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불현듯
물 묻은 저녁 세상에 낮게 엎드려
물끄러미 팔을 뻗어 너를 가늠할 때
너는 어느 시간의 흙속에
아득히 묻혀 있느냐
축축한 안개 속에서 어둠은
망가진 소리 하나하나 다듬으며
이 땅 위로 무수한 이파리를 길어 올린다
낯선 사람들, 괭이 소리 삽소리
단단히 묻어 두고 떠난 벌판
어디쯤일까 내가 연기처럼 더듬더듬 피어 올랐던
이제는 침묵의 목책 속에 갇힌 먼 땅
다시 돌아갈 수 없으니, 흘러간다
어디로 흘러가느냐, 마음 한 자락 어느 곳 걸어 두는 법 없이
희망을 포기하려면 죽음을 각오해야 하리, 흘러간다 어느 곳이든 기척 없이
자리를 바꾸던 늙은 구름의 말을 배우며
나는 없어질 듯 없어질 듯 생(生) 속에 섞여 들었네
이따금 나만을 향해 다가오는 고통이 즐거웠지만
슬픔 또한 정말 경미한 것이었다
한때의 헛된 집착으로도 솟는 맑은 눈물을 다스리며
아, 어느 개인 날 낯선 동네에 작은 꽃들이 피면 축복하며 지나가고
어느 궂은 날은 죽은 꽃 위에 잠시 머물다 흘러갔으므로
나는 일찍이 어느 곳에 나를 묻어 두고
이다지 어지러운 이파리로만 날고 있는가
돌아보면 힘없는 추억들만을
이곳저곳 숨죽여 세워 두었네
흘러간다, 모든 마지막 문들은 벌판을 향해 열리는데
아, 가랑잎 한 장 뒤집히는 소리에도
세상은 저리 쉽게 떠내려간다
보느냐, 마주보이는 시간은 미루나무 무수히 곧게 서 있듯
멀수록 무서운 얼굴들이다, 그러나
희망도 절망도 같은 줄기가 틔우는 작은 이파리일 뿐, 그리하여 나는
살아가리라 어디 있느냐
식목제(植木祭)의 캄캄한 밤이여, 바람 속에 견고한 불의 입상(立像)이 되어
싱싱한 줄기로 솟아오를 거냐, 어느 날이냐 곧 이어 소스라치며
내 유년의 떨리던, 짧은 넋이여
요점 정리
지은이 : 기형도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성격 : 감상적, 독백적, 회고적, 주관적, 애상적
심상 : 시각적, 상징적,
어조 : 우울하고 비판적인 어조, 자기 고백적인 어조, 연민과 회상의 어조
구조 : 과거(뿌리)-현재(이파리)-미래(줄기)로 시상이 전개된다.
1연 : 1-13행 : 이 시에서 시적 화자는 과거와 현재, 미래의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1-13행까지에서 화자는 ‘과거에 대해 회상’하고 있다. 어느 날 문득 시적 화자는 자신의 과거의 삶을 뒤돌아보니 그것은 땅속에서 묻힌 나무의 뿌리처럼 아득하기만 하고 손에 쉽사리 잡히지 않는다고 한다. 이처럼 과거로 돌아가기는 어렵기에 화자는 현재의 삶을 살아갈 뿐이라고 한다.
2연 : 14-26행 : 화자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특정한 목표나 희망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무상함을 느끼며 주어진 삶을 살아갈 뿐이다. 그 삶에는 고통도 있고, 슬픔도 있으며 때로는 삶의 결실도 있으나 화자의 삶은 ‘어지러운 이파리’로만 힘없이 진행되고 있다.
3연 : 27-36행 : 과거에 대한 회상을 기반으로 한 ‘앞으로의 삶’이다. 화자는 살아가면서 늘 과거와 마주하게 된다. 그 과거는 쉽게 포착되지 않으며, 먼 과거일수록 유쾌하지 않았던 기억과 마주치게 된다. 나뭇가지가 모두 한 뿌리에서 뻗어나가듯 희망과 절망도 모두 같은 곳에서 연원함으로 아직은 ‘짧은 넋’이지만 과거를 반추하여 앞으로의 삶의 길을 '흘러간다.‘
제재 : 식목제, 나무 심기
주제 : 식목제에서 느끼는 비관적인 삶, 유년의 아픔에 대한 회상(回想), 전망이 부재하는 삶에 대한 인식과 성찰
표현 : 지은이의 경험과 의식을 개인적 상징을 통해 독창적이면서도 우울하게 표현
내용 연구
식목제(植木祭) : 나무를 심은 후에 지내는 제사로 한 그루의 나무에서 과거, 현재, 미래를보며, 나무를 수직적 공간으로 그려내고 여기에 지은이의 삶을 대응시키고 있다.
어느 날 불현듯
물 묻은(눅눅하고 끈적거리는 불쾌한 이미지) 저녁 세상(시간적 배경, 우울한 분위기 환기)에 낮게 엎드려(‘식목제’에서 절하는 장면임과 동시에 절망적인 화자의 삶 암시)
물끄러미 팔을 뻗어 너(대상인 나무의 의인화, 뒤에 시적 화자 자신의 삶과 동일시하는 효과가 있음)를 가늠(①목표나 기준에 맞고 안 맞음을 헤아려 봄. 또는 헤아려 보는 목표나 기준. ②일이 되어 가는 모양이나 형편을 살펴서 얻은 짐작으로 여기서는 ②의 뜻임)할 때
너는 어느 시간의 흙속에(흙 속이라는 공간을 과거라는 시간으로 치환)
아득히 묻혀 있느냐(너의 어느 시간 - 아득히 묻혀 있느냐 : 과거에 대한 기억으로 자신의 삶에 깊이 뿌리를 형성하공 있으나 쉽게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을 상징한다.)
축축한 안개(촉각과 시각의 어울림으로 삶의 오리무중을 의미) 속에서 어둠(시각적 표현으로 과거나 망각을 뜻함)은
망가진 소리(청각) 하나하나 다듬으며[축축한 - 다듬으며 : 우울한 분위기와 전망 부재의 현실을 감각적으로 전달]
이 땅 위(나무가 심겨진 땅 위로 화자의 삶의 터전을 상징)로 무수한 이파리(화자의 하루하루의 삶)를 길어 올린다
낯선 사람들(시적 화자의 상대적 고독감과 소외 의식, 세상에 대한 거리감), 괭이 소리 삽소리
단단히 묻어 두고(희망으로의 전환이 쉽지 않음을 암시) 떠난 벌판(‘벌판’은 ‘삶의 터전’, ‘과거 나의 삶의 공간’, ‘나만의 과거 기억이 담긴 곳’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역시 개인적 상징을 지닌 어휘로 볼 수 있다)[낯선 사람들 - 묻어 두고 떠난 벌판 :‘벌판’은 앞의 ‘이 땅 위’와 마찬가지로 나무가 있는 공간이자 시적 화자가 사는 삶의 터전이다. 그런데 그 ‘벌판’은 나무를 심던 ‘괭이 소리 삽 소리’가 묻히고, ‘낯선 사람’마저 ‘떠난’ 소외되고 외로운 공간이다.]
어디쯤일까 내가 연기처럼 더듬더듬 피어 올랐던(소극적, 수동적 삶의 자세)
이제는 침묵의 목책 속에 갇힌 먼 땅(불우했던 과거, 돌아가기 어려운 과거를 공간적으로 형상화)
다시 돌아갈 수 없으니, 흘러간다(과거로 다시 돌아가기는 어려우니 현재의 삶을 살아갈 뿐이라는 의미로 체념적인 태도, 허무 의식을 나타내고, ‘흘러간다’라는 말 앞에 시어를 삽입한다면 ‘떠밀려’라는 단어가 적절할 것 같다)[어디쯤일까 내가 - 돌아갈 수 없으니, 흘러간다 : 대상이 나무에서 시적 화자 자신에게로 전환되는 장면이다. 결국 나무의 삶과 시적 화자가 동일시되고 있다] - 아득한 과거의 삶에 대한 회상
어디로 흘러가느냐, 마음 한 자락 어느 곳 걸어 두는 법 없이(정처 없는, 뚜렷한 목표 의식 없는 삶의 모습)
희망을 포기하려면 죽음을 각오해야 하리, 흘러간다 어느 곳이든 기척 없이(앞의 ‘희망’에 대한 포기)
자리를 바꾸던 늙은 구름[전망의 부재, 희망 상실의 상황으로 구름이라는 것은 머무르지 않음과 뜬구름이 가지고 있는 의미 없음의 속성을 강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물에 집착하지 아니하는 무의(無依)의 도가 담겨 있다] 의 말을 배우며
나는 없어질 듯 없어질 듯 생(生) 속에 섞여 들었네[구름의 속성과 상통하는 것으로 부운조로(浮雲朝露 : 뜬구름과 아침 이슬이라는 뜻으로, 인생의 덧없음을 이르는 말.]
이따금 나만을 향해 다가오는 고통이 즐거웠지만
슬픔 또한 정말 경미한 것이었다(반어적 표현으로 ‘고통’과 ‘슬픔’에 대한 수용의 태도와 비관적인 삶의 인식과 극복의 태도)
한때의 헛된 집착으로도 솟는 맑은 눈물을 다스리며
아(감탄사의 잦은 사용이 기형도 시의 특징이지만 잦은 감탄이 시의 논리성을 깨뜨리기도 하지만 그 감탄사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표현하는 동양적인 특징의 선문답적인 의미가 담긴 논리적 시어이기도 하다), 어느 개인 날(헛된 삶의 나날에서 보람과 의미가 있는 짧은 날) 낯선 동네에 작은 꽃들이 피면 축복하며 지나가고(개인 날의 작은 꽃은 살아가면서 느꼈던 삶의 조그만 결실이나 보람으로 볼 수 있다.)
어느 궂은 날은 죽은 꽃 위에 잠시 머물다 흘러갔으므로[어느 개인 날 - 잠시 머물다 흘러갔으므로 : 이어지는 두 행의 원인에 해당한다. 희망의 대상이든 절망의 대상이든 그 속에서 정착하며 치열하게 살지 못하고 겉돌며 살아온 삶의 자세를 엿볼 수 있다]
나는 일찍이 어느 곳에 나를 묻어 두고
이다지 어지러운 이파리로만 날고 있는가(하루하루의 삶을 ‘어지러운’ 것으로 인식함, 현재는 힘들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음을 표현한 구절이다.)
돌아보면 힘없는 추억들만을
이곳저곳 숨죽여 세워 두었네(‘흙 속’이라는 과거의 시간이 현재에 능동적으로 기능하지 못하는 상황) - 무상하고 절망적인 현재의 삶
흘러간다, 모든 마지막 문들은 벌판을 향해 열리는데
아, 가랑잎 한 장 뒤집히는 소리에도(적고 하찮은 상황, 이에 대한 반응에 해당하는 ‘쉽게 떠내려’가는 세상과 대조됨)
세상은 저리 쉽게 떠내려간다
보느냐, 마주보이는 시간(‘마주보는’에 비해 수동적인 표현)은 미루나무 무수히 곧게 서 있듯
멀수록 무서운 얼굴(불우하고 공포스러운 유년의 기억)들이다, 그러나(삶에 대한 인식 전환의 가능성을 암시하는 접속어)
희망도 절망도 같은 줄기가 틔우는 작은 이파리일 뿐(삶의 본질에 대한 깨달음), 그리하여 나는
살아가리라 어디 있느냐(미래의 삶에 대한 적극적인 어조)[희망도 절망도 - 살아가리라 어디 있느냐 : 희망과 절망을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으로 인식하고 수용하는 태도를 다른 어조로 말하고 있다. 그러나 뒤이어 시적 화자가 위치한 시간이 ‘캄캄한 밤’이고 유년의 기억 때문에 ‘소스라치’면서 그것마저 다시 좌절하고 만다.]
식목제(植木祭)의 캄캄한(앞의 적극성이 좌절될 수 있음을 암시) 밤이여, 바람 속에 견고한 불의 입상(立像)이 되어
싱싱한 줄기로 솟아오를 거냐(그러나 미래의 삶이 ‘싱싱한 줄기’가 될지는 화자 자신도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화자는 다양한 삶의 국면들에 대응하며 능동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반추하면서 앞으로의 삶의 길을 그저 주어진 대로 살아갈 따름이다.), 어느 날이냐(희망적인 미래의 삶에 대한 자문) 곧 이어 소스라치며
내 유년의 떨리던, 짧은 넋이여(유년 시절의 추억으로 인해 다시 좌절되는 삶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와 같은 심정의 근거가 되는 이유는 침묵의 목책 속에 갇힌 먼 땅. 힘없는 추억들, 멀수록 무서운 얼굴들을 통해서 알 수 있다.) : - 과거 회상을 기반으로 한 앞으로의 삶
1. 이 시에서는 지나간 시간에 대한 기억과 다가올 시간에 대한 예견이 교차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아래 활동을 해 보자.
⑴ 과거의 시간에 해당하는 시구와 미래에 해당하는 시구를 찾아 그 의미를 알아보자.
과거 : '너는 어느 시간의 흙 속에 / 아득히 묻혀 있느냐., 단단히 묻어 두고 떠난 벌판 / 어디쯤일까 내가 연기처럼 더듬더듬 피어올랐던'
미래 : '흘러간다', '싱싱한 줄기로 솟아오를 거냐. 어느 날이냐 곧 이어 소스라치며' - 과거에 대한 시구는 화자의 과거의 삶에 대한 기억으로 자신의 삶의 깊은 뿌리를 형성하고 있으나, 쉽게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미래에 대한 시구'는 희망이나 절망도 곧 한 뿌리에 있으며, 다양한 삶의 국면들에서 화자는 능동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주어진 대로 흘러가는 허허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⑵ 위의 활동을 바탕으로 시인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어떠한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자.
이 시에서 시적 화자의 과거, 현재, 미래의 삶은 식목제 때 심어진 나무 한 그루와 같이 이해될 수 있다. 흙 속의 뿌리는 현재와 미래의 삶의 기반이 되고 바탕이 되는 '과거의 삶, 경험, 기억'을 의미한다. 따라서 현재의 삶의 공간은 이파리로 자라나고 있는 모습이며, 미래는 뻗어나가는 줄기로 형상화되고 있다. 이 시에서는 과거와 현재, 미래의 공간이 나무의 상징이라는 수직적인 공간으로 그려지고 있다.
2. 이 시에서 중요한 이미지로 사용되고 있는 다음 시어들이 어떠한 의미로 이해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자.
⑴ 벌판 : 삶의 터전, 과거 나의 삶의 공간, 나의 과거의 기억이 담긴 곳
⑵ 어둠 : 과거, 망각
⑶ 이파리 : 화자가 이루어내는 하루하루의 삶
⑷ 꽃 : 삶의 결실, 목적
⑸ 무서운 얼굴 : 유년의 공포의 기억, 아주 먼 과거의 불우했던 기억
3. 이 시를 의미의 연관에 따라 몇 개의 연으로 나누어 보고 그와 같이 나눈 이유를 말해 보자.
연 |
이유 |
1-13행 |
이 시에서 시적 화자는 과거와 현재, 미래의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1-13행까지에서 화자는 '과거에 대해 회상'하고 있다. 어느 날 문득 시적 화자는 자신의 과거의 삶을 뒤돌아보니 그것은 땅 속에 묻힌 나무의 뿌리처럼 아득하기만 하고 손에 쉽사리 잡히지 않는다고 한다. 이처럼 과거로 돌아가기는 어렵기에 화자는 현재의 삶을 살아갈 뿐이라고 한다. |
14-26행 |
14-26행까지에서는 화자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특정한 목표나 희망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무상함을 느끼며 주어진 삶을 살아갈 뿐이다. 그 삶에는 고통도 있고, 슬픔도 있으며 때로는 삶의 결실도 있으나 화자의 삶은 '어지러운 이파리'로만 힘 없이 진행되고 있다. |
27-36행 |
27-36행은 과거에 대한 회상을 기반으로 한 '앞으로의 삶'이다. 화자는 살아가면서 늘 과거와 늘 과거와 마주하게 된다. 그 과거는 쉽게 포착되지 않으며, 먼 과거일수록 유쾌하지 않았던 기억과 마주치게 된다. 나뭇가지가 모두 한 뿌리에서 뻗어나가듯 희망과 절망도 모두 같은 곳에서 연원함으로 아직은 '짧은 넋'이지만 과거를 반추하여 앞으로의 삶의 길을 '흘러간다.' |
(출처 : 두산 문학교과서)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어린 시절의 삶의 흔적과 시대적인 아픔들, 그리고 젊은 날의 고뇌들이 뭉뚱그려진 복잡한 한 지식인의 내면 세계를 잘 보여 주고 있는 작품으로 이 시는 나무를 심은 이후에 시인의 머릿속을 지나간 많은 상념들이 핵심을 이루고 있다. 이 시에서 말하는 것은 나무를 심은 후에 느끼는 뿌듯함이나 나무가 잘 자라기를 기원하는 그러한 일반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자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허허로운 느낌이며, 흘러가야 한다는 것을 인식한 자의 슬픔이며, 희망도 절망도 한 뿌리라는 것에 대한 자각이며, 인생 전체에 대한 자기 나름의 인식이며, 자신의 유년의 공포에 대한 새로운 확인이기도 한 그런 것이다. 시인이 그리고 있는 이러한 복합적인 심경은 시적 감수성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다시 말해서 나무를 심고 나서 지내는 제사 과정에서 머릿속을 지나가는 상념들을 핵심으로 하여 전개되고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그것은 ‘植木’에 대한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것이 아닌 전망이 부재하는 삶에서 느끼는 것에 대한 고백이다. 시적 화자는 나무를 통해 자신의 삶을 반추하면서 자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무상감, 삶을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살지 못한 채 ‘흘러가는’ 자기 자신에 대한 연민과 슬픔, 희망도 절망도 같은 뿌리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자각, 자신의 유념 시절의 공포를 새롭게 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시적 화자는 희망도 절망도 같은 줄기에서 나왔음을 인식하고, 삶의 길을 계속 흘러가리라 다짐한다. 이처럼 이 시는 우울하고 절망적인 세계 속에서 방황하고 고뇌하는 시적 화자의 모습을 감수성이 강한 문체와 시어로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은 1983년 대학 문학상인 ‘윤동주 문학상’ 수상작으로, 식목제(植木祭)는 나무를 심은 후에 지내는 제사를 의미하는 말로 이 시의 시적 화자는 제목 그대로 나무를 심은 후에 나무를 바라보며 나무와 자신의 삶을 연관시켜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있다.
심화 자료
기형도 시인
http://baudelaire.hihome.com/poem/gi/gi.html
‘식목제’에 나타난 과거, 현재, 미래의 공간
이 시의 화자는 나무의 과거, 현재, 미래 속에서 자신의 삶을 떠올리고 있다. ‘흙 속’의 뿌리는 현재와 미래의 삶의 기반이 되고 바탕이 되는 과거의 삶, 경험, 기억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 과거는 자신의 삶의 뿌리이지만 쉽게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며 ‘숨죽여 세워’ 둔 우울한 것들이다. 그리고 현재의 삶의 공간은 ‘이파리’로 자라고 있는 모습인데, 이 역시 ‘어지러운 이파로만 날고 있는’ 절망적인 것이다. 미래 또한 뻗어 나가는 ‘줄기’로 형상화되고 있으나 유년의 기억 때문에 ‘소스라치’면서 좌절되고 만다. 이와 같이 시적 화자는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의 공간으로 그리면서 우울하고 절망적인 삶을 노래하고 있다.
‘흘러간다’ 에 담긴 시적 화자의 삶에 대한 태도
시적 화자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그저 ‘흘러간다’는 표현으로 드러내고 있다. 과거는 다가설 수 없는 시간이고, 현재는 절망과 희망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여기서 시적 화자는 어떤 적극적인 태도 보이지 않은 채 그저 그 삶을 흘려보내고 있다. 이는 결국 자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허허한 느낌의 표현이며, 삶이란 그저 흘려보낼 수 밖에 없음을 인식한 절망적인 시적 화자의 태도의 반영이다.
기형도의 시 세계
기형도의 시는 죽음과 절망, 불안과 허무 등의 이미지가 환상적이면서도 초현실적이며 공격적인 시인 특유의 문체와 결합되어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동일한 이미지의 반복이 중첩에 의해 더욱 강화된다든지 돌연한 이미지와 갑작스런 이질적인 문장의 삽입, 도치나 반점에 의한 시행의 분리, 감탄사를 연발하는 감정의 고조 등이 기형도 시의 내용상의 특징인 비관적인 세계관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적 경향은 기형도의 우울한 유년 시절, 누이의 죽음에 대한 체험, 경제적 궁핍 등과 관련된 것으로 이해된다. 그의 시에는 현실에 대한 전망이 부재한다. 즉 삶에서의 유토피아를 거부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ㄱ의 시가 퇴폐적이라는 비판도 받고 있으나, 초현실적 이미지를 구축하면서도 삶과 현실에 대한 부정, 일상의 현실을 비판한 독특한 시세계는 주목할 만하다 하겠다.
기형도의 리얼리즘
우리 사회가 산업 사회로 들어선 이후 사회의 다양한 요구를 시에서도 받아들여 ‘무엇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와 함께 ‘주제’와 ‘기법’에 대한 새로운 시도가 시에서도 나타났다. 기형도는 다양한 시적 장치 속에 개인사적 체험과 시대적인 상황을 긴밀하게 연결시켜 시를 썼는데, ‘그로테스크한 리얼리즘’의 시인이란 평을 듣는다. 그의 리얼리즘의 요체는 현실적인 것에서 시적인 것을 끌어내어, 추함으로 아름다움을 만드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시적인 것이 현실적인 것이며, 현실적인 것이 시적이라는 것을, 아니 차라리 시적인 것이란 없고, 있는 것은 현실적인 것뿐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 준 데 있다. (출처 : 김현, ‘영원히 닫힌 빈 방의 체험’에서)
기형도의 상처의 뿌리
좋은 시인은 그의 개인적, 내적 상처를 반성, 분석하여 그것에 보편적 의미를 부여할 줄 아는 사람이다. 대부분의 시인들은, 그러나, 자기의 감정적 상처를 지나치게 과장하거나, 그것을 억지로 감춤으로써, ‘상이나 힘겨운 감상의 망토’를 벗지 못한다. 그것은 보기에 흉하다. 그것은 성숙하지 못한 짓이기 때문이다. 기형도의 상처는 어떤 것일까? 유소년시절의 그의 상처는 가난이며, 젊은 날의 그의 상처는 이별이다.(출처 : 김현, ‘영원히 닫힌 빈 방의 체험’에서)
기형도의 ‘빈 집’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이 시에서 ‘빈 집’은 절망과 폐쇄의 공간으로 사랑을 잃고 칩거하는 우울한 공간이다. 시적 화자는 자신의 사랑을 잊기 위해 자신의 사랑을 떠올리고 그리워하며 자신의 사랑을 가둔다. 빈 집에 감춰진 사랑은 시적 화자의 외로움을 오히려 드러낸다. ‘식목제’와는 다르게 사랑의 상처를 드러내고 있지만, 우울하고 절망적인 태도가 유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