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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맞춤법 사슬을 풀어주는 열쇠 / 성기지, 한글학회 책임연구원

by 미스커피 2011. 1. 24.
맞춤법 사슬을 풀어주는 열쇠 / 성기지, 한글학회 책임연구원

 

 

열쇠 1: 한글 맞춤법 이야기 

 

"한글 맞춤법" 하면 고개부터 설레설레 젖는 이들이 많습니다. 한글은 지구상에서 가장 우수하며 그 어느 글자보다 읽히기 쉽고 쓰기에 편리한 글자입니다. 한글을 가진 우리 겨레의 문자 해득률은 거의 100%를 자랑합니다. 그러나 이처럼 우리 국민 누구나가 쉽게 부려 쓰고는 있지만, 막상 철자법, 띄어쓰기, 표준말 따위를 꼬치꼬치 따져야 할 자리에서는 많은 이들이 자신을 갖지 못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한글 맞춤법은 생각만큼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한글 맞춤법이 어렵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우리 시대의 어른들, 곧 한자 세대일 것입니다. 한자 세대는 일제 교육과 정치적 격변기를 거쳐오면서 규범화된 한글 적기법을 학습할 기회를 그리 많이 갖지 못하였으므로 그와 같은 불평이 당연한 것입니다. 

문제는, 체계적인 교육과정을 거친 한글 세대마저도 한글 맞춤법을 기피하고 있다는 데에 있습니다. 한글 맞춤법이 이루어져 공포된 지 60년이 넘고, 학교 교육에서 이를 체계적으로 가르친 지 50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맞춤법이 어렵다고 불평하며 올바로 읽히기를 기피하는 한글 세대가 많습니다. 이들은 우리말과 글에 대한 애정이 부족한 사람들이거나, 공부하기를 귀찮아하는, 몹시 게으른 사람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한글 맞춤법은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아래에서 구체적인 예를 들어가며 그 사실을 입증해 보겠습니다. 아울러, 그 동안 한글 맞춤법에 무관심했던 일반인들도 쉽게 그 원리를 알 수 있도록 몇 가지 규정을 간략하게 풀이해 보겠습니다. (다음 4가지 풀이는 김계곤 님 지은 ≪한글 맞춤법 풀이≫(1987, 과학사), 10~13쪽에서 따 왔음.) 

  

⑴ 띄어쓰기의 원리  

우리말 적기의 띄어쓰기 단위는 구나 절이 아니며 엄격히 말하면 낱말도 아닙니다. 이를테면, 문장성분의 단위인 '어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절은 "나무는/ 그/ 자리에/ 우뚝/ 서서/ 잎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에서 '/'표로 나누어 보임과 같이 실지의 말씨에서 또박또박 떼어서 발음할 수 있는 말의 도막입니다. 그러므로 어절을 떼어서 글을 쓰거나 읽으면 이해하기도 수월하고 말뜻의 다름에 따라 휴식의 자리가 다르기 때문에 숨결(호흡)에도 들어맞습니다.  

이 어절은 우리들이 말을 할 경우 숨결에 맞는 단위이므로 조금만 주의하면 대부분의 글 적기에서 띄어쓰기의 규정을 몰라도 저절로 띄어 쓸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다만, 다음과 같은 경우에만 유의한다면 띄어쓰기에 자신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가/ 떠날/ 줄을/ 몰랐다." 

      "나의/ 목표는/ 그보다/ 높은/ 데/ 있다." 

      "우리가/ 알/ 바가/ 아닌/ 것/ 같다." 

위 문장을 숨결에 맞게 적으려면,  

      "그가/ *떠날줄을/ 몰랐다." 

      "나의/ 목표는/ 그보다/ *높은데/ 있다." 

      "우리가/ *알바가/ *아닌것/ 같다." 

따위와 같이 붙여 쓰는 것이 자연스러울 수 있습니다. 실제로 거의 모든 일간 신문에서 이와 같이 숨결에 따라 붙여서 기사문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위 예문들에서의 '줄, 데, 바, 것' 따위는 문법상 한 낱말로 다룬 의존명사이므로 띄어 써야 합니다. 

한 가지 더 유의해야 할 것은, 이름씨[명사]와 이름씨가 잇달을 때의 띄어쓰기입니다. 원칙적으로 토씨[조사]나 씨끝[어미]을 제외하고는 낱말과 낱말은 모두 띄어서 써야 합니다. 그리고 한 낱말인지 두 낱말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것은 사전을 찾아 확인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다만, 띄어쓰기 규정대로 띄었을 적에 너무 산만하다고 여겨질 경우에는 의도적으로 적당히 붙여 써도 좋다는 융통성이 있는 규정이 여럿 있는데, 고유 명사와 전문 용어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가령, "서울대학교'도 '서울', '대학교' 따위가 각각 한 낱말이므로 원칙적으로는 "서울/ 대학교"로 띄어 써야 하지만, 이는 고유 명사이므로 "서울대학교'로 붙여써도 무방한 것입니다. 또한, "자동변속기"도 '자동', '변속기' 따위가 각각 한 낱말이어서 "자동/ 변속기"로 띄어 써야 하지만, 이는 전문 용어이므로 붙여 쓸 수 있도록 허용하였습니다. 

  

⑵ 받침 적기의 요령  

한자 세대라고 불리는 기성 세대의 상당수가 어떤 받침을 적어야 할지 망설여질 때를 종종 경험합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요령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우리말은 "닭-이, 값-은, 꽃-에" 따위와 같이 임자씨(체언) '닭, 값, 꽃'에 토씨(조사) '이, 은, 에' 들이 붙어 쓰이며, "밟-아, 찾-으니, 없-으면, 높-으니까" 따위와 같이 풀이씨(용언)의 줄기 '밟, 찾, 없, 높'에 씨끝(어미) '아, 으니, 으면, 으니까' 들이 붙어 쓰입니다. 이런 경우 뜻을 나타내는 임자씨나 풀이씨의 줄기(어간)는 제 형태를 밝혀 적기로 되어 있습니다. 언제나 토씨나 씨끝의 고정된 일정한 형태만 밝혀 적으면 임자씨나 풀이씨 줄기의 받침은 밝혀지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꼬시(꽃이), 꼬슨(꽃은), 겁시 만타(겁이 많다)" 따위로 말하는 서울을 중심한 표준권 사람들의 말씨 버릇에 따르면 "꼿이, 꼿은, 겁시 많다"로 적어야 하기 때문에 받침이 (또는 토씨가) 제대로 밝혀질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문제는 맞춤법이 아니고 표준말 문제인데, 이것을 맞춤법의 잘못으로 그릇 알고 있는 이들이 많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글 바로적기에 선행해야 할 문제는 무엇보다도 정확한 표준말을 익히는 데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⑶ 사이시옷 적기 문제  

사이시옷 적기가 어렵다고 하는데, 알고 보면 적기 원칙은 간단합니다. 다만 표준말을 가려 보지 않은 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해님:햇님, 코노래:콧노래, 코등:콧등, 이몸:잇몸, 머리말:머릿말"에서 어느 쪽의 적기를 따라야 하는가에 있어서 먼저 표준말이 어느 쪽인가를 가려 보아야 합니다. (만일 표준말을 가려 보기에 의문이 생기면 사전을 찾아서 판별하면 됩니다.) 표준말의 실제 발음을 살펴보면 *[핸님], *[머린말]이 아니고 [해님], [머리말]이므로 사이시옷을 적을 필요가 없으며, *[코노래], *[코등], *[이몸]이 아니고 [콘노래], [코뜽], [임몸]이므로 "콧노래, 콧등, 잇몸"으로 적어야 합니다. '우리말+우리말' 또는 '우리말+한자말'로 이루어진 합성이름씨에서 [코뜽]처럼 뒤 조각의 첫소리가 된소리로 나거나, "콘노래"처럼 앞 뒤 조각 사이에 'ㄴ'이 덧나거나, "임몸"처럼 'ㅁ'이 덧나는 경우에 사이시옷을 그것도 앞 조각에 아예 받침이 없을 때, 받침으로 적습니다. 그밖에 사이시옷 규정에 관한 자세하고 구체적인 사항들은 이 책에 따로 '사이시옷 이야기'를 두어 설명하였으니 참고하기 바랍니다.  

  

⑷ 준말 적기의 방법  

준말 적기가 어렵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준말을 적어 놓고 다시 본디말로 풀어 보면 그 요령이 잡힙니다. 보기를 들면 "아니한다"를 "안한다"로, "하지 아니한 일"의 "아니한"을 "않은" 따위로 줄여 쓰는데, 이런 경우는 준말 "안"을 "아니", "않은"을 "아니한"으로 풀어서 읽어보고 그 차례가 잡혀 있으면 맞고 그렇지 않으면 틀린 것입니다. 만일 "안한다"를 "않한다"로 적었거나 "않은"을 "안은"으로 적었다고 하면 "않한다"는 "아니하한다", "안은"은 "아닌"으로 풀이되므로 앞 뒤 말의 관계에서 그 잘못을 쉬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제저녁"을 "엊저녁", "가지고"를 "갖고" 따위 준말로 적는 이치도 앞의 보기에 대조해 보면 'ㅈ' 받침으로 적은 이유를 깨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지다, 가지면, 가지고" 따위로 적어야 할 것을 "갖이다, 갖이면, 갖이고" 따위로 적는 이들이 있는데 이것은 준말이 아니므로 그렇게 적을 아무런 까닭이 없습니다. 이것은 으뜸꼴이 "가지다"이므로 그 줄기 '가지'에 씨끝 '-다, -면, -고' 따위를 붙여 쓰면 됩니다. "쓰이었다"의 준말을 "쓰였다" 혹은 "씌었다"로 적는데 둘 다 맞습니다. 이것은 "쓰이었다"의 '-이었-'이 줄면 '-였-', '쓰이-'가 줄면 '씌-'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씌였다"로 적으면 "쓰이었다"의 '-이-'가 앞 뒤로 겹쳐서 준 형태를 취하였으므로 틀린 것입니다.  

   

열쇠 2: 알쏭달쏭한 띄어쓰기

  

우리 나라 사람이 우리말 적기에서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이 띄어쓰기임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 띄어쓰기라는 것은 아예 생각 않고 쓰면 모르되, 제대로 지켜 가며 쓰려고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요지경 속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글 맞춤법에서의 띄어쓰기 규정 자체가 지나치게 관대하기 때문입니다. <한글 맞춤법> 제5장 '띄어쓰기'에는 모두 10개 항의 규정이 있는데, 이 가운데 반이 넘는 6개 항이 '~할 수도 있다'는 식의 규정(제46, 47, 49, 50항)이거나 '다만'이라는 허용 규정을 따로이 두고 있는 것(제43, 48항)입니다.  

그러나 말글의 띄어쓰기는 '우리말 바로쓰기'의 터를 닦는 중요한 문제이므로, 규정이 다소 복잡하다 하여 손쉽게 포기해 버릴 일이 아닙니다. 어쨌든 규정을 잘 익히고 제대로 맞추어 쓰려는 성의를 가지면 얼마든지 극복이 가능한 것도 바로 띄어쓰기입니다. 많은 이들이 가장 알쏭달쏭해 하는 띄어쓰기 사례 가운데 몇 자지만 뽑아 소개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1) '공부하고서부터입니다'의 띄어쓰기  

 "자신이 생긴 것은 이 학습기로 공부하고서부터입니다." 이렇게 써 놓으니 아무래도 이상해 보여 '공부하고서∨부터입니다', '공부∨하고서부터입니다', '공부∨하고서부터∨입니다' 따위로 띄어 쓰는 일이 흔히 있습니다. 그러나 이 어절은 모두 붙여 써야 합니다(관련 규정 제41항). 조사 '부터'는 위의 경우, 보조사로 쓰이었습니다. 보조사는 부사나 부사구에 붙어 쓰이기도 하며, 우리말에서 조사와 조사가 겹쳐 날 때에는 모두 붙여 씁니다.  

 

(2)의존 명사 '데', '바', '뿐', '수', '지'  

 우리가 알고 있는 바로는 의존 명사 '데, 바, 뿐, 수, 지' 들은 모두 띄어 써야 합니다(관련 규정 제42항). 그러나 이들이 문장 안에서 언제나 의존 명사로만 실현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음의 예문들을 보겠습니다.  

  (1) ㄱ. 그렇게 서둘렀는 데도 불구하고 늦었다.  

     ㄴ. 그렇게 서둘렀는데 그만 늦고 말았다.  

  (2) ㄱ. 나는 그곳에 가 본 바가 없다.  

     ㄴ. 내가 그곳에 가 본바 사실 그대로였다.  

  (3) ㄱ. 귀찮을 뿐 아니라 밉기조차 하다.  

     ㄴ. 귀찮을뿐더러 밉기조차 하다.  

  (4) ㄱ. 이제 그를 만날 수 없게 되었다.  

     ㄴ. 그를 만날수록 깊이 빠져 들어 갔다.  

  (5) ㄱ. 우리가 갇힌 지 얼마나 되었을까?  

     ㄴ. 우리가 얼마나 갇혀 있었는지 모르겠다.  

(1)~(5)의 ㄱ은 의존 명사로서 모두 띄어 쓰지만, ㄴ의 '데, 바, 뿐, 수, 지' 들은 앞말에 붙여 써야 합니다. 이들은 제 홀로는 뜻을 갖지 않는 어미들로서, 본디 형태는 각각 '-ㄴ데/-(은)는데, -ㄴ바, -ㄹ뿐더러, -ㄹ수록, -ㄴ지/-(은)는지' 들이다. 특히, (1), (2)에서 보인 ㄱ과 ㄴ의 구별에 유의하여야 합니다.  

  

(3) '한번'의 띄어쓰기  

'번'이 차례나 일의 횟수를 나타내는 의존 명사로 쓰인 경우에는 '한v 번, 두v 번, 세v번, …' 등과 같이 띄어서 써야 합니다(관련 규정 제42항). 그러나 '한번'이 어찌씨(부사)로서 하나의 낱말 단위로 쓰일 때에는 붙여 써야 합니다. 가령 

 "한번 속아 본 사람은 남을 쉽게 믿지 못한다.",  

 "어렵더라도 한번 해 보자." 

등에서의 '한번'은 '일단'의 뜻으로 쓰인 어찌씨입니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한'과 '본'을 띄어 쓰면 안됩니다. 

그러나, 어떤 문장 안에서 '한번 해 보자'가 '일단 시도해 보자'의 뜻이 아니고, '두 번 해 본다', '세 번 해 본다'와 같이 '두 번, 세 번, …' 등으로 바꾸어서 뜻이 통할 경우, '번'은 띄어 써야 함은 물론입니다.  

  

(4) '십만 원'의 띄어쓰기  

먼저, '십'과 '만' 사이를 띄어 쓸 것인지 붙여 쓸 것인지 한두 번쯤 망설여 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수를 적는 문제에 대해서는 <한글 맞춤법> 제44항에서 '만' 단위로 띄어 쓰도록 하고 있습니다(보기: 십칠억 이천이백삼십칠만 팔천오백사십일). 따라서 '십만'은 붙여 써야 합니다.  

그 다음, 단위 명사 '원'은 숫자와 어울려 쓰이는 경우 외에는 띄어 쓰는 것이 옳습니다(관련 규정 제43항). 곧 '천v원, 이만v원, 십만v원, …' 등으로 띄어 써야 합니다. 다만, 숫자와 어울려 '1,000원, 20,000원, 100,000원, …' 등과 같이 쓰일 때에는 붙여 씁니다.  

  

(5) '및' 과 '등'의 띄어쓰기  

'및'은 '그밖에 또'라는 뜻을 가진 어찌씨로서, '겸', '내지' 등과 같이 두 말을 이어 주거나 열거해 주는 말이므로 띄어서 씁니다(관련 규정 제45항). 따라서 'A, B 및 C'라고 할 때뿐만 아니라 'A 및 B'라고 할 때에도 띄어 써야 합니다.  

'등(等)'은 우리말 '들, 따위'와 한뜻말로서, 같은 종류의 것이 앞에 열거되어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등'도 위의 '및'처럼 어느 경우에나 띄어 써야 합니다.  

  

(6) '알 만하다'의 띄어쓰기  

우리말에서 '듯하다, 만하다, 법하다, 성싶다, 척하다' 들은 기원을 따져 보면 의존 명사 '듯, 만, 법, 성, 척' 들에 '하다, 싶다' 들이 붙은 것으로 이해되므로 이들을 모두 보조 용언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알만v하다'와 같이 '만'과 '하다'를 뗄 수는 없다. 이 말은 '알v만하다'로 띄어 쓰는 것이 원칙입니다(관련 규정 제47항).  

다만, 보조 용언의 띄어쓰기 규정에는 붙여 쓰는 것도 허용하고 있기 때문에 '알만하다'로 써도 맞습니다. 바로 이와 같은 허용 규정으로 인하여 혼란을 겪는 일이 많은데, 글쓴이의 생각에는 되도록 원칙을 충실히 따르는 것이 혼란을 줄이는 길이며, 허용 규정을 따를 때에는 일관성을 지키어 같은 글 안에서는 통일되게 적어야 할 것입니다.  

  

(7) '한국 전기 안전 공사'의 띄어쓰기  

'한국 전기 안전 공사'는 고유 명사로 볼 수 있습니다. 고유 명사는 단어별로 띄어 씀을 원칙으로 하되, 단위별로 띄어 쓸 수 있습니다(관련 규정 제49항). '한국 전기 안전 공사'는 본디 낱말별로 띄어 쓰는 것이 원칙이기는 하지만, 전체가 하나의 단위 명사이므로 '한국전기안전공사'와 같이 붙여 쓸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규정은 전문 용어일 경우에도 적용(관련 규정 제50항)되어 '배관 설비 공사'는 '배관설비공사'로, '만성 신경성 위염'은 '만성신경성위염'으로 각각 붙여 쓰는 것이 허용됩니다.  

 

     

열쇠 3: 사이시옷 이야기 

 

사이시옷 적기에 대한 규정은 한글 맞춤법(문교부 고시 88-1호) 제30항에 밝혀 놓았는데, 이 규정은 잘 짜여진 듯하면서도 일부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있습다. 때문에 사이시옷 문제는 대중의 글자살이에 있어서 가장 많이 헷갈리는 것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사이시옷 적기에 대한 규정을 훑어 보고, 자주 틀리는 두어 가지 함정에 대해서도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이시옷을 받쳐 적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순 우리말끼리 어울린 합성어로서 앞말이 모음으로 끝난 경우에, 다음과 같은 소리 환경에서 사이시옷을 받치어 적습니다.  

   ① 뒷말의 첫소리가 된소리로 날 때.  

      (보기) 나뭇-가지[―까―], 맷-돌[―똘], 나룻-배[―빼], 조갯-살[―쌀], 쇳-조각[―쪼―].  

   ② 뒷말의 첫소리 'ㄴ, ㅁ' 앞에서 'ㄴ' 소리가 덧날 때.  

      (보기) 아랫-니[―랜―], 시냇-물[―낸―].  

   ③ 뒷말의 첫소리 모음 앞에서 'ㄴㄴ' 소리가 덧날 때.  

      (보기) 뒷-일[뒨닐], 깻-잎[깬닙].  

둘째, 순 우리말과 한자말로 된 합성어로서 앞말이 모음으로 끝난 경우에, 다음과 같은 소리 환경에서 사이시옷을 받치어 적습니다.  

   ① 뒷말의 첫소리가 된소리로 날 때.  

      (보기) 샛-강(―江)[―깡], 햇-수(―數)[―쑤].  

   ② 뒷말의 첫소리 'ㄴ, ㅁ' 앞에서 'ㄴ' 소리가 덧날 때.  

      (보기) 제삿-날(祭祀―)[―산―], 수돗-물(水道―)[―돈―].  

   ③ 뒷말의 첫소리 모음 앞에서 'ㄴㄴ' 소리가 덧날 때.  

      (보기) 예삿-일(例事―)[―산닐], 훗-일(後―)[훈닐].  

따라서 이 두 가지 외의 경우, 곧 '한자말+한자말'로 된 합성어일 때에는 어떤 소리 환경에서도 사이시옷을 받치어 적지 않는 것입니다(보기: 대가代價[―까]→대가, '댓가'가 아님). 위에 든 두 가지 원칙만 잘 지킨다면 사이시옷 문제는 거의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글쓴이가 '거의'라고 표현했듯이) 이것으로써 모든 문제가 풀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번 문교부 한글 맞춤법이 안고 있는 문제점 가운데 하나가 바로 예외 조항이 많다는 것인데, 이 사이시옷 규정에 있어서도 예외를 두어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그 예외는, '한자말+한자말'로 된 합성어임에도 불구하고 사이시옷을 받치어 적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두 음절로 된 다음 여섯 낱말이 바로 그 '문제아'들입니다.  

곳간(庫間), 셋방(貰房), 숫자(數字), 찻간(車間), 툇간(退間), 횟수(回數).  

이렇게 해서 사이시옷을 받치어 적는 세 가지(예외의 경우까지) 경우를 모두 살펴보았습니다. 이 정도만 이해하면 이제 글살이에서 사이시옷 문제로 골머리를 썩일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처음에도 언급하였듯이, 이 문제는 가장 많이 헷갈리는 것 가운데 하나입니다. 많은 이들이 위의 규정을 잘 이해하면서도 그토록 헷갈리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거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곧 이 규정 자체가 매끄럽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글쓴이는 이 규정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두 군데의 함정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첫째는, 사이시옷은 '소리' 때문에 덧붙는 문법 형태소임에도 이 규정에서는 이를 '글자' 위주로 다루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자말끼리 어울린 합성어에서는 사이시옷 표기를 허용하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 말과 글을 처음 배우는 어린이나 외국인들은 이로써 낱말을 배울 때 그 뿌리―순 한국말인지, 한자에서 유래한 말인지 하는―까지도 알아야 하는 이중 부담을 떠안게 되었습니다. 이미 우리말이 된 것이라면 그것이 토박이말이든 한자에서 온 말이든 구별하지 말고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맞춤법의 틀이 세워져야 합니다. 아마도 이 규정은 한글 전용의 추세를 의도적으로 꺼리고 국?한 혼용의 글자살이를 대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쓸데 없는 노파심마저 듭니다. 가령,  

      "법원에 소장이 갔다."  

라고 할 때, 이 말의 뜻을 얼른 이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한자 섞어 쓰기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를 핑계로 삼아 '우리말은 한글로만 써서는 뜻을 이해하기 어려우니 한자를 섞어 써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입니다. 곧 "법원에 訴狀이 갔다."로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문장을  

      "법원에 솟장이 갔다."  

로 쓰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한글 전용에 바탕을 둔, 제대로 된 어문 규정이라면 이같이 '말소리'를 무시하고 한자타령이나 하면서 복잡한 원칙을 세울 필요가 없었습니다. 또 위의 여섯 낱말을 따로 예외로 두어 규정 아닌 규정을 자초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숫자, 횟수'처럼 앞으로 입에 완전히 굳어진 낱말(가령 '솟장', '갯수' 등)이 나타날 때마다 이를 계속 '예외'로 만들어 나갈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한글 맞춤법은 어렵다'라고 말하는 데에는 이 같은 어문 정책의 줏대없음이 작용하는 바 큽니다.  

둘째는, 앞에서 설명한 사이시옷 규정을 충실히 지키는 사람들일수록 많이 틀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 함정은 바로 이러한 것입니다.  

문교부 한글 맞춤법 제30항에서는 '참고' 사항으로 "한 낱말 아래에 다시 된소리나 거센소리가 나는 낱말이 이어질 경우에는 사이시옷을 받치어 적을 필요가 없다."라고 밝혀 놓고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순 우리말+순 우리말', '순 우리말+한자말'로 된 합성어이더라도 'ㄲ, ㄸ, ㅃ, ㅉ, 나 'ㅋ, ㅌ, ㅍ, ㅊ' 앞에서는 사이시옷을 받쳐 적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들입니다.  

      갈비-뼈…'갈빗뼈'가 아님.  

      위-쪽 …'윗쪽'이 아님.  

      아래-쪽…'아랫쪽'이 아님.  

      뒤-편 …'뒷편'이 아님.  

      위-층 …'윗층'이 아님.  

      뒤-처리…'뒷처리'가 아님.  

위의 낱말들은 모두 사이시옷을 적지 아ㅎ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이 규칙도 완전한 것이 아니어서, 역시(불행하게도) 예외가 있습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것들입니다.  

      셋-째…'세째'가 아님.  

      넷-째…'네째'가 아님.  

이상으로 두 가지 함정을 살펴보았는데, 앞의 규정을 완전히 숙지하고 이 두 가지 함정마저 건너뛸 수 있다면 사이시옷에 관한 한 다시는 골머리를 썩일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다만, '함정 1'에서 글쓴이가 현행 한글 맞춤법을 탓한 것은 그저 글쓴이의 사견일 뿐이니 염두에 두지 말고 규정을 있는 그대로 지켜 주기를 바랍니다. 소크라테스는 철학이 융성했던 시대에서도 "악법도 법이다."라는 썩 귀감이 되는 한 마디로써 세계의 질서를 지탱하게 하지 않았습니까?  

       

열쇠 4: 준말 이야기 

 

문장을 만들 때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될 수 있는 대로 자연스러운 표현을 찾아내기에 골몰합니다. 그것은 경직된 사고에서 벗어나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글을 쓰기 위한 필수적인 노력입니다. 어휘 선택에도 신중을 기하게 되지만, 서술어 하나 하나에도 결코 소홀할 수 없습니다.  

서술어를 자연스럽게 쓰기 위해서는 으뜸꼴을 그대로 적기보다는 여러 가지 준말 표현을 하게 되는데, 이 준말 사용에 있어서 뜻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흔히 잘못 알기 쉬운 준말 적기 가운데 몇 가지만 뽑아서 올바른 적기를 보이고자 합니다.  

  

⑴ '되라'와 '돼라'는 어느 것이 올바른가?  

우리말에서는 'ㅔ'와 'ㅐ'와 같이 발음만으로는 구별하여 적기가 어려운 음소가 있습니다. '되라'와 '돼라'의 경우도 그 가운데 하나인데, 이는 으뜸꼴 '되다'에 명령형 맺음씨끝 '-어라'가 붙은 '돼라'가 올바른 표현입니다.  

우리말의 명령형 씨끝은 '-어라'가 일반적이고 '어'가 움직씨에 따라 변이하여 '(가)거라'나 '(오)너라'가 쓰이기도 합니다. 일상적인 입말에서는 '-라'가 단독으로 풀이씨의 줄기에 결합할 수 없습니다. '되라'는 줄기 '되-'에 씨끝 '-라'가 직접 결합한 형태이므로 잘못입니다. '되-'에 '-어라'를 결합시켜 '되어라'라고 하는 것이 옳습니다.  

'돼라'는〈한글 맞춤법〉제35항〔붙임 2〕"[ㅚ] 뒤에 [-어, -었-]이 어울려 [ㅙ, ㅙㅆ]으로 될 적에는 준 대로 적는다."는 규정에 따라 '되어라'가 줄어진 대로 쓴 것입니다. 부사형 씨끝 '-어'라든지 '-어'가 선행하는 '-어서', '-어야' 따위 이음씨끝이나 과거 표시의 도움씨끝 '-었-'이 결합한 '되어, 되어서, 되어야, 되었다' 들을 '돼, 돼서, 돼야, 됐다'와 같이 적는 것도 모두 이 규정에 뿌리를 둔 것입니다.  

다만,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쓰임이 있습니다. "사장님께서는 사회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사원이 되라고 당부하셨다."에서와 같이 명령의 의미를 가지는 '-(으)라'가 어간에 직접 결합하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으)라'는 입말에서 들을이를 앞에 두고 말할 때는 쓰지 못하고, 글말이나 간접 인용문에서만 사용되는 것입니다. 이 때 '되라'는 '되어라'로 대치될 수 없으므로 오히려 '돼라'라고 쓸 수 없습니다. 따라서 '되라'인지 '돼라'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때에는 그 말을 '되어라'로 바꾸어 쓸 수 있는가 살펴보면 된다. 만일 '되어라'로 바꾸어 쓸 수 있으면 '돼라'로 써야 합니다.  

  

⑵ '정은이에요.'인가, '정은이예요.'인가?  

'-이에요'가 축약되어 '-예요'로 쓰인다는 것은 대개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사람 이름을 가리킬 때에도 '제 이름은 서 정은이에요.'라고 쓰는 것을 흔히 보게 됩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정은이예요.'가 올바른 표현입니다. 이 말에서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문법적 구조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분석입니다.  

      ㄱ. 정은+이에요.  

      ㄴ. 정은이+이에요.  

이 둘 가운데에서는 ㄴ이 ㄱ보다 타당한 분석입니다. 우리말에서는 '정은'과 같이 닿소리로 끝나는 이름에 토씨가 결합되는 경우 뒷가지(접미사) '-이'가 함께 결합되어 나타나는 것이 특징적인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ㄷ. 정은이가, 정은이와, 정은이를, 정은이도  

ㄴ이 타당한 구조라는 것이 확실하다 하더라도 위의 표기를 결정하는 데에는 또 한 가지가 어려운 점으로 남게 됩니다. '정은이+이에요'에서 '이'와 '이'의 부딪힘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를 회피하는 방법으로는 탈락과 축약 가운데에 어느 방법을 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전자라면 몸씨(체언)의 끝음절 '-이'든지 계사 '-이-'든지 하나의 '이'가 탈락하여 '정은이에요.'가 되겠고, 축약의 경우라면 '-이에요'의 '이'와 '에'가 축약하여 '-예'가 되어 '정은이예요.'로 표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현상과 평행되는 예는 '정은이였다.'와 같은 표기입니다. 이것을 분석하면 '정은이+이었다'일 것이고,〈한글 맞춤법〉제36항 규정('ㅣ' 뒤에 '-어'가 와서 'ㅕ'로 줄 적에는 준 대로 적는다.)을 따른다면 '정은이였다.'가 맞고 '*정은이었다.'는 틀리는 표기가 됩니다.  

  

⑶ '않-'과 '안'의 다른 점  

'않다'는 움직씨나 그림씨 아래에 붙어 부정의 뜻을 더하는 도움풀이씨 '아니하다'의 준말이고 '안'은 풀이씨 위에 붙어 부정 또는 반대의 뜻을 나타내는 어찌씨 '아니'의 준말입니다. 따라서 "영수가 하지 않았다, 순미는 예쁘지 않다."와 같이 움직씨나 그림씨에 덧붙어 함께 서술어를 구성할 때에는 '않다'를 쓰고 "안 먹는다, 안 어울린다."에서와 같이 서술어를 꾸미는 구실을 할 때에는 '안'을 써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줄기의 끝음절 '하'의 'ㅏ'가 줄고 'ㅎ'이 다음 음절의 첫소리와 어울려 거센소리가 될 적에는 거센소리로 적는다(제40항). 다만, '하다'가 붙는 다른 풀이씨들 가령 '간편하다'와 같으면 '간편하니'만 가능하고 '*간펴?으니'와 같은 형태가 불가능한 데 비해 '아니하다'는 '아니하니, 않으니' 모두가 가능한 것으로 보아 '않다'는 하나의 별개 낱말로 굳어진 것이라 판단됩니다다. 따라서 제40항〔붙임 1〕"[ㅎ]이 줄기의 끝소리로 굳어진 것은 받침으로 적는다."에 따라 받침으로 적게 됩니다.  

반면, '아니'를 '안'으로 적는 것은〈한글 맞춤법〉제32항 "낱말의 끝홀소리가 줄어지고 닿소리만 남은 것은 그 앞의 음절을 받침으로 적는다."는 규정에 따른 것이다. '아니하다'는 어찌씨 '아니'와 풀이씨 '하다'가 결합된 것이므로 '아니'를 그 준말 '안'으로 대치하는 것이 가능할 듯 싶지만, 도움풀이씨로 쓰이는 '아니하다'는 하나의 낱말로 굳어진 것이기 때문에 '안하다'의 꼴로는 쓰이지 못합니다. 반드시 '않다'나 '아니하다' 꼴로 표현해야 합니다.  

흔히 '않다'와 혼동되어 쓰이는 것으로 '아니다'가 있습니다. '아니다'는 서술격 토씨 '이다'에 대응하는 부정 표현입니다. 곧 서술격 토씨 '이다'가 쓰인 문장을 부정할 때 사용되는 그림씨로서 도움풀이씨가 아닌 본용언입니다. 따라서 '본동사+지' 구성에 연결되는 도움풀이씨로 '아니다'를 써서는 안 됩니다. '아니다'는 "A가 B가 아니다."와 같은 구성에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열쇠 5: 두음 법칙에 대하여

  

한 해가 저물고 새해가 밝아 올 때쯤이면, 으레 연구실에 단골로 쏟아지는 문의 전화가 있습니다. '연말 연시'의 바른 표기를 묻는 내용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연말 연시'를 '연말년시'로 적는 것이 옳지 않느냐고 반문합니다. '년'(年)이 낱말의 앞자리에서는 두음 법칙의 적용을 받아 '연말'로 되지마는, 셋째 음절의 '年'은 '년'으로 적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연말 연시'는 하나의 낱말이 아닙니다. '연시'는 '연말'과는 별개의 낱말로 쓰이므로, 두 낱말은 띄어서 써야 하며, 그렇기 때문에 '연시'도 두음 법칙의 적용을 받는 것입니다.  

위의 경우는 매우 간단한 예이지만, 두음 법칙의 적용 범위가 항상 규칙적인 것은 아닙니다. 한글 맞춤법의 다른 항목과 마찬가지로 두음 법칙에도 유의하지 않으면 틀리기 쉬운 예외가 있으며, 때로는 모호하게 느껴지는 적용 예도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두음 법칙에 대하여 알아 보겠습니다.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하여, 일상 생활에서 흔히 잘못 쓰기 쉬운 예를 든 뒤에 관련되는 규정을 설명하는 방법으로 살펴보기로 합니다.  

  

1. "선녀"와 "신여성"  

두음 법칙은 <한글 맞춤법> 제5절(제10, 11, 12항)에서 규정하고 있습니다. 먼저, 제10항에서는 "한자음 '녀, 뇨, 뉴, 니'가 낱말의 첫머리에 올 적에는, 두음 법칙에 따라 '여, 요, 유, 이'로 적는다."라고 설명합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한자음) (본음대로 적음)   (두음에서 바뀜)  

        녀(女) → 선녀(仙女) :       여자(女子)  

        뇨(尿) → 당뇨(糖尿) :       요소(尿素)  

        뉴(紐) → 결뉴(結紐) :       유대(紐帶)  

        니(泥) → 운니(雲泥) :       이토(泥土)  

그러나, 매인이름씨(의존명사)는 위의 규정에 적용되지 않음에 유의해야 합니다. 가령, 매인이름씨 '년'(年)은 '년 1회', '몇 년' 등과 같이 본디 음대로 '년'으로 적습니다. 이 '년'(年)이 매인이름씨가 아닌, 두 음절 이상의 낱말 첫머리에 쓰일 때에만 '연말', '연시', '연초' 등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이 밖에 매인이름씨 '냥'(한 냥, 두 냥, …), '냥쭝'(한 냥쭝) 들도 두음 법칙의 적용을 받지 않습니다.  

제10항에서 특히 잘 알아 두어야 할 것은, 두음 법칙의 적용을 받지 않는 음운 환경(둘째 음절 이하)임에도 'ㄴ'이 'ㅇ'으로 바뀌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곧, "접두사처럼 쓰이는 한자가 붙어서 된 말이나 합성어에서, 뒷말의 첫소리가 'ㄴ' 소리로 나더라도 두음 법칙에 따라" 적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음과 같은 예들이 그것입니다.  

      신여성(新女性) [↔선녀(仙女)]  

      공염불(空念佛) [↔상념(想念)]  

위 '신여성', '공염불' 들은 각각 '신'(新), '공'(空) 들이 접두사처럼 붙어 이루어진 합성어이므로, 한자음 '녀'(女), '념'(念)이 둘째 음절에 쓰였음에도 불구하고 'ㄴ'이 'ㅇ'으로 바뀐 예입니다.  

  

2. "법률"(法律)과 "선율"(旋律)  

<한글 맞춤법> 제11항은 "한자음 '랴, 려, 례, 료, 류, 리'가 낱말의 첫머리에 올 적에는, 두음 법칙에 따라 '야, 여, 예, 요, 유, 이'로 적는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한자음) (본음대로 적음)     (두음에서 바뀜)  

        량(良) → 선량(善良) :          양심(良心)  

        렬(列) → 행렬(行列) :          열거(列擧)  

        례(禮) → 혼례(婚禮) :          예의(禮儀)  

        룡(龍) → 와룡(臥龍) :          용호(龍虎)  

        률(律) → 법률(法律) :          율격(律格)  

        리(理) → 진리(眞理) :          이발(理髮)  

앞에서 밝힌 바대로 의존명사는 위의 규정에 적용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리유'(理由)는 '이유'로 적지만, 의존명사 '리'(理)는 '그럴 리가 없다.'처럼 본음대로 적습니다. 또한, 거리를 나타내는 의존명사 '리'(里)도 '몇 리인가?'처럼 두음 법칙에 적용 받지 않습니다. 그런가 하면, 제10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접두사처럼 쓰이는 한자가 붙어서 된 말이나 합성어'에서는 둘째 음절 이하에서라도 'ㄴ, ㄹ'을 두음 법칙에 따라 'ㅇ'으로 적어야 합니다(예: 연이율, 열역학).  

제11항에서 유의해야 할 것은, '렬', '률'은 낱말의 첫머리가 아닌 경우에도 일정한 환경에서 두음 법칙의 적용을 받아 음운이 변화한다는 사실입니다. 곧 "모음이나 'ㄴ' 받침 뒤에 이어지는 '렬, 률'은 '열, 율'로 적는다."는 것입니다. 다음에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나열(羅列) [↔행렬(行列)]  

      비율(比率) [↔시청률(視聽率)]  

      선열(先烈) [↔열렬(熱烈)]  

      선율(旋律) [↔법률(法律)]  

위의 '렬, 률'은 그 앞 음절이 받침 없는 말이거나 'ㄴ' 받침으로 끝나는 경우, 둘째 음절 이하임에도 본음대로 적지 않고 각각 '열, 율'로 바뀜을 알 수 있습니다.  

  

3. "경로석"과 "상노인"(上老人)  

끝으로, 제12항은 "한자음 '라, 래, 로, 뢰, 루, 르'가 낱말의 첫머리에 올 적에는, 두음 법칙에 따라 '나, 내, 노, 뇌, 누, 느'로 적는다."로 규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한자음) (본음대로 적음) (두음에서 바뀜)  

        락(樂) → 쾌락(快樂) :      낙원(樂園)  

        래(來) → 미래(未來) :      내일(來日)  

        로(老) → 경로(敬老) :      노인(老人)  

        뢰(雷) → 낙뢰(落雷) :      뇌성(雷聲)  

        루(樓) → 기루(妓樓) :      누각(樓閣)  

        릉(陵) → 왕릉(王陵) :      능묘(陵墓)  

이 규정에서도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접두사처럼 쓰이는 한자가 붙어서 된 낱말은 뒷말을 두음 법칙에 따라 적습니다.  

곧, '경로석'(敬老席)에서는 '로'(老)를 본디 음대로 적지만, 상늙은이라는 뜻의 '상노인'(上老人)에서는 두음 법칙에 따라 'ㄹ'이 'ㄴ'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이는 '상노인'이 '상+노인'의 합성어인데, 여기에서 '상'이 접두사로 쓰였기 때문입니다. 그 밖에, '노인' 앞에 서을 붙여 부르는 부름말 '강노인', '김노인', 박노인' 들은 모두 두음 법칙에 따라 'ㄹ'이 'ㄴ'으로 바뀌어야 함은 물론입니다. 

  

4. 사람이름에서의 적용  

이 문제는 동사무소의 주민 등록 업무가 한글로 전산화하면서부터 골칫거리로 떠오른 것입니다. <한글 맞춤법>에 따르면 성과 이름은 붙여 쓰기로 되어 있으니(제48항), 성을 뗀 이름의 첫 음절은 자연히 둘째 음절 이하가 되므로, 원칙적으로 두음 법칙의 적용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집에서든 사회에서든 사람이름을 부를 때에는 '용식'이라 하지 '김룡식'이라 하지는 않습니다. 때문에 성과 이름을 붙여 쓰더라도 이름에서만큼은 두음 법칙을 적용하여 '김용식'이라 적도록 하였습니다. 다만, 외자로 된 이름을 성에 붙여 쓸 경우에는 본음대로 적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예: 신립, 최린).  

사람이름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문제는 이름 마지막 글자의 적기입니다. 특히 '렬, 률, 룡' 따위의 한자음은 사람마다 제각기 달리 적습니다. 가령, 같은 한자음인 '렬' 자도 '최병렬'에서는 본음대로 적는가 하면, '선동열'에서는 'ㄴ' 음을 'ㅇ'으로 바꾸어 적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두음 법칙과는 무관한 것이며, 한글 맞춤법으로 규정할 내용이 아닙니다. 한자를 한글로 옮겨 적는 과정에서 이름의 고유성을 최대한 존중하여, 실제 부르는 이름으로 적도록 해 주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곧, [동녈]로 부르고 있다면 '동렬'로 적되, [동열]로 부르고 있다면 '동열'을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열쇠 6: 된소리 이야기 

 

우리가 무심코 쓰고 있는 나날말(일상 용어) 가운데 그 표기를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이처럼 잘못 알고 있는 한글 표기법은 그때그때 바로잡아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해도 바로잡히지 않는 표기 예가 있습니다. 그 까닭은, 어지간한 것들은 그 잘못을 깨닫고 되살펴 보면 대개가 수긍이 가기 마련이지만, 어떤 것은 나름대로의 상식으로 볼 때 어찌하여 잘못인지 이해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히, 된소리 적기에서 이 같은 어려움이 군데군데 도사리고 있습니다. 

다음에 들어보는 몇 가지 경우는 된소리와 예사소리를 구별하여 적기가 매우 까다로운 용례입니다. 개정된 문교부 <한글 맞춤법> 이후, 많은 이들을 혼란에 빠지게 한 '~할게'의 적기부터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할게'와 '~할까?' 

 현행 표기법에서는, "~할께"는 "~할게"의 잘못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아래 예문들을 보기로 하겠습니다.  

      (1) ㄱ. 걱정 마, 내가 *할께. (→할게)  

         ㄴ. 그래, 내가 *치울께. (→치울게)  

      (2) ㄱ. 그럼 내가 할까?  

         ㄴ. 어떤 것부터 치울까?  

(1)과 (2)에서 볼 수 있듯이, 씨끝 '-(으)ㄹ게'와 '-(으)ㄹ까'는 둘 다 된소리로 발음되면서도 (1)은 예사소리('→' 표 뒤의 고딕글자)로, (2)는 된소리로 구별하여 적습니다. 이와 같은 표기법의 근거는〈한글 맞춤법〉제53항의 규정입니다.  

곧, 씨끝 '-(으)ㄹ걸, -(으)ㄹ게, -(으)ㄹ세, -(으)ㄹ세라, -(으)ㄹ수록, -(으)ㄹ시, -(으)ㄹ지, -(으)ㄹ지니라, -(으)ㄹ지라도, -(으)ㄹ지어다, -(으)ㄹ지언정, -(으)ㄹ진대, -(으)ㄹ진저, -올시다' 들은 예사소리로 적되, 다만 의문을 나타내는 씨끝 '-(으)ㄹ까, -(으)ㄹ꼬, -(스)ㄹ니까, -(으)리까, -(으)ㄹ쏘냐' 들만을 된소리로 적도록 한 규정에 따른 것입니다.  

예사소리로 적는 것들은 모두 '-(으)ㄹ'과 어울려 쓰이는 일정한 조건이 있을 뿐만 아니라, '-(으)ㄹ걸, -(으)?ㄹ' 들은 각각 '-(으)ㄴ걸, -는지' 들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기 때문에, 서로 연관성이 있는 씨끝들의 표기를 통일한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이에 반하여, '-(스)ㅂ니까, -(으)리까' 들은 'ㄹ' 받침 뒤가 아닌 환경에서 항상 된소리 '-까'로 나타나는 의문형 씨끝들입니다.  

(2)에서처럼 '-(으)ㄹ' 뒤에 오는 소리를 된소리로 적는 것은 '-(으)ㄹ까, -(으)ㄹ꼬, -(으)ㄹ쏘냐'의 경우에만 국한됩니다. 이들은 본디 된소리로 발음되는 의문형 씨끝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밖에도, 비슷한 조어 구조이면서도 반드시 예사소리와 된소리를 구별해서 써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다음에 한두 가지 예를 들어 보기로 하겠습니다.  

  

(2)"뚝배기"와 "곱빼기"  

"뚝배기"와 "곱빼기"의 경우, 다같이 [-빼기]로 발음되면서도 이를 '-배기'와 '-빼기'로 구별해 적어야 하니, 혼란이 오는 것은 당연합니다. 음식점에 가 보면, 거의 모든 차림표에서 이와 같은 혼란을 보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귀퉁배기, 나이배기, 대짜배기, 육자배기, 주정배기, 포배기, 혀짤배기" 들과 같이, [배기]로 발음되는 경우를 '-배기'로 적어야 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발음이 [빼기]인 경우들인데, 이들은 다음과 같이 '-배기', '-빼기'로 구별하여 적어야 합니다.  

   (3) *뚝빼기도 *곱배기가 있습니까?  

       →뚝배기도 곱빼기가 있습니까?  

 1. "뚝배기, 학배기" 들과 같이 한 형태소 내부에 있어서 'ㄱ, ㅂ' 받침 뒤에서 [빼기]로 발음되는 경우는 '-배기'로 적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뚝배기, 학배기" 들은 〈한글 맞춤법〉제5항의 "한 낱말 안에서 'ㄱ, ㅂ' 받침 뒤에서 나는 된소리는 같은 음절이나 비슷한 음절이 겹쳐 나는 경우가 아니면 된소리로 적지 아니한다."라는 규정을 따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유의해야 할 것은, "곱빼기"는 'ㅂ' 받침 뒤에서 된소리가 나는 경우이지만, 앞의 밑줄 친 '같은 음절이나 비슷한 음절이 겹쳐 나는 경우(ㅂ+ㅃ)'에 속하므로 된소리로 적는다는 것입니다.  

 2. 반면, 다른 형태소 뒤에서 [-빼기]로 발음되는 것은 모두 '-빼기'로 통일하여 적도록 하고 있습니다('한글 맞춤법' 제54항 참조). 여기에 해당되는 예로는 "고들빼기, 그루빼기, 대갈빼기, 머리빼기, 이마빼기, 재빼기, 코빼기" 들이 있습니다.  

  

(3)"맛적다"와 "멋쩍다"  

      (4) ㄱ. 그는 겉보기와는 달리 맛적은 사람이다.  

         ㄴ. 눈이 마주치자 그는 매우 멋쩍어 하였다.  

(4)ㄱ에서처럼 "맛적다"는 '재미나 흥미가 적어서 싱겁다'의 뜻으로 쓰이는 말입니다. 이와 같이, 발음이 [-쩍다]로 나더라도 '적다(少)'의 뜻이 유지되고 있는 합성어의 경우는 '-적다'로 적어야 합니다.  

반면, (4)ㄴ에서 예를 들어 보인 "멋쩍다"의 경우처럼, '적다(少)'의 뜻이 없이 [-쩍다]로 발음될 때에는 모두 '-쩍다'로 통일하여 적도록 하고 있습니다('한글 맞춤법' 제54항 참조). 여기에 해당되는 낱말로는 "객쩍다(쓸데없고 실없다), 겸연쩍다, 맥쩍다(심심하고 무료하다), 멋쩍다(동작이나 모양이 격에 맞지 아니하다, 어색하다), 해망쩍다(영리하지 못하고 어리석다), 행망쩍다(정신을 잘 차리지 아니하다, 아둔하다)" 들이 있습니다.  

  

(4)"부딪히다"와 "부딪치다"  

지금까지 살펴본 예사소리?된소리 적기와는 성격이 다른 문제이지만, 흔히들 구별하기 어려워하는 낱말들 가운데 "부딪히다"와 "부딪치다"가 있습니다. 아래 예문을 보기로 하겠습니다. 

      (5) ㄱ. 공사장에서 떨어진 나무에 머리를 부딪혔다.  

         ㄴ. 그 배우는 지금까지 별의별 질시와 모함에 부딪혀 왔다.  

      (6) ㄱ. 저기가 그들의 차가 부딪친 곳이다.  

         ㄴ. 마침내 할인 매장에서 그녀와 맞부딪쳤다.  

"부딪다"는 '마주 닿다, 마주 대다, 마주 닥뜨리다'의 뜻으로 쓰이는 움직씨입니다. "부딪히다"는 이 말의 피동형으로서 '부딪음을 당하다'의 뜻이고, "부딪치다"는 "부딪다"의 힘줌말입니다. 얼른 보면 구별이 쉬운 것 같지만, 나날살이에서 이 둘을 정확히 구분해서 쓴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5)ㄱ, ㄴ은 본인(주어)의 적극적인 행위 없이 일방적으로 '부딪음을 당한' 것입니다. 가만히 있는 나를 무엇인가가 와서 부딪는다면 분명 '나'는 '부딪힌' 것입니다. 반면, (6) ㄱ, ㄴ은 서로의 행위가 적극적으로 맞닥뜨린 것입다. '나'도 그에게 부딪고, '그'도 나에게 부딪은 것이니 서로는 분명 '부딪친' 것이 아니겠습니까?  

       

열쇠 7: "있슴"인가, "있음"인가?

  

씨끝〔어미〕"-습니다, -읍니다" 가운데서 "-습니다"를 표준으로 삼은 근거는 지난 1989년 3월 1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문교부에서 고시한〈표준어 규정〉제17항에 밝혀져 있습니다. 곧 "비슷한 발음의 몇 형태가 쓰일 경우, 그 의미에 아무런 차이가 없고 그 중 하나가 널리 쓰이면, 그 한 형태만을 표준어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읍니다"에 비해 오늘날 상대적으로 더욱 널리 쓰이게 된 "-습니다"만을 표준말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이로 인하여 전혀 예기치 않았던 혼란이 발생하였습니다. 씨끝 "-읍니다"를 "-습니다"로 적도록 하고 나니까, 많은 이들이 이름씨끝〔명사형 어미〕"-음"을 "-슴"으로 적는 엉뚱한 잘못을 범하고 있습니다. 글쓴이가 학회 연구부에 걸려온, 이 문제에 관련된 문의 전화를 받아 오며 느낀 점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리 위주의 입말(말하기)과 읽기 위주의 글말(어법)과의 갈등을 겪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면, "-읍니다"가 "-습니다"로 바뀌었다고 하니까 새 표준어 규정이 '소리 나는 대로' 적도록 바뀐 것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한글 맞춤법〉제1장 제1항에서는 분명히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을 원칙으로 한다."고 밝혀 놓고 있습니다. "-음, -ㅁ"은 풀이씨〔용언〕를 이름씨〔명사〕처럼 구실하게 하는 이름씨끝으로서, 닿소리자음〕밑에서는 "-음"을, 홀소리〔모음〕밑에서는 "-ㅁ"을 쓰는 것이 올바른 어법입니다.  

"-음"을 "-슴"으로 적어야 한다는 생각은 "-음"을 "-읍니다"의 줄인꼴로 잘못 알고 있는 데에서도 비롯됩니다. 그래서 "-습니다"가 표준말이 되었으니까 "-음"도 "-슴"으로 적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음"은 "-읍니다"의 줄인꼴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음"은 예나 이제나 변함없이 "-음"입니다. 아래의 보기에서 ':' 표시 왼쪽은 "-습니다"가 결합된 예이고 오른쪽이 "-음"이 결합된 예인데, 발음을 잘 비교하여 보면 그 이치를 금방 깨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줄기+씨끝)  (발음)  (줄기+씨끝) (발음)   (참고)  

먹+습니다  [먹씀니다] : 먹+음      [머금] ※[먹씀]이 아님.  

닫+습니다  [닫씀니다] : 닫+음      [다듬] ※[닫씀]이 아님.  

숨+습니다  [숨씀니다] : 숨+음      [수믐] ※[숨씀]이 아님.  

찾+습니다  [쁨씀니다] : 찾+음      [차즘] ※[쁨씀]이 아님.  

쫓+습니다  [쪼ㄷ씀니다] : 쫓+음   [쪼츰] ※[쪼ㄷ씀]이 아님.  

같+습니다  [갇씀니다] : 같+음      [가틈] ※[갇씀]이 아님.  

갚+습니다  [갑씀니다] : 갚+음      [가픔] ※[갑씀]이 아님.  

없+습니다  [업씀니다] : 없+음  

있+습니다  [램씀니다] : 있+음  

이와 같이, 줄기〔어간〕의 끝 받침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규칙적으로 맺음끝〔종결 어미〕"-습니다"를 붙이거나 이름씨끝 "-음"을 붙이면 된다.  

이뿐만 아니라 이음씨끝〔연결형 어미〕"-으니"와 "-으며"와 "-으면"과 "-으면서"의 경우도 위와 한가지이다.  

      먹+으니→먹으니 [머그니] ※[먹쓰니]가 아님.  

      닫+으며→닫으며 [다드며] ※[닫스며]가 아님.  

      숨+으면→숨으면 [수므면] ※[숨스면]이 아님.  

         . 

         . 

         . 

      없+으니→없으니  

      있+으며→있으며  

      -겠+으면→-겠으면  

      -였+으면서→-였으면서  

지금까지 밝힌 대로, "-습니다"와 "-음"(그 밖에 "-으니", "-으며", "-으면", "-으면서" 따위)의 적기는 전혀 갈래가 다르며, 새〈표준어 규정〉에서 바꾼 것은 "-읍니다"를 버리고 "-습니다"로만 적기로 한 것뿐입니다.  

〈표준어 규정〉에는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물음을 나타내는 씨끝 "-습니까"('-읍니까'가 아님)와 또 다른 씨끝 "-습디다"('-읍디다'가 아님)도 "-습니다"와 한가지로 다루면 됩니다.  

한편, "없아오니"와 "없사오니"의 경우에서는, 오히려 '-사오니'가 '없-'과 관련하여 발음되는 것을 그대로 적어 놓은 것인 줄로 잘못 알고 어법 위주로 돌리려는 충실한(?) 착각에서, "없아오니"의 형태를 취하는 오류가 종종 일어납니다. 이 때의 '-사오-'는 옛날말 '-삽-'이 변형된 선어말 어미로, '-으오-'보다 공손함을 나타낼 때 쓰입니다. 아래에 몇 가지 용례를 들어 보겠습니다.  

      먹+사오니→먹사오니 ※'먹아오니'가 아님.  

      닫+사오니→닫사오니 ※'닫아오니'가 아님.  

      숨+사오니→숨사오니 ※'숨아오니'가 아님.  

      같+사오니→같사오니 ※'같아오니'가 아님.  

      없+사오니→없사오니 ※'없아오니'가 아님.  

      있+사오니→있사오니 ※'있아오니'가 아님.  

앞에서, 맞춤법과 표준어 규정이 바뀐 지 6년이 넘었음에도 아직 많은 사람들이 씨끝 "-습니다"와 "-음"의 적기를 혼동하고 있는 까닭을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하였는데,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표준말을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게' 쓰도록 한 표준어 규정을 잘못 이해하여, '소리 나는 대로' 적는 것으로 착각한 까닭인데, 이는 말하기 위주가 아닌 읽기 위주의 올바른 어법을 깨우침으로써 극복될 수 있음을 앞에서 예시하였습니다.  

둘째는 씨끝 "-음"을 "-읍니다"의 줄인 꼴로 잘못 알고, "-읍니다"가 "-습니다"로 바뀌니까 따라서 "-음"도 "-슴"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인데, 이에 대해서는 종결 어미 "-습니다"와 명사형 어미 "-음"의 무관함을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임으로써 설명하였습니다.  

글쓴이가 우리 말글 규범에 관한 각종 질의를 대하며 느낀 것은, 많은 이들이 생각보다는 우리 문법에 관한 기초가 탄탄하다는 것과, 그러면서도 단순하고 개괄적인 것에 대한 착각―가령 '맞춤법'과 '표준어 규정'의 성격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든지―으로 종종 오류를 범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이와 같은 문제들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갖기 바랍니다.  

   

열쇠 8: '-오'와 '-요' 이야기

 

자주 쓰이는 말 가운데 그때마다 틀리게 써서 눈살을 찌뿌리게 하는 것들이 더러 있는데, 씨끝 '-오'와'-요'를 뒤섞어 쓰는 경우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다음에 보기를 들어 보겠습니다. 

 (1) ㄱ.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요." 

    ㄴ. "어서 *오십시요." 

    ㄷ. "자리에 않아 *주십시요. 

 (2) ㄱ. "그대는 나의 *빛이오, 생명입니니다." 

    ㄴ. "이분은 *부장님이오, 저쪽이 상담실입니다." 

위 예문 (1)은 '-오'를 써야 할 자리에 '-요'를 쓴 것이고, (2)는 '-는 '-요'를 써야 할 자리에 '-오'를 쓴 것입니다. '-오'와 '-요'의 구별을 사전 뜻풀이에 기대어 살펴보겠습니다. 

 -오: 홀소리로 끝나는 줄기에 붙어, '하오' 할 상대에게 의문?명령?설명을 나타내는 맺음 씨끝. 

 -요: '이다'?'아니다'의 줄기에 붙어, 사물이나 사실을 나열할 때에 쓰이는 이음 씨끝. 

곧, '-오'는 맺음 씨끝이고 '-요'는 이음 씨끝입니다. 다만, '-오'가 '-시-' 뒤에서 'ㅣ'모음의 영향을 받아 [요]로 소리나기 때문에 이러한 혼동이 따르는 것입니다. (1)의 밑줄 친 부분은 본디'하오' 할 상대에게 '받으오(→바등시→받으십시오)', '오오(→오시오→오십시오)', '주오(→주시오→주십시오)'로 말하는 것을 매우 높여 표현한 것이며, (2)의 밑줄친 부분은 문장의 앞과 뒤를 이어주는 씨끝으로서 각각 다음과 같이 바로잡아야 합니다. 

 (1)' ㄱ.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ㄴ. "어서 *오십시오." 

     ㄷ. "자리에 않아 *주십시오." 

  (2)' ㄱ. "그대는 나의 *빛이요, 생명입니다." 

      ㄴ. "이분은 *부장님이요, 저쪽이 상담실입니다." 

이번에는 현행 <한글 맞춤법>에서 이 두 씨끝의 구별을 어떻게 명시하고 있는지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현행 <한글 맞춤법>은 형태소 결합에 나타나는 'ㅣ' 홀소리 되기('ㅣ'모음 동화)를 표기에 반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결합하는 형태소들의 본디 모습을 최대한 살려주는 <한글 맞춤법>의 기본 정신 때문입니다. 만일 위 예문 (1)의 경우, 'ㅣ'홀소리 되기를 표기에 반영하면 새로운 씨끝으로 '-요'를 인정하는 것이 됩니다. 

우리말 맺음 씨끝 '-오'는 홀소리 되에서는 그대로 '-오'로 쓰이고, 닿소리 뒤에서는 '-으-'가 결합된 '-으오'로 사용됩니다. 그런데 홀소리'ㅣ' 뒤에서의'-요'를 인정하면 이 형태의 수가 늘어나 활용이 복잡하게 될 뿐만 아니라, 터씨 '-요'와 구분하기도 어렵게 됩니다. 이러한 까닭에 <한글 맞춤법> 제15항 [붙임 2]에 "종결형에서 사용되는 씨끝 '-오'는 [요]로 소리나는 경우가 있더라도 그 원형을 밝혀 '오'로 적는다."와 같이 용법과 표기에 대해 명시하여 놓은 것입니다. 

한편, 이음 씨끝으로서의 '-요' 외에 토씨로 쓰이는 '요'가 있는데, 맺음 씨끝 '-오'와 토씨 '요'와의 구별에도 주의하여야 합니다. 왜냐 하면, ㅌ씨 '요'도 맺음 씨끝 '-오'처럼 문장을 끝맺을 때 쓰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3) ㄱ.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ㄴ. 어서 오세요. 

     ㄷ. 자리에 앉아 주세요. 

     ㄹ. 우리가 이겼어요. 

위 예문 (3)에서의 '-요'는 존대의 뜻을 나타내기 위한 도움토씨입니다. 사전에서의 뜻풀이를 보겠습니다. 

요: 풀이씨의 씨끝이나 어찌씨들에 붙어, 말하는 이가 듣는 이에게 존대하는 뜻으로 나타내는 도움씨 '-오'는 맺음 씨끝이므로 줄기나 안맺음 씨끝 뒤에 결합하여야만 하며, '요'는 토씨이므로 이름씨에 결합함은 물론 풀이씨와 결합할 때도 맺음 씨끝 뒤에 다시 결합합니다. 따라서 '-오'나 '요' 앞의 말이 몸씨이면 당연히 '-요'를 써야 하며, 앞의 말이 풀이씨이더라도 맺음 씨끝이라면 '-요'를 써야 합니다. 

특히, '-요'는 반말체의 맺음 씨끝 '아/어', '지' 들의 뒤에 결합되므로 쉽게 구분해 낼 수 있습니다. '가시오'의 경우 '-오' 앞의 '-시-'는 안맺음 씨끝이므로 '요'가 결합할 수 없어 *'가시오'라고 쓸 수 없습니다. '가세요, 가셔요'의 경우, '가세, 가셔'가 독립적으로 쓰일 수 있는 점으로 보아 맺음 씨끝 다음의 토씨 '요'가 결합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가세요'와 같이 쓸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주의할 것은, "ㅣ 뒤에 '-어'가 와서 'ㅕ'로 쓸 적에는 준대로 적는다."(한글 맞춤법 제36항)는 규정과 혼동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현행 <한글 맞춤법>이 'ㅣ'홀소리 되기를 인정하지는 않으나,아예 'ㅣ'가 줄어들고 뒤의 홀소리와 합쳐질 때는 '가져(가지어)'와 같이 표기할 수 있습니다. 만일, '가시오'에서 '-시-'의 'ㅣ'가 '-오'와 합쳐질 수 있다면, 이 규정에 따라 '가쇼'와 같이 표기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상에서 설명한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종결형에서는 '-오'로, 연결형에서는 '-요'로 적는다. 

      예: 이것은 책이오. ↔ 이것은 책이요, 저것은 연필이다. 

 (2) '-십시오'의 형태에서는 언제나 '-오'로 적는다. 

      예: 어서 오십시오. 

 (3) 존대를 나타내는 도움토씨의 경우에는 문자의 끝에서 '요'로 쓴다. 

      예: 어서 오세요. 

   

열쇠 9: '그러므로'와 '그럼으로' 

  

"개정된 한글 맞춤법이 소리나는 대로 바뀌었다는데, 그러면 '있음'이 아니고 '있슴'이 맞지 않습니까?"라고 질문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습니다. 그러나 글쓴이가 이가 이미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이 경우에는 '있음'이 맞습니다.  

우리 한글 맞춤법의 큰 원칙이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을 원칙으로 한다."(한글 맞춤법 제1항)는 것인데, 위와 같은 질문을 하는 사람은 바로 이 '어법에 맞도록' 써야 한다는 것을 잊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규칙적인 끝바꿈(활용)에서는 풀이씨(용언)의 줄기(어간)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곧 '있다'의 끝바꿈꼴(활용형)인 '있고, 있어(서), 있으니, 있음, …' 들은 줄기 '있-'은 변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씨끝(어미) '-고, -어(서), -으니, -음' 들이 붙은 것입니다.  

우리말에 '-슴'이란 씨끝은 없습니다. 따라서 '있음'을 '있슴'으로 적는 것은 어법에 어긋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있슴'이 소리나는 대로 적힌 것도 아닙니다. 소리나는 대로 적는다면 '이씀'이라고 적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개정된 한글 맞춤법이 '소리나는 대로' 적는 것이라는 착각에서 비롯된, '그러므로'와 '그럼으로'의 혼동에 관하여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그러므로'와 '그럼으로'는 적기에 있어서만 구별될 뿐 말하기?듣기에서는 잘 구별되지 않습니다. (이 밖에도 하므로/함으로, 알리므로/알림으로, 일어나므로/일어남으로, … 들도 모두 같은 경우입니다.) 억지로 끊어서 읽기 전에는 발음의 차이가 거의 없기 때문에 적기에 있어서도 자주 혼동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둘은 형태적으로나 의미적으로 분명하게 서로 다른 말이므로 잘 구별해서 적어야 합니다. '소리나는 대로' 적는다는 잘못된 생각을 떨쳐 버리는 것이 무었보다 중요합니다.  

먼저, '그러므로'는 '그렇다' 또는 '그러다(←그렇게 하다)'의 줄기 '그러(큁)-'에 까닭을 나타내는 씨끝 '-므로'가 결합한 형태입니다. 이 말은 '그러니까, 그렇기 때문에, 그러하기 때문에, 그리 하기 때문에' 등의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다음의 예문들에서는 '그러므로'로 적어야 합니다.  

   ⑴ 그녀는 이제 혼자이다. 그러므로 외롭다. (그러니까)  

   ⑵ 그는 지독한 구두쇠이다. 그러므로 돈을 많이 모았다. (그렇기 때문에)  

   ⑶ 법이 그러므로, 억울해도 어쩔 수 없다. (그러하기 때문에)  

   ⑷ 그녀가 만날 때마다 그러므로, 거절하기가 어렵다. (그리 하기 때문에)  

반면에 '그럼으로'는 '그러다'의 이름씨꼴(명사형) '그럼'에 토씨(조사) '-으로'가 결합한 형태입니다. 이 말은 '그렇게 하는 것으로써'라는 수단이나 방법의 의미를 가집니다. 또한, '그럼으로' 다음에는 '그러므로'와는 달리 '-써'가 결합될 수도 있습니다. 다음 예문들에서는 '그럼으로' 또는 '그럼으로써'를 써야 합니다.  

   ⑸ 그녀는 무턱대고 먹어댔다. 그럼으로(써) 울분을 삭였다. (그렇게 하는 것으로써)  

한편, 위의 ⑴, ⑵나 ⑸에서 두 문장이 하나로 합쳐질 때에도 '그러므로, 그럼으로(써)'에 준하여 '~므로, ~(으)ㅁ으로(써)'의 형태를 취한다는 점에도 주의해야 하겠습니다.  

   ⑴' 그녀는 이제 혼자이므로 외롭다.  

   ⑵' 그는 지독한 구두쇠이므로 돈을 많이 모았다.  

   ⑸' 그녀는 무턱대고 먹어댐으로(써) 울분을 삭였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에서 한 가지 지나쳐 버릴 수 없는 사실을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곧 '그러므로써'나 '그러므로서', '그럼으로서' 들과 같은 표기는 어느 경우에나 맞춤법에 어긋난다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이에 대하여 혼동을 일으키고 있다.  

다 알고 있다시피, 씨끝은 줄기와 결합하며, 토씨는 몸씨(체언)에 붙습니다. '-므로'는 씨끝이므로 풀이씨의 줄기와 결합할 수는 있지만 몸씨에는 붙을 수 없습니다. 또한, '-(으)로써'나 '-(으)로서'는 토씨이므로 몸씨에만 붙을 수 있을 뿐 풀이씨의 줄기에는 붙지 않습니다. 곧 '혼자이므로'를 '혼자임므로'로 쓸 수 없듯이 '먹어댐으로써'를 '먹어대므로써'나 '먹어대므로서'로 쓰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음의 예문들은 모두 비문입니다.  

   ⑹ *그녀는 책을 읽으므로써 시름을 잊을 수 있었다. (→읽음으로써)  

   ⑺ *그러므로써 모든 일은 끝났다. (→그럼으로써)  

   ⑻ *그렇게 하므로서 나의 책임은 다했다. (→함으로써)  

   ⑼ *얼굴이 크므로서 긴머리는 어울리지 않는다. (→크므로)  

다시 말해서, 우리말에는 '-므로써'나 '-므로서'와 같은 씨끝이 없다고 이해하면 됩니다. '소리나는 대로' 적는다는 한글 맞춤법에 대한 오해가 사라지면 이 문제는 자연히 해결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한편, 아직도 토씨 '-로써'와 '-로서'의 구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이 많은 것 같아 간단히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흔히 '-로써'는 수단이나 방법을 뜻하고, '-로서'는 신분이나 자격을 뜻한다고 설명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는 의미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문장에 익숙하지 못한 일반인들에게는 여전히 구별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좀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⑽ 그는 영웅으로서 우리의 기억에 남아 있다.  

   ⑾ 그는 대패로써 나무를 깎았다.  

위의 예문 ⑽에서 '-(으)로서'는 '(영웅의) 자격'을, ⑾에서 '-로써'는 '(대패를) 가지고'라는 수단을 나타내는 토씨로 쓰였습니다. 이들 문장은 비교적 짧기 때문에 한 번 읽어 보면 쉬이 그 뜻이 파악되지만, 문장이 길어질수록 내용을 이해해서 뜻을 알아내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그 때에는 이런 방법을 쓰면 됩니다. 곧 '~로서'나 '~로써' 앞의 구절을 'A는 B이다'식으로 만들어 보아서, 문맥상의 뜻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로서'를 쓰고, 말이 되지 않으면 '-로써'를 씁니다. 이 같은 방법으로 하면 위의 예문들에서 밑줄 친 부분은 다음과 같이 바꿀 수 있습니다.  

   ⑽' 그는 영웅이다.  

   ⑾' *그는 대패이다.  

⑽'은 문맥상의 뜻에서 벗어나지 않지만, ⑾'은 전혀 맞지 않는 비문이 됩니다. 따라서 위 ⑽에서는 '-로서'를, ⑾에서는 '-로써'를 써야 함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열쇠 10: 뒷가지 '-이/-히' 이야기

  

글을 쓰거나 남의 글을 교정하다 보면 부사화 접미사 '-이'와 '-히'가 잘 구별되지 않을 때가 간혹 있습니다. 가령 "틈틈히"인지 "틈틈이"인지, "꼼꼼히"인지 "꼼꼼이"인지 언뜻 판단이 서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한글 맞춤법〉제51항에서는 "부사의 끝음절이 분명히 '이'로만 나는 것은 '-이'로 적고, '히'로만 나거나 '이'나 '히'로 나는 것은 '-히'로 적는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규정에 따르면 "틈틈이"와 "꼼꼼히"가 각각 바른 표기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홀소리와 홀소리 사이 또는 울림소리(유음, 비음)와 홀소리 사이에서는 'ㅎ'이 약화되므로, 실제로〔이〕와〔히〕의 발음을 구별하기는 그다지 쉽지 않습니다. 발음에만 의존하여 구별하려 한다면 "틈틈이, 꼼꼼히, 고이, 헛되이, 나른히" 들을 "틈틈히, 꼼꼼이, 고히, 헛되히, 나른이" 들로 잘못 적을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따라서 부사화 접미사 '-이'와 '-히'의 구별을 위해서는 일정한 기준이 필요하게 됩니다. 앞에서 제시한〈한글 맞춤법〉규정만으로는 불충분하므로 다음에서 부사화 접미사를 '-이'로 적어야 하는 것들의 문법적인 기준을 몇 가지로 정리하여 보이겠습니다.  

   ⑴ '-하다'가 붙는 뿌리(어근)의 끝소리가 'ㅅ'인 경우  

가붓이, 기웃이, 깨끗이, 나긋나긋이, 나붓이, 남짓이, 느긋이, 둥긋이, 따뜻이, 뜨뜻이, 반듯이, 버젓이, 번듯이, 빠듯이, 산뜻이, 의젓이, 지긋이 등.  

어찌씨에서, 뿌리의 끝소리가 'ㅅ'일 때에는 '-하다'가 붙을 수 있느냐 없느냐와는 관계없이 모두 '이'로 적습니다. 그럼에도 굳이 ['-하다'가 붙는]이라는 조건을 단 것은, 일반적으로 ['-하다'가 붙을 수 있으면 '히'로 적는다]는 등식에 얽매여 있기 때문에, '-하다'가 붙더라도 '이'로 적어야 하는 예외성을 밝히고자 한 것입니다. 물론 이 때(뿌리의 끝소리가 걁인 어찌씨인 경우)는 그 발음에도 유의하여야 합니다. 간혹〔깨끄치〕,〔따뜨치〕들로 말하는 이들이 있는데,〔깨끄시〕,〔따뜨시〕들로 바로잡아야 할 것입니다.  

   ⑵ 'ㅂ' 벗어난 풀이씨(불규칙 용언)의 줄기 뒤  

가까이, 가벼이, 고이, 괴로이, 기꺼이, 날카로이, 너그러이, 대수로이, 번거로이, 부드러이, 새로이, 쉬이, 외로이, 즐거이 등.  

'ㅂ' 벗어난 끝바꿈을 하는 풀이씨의 경우, 그 풀이씨 줄기에 뒤붙이 '-이'나 '-히'가 붙어 어찌꼴(부사형)을 만들 때에는 발음에 상관 없이 모두 '-이'를 취합니다. 이러한 용법은 줄기의 끝소리 'ㅂ'이 끝바꿈을 할 때에 일률적으로 홀소리 'ㅜ'로 바뀌는 현상(한글 맞춤법 제19항)과 연관지워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곧 다음과 같이 체계화할 수 있습니다.  

      가까-?다 → 가까-이(?→이) : 가까-?-어 → 가까-워  

      괴로-?다 → 괴로-이(?→이) : 괴로-?-어 → 괴로-워  

      새로-?다 → 새로-이(?→이) : 새로-?-어 → 새로-워  

      즐거-?다 → 즐거-이(?→이) : 즐거-?-어 → 즐거-워  

   ⑶ '-하다'가 붙지 않는 풀이씨 줄기 뒤  

같이, 굳이, 길이, 깊이, 높이, 많이, 실없이, 적이, 헛되이 등.  

뒷가지 '-하다'가 올 수 없는 풀이씨 줄기(어간)에 '이'나 '히'가 붙어 어찌씨를 만들 때에는 '이'를 붙인다고 하니까, 어떤 이들은 "도저히, 가만히, 무단히, 열심히" 들은 '-하다'가 오기 어려운데도 '히'를 붙이지 않느냐고 되묻습니다. 그러나 '도저(到底), 무단(無斷), 열심(熱心)' 들은 풀이씨(용언)의 줄기가 아니라 몸씨(체언)이며, '가만'은 그 가운데서도 어찌씨입니다. 게다가―일상 생활에서는 잘 쓰이지 않지만―이들 낱말에는 '-하다'가 붙어 쓰일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한편, "도저하다"는 '생각, 지식, 기술, 인품 따위의 정도가 매우 깊다'는 뜻으로서 그윽하고도 긍정적인 말이지만, 이의 어찌씨꼴 "도저히"는 주로 '없다'나 '못하다' 앞에 놓여서 '어찌해도 끝내'라는 부정적인 뜻을 나타내어 다소 이채로운 말입니다.  

   ⑷ 첩어 또는 준첩어인 이름씨 뒤  

간간이, 겹겹이, 골골샅샅이, 곳곳이, 길길이, 나날이, 다달이, 땀땀이, 몫몫이, 번번이, 샅샅이, 알알이, 앞앞이, 일일이, 줄줄이, 집집이, 짬짬이, 철철이, 틈틈이 등.  

'첩어'란 같은 음이나 비슷한 의미를 가진 낱말들이 반복적으로 결합한 말입니다: 간(間)+간(間)+이, 겹+겹+이, 골+골+샅+샅+이, 달+달+이(→다달이), …. 곧, 낱말 대 낱말의 합성어의 성격을 가집니다. 글쓴이가 어느 학원에서 위 ⑷와 같은 기준을 제시하자, 한 학생이 "섭섭하다"의 어찌씨꼴을 "섭섭이"로 해야 하는가 하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섭섭하다"는 독립된 하나의 낱말이지 첩어가 아닙니다('섭'을 따로 떼어서 쓰는 용례는 없다). 따라서 이 경우의 어찌씨꼴은 "섭섭히"가 맞습니다.  

   ⑸ 어찌씨 뒤  

      곰곰이, 더욱이, 삐죽이, 생긋이, 오뚝이, 일찍이, 해죽이 등.  

뿌리 "곰곰, 더욱, 삐죽, 생긋, 오뚝, 일찍, 해죽" 들은 모두 본디 어찌씨입니다. 위 ⑸의 용례는 어찌씨에 '이'가 붙어서 역시 어찌씨가 된 경우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어찌씨 뒤에 '히'가 붙어 다시 어찌씨로 되는 경우는 없다는 것에 유의하여야 합니다.  

이와는 다른 문제이지만 다소 연관성이 있는 규정을〈한글 맞춤법〉제25항 '붙임' 2에 두고 있는데, "부사에 '-이'가 붙어서 역시 부사가 되는 경우에는 그 부사의 원형을 밝혀 적는다."라고 명시하여 놓았습니다. 이 규정에 따르면 "일찍이"를 "*일찌기"로, "더욱이"를 "*더우기"로 쓰는 것은 어법에 어긋나는 것이 됩니다.  

            

열쇠 11: 표준말 이야기 

 

우리 말글 규정에서 '표준말'에 대한 최초의 규범은 1936년에 조선어 학회(한글 학회의 전신)에서 내놓은〈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입니다. 이 때에 9,547 낱말을 사정한 바 있고, 그 뒤로도 몇 차례 민간(조선어 학회) 주도로 표준말 사정 작업이 있어 왔습니다. 그러다가, 1988년에 이르러 문교부에서〈표준어 규정〉을 고시(1월 19일, 제88-2호), 이듬해 3월 1일부터 지금까지 시행하여 오고 있습니다.  

현행〈표준어 규정〉(문교부)이 시행된 지 만 8년이 넘었어도 아직까지 일반 국민에게 널리 계몽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언어의 변화는 흔히, 수많은 냇물이 합쳐져 강을 이루어 흘러가는 모양과 비견됩니다. 내를 이루는 샘에 변화를 준다고 해도 그 영향이 내에서 강으로, 다시 바다에 미치는 데에는 매우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현행 표준말 규범이 온 나라 백성에 골고루 미치기에는 8년이 짧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처럼 서구 문화가 쏟아져 들어오는 때에는 말글 오염이 가속화하기 십상이므로, 올바른 우리 말글 규범의 준수가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해졌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직 표준말 사용에 서툰 이들은 한시바삐 이를 익혀 말글살이를 곧추세워야 할 것입니다.  

아래에서, 현행〈표준어 규정〉(문교부)이 시행된 이후 달라진 표준말 가운데서도 생활 속에서 가장 자주 틀리고 있는 것들을 뽑아내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거센소리를 인정한 것  

현행〈표준어 규정〉(이하, '표준'이라고 줄여 일컬음) 제3항에서는 "다음 낱말들은 거센소리를 가진 형태를 표준말로 삼는다."라 하고 "칸/간(間)", "털어먹다/떨어먹다" 가운데 각각 "칸"과 "털어먹다"만을 표준말로 인정하였습니다.  

"*간"은 한자말 "間"이었으나 현실적으로 [칸]이라고 발음하므로 "칸막이, 빈 칸, 방 한 칸"처럼 "칸"으로 정하였다. 다만 "초가삼간, 뒷간, 마굿간"처럼 복합어로 굳어진 것은 그대로 "간"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재물을 다 없앤다'는 뜻으로는 "털어먹다"만을 인정하였습니다. '밑천을 털다, 도둑이 빈 집을 털다'에서의 "털다"와 같은 뜻입니다. 그러나 "먼지떨이, 재떨이"는 바꾸지 않고 그대로 두었습니다.  

   (2) 굳어진 형태를 인정한 것  

2-1. 어원에서 멀어진 형태로 굳어져서 널리 쓰이는 것은 그것을 그대로 인정하여 표준말로 삼았습니다(표준 제5항).  

"*강남콩"은 본디 '江南'에서 온 것이지만, 이미 굳어져 있는 현실 발음대로 "강낭콩"만을 인정하였습니다. "*삭월세" 또한 '朔月貰'의 취음이지만 오늘날의 실제 발음인 "사글세"를 그대로 표준말로 삼았습니다. 따라서, "*강남콩, *삭월세"는 모두 잘못된 말이니 쓰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2-2. 발음이 바뀌어 굳어진 형태를 그대로 인정하여 표준말로 삼았습니다(표준 제11항).  

홀소리의 발음 변화를 인정하여, 바뀐 형태를 표준말로 삼은 낱말들에는 "-구려(*-구료), 나무라다(*나무래다), 미숫가루(*미싯가루), 바라다(*바래다), 상추(*상치), 주책(*주착), 튀기(*트기)" 들이 있습니다. 또한, "*호도과자"도 "호두과자"로 써야 하며, "바라다"의 명사형은 "바람"이지 "*바램"이 아니니 유의하여야 합니다.  

   (3) 두 뜻을 한 형태로 삼은 것  

뜻이 두 가지로 구별되어 그에 따라 두 형태로 쓰여 왔으나, '표준' 이후 하나의 형태로 통일된 것들이 있다. "돌/돐, 셋째/세째, 빌리다/빌다" 들이 그것입니다.  

지난날에는 "돌"은 생일을, "*돐"은 주기를 의미하는 것으로 구분되었으나 "돌" 하나로 통일하였습니다. 또한, "둘째, 셋째, 넷째" 등은 '몇 개째'의 뜻이고 차례를 가리킬 때에는 "*두째, *세째, *네째"로 썼으나, 역시 "둘째, 셋째, 넷째"로 통일하였습니다. "*빌다"는 '내가 남에게서 빌어오다'로, "빌리다"는 '내가 남에게 빌려주다'로 구별해 써 왔으나, 그 구분을 없애고 자주 쓰는 "빌리다"로 통합하였습니다.  

   (4) 모음조화에서 벗어난 형태를 인정한 것  

모음조화 규칙에 따라 변화를 인정하지 않았던 예들에 대하여 현실 발음을 인정하여 표준말로 정했는데, 이에 따라 양성모음이 음성모음으로 바뀌어 굳어진 "깡충깡충"이 "*깡총깡총"을 쫓아내고 표준말이 되었습니다. 또한, "쌍둥이, 귀염둥이, 막둥이"가 표준말이 되고 "*쌍동이, *귀염동이, *막동이"는 표준말이 아닙니다. "추워서 오들오들 떨다"라고 해야지 "*오돌오돌"이라고 하면 안 됩니다.  

다만, "삼촌, 부조금, 사돈" 들은 아직 어원 의식이 남아 있어서 표준말로 두었으므로, "*삼춘, *부주금, *사둔" 들은 비표준말이니 유의해야 합니다.  

   (5) 모음이 단순화한 형태를 인정한 것  

"*괴퍅하다"가 "괴팍하다"로, "*-구면"이 "-구먼"으로, "*미류나무"가 "미루나무"로 각각 표준말이 달라졌는데, 이는 모음이 단순화한 현실 발음을 인정한 것입니다(표준 제10항).  

이와는 좀 다르지만, '?' 모음 역행동화 현상이 나타난 형태('학교'를 '*핵교'라 발음하는 것이 이러한 현상인데, 이는 원칙적으로 표준 발음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대로를 표준말로 인정한 낱말들도 있습니다. "-내기, 냄비" 들이 그것으로, 이에 따라 "서울내기, 자선냄비"가 표준말이고 "*서울나기, *자선남비"는 비표준말이 되었습니다. 다만, "아지랑이"는 역행동화가 일어나지 않은 형태를 표준말로 인정하므로, "*아지랭이"는 비표준말입니다.  

   (6) 준말을 표준말로 인정한 것  

본디말을 줄여 쓴 준말이 오히려 본디말보다 널리 쓰이게 된 경우에는, 그 준말만을 표준말로 인정하였습니다(표준 제14항).  

"*무우, *새앙쥐" 들 대신에 그 준말인 "무, 생쥐"가 더 널리 쓰인다고 인정하여 이를 표준말로 삼은 것입니다. 그러나, 준말이 널리 쓰이고 있다고 하더라도, 본디말 역시 널리 쓰이고 있으면 본디말을 그대로 표준말로 삼았습니다. "귀이개(*귀개), 수두룩하다(*수둑하다)" 들이 그 예입니다.  

한편, 준말과 본디말이 다 같이 널리 쓰이면서 준말의 쓰임이 뚜렷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준말과 본디말 둘 다를 표준말로 삼았습니다. 이 같은 예에는 "거짓부리/거짓불, 노을/놀, 막대기/막대, 머무르다/머물다, 시누이/시뉘/시누, 외우다/외다" 들이 있습니다.  

           

열쇠 12. 복수 표준말 이야기

 

얼마 전에 노인 한 분이 전화를 걸어 오셔서 '소고기'와 '쇠고기'에 대하여 한바탕 논쟁(?)을 벌인 일이 있었다. 그 분 말씀인즉, '쇠고기'는 잘못 된 낱말이라는 것이다. '소달구지', '소도둑' 들을 '*쇠달구지', '*쇠도둑'이라 할 수 없음이 그 까닭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주지하듯이 '쇠고기'는 '소고기'와 함께 복수 표준어로 되어 있습니다. '쇠고기'는 '소의 고기'가 줄어든 형태인데, 이 경우 '고기'는 '소'의 부속물이므로 '-의'의 쓰임이 가능하였으며, '소의 고기'가 오랜 세월 동안 자연스럽게 '쇠고기'로 불려 온 것입니다(소가죽/쇠가죽, 소기름/쇠기름, 소머리/쇠머리, 소뼈/쇠뼈 등). 그러나, '소달구지', '소도둑'에서 '달구지'와 '도둑'은 모두 소의 부속물이 아닙니다. 이들은 각각 '소가 끄는 달구지, 소를 훔치는 도둑'의 뜻이지, '*소의 달구지, *소의 도둑'으로 해석되지 않습니다. 그러한 까닭에 '*쇠달구지, *쇠도둑'이라는 줄어든 꼴은 본디부터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소고기/쇠고기'류와 같은, 이른바 '복수 표준어'는 우리 일상 생활에서 자주 쓰이는 말 가운데 의외로 많습니다. 흔히 사람들이 '이 것 아니면 저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기 때문에 생각지 않은 착오를 일으킬 수 있는 것들입니다. 이 자리에서는 바로 이러한, 알고 보면 둘 다 맞는 말들에 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모양은 다르지만 뜻이 같은 말들 

한 가지 뜻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형태가 둘 이상으로 쓰여 헷갈리게 하는 낱말들이 여럿 있습니다. 주로 지방에 따라 달리 쓰이던 말들이 현대에 와서 교류가 잦아짐에 따라 각자 세력을 크게 넓혀, 이제는 어느 하나를 버릴 수 없게 된 것들입니다. 이와 같이 복수 표준어로 인정(표준어 규정 제26항)되고 있는 낱말들을 몇몇 들어 보겠습니다. 

 ① 이름씨의 경우 

가락엿/가래엿, 가뭄/가물, 개수통/설거지통, 고깃간/푸줏간, 고까/때때, 넝쿨/덩굴, 눈대중/눈어림/눈짐작, 돼지감자/뚱딴지, 딴전/딴청, 멍게/우렁쉥이, 목화/면화, 물방개/선두리, 물부리/빨부리, 벌레/버러지, 보조개/볼우물, 살쾡이/삵, 삽살개/삽사리, 수수깡/수숫대, 신/신발, 애꾸눈이/외눈박이, 어저께/어제, 언덕바지/언덕배기, 엿기름/엿길금, 옥수수/강냉이, 우레/천둥, 자리옷/잠옷, 자물쇠/자물통, 중신/중매, 짚단/짚뭇, 책씻이/책거리, … 

이들 가운데서도 특히, '가뭄/가물, 넝쿨/덩굴, 멍게/우렁쉥이, 어제/어저께, 엿기름/엿길금' 등이 자주 혼동을 주는 낱말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많은 이들이 '/'표 왼쪽이 표준말이고, 그 오른쪽은 비표준말인 줄로 알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가물, 덩굴, 우렁쉥이, 어저께, 엿길금' 들은 모두 정겨운 우리 토박이말입니다. 이들도 모두 표준말이니 잘 익혀 두어야 하겠습니다. 

한편, 위에서 인용한 낱말들 가운데 '눈어림'은 '눈대중'에, '선두리'는 '물방개'에, '물부리'는 '빨부리'에, '볼우물'은 '보조개'에, '우레'는 '천둥'에, '자리옷'은 '잠옷'에, '짚뭇'은 '짚단'에 각각 가리워 잘 쓰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매우 아름다운 우리말이니 앞으로 잘 살려 써야 하겠습니다. 

 ② 풀이씨?그림씨의 경우 

가엾다/가엽다, 교정보다/준보다, 깨뜨리다/깨트리다(-뜨리다/-트리다), 들락거리다/들랑거리다, 발그스레하다/발그스름하다(-스레하다/-스름하다), 불사르다/사르다, 서럽다/섧다, 성글다/성기다, 씁쓰레하다/씁쓰름하다, 앉으세요/앉으셔요(-세요/-셔요), 어금버금하다/어금지금하다, 어림잡다/어림치다, 여쭈다/여쭙다, 역성들다/역성하다, 연달다/잇달다, 의심스럽다/의심쩍다, 장가가다/장가들다, 천연덕스럽다/천연스럽다, 출렁거리다/출렁대다(-거리다/-대다), 혼자되다/홀로되다, … 

위에서 인용한 낱말 가운데서도 특히, '가엾다/가엽다', '서럽다/섧다', '여쭈다/여쭙다' 등 'ㅂ 벗어난 끝바꿈'(ㅂ 불규칙 활용)을 하는 그림씨(형용사)와 풀이씨(동사)들이 자주 틀리는 것들입니다. 아래 예문을 들어 보겠습니다.. 

 ㄱ-1. 우리들의 가엾은 아버지. 

   -2. 우리들의 가여운 아버지. 

 ㄴ-1. 서러워 말고 힘을 내세요. 

   -2. 설워 말고 힘을 내세요. 

 ㄷ-1. 아침마다 인사 여쭈는 아들들. 

   -2. 아침마다 인사 여쭙는 아들들. 

위에서 ㄱ~ㄷ의 1, 2는 모두 맞는 표현입니다. 이들의 갖가지 끝바뀐 꼴인 '가엾게/가엽게, 가엾어라/가여워라, 가엾지/가엽지, …', '서러운/설운, 서럽게/섧게, 서럽지/섧지, …', '여쭈게/여쭙게, 여쭈어/여쭤/여쭈워, 여쭈어라/여쭈워라, …' 들도 모두 표준말이니, 유의하여야 할 것입니다. 

 (2). 발음이 비슷하여 같이 쓰이는 말들 

표준어 규정 제19항에서는 "말맛(어감)의 차이를 나타내는 낱말 또는 발음이 비슷한 낱말들이 다 같이 널리 쓰이는 경우에는, 그 모두를 표준어로 삼는다."라고 밝혀 놓고 있습니다. 이처럼 발음이 비슷하여 같이 쓰이게 된 말들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고까/꼬까, 고린내/코린내, 교기(驕氣)/갸기, 구린내/쿠린내, 나부랭이/너부렁이, 거슴츠레하다/게슴츠레하다, 꺼림하다/께름하다 

'고까'의 경우, '가스[까스]', '버스[뻐스]' 들처럼 비록 된소리로 나더라도 '꼬까'로 쓰지는 않는 줄로 알고 있는 이들이 많습니다(*까스. *뻐스는 틀림). 그러나 이 경우 '꼬까'는 표준말로 인정됩니다. '고린내/코린내', '구린내/쿠린내' 들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위의 경우와는 조금 다르지만, '네/예'도 역시 둘 다 널리 쓰여 복수 표준어가 된 것들입니다. 

한편, 겹홀소리를 풀어 써 버릇하다가 둘 다가 표준말이 된 것들도 있습니다(표준어 규정 제18항). '괴다/고이다, 꾀다/꼬이다, 쐬다/쏘이다, 죄다/조이다, 쬐다/쪼이다' 들이 그러한 예들입니다. 

참고로, '우레'를 '우뢰'로 알고 있는 이들이 많아 이에 대한 설명을 덧붙여 보겠습니다. 

본디 '우레'는 순 우리말입니다. 이를 한자말로 잘못 인식하여 예전부터 '우뢰(雨雷)'로 사용하다 보니, 이제는 우리말 '우레'가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우레'는 우리말 '울다'의 어간 '울-'에 뒷가지 '-에'가 붙어서 된, 엄연한 우리 토박이말입니다. 15세기 옛 문헌에 보면, "한 소릿 울에 三千界를 뮈우도다(一聲雷震三千界)."<금강경 삼가해 Ⅱ:2>와 같이 '울에'로 나타납니다. 그 뒤에도 여러 문헌과 작품에서 '울에/우레'가 나타남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뒤늦게나마 이를 바로잡아 '우레'를 표준말로 삼은 것입니다. '우레'와 같은 뜻인 '천둥'도 표준말입니다.  

          

열쇠 13: 닮은꼴 낱말들 

 

바깥나라에 나들이를 다녀온 사람들에게서 종종 언어의 장벽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이는 외국어에 능숙한 이에게도 예외가 아닙니다. 구조적인 발음 차이에도 까닭이 있겠지만, 그 나라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낱말 선택에도 실수가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낱말 선택의 혼동은 비단 다른 문화권을 접할 때만 빚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의 언어 문화로 묶여 있는 한 나라 안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일입니다. 그 이유 가운데, 다른 언어 문화권에서 유입된 들어온 말 곧 외래어의 영향이 가장 큰 몫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특히, 오랜 동안의 한자말(외래어) 유입으로 인하여 이러한 현상들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우리 토박이말의 의미 구별에는―아무리 발음이 닮은 낱말일지라도―그다지 어려움이 없습니다. 가령, 우리는 '밤:'과 '밤'이나 '눈:'과 '눈' 따위를 거의 본능적으로 구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에서 한자와 함께 건너온 한자말에 있어서는 사정이 다릅니다. 같은 한자를 쓰더라도 두 가지의 서로 다른 낱말로 쓰이기도 하고, 비슷한 뜻을 가진 한자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의미를 구별하기 어려운 낱말들도 많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이들 가운데 뜻과 쓰임에 있어 가장 잦은 혼란을 보여 주고 있는 것들을 몇 개 뽑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개발(開發)과 계발(啓發)의 다른 점  

이 두 낱말은 신문지상을 비롯한 각종 공문 등에서 흔히 혼동되어 쓰이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오늘날에는 거의 구분이 없어진 것 또한 사실입니다. 사전에 따라서는 이 둘을 동의어로 처리한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개발'과 '계발'은 본디부터 쓰임이 서로 달랐으며, 아직도 이 둘의 쓰임은 구분될 필요가 있습니다.《우리말 큰사전》(1992, 한글 학회)에는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습니다.  

      개발 (이) 개척하여 발전시킴. (ㅂ) 경제 ~. 새로 ~된 광산.  

      계발 (이) 지능, 정신 따위를 깨우쳐 열어 줌. (ㅂ) 민족 정신 ~.  

위에서 볼 수 있듯이 '개발(開發)'에는 '개척'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광산을 개발하거나 유전을 개발하거나 신도시를 개발하는 것 등은 모두 '개척'입니다. 이를 '계발'과 비교하면 가장 특징적인 변별 자질은 물리적인 이룸, 곧〔이루어 냄〕입니다.  

'계발(啓發)'은, 위의 풀이에 따르면, 인간의 지적?정신적 능력에 관계된 낱말입니다. 들판에 신도시를 열듯(개발), 정신 세계에 깨우침을 여는 것(계발)입니다. "*동해상에 유전을 계발한다."가 비문이듯이, "*각자의 소질을 개발한다."도 비문입니다. 이 경우에는 각각 "동해상에 유전을 개발한다.", "각자의 소질을 계발한다."로 써야 합니다. '계발'의 변별 자질은 깨우쳐 엶 곧〔이끌어 냄〕이라 볼 수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유의할 점은 사람의 내면에 관계되었다고 해서 모두 '계발'인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인위적으로('학습' 등으로) 사람의 능력을 신장시키는 것은〔이끌어 냄〕보다는〔이루어 냄〕에 가까우므로 '능력 개발'이라 합니다.  

   (2) '갱신(更新)'과 '경신(更新)'의 다른 점  

올림픽 경기에 관한 기사를 읽다 보면, 선수들이 새로운 기록을 세울 때 표현하는 낱말인 '更新'을 어떤 신문에서는 '갱신'으로 쓰고, 또 어떤 신문에서는 '경신'으로 쓰고 있음을 봅니다. 이것은 '更'의 한자음이 두 가지로 나기 때문인데, '고친다'는 뜻으로는〔경〕으로 나고 '다시'라는 뜻으로는〔갱〕으로 읽힌다. 다시 말해, '경신'은 '고쳐서 새롭게 함'을 이르는 말이며, '갱신'은 '다시 새롭게 함'을 이르는 말입니다('갱신'은 법률 용어로서도 쓰이는데, 이 때는 '존속 기간이 다 끝난 법률 관계의 기간을 다시 연장함'의 뜻을 갖습니다.).  

가령 주민등록증을 다시 발급 받아야 하는 사정이 생겼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 때는 그 사정에 따라 주민등록증을 '경신'할 수도 있고 '갱신'할 수도 있습니다. 곧, 법률상 개명 허가를 얻어 이름을 바꾸었을 때에는 주민등록증을 '경신' 받아야 합니다. 그것은 주민등록상의 기록이 고쳐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민등록증을 분실하여 새로 발급 받고자 할 때는 기록 변경이 없이 '갱신'한다고 합니다. 또한, 전세 계약서를 다시 작성할 경우, 전세금 인상 등 그 조건을 바꿀 때에는 '경신'이 되지만, 같은 조건으로 계약 기간만을 연장하는 경우에는 '갱신'이 됩니다.  

따라서, 올림픽 대회 같은 운동 경기에서 선수가 신기록을 세웠을 때에는 '경신'이라고 해야 맞습니다. 이미 있던 기록을 새로이 고쳤기 때문입니다.  

   (3) '주관(主管)'과 '주최(主催)'의 다른 점  

한글 학회《우리말 큰사전》에 보면, '주관(主管)'과 '주최(主催)'의 풀이를 다음과 같이 구분하여 적고 있습니다.  

      주관 (이) 주장하여 관리함.  

      주최 (이) 어떤 모임을 주장하여 엶.  

위의 설명만 가지고서는 그 차이를 분명히 밝혀 쓰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이 실제에서는 각기 어떤 경우에 쓰이는가를 살펴보겠습니. 대체로 '주최'는 위의 풀이에서 나타난 '어떤 모임을 주장하여 여는 것' 외에 '어떤 일 또는 행사에 대하여 계획하거나 최종 결정을 하며 이에 따르는 책임을 질 때' 쓰이는 말입니다. 반면 '주관'은 '어떤 일 또는 행사에 대하여 실무를 맡아 처리하고 꾸려 나갈 때' 쓰입니다. '주관'은 '주최'가 마련한 계획대로 집행하여 나갈 뿐이며, 행사 자체에 대한 최종 책임은 '주최'가 지는 것입니다.  

가령 문화체육부와 대한사이클연맹이 함께 사이클 대회를 개최하기로 했다고 합시다. 이 경우, 어느 한 쪽은 이 대회를 계획하고 명분을 제공하여 최종적인 책임을 질 뿐이며, 다른 한 쪽은 대회 홍보 및 참가자 신청?등록, 대회장 준비, 시상식 등 실무적인 일을 맡았다면, 전자는 '주최'이고 후자는 '주관'입니다. 이러한 성격의 대회는 보통 문화체육부가 주최가 되고 대한사이클연맹이 주관이 됩니다.  

   (4) '등(等)'과 '들' 

일반적으로 '등(等)'은 둘 이상의 낱말이나 구를 열거할 때 그 뒷부분에 쓰이는 글자로 알고 있습니다. 한 가지 사실만 들고 그 뒤에 '등'을 다는 것은 어딘지 어색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한 예로, 요즘 시중에 팔리고 있는 담배의 포장지에는 "흡연은 폐암 등을 일으킬 수 있으며 특히 임산부와 청소년의 건강에 해롭습니다."라는 경고문이 씌어 있는데, 이 때의 '폐암 등을'이란 표현이 잘못 되지 않았느냐는 질의를 종종 받습니다. 그러나 위의 문구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등'은 우리말 '들'이나 '따위'에 대응되는 의존 명사입니다. '폐암, 후두암 등을'이라고 하는 것이 보다 자연스럽겠지만, '폐암 등을'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가령 올림픽 경기 개막식 선서를 할 때, '전병관 외 299명은'이라 해도 되지만 '전병관 등 300명은'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등'을 달기 위하여 선수 이름을 꼭 둘 이상 나열할 필요는 없습니다.  

한편, 우리말 '들'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둘 이상'의 복수를 나타내는 뒷가지로만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들'은 뒷가지이면서 동시에, 위의 '등'과 쓰임이 같은 순수 우리말 매인이름씨이기도 합니다. 곧 '폐암, 후두암, 들을' 이라고 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때에는 '들'의 앞을 띄어 써야 하겠지요. 

 

                   

열쇠 14: '다른' 말, '틀린' 말 이야기  

 

그 뜻을 가만히 새겨 보면 금세 올바른 쓰임을 깨닫을 수 있으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나날살이에서 습관적으로 잘못 쓰고 있는 말들이 더러 있습니다. 우리끼리 통하면 그만이라고 치부하기 쉬우나, 말이란 영속적으로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가장 중요한 유산이므로 되도록 빨리 바로잡아야 합니다.  

우리의 산과 강을 오염되지 않게 보존하여 물려주려면, 몇몇 환경 운동가의 힘만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겨레말을 본디 모습대로 물려주려면 '나'부터의 솔선수범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이 곳에서는 습관적으로 그 뜻을 왜곡하여 쓰고 있는 나날말(일상용어)들을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는 당장 바로잡아 쓸 수 있는 것들이니,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올바른 말글살이를 스스로 이끌 수 있을 것입니다.  

  

(1) "다르다"와 "틀리다"  

"다르다"와 "틀리다"는 그 뜻이 서로 매우 다릅니다. <우리말 큰사전>(1992, 한글 학회)에서 각각의 풀이를 살펴보겠습니다.  

   다르다: ① 같지 아니하다. ② 특별한 데가 있다. ③ 변함이 있다.  

   틀리다: ① 셈이나 사실 따위가 그르게 되거나 어긋나다.  

           ② 사이나 감정이 나쁘게 되다. 

           ③ 바라거나 하려는 일이 순조롭지 못하게 되다.  

           ④ 서로 견주는 때 얻는 결과가 다르게 되다.  

위와 같이 분명한 뜻의 차이를 가지고 있음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뜻 구별이 없이 두 낱말 사이를 넘나들며 쓰고 있습니다. 특히, "다르다"를 써야 할 자리에 "틀리다"를 쓰는 잘못이 가장 많이 눈에 띄고 있습니다. 몇 가지 예문들을 들어 보겠습니다.  

   (1) ㄱ. *소문과 다르지 않게 그 여자는 굉장한 미인이었다.  

      ㄴ. *이건 약속이 다릅니다.  

   (2) ㄱ. *지난번에 샀던 옷하고는 색상이 틀리네.  

      ㄴ. *김과장 말과 자네 말이 어째서 서로 틀리는가?  

      ㄷ. *참 밥맛 좋다, 철원 쌀이 틀리긴 틀려!  

      ㄹ. *서울 거리가 몰라보게 틀려 보이네 그려.  

(1)은 "틀리다"를 써야 할 자리에 "다르다"를 잘못 쓴 예입니다. (1)ㄱ에서는 밑줄 친 부분이 '(소문과) 그르게 되거나 어긋나지'(위의 사전 풀이 '틀리다①'을 참조)의 뜻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다르지'가 아니라 '틀리지'로 써야 합니다. 또한, (1)ㄴ에서는 밑줄 친 부분이 '서로 견주는 때 얻는 결과가 다르게 된'(위의 사전 풀이 '틀리다④'를 참조) 때이므로, '다릅니다'가 아니라 '틀립니다'로 써야 합니다.  

(2)는 "다르다"를 써야 할 자리에 "틀리다"를 잘못 쓴 예입니다. (2)ㄱ에서의 밑줄 친 부분은 '지금 보고 있는 옷'과 '지난번에 산 옷'의 색상이 '같지 아니한'(위의 사전 풀이 '다르다①'을 참조) 경우이므로 '다르네'라고 써야 합니다. (2)ㄴ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2)?에서는 '(철원 쌀이) 특별한 데가 있다'(위의 사전 풀이 '다르다②'를 참조)는 뜻이므로 '다르긴 달라'로 고쳐 써야 하고, (2)ㄹ의 밑줄 부분 역시 '변함이 있다'(위의 사전 풀이 '다르다③'을 참조)는 뜻으로 쓰인 예이므로 '달라'로 표현해야 합니다. (1), (2)를 바로잡으면 다음과 같습니다.  

   (1)' ㄱ. 소문과 틀리지 않게 그 여자는 굉장한 미인이었다.  

       ㄴ. 이건 약속이 틀립니다.  

   (2)' ㄱ. 지난번에 샀던 옷하고는 색상이 다르네.  

       ㄴ. 김과장 말과 자네 말이 어째서 서로 다른가?  

       ㄷ. 참 밥맛 좋다, 철원 쌀이 다르긴 달라!  

       ㄹ. 서울 거리가 몰라보게 달라 보이네 그려.  

  

(2) "바꾸다"와 "고치다"  

위의 "다르다/틀리다" 못지 않게 자주 혼동하여 쓰는 말 가운데 "바꾸다"와 "고치다"가 있습니다. <우리말 큰사전>(1992, 한글 학회)에서 두 낱말의 뜻 차이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바꾸다: ① 어떤 물건을 주고 그 대신 딴 물건을 받다. ② 본디의 것이 딴것으로 되게 하다.  

    고치다: ① 낡거나 헐거나 고장이 나거나 한 물건을 손질하여 제대로 되게 하다    

            ② 그릇되거나 틀리거나 한 것을 바로 잡다.  

            ③ 모양이나 태도 따위를 다시 새롭게 가지다.  

            ④ 이름, 명칭, 형식 따위를 다르게 바꾸다.  

특히, "바꾸다②"와 "고치다②,③,④"의 뜻이 서로 넘나들어 잘못 표현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3) ㄱ. *일정을 고쳐 내일 떠나기로 했어요.  

      ㄴ. *방향을 북쪽으로 고쳐 주십시오.  

   (4) ㄱ. *마음을 바꿔 먹었으니 걱정 마세요.  

      ㄴ. *자세를 바꿔 앉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ㄷ. *한자말식 이름을 고운 우리말 이름으로 바꿨다.  

(3) ㄱ,ㄴ의 밑줄 친 '고쳐'는 문맥상 '본디 정해 놓은 시간(ㄱ)/방향(ㄴ)을 달리 정하여'의 뜻이므로 둘 다 '바꿔'로 고쳐야 합니다. '그릇되거나 틀린 것'을 바로잡을 때에 "고치다"를 써야 하는데, 위 (3)의 예문에서는 일정/방향을 바꾸는 행위가 그릇되거나 틀린 것을 바로잡는 것이라고는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4)ㄱ에서의 밑줄 친 부분은 '그릇된 마음을 바로잡는'(위의 사전 풀이 '고치다②'를 참조) 경우이므로 '고쳐'라고 써야 합니다. (4)ㄴ의 밑줄 친 부분은 '태도를 다시 새롭게 가지는'(위의 사전 풀이 '고치다③'을 참조) 행위이므로 '고쳐'로 써야 하고, (4)ㄷ의 밑줄 부분 역시 '이름을 다르게 바꾼'(위의 사전 풀이 '고치다④'를 참조) 경우이므로 '고쳤다'로 표현해야 합니다. (3), (4)를 바로잡으면 다음과 같습니다.  

   (3)' ㄱ. 일정을 바꿔 내일 떠나기로 했어요.  

       ㄴ. 방향을 북쪽으로 바꿔 주십시오.  

   (4)' ㄱ. 마음을 고쳐 먹었으니 걱정 마세요.  

       ㄴ. 자세를 고쳐 앉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ㄷ. 한자말식 이름을 고운 우리말 이름으로 고쳤다.  

  

(3) '너무'와 '매우' 

어찌씨(부사) "너무"가 지나치게 남용되어, "참"이나 "매우"라고 말해야 할 자리에서 "너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는 매우 잘못된 언어 습관으로서 하루빨리 바로잡아야 합니다. "너무"는 '느낌이 강하여 그를 강조하는' 말이 아니라 '한계나 정도에 지나게'의 뜻으로 쓰이는 어찌씨입니다. 가령, "*꽃이 너무 예쁘다.", "*사진이 너무 예쁘게 나왔다." 따위로 말하는 이가 매우 많은데, 이는 "꽃이 참(/매우) 예쁘다.", "사진이 참(/매우) 예쁘게 나왔다."로 고쳐 써야 합니다. 또한, "*오늘은 너무 바빴어요."도 "오늘은 매우(/참) 바빴어요."의 잘못입니다. "너무"는 "비가 너무 내린 것 같아요."라든지, "물을 너무 많이 마시지 말아라."와 같은 경우에서 처럼 '지나치게'의 뜻으로 쓰이는 어찌씨입니다. 이 말을 "참'이나 '매우'를 써야 할 자리에 너무 남용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열쇠 15: 자주 틀리는 낱말 

 

나날살이에서 아무런 의심 없이 쓰고 있는 말 가운데에도 알고 보면 잘못 쓰고 있는 것들이 간혹 있기 마련입니다. 가령, ① "오늘이 몇 월 몇 일이지요?", ② "하늘을 날으는 슈퍼맨!", ③ "그 사장은 참으로 야멸차다." 등의 문장들에는 각기 잘못 쓴 낱말이 한 개씩 들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쓰고 있다가는 어느 기회에 매우 난처한 일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이 곳에서는 는 이들 문장에 포함되어 있는, 자주 틀리는 낱말 몇 개를 살펴보겠습니다.  

  

⑴ '몇일'과 '며칠'  

지난날에는 이 두 경우를 모두 인정하여 왔습니다. '몇일'은 "오늘이 몇 일이냐?"에서와 같이 '몇'이 매김씨(관형사)로 쓰일 적에, 그리고 '며칠'은 "며칠 뒤에 보자."처럼 '며칠'이 이름씨로 쓰일 적으로 각각 구별하여 사용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문교부 고시(1988년) 새〈한글 맞춤법〉에서는 '몇일'과 '며칠'을 모두 '며칠'로 통일하였습니다. 따라서 어떤 경우이든 '몇일'로 적으면 틀리게 되었습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한글 맞춤법〉제27항의 [붙임 2]에서 "어원이 분명하지 않은 것은 원형을 밝히어 적지 아니한다."고 규정하면서 그 용례 가운데 '며칠'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경우는 '몇 개, 몇 사람' 등에서의 '몇'과 '날'을 나타내는 '일'이 결합된 '몇+일'로 분석하여 그 표기가 '몇일'이 되어야 하는 것으로 혼동되기 쉽습니다. 게다가〈한글 맞춤법〉제27항이 "둘 이상의 단어가 어울릴 경우 …… 각각 그 원형을 밝혀 적는다."고 규정하고 있는 만큼 '몇일'로 적어야 하는 것이 옳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럼에도 굳이 '붙임'을 두어서 '며칠'로 적도록 한 데에는 물론 그만한 까닭이 있습니다.  

곧, 우리말의 합성어에서는 뒤에 오는 형태소의 머릿소리가 '이'일 경우 앞에 붙는 말의 받침이 대표음으로 바뀌면서 사이에 'ㄴ'이 덧나는 것이 특징입니다. 다음을 보겠습니다.  

      앞일 : 〔압일〕→〔암닐〕(*[아필]이 아님)  

      잣엿 : 〔잗엿〕→〔잔녀ㅅ〕(*[자셧]이 아님)  

      낮일 : 〔낟일〕→〔난닐〕(*[나질]이 아님)  

'며칠/몇일'의 경우, 이 낱말이 '몇+일'로 분석될 수 있는 합성어라면, 위의 발음 법칙에 의하여 그 발음이〔?일〕→〔면닐〕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면닐〕이 아니라〔며칠〕로 발음되므로 소리대로 적어 불규칙성을 반영하도록 한 것입니다.  

  

⑵ '날으는 슈퍼맨'과 '나는 슈퍼맨'  

제움직씨(자동사) '날다'는〈한글 맞춤법〉제18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벗어난 끝바꿈(불규칙 활용) 풀이씨입니다. 따라서 '날다'는 '나니, 나오, 나는' 들과 같이 끝바꿈하므로 "날으는 슈퍼맨"이 아니라 "나는 슈퍼맨"이 맞습니다.  

간혹 "하늘을 나르는 슈퍼맨"이라고 쓰는 이들도 있는데, 이 역시 "하늘을 나는 슈퍼맨"으로 고쳐 써야 합니다. '나르다'는 '옮기다, 운반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남움직씨(타동사)인데, '하늘을 나르는'이라고 하면 '하늘을 옮긴다'는 뜻이 되니, 제 아무리 슈퍼맨이라도 이는 가능하지도 않은 엉뚱한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곧, "나는 슈퍼맨"이라고 하면 두 가지 뜻을 가지게 됩니다. 하나는 '내가 슈퍼맨'이라는 뜻이요, 또 하나는 '공중을 날아 다니는 슈퍼맨'이라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나는 나는 슈퍼맨"이라고 하면 '나는(I) 날아 다니는(flying) 슈퍼맨'이라는 뜻이 된다. 어쨌든 "날으는 슈퍼맨"이라는 표현은 잘못된 것이니 유의하기 바랍니다.  

  

⑶ '야멸차다'와 '야멸치다'  

우리는 흔히, 남의 사정을 돌보지 않고 제 일만 생각하는 사람을 보고 "저 사람 참 야멸차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표현입니다. 이러한 뜻을 가진 낱말은 '야멸치다'이지 '야멸차다'가 아닙니다. 따라서 이 문장은 "저 사람 참 야멸치다."로 해야 합니다.  

비슷한 뜻을 가진 낱말로 '매몰차다'는 말은 있으되 '야멸차다'라는 말은 우리 국어 사전 어디에도 없습니다. 글쓴이가 짐작하기로는 '야멸치다'를 '매몰차다'와 연관지어서 생각하다 보니 이러한 혼동이 온 것 같습니다. 사람의 성격이나 태도를 묘사하는 말 가운데에는 이 밖에도 여럿 있습니다.  

      기운차다: 힘차다.  

      대차다: 성미가 굳고 꿋꿋하다.  

      세차다: 힘있고 억세다.  

      옹골차다: 옹골지고 기운차다.  

위에서 볼 수 있듯이 이러한 유의 낱말에는 한결같이 '-차다'가 붙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태도가 차고 매섭다'는 뜻을 가진 '야멸치다'를 '야멸차다'로 혼동하여 잘못 쓰고 있는 현상에는 아마도 위와 같은 낱말들과의 연상 작용도 한 몫을 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이상에서 설명한 것을 염두에 두고 이 글의 머리에 제시해 놓은 문장들을 바로잡아 보면 다음과 같이 될 것입니다.  

      ①' "오늘이 몇 월 며칠이지요?"  

      ②' "하늘을 나는 슈퍼맨!"  

      ③' "그 사장은 참으로 야멸치다."  

 

             

열쇠 16: 우리말 셈씨 이야기

  

얼마 전 대방동의 어느 뷔페에 마련한, 하나뿐인 조카의 돌 잔치에 참석한 일이 있습니다. 좀 늦게 간 탓인지,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제수는 조카를 안고 손님을 맞이하느라 매우 바쁜 것 같았습니다. 아우의 회사 동료들이 온 모양이었는데, 문득 귀에 거슬리는 말 한 마디가 들렸습니다.  

      "세 돈짜립니다. 아무래도 너무 작지요?"  

돌아보니, 제수가 금으로 만든 아기용 팔찌를 받아들고 있었습니다. 그 앞에서 멋적어하고 있는 청년―아우의 회사 동료인 듯한―이 '세 돈짜리' 반지를 선물한 모양이었습니다. 그냥 지나쳐도 되련만, 글쓴이는 습관처럼 관여하였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이 애 큰아버지 됩니다."  

 "아, 녜. 처음 뵙겠습니다."  

 "뭘 그리 비싼 걸 선물하십니까? 그런데… 세 돈이라고 하면 잘못된 말입니다."  

 청년은 아, 하더니 금방 틀렸다는 걸 깨달은 듯 정정하였다.  

 "그렇습니다. 세 돈이 아니라 석 돈이지요."  

금팔찌는 세 돈짜리가 되었다가, 다시 석 돈짜리가 된 셈입니다. 그러나, 실은 세 돈도 석 돈도 아닌, '서 돈'이 맞는 말입니다. 글쓴이의 이 같은 설명에 청년은 '서 돈은 옛날 말인 줄 알았는데…' 하며 머리를 긁적였습니다.  

우리말에서 단위를 나타내는 일부 의존 명사, 곧 '돈', '말', '발', '푼' 등의 앞에서 수를 나타내는 말이 쓰일 때 여러 형태가 나타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위의 실례도 그러한 보기의 하나입니다. 실제로 우리의 언어 현실에서는 '서 돈'과 함께 '세 돈, 석 돈' 들이 혼용되어 쓰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너 돈' 대신 '네 돈, 넉 돈'과 같이 말하는 사람들―특히 젊은 계층에서―이 많이 있습니다. 또한, 그들 가운데에는 '서 돈', '너 돈'과 같은 말법이 옛날에나 쓰이던 말일 뿐, 요즘에는 사라진 말인 줄로 알고 있는 이들이 간혹 있습니다. '서/너'는 예부터 전통적으로 써 오던 셈씨인 것은 분명하지만, 현재에도 엄연하게 (특정 수량 단위 앞에서) 표준어로 규정되어 있는 것들입니다.  

이 '세/네, 서/너, 석/넉' 계열의 어휘는 주로 전통적인 수량 단위(돈, 말, 발, 푼, 냥, 되, 섬, 자 따위)와 결합할 때는 배타성을 띄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배타성이 현대로 오면서 조금씩 무너져 혼동되어 쓰인 까닭에 위와 같은 잘못이 빚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혼동을 막기 위해〈표준어 규정〉제17항에서 아래와 같이 규정하였습니다.  

제17항 비슷한 발음의 몇 형태가 쓰일 경우, 그 의미에 아무런 차이가 없고, 그 중 하나가 더 널리 쓰이면, 그 한 형태만을 표준어로 삼는다. (ㄱ을 표준어로 삼고, ㄴ을 버림.)  

           ㄱ           ㄴ  

      서〔三〕 | 세/석 | ~돈, ~말, ~발, ~푼  

      석〔三〕 |  세   | ~냥, ~되, ~섬, ~자  

      너〔四〕 |  네   | ~돈, ~말, ~발, ~푼  

      넉〔四〕 | 너/네 | ~냥, ~되, ~섬, ~자  

그러므로 위 규정에 따르면, '세 돈, 석 돈, 세 말, 세 발, 세 푼'이라든지 '세 냥, 세 되, 세 섬, 세 자' 들은 모두 잘못된 표현이 됩니다. 또한, '네 돈, 네 말, 네 발, 네 푼, 너 냥, 네 냥, 너 되, 네 되, 네 섬, 네 자' 들도 써서는 안됩니다. 특히, 이 가운데 '세 자'와 '네 자'는 치수를 잴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못 말하는 경우입니다. 이는 모두 '석 자, 넉 자'가 바른 말임을 잘 기억해 두어야 할 것입니다.  

위와 같은 특정 수량 단위를 제외하면 '서/너, 석/넉'은 거의 쓰이지 않고 주로 '세'가 많이 쓰입니다. 따라서 현대로 오면서 많이 쓰이게 된 수량 단위는 주로 '세/네'와 결합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래 보기와 같이 문제가 되는 것이 있습니다.  

      ⑴ 서 겹(?) 석 겹(?) 세 겹 삼 겹(?)  

      ⑵ 서 달(?) 석 달 세 달 삼 달(×)  

      ⑶ 서 대 석 대 세 대 삼 대(×)  

⑴의 경우는 '세 겹'이 옳습니다. 전통적인 여러 문헌에서 그 용례가 발견될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가장 자연스럽기 때문입니다. '삼 겹'은 '삼겹살'과 같은 특정한 복합어에서 쓰이고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어색하기 짝이 없는 표현입니다. '삼겹살'은 맞는 표현이지만 그 외의 '삼 겹'은 잘못된 말입니다.  

⑵의 경우는 '석 달'과 '세 달'이 함께 쓰이고 있으나, 전통적으로는 '석 달'로 쓰였음을 참고로 알아두어야 하겠습니다. 물론 현대에 와서는 '석 달'과 '세 달'이 모두 맞습니다. 이런 경우는 어문 정책 당국에서 복수 표준어로 명시하거나 표준어 사정으로 어느 하나를 선택하여야 할 것입니다.  

⑶의 경우는 이보다 더욱 복잡한 예입니다. 현실적으로 '서 대, 석 대, 세 대'가 모두 쓰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가 현대에 와서 자동차나 비행기 등에 많이 쓰이는 것이고, '되, 돈' 따위의 전통적인 특정 수량 단위가 아니므로 '세'로 세는 것이 합리적이라 생각됩니다.  

 

           

열쇠 17: 수와 길이에 관한 이야기

  

쉬운 듯하면서도 실제 당하면 매우 헷갈리는 것이 바로 수를 세는 말과 길이를 재는 말입니다. 수와 길이를 나타내는 단위 이름씨는 우리말에 풍부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쓰임새가 나날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수를 세는 단위는 몇몇 낱말로 한정?통합되어 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길이를 재는 단위는 이미 서양에서 들어온 낱말로 대체되고 있는 느낌입니다.  

 그러나 우리 한아비(선조)의 지혜가 깃들어 있는 우리말 단위 이름씨들을 그리 손쉽게 포기해 버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 자리에서는 수와 길이를 나타내는 우리말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수를 나타내는 말  

      △ 낱  

 낱개의 사물을 하나씩 셀 경우에 쓰는 말입니다. '그릇 세 낱', '빗자루 두 낱' 따위로 써 왔는데, 요즈음은 이 말 대신에 한자말 '개'(個)를 많이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노인들은 이 '낱'이란 말을 흔히 쓰고 있으므로 얼마든지 되살려 낼 수 있는 순우리말 단위 이름씨입니다.  

      △ 대, 자루  

 길고 곧은 물건을 셀 때에 쓰는 단위 이름씨입니다. 길고 곧은 물건 가운데서도 사람이 쥐거나 잡을 수 있는 손잡이로 된 것일 때에는 '자루'를 더 많이 씁니다. 가령, 기둥이나 전봇대를 세는 단위는 '대'이지만, 연필, 붓, 지팡이 들은 '한 자루, 두 자루, …'와 같이 셉니다.  

      △ 사리  

 국수나 새끼처럼 가늘고 긴 물건을 둥글게 사리어(헝클어지지 않게 빙빙 둘러 감아) 놓은 것일 때는 '사리'라는 말로 셉니다. 칼국수집에서 국수를 추가로 시킬 때에 흔히 "여기 사리 주세요."하는데, 이는 "국수 한 사리 주세요." 또는 "국수 두 사리 주세요."로 써야 합니다. '사리'는 위의 '자루'와 같은 단위 이름씨입니다. 연필만 파는 가게에 갔다고 해서 그냥 "자루 주세요." 하지는 않을 터이니까요.  

      △ 타래  

 실 따위를 사려서 틀어놓은 묶음의 경우에는 '타래'라는 단위로 셉니다. 예: 뜨개실 두 타래, 철사 세 타래.  

      △ 알, 톨  

 작고 둥글둥글하게 생긴 것을 셀 경우에는 '알'을 씁니다. 특히, 밤이나 도토리 따위를 셀 때에는 '알'이라고도 하지만 '톨'이라는 단위 이름씨를 더 많이 씁니다. 예: 사과 한 알, 달걀 두 알, 밤 세 톨, 도토리 네 톨.  

      △ 모  

두부나 묵 따위와 같이 모난 물건일 때에는 '모'라는 단위 이름씨를 씁니다. 예: 두부 한 모, 묵 세 모.  

      △ 켤레, 매, 벌  

 서로 짝을 이루는 대상이나 짝이 갖추어진 물건일 경우에는 '켤레, 매, 벌' 들을 씁니다. 그 각각의 쓰임새는 '구두 두 켤레, 수저 한 매(숟가락과 젓가락), 치마저고리 한 벌' 따위입니다.  

      △ 손, 뭇, 두름, 코, 쾌  

 '손', '뭇', '두름', '코', '쾌' 들은 모두 여러 개를 한 단위로 삼는 것일 때에 쓰는 명수사입니다. 주로 수산물을 세는 단위로 널리 쓰이는데 각각의 쓰임새와 단위별로 묶이는 개수는 아래와 같습니다.  

      손: 고등어 한 손→ 두 마리  

      뭇: 조기 한 뭇→ 열 마리  

      두름: 청어 한 두름→ 열 마리씩 두 줄로 묶은 스무 마리  

      코: 낙지 한 코→ 스무 마리  

      쾌: 북어 한 쾌→ 스무 마리  

      △ 동  

 굵게 묶어서 한 덩이를 만든 묶음을 셀 때에 쓰는 낱말입니다. 묶은 데 따라 볏짚은 100단, 먹은 10장, 붓은 10자루, 베나 무명은 50필, 곶감은 100접, 한지는 10권(2,000장), 청어는 2,000마리 들이 한 동을 이룹니다.  

   (2) 길이를 나타내는 말  

      〈개략적인 길이를 나타내는 말〉  

      △ 뼘  

 엄지손가락과 다른 손가락과의 사이를 한껏 벌린 거리를 나타내는 단위 이름씨입니다. (=손뼘) 예: 한 뼘 길이.  

      △ 가웃  

 말, 되, 자, 뼘 등으로 수량이나 길이를 헤아릴 때 그 단위의 약 절반의 양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한 자 가웃'이라 하면 약 반 자의 길이를 말합니다.  

      △ 발  

 두 팔을 펴서 벌린 길이를 말하며, 새끼나 옷감을 재는 단위로 예부터 많이 쓰였습니다.  

      △ 바람  

 실이나 새끼, 철사 같은 것의 한 발쯤 되는 길이를 말합니다. 철사 세 바람은 세 발 정도의 길이입니다.  

      △ 길, 걸음  

 '길'은 사람의 키의 한 길이를 말하며, '걸음'은 다리를 한 번 들어 옮겨 놓을 때의 거리를 재는 단위입니다. 이 가운데 '길'은 수직상의 거리 곧 높이나 깊이를 재는 단위 이름씨입니다.  

     〈정확한 길이를 나타내는 말〉  

      △ 자  

 열 치를 나타내는데 서양식 척도로 0.303미터입니다. 보통 한 자는 1미터의 3.3분의 1에 해당합니다.  

      △ 치  

 한 자의 10분의 1을 한 치라 합니다. 한자말 단위 이름씨 '촌'(寸)과 같은 길이입니다.  

      △ 푼  

 한 치의 10분의 1을 한 푼이라 합니다. '푼'은 무게 단위로서는 한 돈의 10분의 1, 비율의 단위로서는 1할의 10분의 1을 말하기도 합니다.  

 


출처 : 한국영상문학협회
글쓴이 : 이옥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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