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우리 오빠 어저께 그만 그렇게 위하시던 오빠의 거북 무늬 질화로가 깨어졌어요.
언제나 오빠가 우리들의 `피오닐' 조그만 기수라 부르는 영남(永南)이가
지구에 해가 비친 하루의 모―든 시간을 담배의 독기 속에다
어린 몸을 잠그고 사온 그 거북 무늬 화로가 깨어졌어요.
그리하여 지금은 화(火)젓가락만이 불쌍한 영남(永男)이하구 저하고처럼
똑 우리 사랑하는 오빠를 잃은 남매와 같이 외롭게 벽에 가 나란히 걸렸어요.
오빠 ……
저는요 저는요 잘 알았어요.
왜 ― 그날 오빠가 우리 두 동생을 떠나 그리로 들어가신 그날 밤에
연거푸 말은 궐련[卷煙]을 세 개씩이나 피우시고 계셨는지
저는요 잘 알았어요 오빠.
언제나 철없는 제가 오빠가 공장에서 돌아와서 고단한 저녁을 잡수실 때 오빠 몸에서 신문지 냄새가 난다고 하면
오빠는 파란 얼굴에 피곤한 웃음을 웃으시며
……네 몸에선 누에 똥내가 나지 않니―하시던 세상에 위대하고 용감한 우리 오빠가 왜 그날만
말 한 마디 없이 담배 연기로 방 속을 메워 버리시는 우리 우리 용감한 오빠의 마음을 저는 잘 알았어요.
천정을 향하여 기어올라가던 외줄기 담배 연기 속에서―오빠의 강철 가슴 속에 박힌 위대한 결정과 성스러운 각오를 저는 분명히 보았어요.
그리하여 제가 영남(永男)이의 버선 하나도 채 못 기웠을 동안에
문지방을 때리는 쇳소리 마루를 밟는 거칠은 구두 소리와 함께―가 버리지 않으셨어요.
그러면서도 사랑하는 우리 위대한 오빠는 불쌍한 저의 남매의 근심을 담배 연기에 싸 두고 가지 않으셨어요.
오빠 - 그래서 저도 영남(永男)이도
오빠와 또 가장 위대한 용감한 오빠 친구들의 이야기가 세상을 뒤집을 때
저는 제사기(製絲機)를 떠나서 백 장에 일 전짜리 봉통(封筒)에 손톱을 부러뜨리고
영남(永男)이도 담배 냄새 구렁을 내쫓겨 봉통(封筒) 꽁무니를 뭅니다.
지금―만국지도 같은 누더기 밑에서 코를 고을고 있습니다.
오빠―그러나 염려는 마세요.
저는 용감한 이 나라 청년인 우리 오빠와 핏줄을 같이 한 계집애이고
영남(永男)이도 오빠도 늘 칭찬하던 쇠같은 거북무늬 화로를 사온 오빠의 동생이 아니예요.
그리고 참 오빠 아까 그 젊은 나머지 오빠의 친구들이 왔다 갔습니다.
눈물 나는 우리 오빠 동무의 소식을 전해 주고 갔어요.
사랑스런 용감한 청년들이었습니다.
세상에 가장 위대한 청년들이었습니다.
화로는 깨어져도 화(火)젓갈은 깃대처럼 남지 않았어요.
우리 오빠는 가셨어도 귀여운 `피오닐' 영남(永男)이가 있고
그리고 모든 어린 `피오닐'의 따뜻한 누이 품 제 가슴이 아직도 더웁습니다.
그리고 오빠……
저뿐이 사랑하는 오빠를 잃고 영남(永男)이뿐이 굳세인 형님을 보낸 것이겠습니까.
섧지도 않고 외롭지도 않습니다.
세상에 고마운 청년 오빠의 무수한 위대한 친구가 있고 오빠와 형님을 잃은 수없는 계집아이와 동생
저희들의 귀한 동무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 다음 일은 지금 섭섭한 분한 사건을 안고 있는 우리 동무 손에서 싸워질 것입니다.
오빠 오늘 밤을 새워 이만 장을 붙이면 사흘 뒤엔 새 솜옷이 오빠의 떨리는 몸에 입혀질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의 누이동생과 아우는 건강히 오늘 날마다를 싸움에서 보냅니다.
영남(永男)이는 여태 잡니다 밤이 늦었어요. ― 누이동생
요점 정리
지은이 : 임화
갈래 : 자유시, 서사시
성격 : 의지적, 목적 의식적, 현실 비판적, 서사적
구성 : 누이의 독백체 이야기를 서간체 형식으로 구성
1, 2연 |
화로가 깨어진 일에 대한 안타까움 |
3연 |
오빠의 심적 갈등 |
4연 |
오빠의 각오에 대한 이해와 오빠의 체포 |
5연 |
'나'의 현실과 각오 |
6~10연 |
강한 의지와 믿음 |
11, 12연 |
오빠에 대한 위로 |
제재 : 오빠와 깨어진 화로
주제 : 오빠에 대한 그리움과 강한 삶의 의지, 오빠에 대한 그리움과 계급 투쟁의 의지
표현상의 특징 : 편지 형식의 대화체를 통해 주제 의식을 간접적으로 전달하고, 계급 의식과 투쟁을 고취하는 목적 문학으로, '네거리의 순이'에 대한 답글의 형식을 지님.
출전 : 조선지광(1929)
내용 연구
사랑하는 우리 오빠 어저께 그만 그렇게 위하시던 오빠의 거북 무늬 질화로[육각형 무늬의 연속으로 단결을 상징하며 불타는 투쟁 정신 혹은 단란한 가정으로 볼 수 있음]가 깨어졌어요['단란한 가족'이 파괴되었음을 의미함.].
언제나 오빠가 우리들의 `피오닐'[러시아 말로 영어 pioneer에 해당하는 말로 '개척자, 선구자'라는 뜻과 함께 공산 소년 단원을 일컫는 말이기도 함.] 조그만 기수라 부르는 영남(永南)이가
지구에 해가 비친 하루의 모―든 시간을 담배의 독기 속에다
어린 몸을 잠그고 사온[열악한 현실에서 노동하는 영남이] 그 거북 무늬 화로가 깨어졌어요.[오빠의 구속 - 투쟁 조직과 단란한 가정 파괴]
그리하여 지금은 화(火)젓가락[오빠를 잃은 남매의 상징 / 투쟁의 불씨를 피울 미래에 대한 희망과 그를 위한 투쟁의 의지]만이 불쌍한 영남(永男)이하구 저하고처럼
똑 우리 사랑하는 오빠를 잃은 남매와 같이 외롭게 벽에 가 나란히 걸렸어요.[영남이와 시적 화자의 불쌍한 처지를 상징하고, 더 나아가 식민지 상태인 우리 민족, 혹은 노동자의 열악한 비참한 현실을 상징]
오빠 ……[편지 글임을 알 수 있음]
저[시적 화자 - 누이 동생]는요 저는요 잘 알았어요.
왜 ― 그날 오빠가 우리 두 동생을 떠나 그리[감옥]로 들어가신 그날 밤에
연거푸 말은 궐련[卷煙]을 세 개씩이나 피우시고 계셨는지[동생들에 대한 걱정과 투쟁의 길 사이에서의 오빠의 심적 갈등]
저는요 잘 알았어요 오빠.
언제나 철없는 제가 오빠가 공장에서 돌아와서 고단한 저녁을 잡수실 때 오빠 몸에서 신문지 냄새[인쇄 공장 노동자]가 난다고 하면
오빠는 파란 얼굴에 피곤한 웃음[노동자의 힘겨운 삶의 표현]을 웃으시며
……네 몸에선 누에 똥내[실 만드는 제사 공장 노동자]가 나지 않니―하시던 세상에 위대하고 용감한 우리 오빠가 왜 그날만
말 한 마디 없이 담배 연기로 방 속을 메워 버리시는[오빠의 심적 갈등 암시] 우리 우리 용감한 오빠의 마음을 저는 잘 알았어요.
천정을 향하여 기어올라가던 외줄기 담배 연기 속에서[노동해방을 위한 투쟁의 각오]―오빠의 강철 가슴[노동해방을 위한 투사] 속에 박힌 위대한 결정과 성스러운 각오[투옥을 불사하는 투쟁의 각오 / 노동자 계급의 해방 투쟁을 위해 자신과 가족을 희생하겠다는 결정과 각오를 말한다. 그리고 그러한 결정과 각오를 위대하고 성스럽다고 하여 당위성을 부여함]를 저는 분명히 보았어요.
그리하여 제가 영남(永男)이의 버선 하나도 채 못 기웠을 동안에
문지방을 때리는 쇳소리 마루를 밟는 거칠은 구두 소리[오빠가 잡혀갈 당시의 긴박한 상황과 두려움으로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의 시에도 이와 유사한 표현이 있음]와 함께―가 버리지 않으셨어요.
그러면서도 사랑하는 우리 위대한 오빠는 불쌍한 저의 남매의 근심을 담배 연기에 싸 두고 가지 않으셨어요.
오빠 - 그래서 저도 영남(永男)이도
오빠와 또 가장 위대한 용감한 오빠 친구들의 이야기가 세상을 뒤집을 때
저는 제사기(製絲機)를 떠나서 백 장에 일 전짜리 봉통(封筒 : 봉투)에 손톱을 부러뜨리고
영남(永男)이도 담배 냄새 구렁을 내쫓겨 봉통(封筒) 꽁무니를 뭅니다.[오빠의 구속과 관련하여 직장에서 쫓겨나고 봉투 붙이는 일로 생계를 이어가는 남매]
지금―만국지도 같은 누더기 밑에서 코를 고을고 있습니다.[가난하고 고달픈 비참한 생활]
오빠―그러나 염려는 마세요.
저는 용감한 이 나라 청년인 우리 오빠와 핏줄을 같이 한 계집애이고
영남(永男)이도 오빠도 늘 칭찬하던 쇠같은 거북무늬 화로를 사온 오빠의 동생이 아니예요.[한 남매로 '오빠'의 투쟁의지를 이어 받음]
그리고 참 오빠 아까 그 젊은 나머지 오빠의 친구[계급 투쟁에 참여하는 젊은이들]들이 왔다 갔습니다.
눈물 나는 우리 오빠 동무의 소식을 전해 주고 갔어요.
사랑스런 용감한 청년들이었습니다.
세상에 가장 위대한 청년들이었습니다.
화로는 깨어져도 화(火)젓갈[남매의 굳은 의지와 정신]은 깃대처럼 남지 않았어요.
우리 오빠는 가셨어도 귀여운 `피오닐' 영남(永男)이가 있고
그리고 모든 어린 `피오닐'의 따뜻한 누이 품 제 가슴이 아직도 더웁습니다.[시적 화자는 부정적 상황을 긍정적으로 인식 / 오빠의 투쟁 정신을 기리며 신념과 의지를 품음]
그리고 오빠……
저뿐이 사랑하는 오빠를 잃고 영남(永男)이뿐이 굳세인 형님을 보낸 것이겠습니까.
섧지도 않고 외롭지도 않습니다.
세상에 고마운 청년 오빠의 무수한 위대한 친구가 있고 오빠와 형님을 잃은 수 없는 계집아이와 동생
저희들의 귀한 동무가 있습니다.[혁명적 연대 의식의 확산]
그리하여 이 다음 일은 지금 섭섭한 분한 사건을 안고 있는 우리 동무 손[개인에서 노동자 계급의 일원으로 변화하는 화자의 인식]에서 싸워질 것입니다.
오빠 오늘 밤을 새워 이만 장을 붙이면 사흘 뒤엔 새 솜옷[오빠에 대한 누이동생의 정성, 가족애]이 오빠의 떨리는 몸에 입혀질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의 누이동생과 아우는 건강히 오늘 날마다를 싸움에서 보냅니다.[당당하고 의연한 노동자의 모습]
영남(永男)이는 여태 잡니다 밤이 늦었어요.[편지의 마무리로, 동생의 안부를 전하며 오빠를 안심시키려고 하고 있음]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임화 시인의 대표작이다. 이 시에서 시의 화자는 시인과 전혀 다른 사람이다. 시의 화자는 어린 여성인 것이다. 이와 같이 시인과 확연히 분간되는 1인칭을 등장시키는 것은 시에서 흔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특히 현실 참여적인 의미를 부각하는 의도를 가진 시에서는 종종 사용된다. 그것은 시인이라는 특별한 감각을 가진 비범한 사람의 내면을 강조하기보다는 다양한 일에 종사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속한 삶의 전형적 조건을 드러내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오빠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시에는 일하는 삼남매가 있다. 화자는 오빠와 남동생의 중간에 낀, 제사공장에서 일하는 여자아이이다. 공장에 다니던 오빠가 번민과 각오 끝에 `그리로 들어가'던 날 질화로가 깨어졌다. 그 질화로는 남동생 영남이가 담배일을 하고 구해온 것으로, 오빠가 특별히 아끼던 물건이다.
뒷부분에 나오는 정황과 `솜옷'을 참고할 때 오빠는 노동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시는, 투쟁에 앞장선 오빠와 그의 동무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분연히 오빠의 뒤를 이을 각오를 키우는 여동생의 의롭고 꼿꼿한 태도가 잘 드러나 있다. 웅변조에 빠지기 쉬운 이 시의 주제는, 계획적 구도 아래 점진적으로 제시되는 정황과 효과적인 비유에 의해 시적인 품격을 유지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시인이 공감했던 사회역사적 동력에 대한 신뢰가 적절한 시적 형태로 뒷받침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해설: 이희중]
심화 자료
경향문학
순수한 창작 의욕과 예술성보다는 일정한 정치적 사상적 경향으로 기울어져 대중을 그와 같은 방향으로 계몽하고 유도하고자 하는 목적을 지닌 문학. 서구 문학의 경우 낭만주의 시대에는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순수문학적인 관점에서 이러한 경향문학은 철저히 배척되었다. 그러나 러시아혁명 이후 계급의식을 고취하는 계급문학적 경향이 강조되면서 한때 공산권에서 특히 이런 작품 경향이 활발하였다.
경향문학은 결국 정치적 목적성으로 기울어져 있는 문학을 말하기 때문에 예술성을 저하시킬 우려가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특히, 계급투쟁과 계급의식의 고취를 위해 당에 복무해야 한다는 계급주의적 경향문학은 정론적 교조주의에 얽매어 선전문학으로 타락해버린 경우가 많다.
한국 문학사에서 경향문학은 일제 식민지시대에 등장한 계급문학을 의미한다. 계급주의적인 프롤레타리아문학은 1925년 김기진(金基鎭)·박영희(朴英熙) 등이 결성한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KAPF : Korean Artist Proletarian Federation)을 중심으로 전개된 바 있다.
조선프로예맹의 조직과 함께 구체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한 계급문학운동은 식민지 지배세력인 일본의 침략을 서구 제국주의 논리에 따른 자본주의적 침략으로 규정함으로써, 문학을 통한 반제, 반식민 사상의 구체적인 표현을 중시하게 된다. 이와 같은 식민지 노선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은 계급의식에 기초한 계급문학운동을 통해 무산계급의 역사적 사명을 강조하고 그 투쟁의식을 제고해 나아간다는 데에 역점을 두게 된다.
물론 계급투쟁의 궁극적인 목표는 식민지 지배상황에서 피지배계급에 해당되는 한국 민족의 해방을 의미하는 것이다. 계급문학운동의 실천 과정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고 있는 특성은 기존의 모든 문학적 현상에 대해 그 부르주아적 속성을 비판하고, 계급의식에 치중한 투쟁적인 문학운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하고자 하는 점이라고 하겠다. 1927년부터 방향전환론이 제기되자 계급문학운동은 문학에 대한 이념적 규정을 강화하고 조직 활동의 확대를 기하면서 정치적 투쟁의식을 더욱 강조하였다.
그러나 계급문학운동은 일본 총독부의 사상 탄압에 의해 그 실천적인 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지는 못했다. 1931년과 1934년 두 차례에 걸친 조선프로예맹 맹원에 대한 집단적인 검거사태와 혹심한 언론 탄압으로 그 조직의 와해 위기를 맞으면서 방향성을 제대로 정립시킬 수 없게 된다. 1935년 조선프로예맹의 해산은 민족의 사상운동에 대한 일본 총독부의 탄압을 단적으로 드러내주는 사건이라고 할 것이다.
한국의 경향문학은 조선프로예맹이라는 집단적인 조직을 바탕으로 사회적 확대를 시도한 바 있다. 조선프로예맹의 결성과 그 하부조직의 확대는 문학운동의 집단적인 실천과 그 공동체적인 연계의식의 확보에 결정적인 기반을 제공한다. 조선프로예맹은 각 지방에 10개의 지부를 두고, 동경에 ‘동경지부’를 결성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조직력을 발휘하였다.
이러한 조직 활동은 문학창작 활동을 집단적 이념으로 고정시키는 과오를 범하기도 하였으나, 식민지 상황에서 모든 문학 예술인들에게 공동체적인 운명의 인식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그 주체적인 사상적 대응을 적극화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조직의 해체가 곧 계급문학운동의 종말을 의미했던 점을 생각한다면, 조직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한국의 경향문학에서 문학의 사회적 가치와 그 기능에 대한 적극적인 확대를 시도했던 것은 주목되는 특징이다. 이른바 문학예술의 대중화를 내세운 계급문학운동의 실천방향에서 노동자, 농민을 문학예술의 수용계층으로 끌어들이고자 했던 노력은 문학예술의 현실적 기반 확대라는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특히 이기영(李箕永)·조명희(趙明熙)·송영(宋影) 등의 농민문학과 한설야(韓雪野)·이북명(李北鳴) 등의 노동문학은 식민지시대 경향문학의 성과로서 손꼽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도식주의적인 이념의 주입과 정치적 선동을 내세워 예술적 형상성을 도외시했다는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중의 획득을 위한 문학적 실천 작업이 중시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경향문학은 계급문학운동의 실천을 위한 이론적 투쟁을 통해 자체 논리를 확보하였다. 한국 근대문학사에서 비평의 논리화는 계급문학운동 가운데에서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셈이며, 많은 새로운 쟁점이 여기서 비롯되고 있다. 박영희와 김기진을 통해 이루어진 소설의 내용과 형식 문제에 대한 논의가 예술의 본질 문제로 확대되고, 창작 방법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능케 한 것도 모두 계급문학의 논쟁을 통해 이루어진 성과이다.
조선프로예맹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한국의 경향문학은 계급의식과 문학의 사회적 기능성에 대한 강조에 치중함으로써 문학의 예술성에 대한 무관심을 드러내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러나 문학의 사회적 실천을 통해 식민지적 상황에 대한 인식의 철저성에 눈뜨게 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는 없다.
경향문학은 식민지 상황에서 노정된 현실적 모순을 비판하고, 일제의 침략정책에 정신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실천적 의지를 문학을 통해 구현하고자 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회현실에 대한 문학의 대응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이 실천의 구체성을 드러내지 않을 경우 공론에 지나지 않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계급문학운동은 민족주의적인 색채를 부인하며 민족의식을 부정하고 있는 것처럼 인식되어 왔으나, 그 문학적 실천 과정 속에서 민족의 독자성과 주체성에 대한 신념을 표출하고 있다. 이러한 특징은 식민지 상황에서의 피지배계급의 문제가 곧바로 피지배민족의 문제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으며, 식민지적 상황을 철저하게 비판하고자 했던 당시의 경향문학이 가장 주체적인 문학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참고문헌≫ 韓國近代文藝批評史硏究(金允植, 一志社, 1976) ≪참고문헌≫ 카프의 조직과 해체(권영민, 문예중앙, 1988.3∼12) (출처 : 민족문화대백과사전)
임화
1908∼1953. 시인·평론가·문학운동가. 본명은 인식(仁植). 서울 출생. 문필 활동을 시작하였던 1926년에는 성아(星兒)라는 필명을, 1928년부터는 임화·김철우(金鐵友)·쌍수대인(雙樹臺人)·청로(靑爐) 등의 필명을 썼다.
1921년 보성중학에 입학하였다가 1925년에 중퇴하였고, 1926년부터 시와 평론을 발표하기 시작하였으며 영화와 연극에도 뛰어들었다.
시 〈지구와 빡테리아〉·〈담(曇)-일구이칠(一九二七)〉 등이 잘 일러주고 있는 것처럼 이 무렵 그는 다다이즘(dadaism)과 프롤레타리아사상에 흥미를 느끼고 있었으며, 바로 이러한 전위사조에 대한 모방욕이 무산계급문학운동에 대한 열정과 의지를 낳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담-1927〉은 서양의 프롤레타리아 혁명가의 죽음에 대한 추모의 정과 부르주아 정부에 대한 증오심을 표현한 것으로 프로시와 이야기시의 유형에 넣을 수 있다.
1928년에 박영희(朴英熙)와 만났으며, 윤기정(尹基鼎)과 가까이 하면서 카프(KAPF :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에 가담하였다.
1929년에는 〈우리 옵바와 화로〉·〈네거리의 순이(順伊)〉·〈어머니〉·〈병감(病監)에서 죽은 녀석〉·〈우산받은 ‘요꼬하마’의 부두〉 등의 시를 써냄으로써 일약 대표적인 프로 시인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들 작품들은 프롤레타라아사상으로 요약되는 주제와 이야기시 또는 단형서사시라는 형식이 결합되어 이루어진 것이다. 1930년 일본으로 가서 이북만(李北滿) 중심의 ‘무산자’그룹에서 활동하였고, 이듬해 귀국하여 1932년에 카프 서기장이 되면서 카프 제2세대의 주역이 되었다.
카프 전주사건이 터진 그 이듬해인 1935년에 카프 해산계를 낸 이후 해방이 될 때까지의 임화의 삶은 폐결핵, 시집 ≪현해탄 玄海灘≫·≪조선신문학사≫ 간행, 출판사 ‘학예사’ 운영, 일제 신체제문화운동에 대한 협조 등으로 점철되었다.
해방이 되자마자 ‘문학건설본부’의 간판을 내걸고 많은 문인들을 규합하였다. 1946년 2월에는 ‘조선문학가동맹’ 주최의 제1차 전국문학자대회를 성황리에 개최하였다.
1947년 11월에 월북하기 전까지는 박헌영(朴憲永)·이강국(李康國) 노선의 민전의 기획차장으로 활동하였으며, 월북 후에는 6·25까지 조·소문화협회 중앙위 부위원장으로 일하였다. 6·25 때는 다시 서울에 왔다가 그 뒤 낙동강 전선에 종군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휴전 직후 1953년 8월에 남로당 중심 인물들과 함께 북한정권의 최고재판소 군사재판부에서 ‘미제간첩’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고 처형당하였다. 당시 그의 옆에는 이원조(李源朝)·설정식(薛貞植) 등의 문인들이 있었다.
19세부터 시·평론을 발표하였던 임화가 남긴 시집으로는 ≪현해탄≫(1938)·≪찬가 讚歌≫(1947)·≪회상시집 回想詩集≫(1947)·≪너 어느 곳에 있느냐≫(1951) 등이 있고, 평론집으로는 ≪문학의 논리≫(1940)가 있으며, 편저로는 ≪현대조선시인선집≫(1939)이 있다. 비록 미완으로 그쳤지만 조선신문학사 서술 작업도 꾀한 바 있다.
생전에 80편에 가까운 시와 200편이 넘는 평론을 쓴 것으로 집계되고 있으며, 한국 현대시사와 비평사 그리고 현대문학연구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1920∼1930년대의 프로문학과 해방 직후의 좌익문학을 논할 때 필수적으로 살펴보아야 할 존재이다. 그는 문학운동사·한국 현대문학사에 있어서는 핵심적인 인물이 된다.
≪참고문헌≫ 韓國近代文藝批評史硏究(金允植, 한일문고, 1973) ≪참고문헌≫ 林和硏究(金允植, 文學思想社, 1989) ≪참고문헌≫ 解放期韓國詩文學史(金容稷, 民音社, 1989)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