려 있다. 암울한 시대 상황에서 대부분의 문인들이 친일(親日)로 변절하고 현실에서 도피하기 일쑤였던 당대에 예외적으로 강한 신념과 예언자적 의지로 노래한 격정과 충격의 시이다. 이 시는 고려 때의 속요 '정석가'에는 무쇠로 황소를 만들어 그 소가 쇠로 된 풀을 먹어야 임과 이별하겠다는 구절이 나온다. 사랑하는 임과 절대 헤어질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이 이런 불가능한 일을 상상하게 한 것이다. 또한 청산별곡의 '사슴이 장대에 올라가서 해금을 켜는 소리를 듣는다'는 구절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벌어지는 상황' 또는 '기적과도 같은 꼭 있어야 할 일이 일어난 상황'의 두 가지로 해석이 모두 가능하다.
이해와 감상1
이 시에서 말하는 `그 날'이란 심훈이 갈망하였던 민족 해방의 날이다. 작품의 전 내용은 그 날이 왔을 때 폭발하듯 터져 나올 환희의 모습에 집약된다.
제1연 : `그 날'이 오면 삼각산조차 일어나 춤을 추고 한강물은 기쁨으로 뒤집혀 용솟음칠 것이다. 내 목숨이 다하기 전에 그 날이 오기만 한다면 나는 해방의 기쁜 소식을 알리는 인경을 새처럼 머리로 들이받아 올리다가 죽어도 좋다. 머리가 깨어져 산산조각이 된다 한들 해방의 기쁨 속에서 죽을 수 있다면 무슨 한이 남겠는가? 억압 속에서의 삶이란 차라리 자유민으로서의 죽음보다 못하다는 절실한 부르짖음이 격한 언어로 표현되어 있다.
제2연 : 터질 듯한 감격의 그 날이 오면 예전에 육조가 있던 곳의 넓은 길을 해방의 기쁨으로 울며 뛰며 뒹굴어 보련다. 억눌린 삶에서 되살아나는 벅찬 환희를 어찌 가슴에 담아 둘 수 있을 것인가? 그렇게 하고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막힐 듯하다면 잘 드는 칼로 내 몸의 가죽을 벗겨 커다란 북을 만들어 메고는 온 민족의 감격스런 행렬에 앞장을 서련다. 내 몸의 살가죽이 벗겨지는 아픔도 해방의 기쁨에 비한다면야 무엇이겠는가? 해방의 행렬 앞에서 울려 나오는 그 우렁찬 소리를 한번이라도 들을 수 있다면 그 자리에서 곧 쓰러져 죽는다 해도 아쉬움 없이 눈을 감겠다. 제1연보다 한층 처절한 부르짖음이 생생하게 울려 나오는 대목이다.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북을 만들어 소리를 울리겠다는 구절은 어떤 무서운 결의의 전율감마저 느끼게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 작품이 한 편의 시로서 지나치게 격렬한 감정에 지배되어 알맞은 시적 균형을 잃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러나, 극단적인 경험이 압도하는 순간에는 보통의 시적, 수사적(修辭的) 질서가 무너질 수 있다. 그럴 때에는 차라리 억누를 수 없는 힘의 솟구침에 말을 맡기는 것이 정상적인 것이다. 심훈은 전문적 시인이 아니었고, 그러면서도 그와 같은 절실한 욕구 때문에 이런 작품을 썼다. [해설: 김흥규]
이해와 감상2
이 작품은 장편소설 “상록수”의 작가 심훈이 쓴 희귀한 저항시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햇빛을 못 보다가 광복 후인 1949년에 유고집을 묶어서 낸 시가·수필집 <그 날이 오면>에 실렸다. 서정성이 약한 것은 흠이나, 시 정신은 놀랍다.
이 작품의 시 정신을 두 단어로 나타내면 ‘격정(激情)과 환희’이다. 그리고 그것을 가로막는 장애물과 ‘한(恨)’의 정서와 염원이 바닥에 깔린다.
돌이켜보면 우리 민족은 한(恨)의 역사를 살아 왔고 환희의 정점을 목전에 두고 파탄의 바닥으로 추락한 경험을 수없이 되풀이해 왔다.
이 시에는 맺힌 한을 풀려는 의식과, 한이 풀리고 소망을 성취하는 민족 공영(共榮)의 정점에서 환희의 송가(頌歌)를 불러 보고 싶은 절절한 염원이 서려 있다.
이 시의 시 정신, 주제 의식은 역사적이다. 그 때는 조국의 광복을 위해 썼고, 지금 우리는 통일된 그 날을 그리며 이 시를 읽는다.
이 시는 이처럼 탄탄하고 절절한 주제 의식에 묻혀 기교의 아름다움, 세련된 정서와 아어주의(雅語主義)의 문체 등을 피안(彼岸)의 장식물이 되고 만다.
이 시는 ‘그 날’을 정점으로 변화를 꿈꾼다. 그 날이 되면 삼각산은 일어나 춤을 추고 한강물은 환희로 용솟음친다. 그 날은 밤하늘의 까마귀(죽음의 상징)까지 목숨을 던져 삶의 축제에 참여한다. 그 날은 기쁨의 소식이 부활의 종소리로 울려 퍼지며 기쁨으로 가득 찬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그 날’― 시인은 축제에 참여한다. 내 가죽을 벗겨서 북을 만들어 울릴 수만 있다면 죽어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날― 이는 물론 광복의 그 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시는 다른 해석이 들어갈 여지를 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시의 의미는 단순하다. 단순한 만큼 거칠며 거친 만큼 진솔하고 그만큼 충격적이다. 충격적인 만큼 끔찍하기까지 하다.
삼각산과 한강물이 춤을 추고, 용솟음칠 기쁨에 시인은 자신의 머리로 종소리를 울리겠다고 한다. 육조 앞 - 지금의 광화문 네거리 - 넓은 길을 뛰며 울며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터질 듯한 감격을 느낀다. 감격의 정도가 이 정도에서 그쳤다면 이 시는 소박하고 설익은 시로 독자들에게 아무런 충격을 주지 못했으리라. 그런데 심훈은 ‘가죽이라도 벗겨서......’라고 끔찍한 과장법을 통해 한 조각 남은 독자의 심상을 참혹하게 산산이 깨어버린다. 바로 그런 점이 시적 미숙함이며 동시에 아마추어적인 정직함이라고 할 수 있다.
총독부의 검열을 의식하지 않고 시인의 비밀 노트에 쓰여진 시라고는 한지만 이토록 격정적인 표현으로 독자의 의식을 때리는 ‘저항시’를 우리는 불행스럽게 갖지 못했다. 심지어 이육사와 윤동주의 어떤 미발표 원고를 찾아본다 해도 심훈식의 소름이 오싹할 격정은 찾을 길 없다. 그러나 오늘날 대다수의 우리는 육사와 윤동주의 시에 감동할지언정 “그 날이 오면”을 낭송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시의 정서를 감당하기도 어렵지만 그보다도 시인 심훈의 절망을 이기려는 괴로운 얼굴이 먼저 다가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저열한 비유지만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신발을 만든 장인(匠人)을 자꾸 떠올려야 한다면 그 신발은 결코 좋은 신발일 수 없는 것처럼 우리가 한편의 시를 읽으면서 작자의 얼굴이 자꾸만 다가온다면 역시 바람직한 일일 수는 없으리라. 하여간 우리 역사 속에 이런 시가 다시 쓰여져서는 안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시는 옥스퍼드 대학교수인 C.M 바우라가 쓴 <시와 정치(Poetry and Politics)>에 세계적인 저항시의 예로 소개되었다. 그러나 바우라가 말하길 심훈이 시 속에서 조국의 해방을 예측하고 있었다는 투의 설명은 하나의 과장이라고 하겠다. 현실적으로 이육사처럼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건 시인조차도 ‘그 날’은 ‘천고의 뒤’에나 가능한 일로 생각하고 있다. 청산리 전투에 김좌진 장군의 부하로 참전한 이범석 장군조차 ‘그 날’은 언제가 될는지 모르는 아득한 미래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친일파 신으로 지탄을 받은 서정주의 ‘해방이 그렇게 빨리 올 줄을 몰랐다.’는 진술은 정직한 말이라고 하겠다. 상해 임시정부의 김구 주석까지도 일본의 항복을 좀처럼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물며 1930년대에 심훈이 ‘그 날’을 예측했다는 것은 소위 의도의 오류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시인은 예언자가 아니다. 그러나 시인은 또한 예언자가 되어야 한다. 그는 길흉화복을 예언하는 점술가가 아니라 시대와 민족의 위기의 징표를 읽어내고 경고하는 잠수함의 토끼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 시는 언젠가 다가올 광복의 ‘그 날’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그것을 이루겠노라는 일종의 출사표(出師表)인 것이다.
심화 자료
'그 날이 오면'의 작가 심훈의 말
1930년 ≪조선일보≫에 장편 〈동방(東方)의 애인(愛人)〉을 연재하다가 검열에 걸려 중단 당하였고, 이어 같은 신문에 〈불사조 不死鳥〉를 연재하다가 다시 중단 당하였다. 같은 해 시 〈그날이 오면〉을 발표하였는데 1932년 향리에서 시집 ≪그날이 오면≫을 출간하려다 검열로 인하여 무산되었다(이는 1949년 유고집으로 출간되었다.). 그는 '그 날이 오면'을 쓰게 된 동기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이 우리 단족에 전천선 후만대에 기념할 3월 1일! 우리 민족이 자주민임과 우리 나라가 독립국임을 세계 만방에 선언하며 무궁한 삼천리가 일시에 분기 열광하여 뒤끓던 날!
오오- 3월 1일이여, 4352년의 3월 1일이여! 이 어수선한 틈을 뚫고 세월은 잊지도 않고 거룩한 3월 1일은 이 횡성을 찾아오도다. 신성한 3월 1일은 찾아오도다.
오! 우리의 조령(祖靈)이시여, 원수의 칼에 피를 흘린 수만의 동포여, 옥중에 신음하는 형제여, 1876년 7월 4일 필라델피아 독립각에서 울려 나오던 종 소리가 우리 백두산 위에는 없으리이까? 아! 붓을 들매 손이 떨리고 눈물이 앞을 가리는도다!"
바로 위의 글은 광주학생 운동이 일어나면서 그리고 뒤이어 3·1운동을 겪으면서 '그 날이 오면'의 시의식을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 날이 오면'의 역사적 의의
일제 강점기의 작품들은 발표되기 전 검열 과정을 통과해야 했기 때문에 이 시는 일제 때에는 발표되지 못했다. 이 시의 특징은 광복을 기다리는 시인의 치열한 저항 정신이라 할 수 있는데, 이와 같은 저항성은 이 작품의 모티브가 되고 있다. 이 시의 역사성 또한 이에 기반한다. 그러므로 이 시는 검열 때문에 삭제되거나 창작 이전에 소실되고 만 다른 저항시를 대변하는 의의도 함께 지니고 있다. 따라서 '그 날이 오면'은 일제 강점기에 쓰여진 저항시 가운데 으뜸으로 손꼽힌다. 영국의 세계적 비평가인 C.M. 바우라는 '시와 정치'에서 이 시를 세계 저항시의 한 본보기로 들면서, "일제의 한국 통치는 가혹했으나, 민족의 시는 죽이지 못했다."라고 논평하였다. 다소 극단적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강한 어휘 구사라든지 직설적인 어법, 미적인 형상성의 부족 등이 눈에 띄기는 하지만 격렬한 정서의 환기라든지 절실함이 배어 있는 격정적인 어조, 비장한 결의, 희생적인 자세 등은 저항시로서의 이 작품을 더욱 빛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사실 저항시에서는 세련된 정서나 아름다운 표현은 도리어 표출하고자 하는 주제 의식을 약화시키는 거추장스러운 요소가 될 수 있다.
심훈(沈熏)
1901∼1936. 소설가·시인·영화인. 본명은 대섭(大燮). 본관은 청송(靑松). 호는 해풍(海風). 아명은 삼준 또는 삼보. 서울 출생. 아버지 상정(相珽)의 3남 1녀 중 3남이다. 1915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고, 1917년 왕족인 이해영(李海暎)과 혼인하였다. 1919년 3·1운동에 가담하여 투옥, 퇴학당하였다. 1920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1921년 항저우(杭州) 치장대학(之江大學)에 입학하였다.
1923년 귀국하여 연극·영화·소설집필 등에 몰두하였는데 처음에는 특히 영화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1924년 이해영과 이혼하였고 같은 해 동아일보사에 입사하였다. 1925년 조일제(趙一齊) 번안의 〈장한몽 長恨夢〉이 영화화될 때 이수일(李守一)역으로 출연하였고, 1926년 우리 나라 최초의 영화소설 〈탈춤〉을 ≪동아일보≫에 연재하기도 하였다.
이듬해 도일하여 본격적인 영화수업을 받은 뒤 귀국하여 영화 〈먼동이 틀 때〉를 원작집필·각색·감독으로 제작하였으며 이를 단성사에서 개봉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식민지 현실을 다루었던 이 영화는 〈어둠에서 어둠으로〉라는 제목이 말썽을 빚자 개작한 작품이며 영화제작은 이것으로 마지막이었다.
그 뒤 1928년 조선일보사에 다시 입사하였고, 1930년 안정옥(安貞玉)과 재혼하였다. 1931년 경성방송국(京城放送局)으로 옮겼으나 사상 문제로 곧 퇴직하였다. 1932년 고향인 충청남도 당진으로 낙향하여 집필에 전념하다가 이듬해 상경하여 조선중앙일보사에 입사하였으나 다시 낙향하였다. 1936년 장티푸스로 사망하였다.
영화 〈먼동이 틀 때〉가 성공한 이후 그의 관심은 소설 쪽으로 기울었다. 1930년 ≪조선일보≫에 장편 〈동방(東方)의 애인(愛人)〉을 연재하다가 검열에 걸려 중단 당하였고, 이어 같은 신문에 〈불사조 不死鳥〉를 연재하다가 다시 중단 당하였다. 같은 해 시 〈그날이 오면〉을 발표하였는데 1932년 향리에서 시집 ≪그날이 오면≫을 출간하려다 검열로 인하여 무산되었다(이는 1949년 유고집으로 출간되었다.).
1933년 장편 〈영원(永遠)의 미소(微笑)〉를 ≪조선중앙일보 朝鮮中央日報≫에 연재하였고, 단편 〈황공(黃公)의 최후(最後)〉를 탈고하였다(발표는 1936년 1월 신동아). 1934년 장편 〈직녀성 織女星〉을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하였으며 1935년 장편 〈상록수 常綠樹〉가 ≪동아일보≫창간15주년 기념 장편소설 특별공모에 당선, 연재되었다.
〈동방의 애인〉·〈불사조〉 등 두 번에 걸친 연재 중단사건과 애국시 〈그날이 오면〉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작품에는 강한 민족의식이 담겨 있다. 〈영원의 미소〉에는 가난한 인텔리의 계급적 저항의식, 식민지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비판정신, 그리고 귀농 의지가 잘 그려져 있으며 대표작 〈상록수〉에서는 젊은이들의 희생적인 농촌사업을 통하여 강한 휴머니즘과 저항의식을 고취시킨다.
행동적이고 저항적인 지성인이었던 그의 작품들에는 민족주의와 계급적 저항의식 및 휴머니즘이 기본정신으로 관류하고 있다. 특히, 농민계몽문학에서 이후의 리얼리즘에 입각한 본격적인 농민문학의 장을 여는 데 크게 공헌한 작가로서 의의를 지닌다.
≪참고문헌≫ 新文學思潮史(白鐵, 首善社, 1948), 韓國文學史(金允植·김현, 民音社, 1973), 民族主義文學과 啓蒙小說(吳養鎬, 國語國文學硏究, 嶺南大學校國語國文學會, 1973), 日帝時代 韓國農民小說硏究(林永煥, 서울대학교碩士學位論文, 1976), 韓國農民小說硏究(申春浩, 高麗大學校碩士學位論文, 1980).(출처 : 민족문화대백과사전)
까치 보은 설화
목숨을 구해 준 사람의 은혜를 갚고 죽은 까치의 이야기를 다룬 설화. 동물보은담의 하나이다. 등장하는 동물에 따라 ‘꿩의 보은’·‘치악산유래담’·‘은혜 갚은 까치’ 등으로 부른다. 전국적으로 널리 분포되어 있으며, 주로 구전설화로 전승된다.
옛날 어느 선비가 길을 떠나가던 중 어디에서 신음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살펴보았더니 큰 뱀이 까치 둥지 안의 까치 새끼들을 잡아 삼키려 하고 있었다. 선비는 재빨리 활을 꺼내 뱀을 쏘아 까치들을 구해 주고는 갈 길을 재촉하였다.
산속에서 날이 어두워져 잘 곳을 찾다가 마침 불빛 있는 곳을 찾아갔더니 예쁜 여자가 나와 극진히 대접하였다. 한밤중에 자다가 갑갑해진 선비가 눈을 떴더니 여자가 뱀으로 변해 목을 감고는 “나는 아까 너에게 죽은 남편의 원수를 갚으려고 한다.
만약 절 뒤에 있는 종이 세 번 울리면 살려 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했다. 선비는 ‘이제 죽었구나.’ 생각하고 절 뒤에 있는 종을 울리기 위하여 갖은 궁리를 다하였다.
그 때 갑자기 절 뒤에서 종소리가 세 번 울렸다. 그러자 뱀은 곧 용이 되어 승천했다. 이상하게 생각한 선비는 날이 밝자마자 절 뒤에 있는 종각으로 가 보았더니 까치 세 마리가 머리에 피를 흘린 채 죽어 땅에 떨어져 있었다. 까치들은 은혜를 갚기 위해 머리로 종을 들이받아 종소리를 울리게 한 뒤 죽었던 것이다. 이 때 종이 울리자 뱀이 그냥 사라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와는 달리, 종소리로 보은하는 것이 아니라 뱀의 원귀가 음식물로 변해 주인공의 뱃속에 들어가 중병을 일으키자 까치가 배를 찍어 뱃속의 뱀 새끼들을 나오게 하여 낫게 해 준다는 변이형도 더러 있다. 이 때 각 편에 따라 날짐승의 종류는 까치·꿩·백로 등으로 나타난다.
이 설화는 일차적으로 동물의 보은을 통한 교훈적 주제를 담고 있다. 그러나 종소리를 통해 보은이 이루어지고 있는 점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종소리는 주인공의 생명을 구할 뿐 아니라 뱀의 승천을 이루게 하는 구실을 하여, 이 설화가 단순한 보은담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것은 종소리를 통한 종교적 구원의 의미로까지 확대될 수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韓國民間傳說集(崔常壽, 通文館, 1958), 韓國의 民譚(任東權, 瑞文堂, 1972), 韓國口碑文學大系(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80∼1988).(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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