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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방/유명시

직녀에게 /문병란

by 미스커피 2012. 1. 4.

직녀(織女)에게

희망의 문학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선 채로 기다리기엔 은하수가 너무 길다.

단 하나 오작교마저 끊어져 버린

지금은 가슴과 가슴으로 노둣돌을 놓아

면도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

선 채로 기다리기엔 세월이 너무 길다.

그대 몇 번이고 감고 푼 실올

밤마다 그리움 수놓아 짠 베 다시 풀어야 했는가.

내가 먹인 암소는 몇 번이고 새끼를 쳤는데,

그대 짠 베는 몇 필이나 쌓였는가?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사방이 막혀버린 죽음의 땅에 서서

그대 손짓하는 연인아

유방도 빼앗기고 처녀막도 빼앗기고

마지막 머리털까지 빼앗길지라도

우리는 다시 만나야 한다.

우리들은 은하수를 건너야 한다.

오작교가 없어도 노둣돌이 없어도

가슴을 딛고 건너가 다시 만나야 할 우리

칼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

이별은 이별은 끝나야 한다.

말라붙은 은하수 눈물로 녹이고

가슴과 가슴을 노둣돌 놓아

슬픔은 슬픔은 끝나야 한다. 연인아.

 

희망의 문학 요점 정리

희망의 문학 지은이 : 문병란

희망의 문학 갈래 : 자유시, 참여시

희망의 문학 어조 : 강렬한 호소의 어조

희망의 문학 성격 : 참여적, 서정적

희망의 문학 표현 : 반복을 통한 의미의 강조

희망의 문학 제재 : 견우 직녀 이야기

희망의 문학 주제 : 이별을 극복하고 만남을 기다림, 자유(만남)의 갈망, 상실의 위기에 놓인 소중한 대상을 되찾기를 갈망, 남과 북의 통일을 갈망

희망의 문학 출전 : 땅의 연가(1981)

 

희망의 문학 내용 연구

이별이 너무 길다.(현재형 - 지금도 지속되는 이별의 슬픔)

슬픔이 너무 길다.(오랜 헤어져 있음을 반복하고 리듬감 형성)

선 채로 기다리기엔 은하수(시련, 넘어야할 장애물)가 너무 길다.

단 하나 오작교(원래의 의미는 까마귀와 까치가 은하수에 놓는다는 다리로 칠월 칠석날

저녁에, 견우와 직녀를 만나게 하기 위하여 이 다리를 놓는다고 한다는 설화 속의 다리로 여기서는 두 사람의 만남을 가능하게 하는 실체)마저 끊어져 버린(이 부분은 견우화 직녀의 설화를 차용하고 있지만 설화 속의 오작교는 일년에 한번을 만나게 하는 만남의 가교가 되지만 이 속의 화자의 상황은 오작교마저 끊어졌다는 것은 설화 속의 견우 직녀보다 더 오랜 이별의 가혹한 비극적 상태를 말함)

지금은 가슴과 가슴으로 노둣돌(말을 타거나 말에서 내릴 때에 발돋움으로 쓰려고 대문 앞에 놓은 큰 돌로 만남의 징검다리)을 놓아

면도날(냉엄한 현실 속 - 만남의 절박함)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절실한 재회에의 소망).

선 채로[수동적인 자세] 기다리기엔 세월이 너무 길다(너무 길다라는 반복을 통해 현재적 이별의 아픔을 강조하면서 운율적 효과까지 거두고 있음)

그대 몇 번이고 감고 푼 실올(간절히 만나고 싶어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실체)

밤마다 그리움 수놓아 짠 베 다시 풀어야 했는가.(기약없는 기다림과 한의 표출)

내가 먹인 암소는 몇 번이고 새끼를 쳤는데,(여러 해 의미 없는 세월이 흐르는 속에서도 상대를 그리워 하면서 보냈던 일들 - 짠 베는 몇 필도 같은 의미)

그대 짠 베는 몇 필이나 쌓였는가?[오랜 기다림의 세월]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반복을 통한 강조)

사방이 막혀버린 죽음의 땅(직녀가 처한 현실로 탈출과 변화가 불가능해 보이는 죽음과도 같은 시련과 고통의 환경)에 서서

그대 손짓하는 연인아(구원을 요청하는 손짓)

유방도 빼앗기고 처녀막도 빼앗기고

마지막 머리털(여성의 가장 소중한 것들- 유방, 처녀막, 머리털, 육체적 여성미인 유방, 정신적 여성성인 처녀막, 물리적 생명성인 머리털- 죽음의 땅에서 벌어질 수 있는 상황으로 직녀의 절박한 상황을 강조함)까지 빼앗길지라도

우리는 다시 만나야 한다.("사방이 막혀 버린 - 만나야 한다" 에서 이 시의 '직녀'가 단순히 설화적 의미를 넘어서 있음을 보여주는 부분으로 직녀 없이는 세계와 자기 자신의 존재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가장 소중한 존재임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들은 은하수(두 사람을 갈라놓는 장애물과 시련)를 건너야 한다.

오작교가 없어도 노둣돌이 없어도(불가능한 상황이라도)

가슴을 딛고 건너가 다시 만나야 할 우리

칼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시련과 고통을 넘어 만나야 할)

이별은 이별은 끝나야 한다.

말라붙은 은하수 눈물로 녹이고(설화 속의 이야기와는 거리가 먼 상황임 - 상투적 문맥으로 끼워 넣은 것은 오히려 상징성을 강화하고, 은하수가 말라 붙었다는 불가능한 표현이 오히려 오랜 기다림을 절실하게 표현)

가슴과 가슴을 노둣돌 놓아

슬픔은 슬픔은(강조를 통한 신념의 절실함) 끝나야 한다. 연인아. (이별의 슬픔과 현실적 시련의 극복을 통한 만남을 소망)


 

희망의 문학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의 제재가 되는 '견우직녀설화(牽牛織女說話)'는 견우와 직녀가 한 해에 한 번 만나게 된다는 칠월칠석의 유래설화로 시기적으로 매년 칠월칠석이 되면, 두 별이 은하수를 가운데 두고 그 위치가 매우 가까워지게 되는데, 이러한 사실로부터 설화가 생겨났다고 추정한다.

이 설화의 발생 연대는 확실하지 않지만, 중국 후한(後漢) 때에 만들어진 효당산(孝堂山)의 석실 속에 있는 화상석(怜像石 : 장식으로 신선, 새, 짐승 따위를 새긴 돌)의 삼족오도(三足烏圖)에 직녀성과 견우성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전한(前漢) 이전으로 소급될 수 있다.

이 설화의 가장 오래된 예는 진(晉)나라 종름(宗侖)의 ≪형초세시기 荊楚歲時記≫에서 발견된다. 우리 나라의 경우, 408년(광개토왕 18)에 축조된 대안 덕흥리(大安德興里 : 평안남도 강서군 덕흥리) 고구려고분벽화에 은하수를 가운데 두고 앞에는 견우, 뒤에는 개를 데리고 있는 직녀가 그려져 있는 것이 발견된다.

기록상으로는 ≪고려사≫ 공민왕조에 왕이 몽고인 왕후와 더불어 안뜰에서 견우와 직녀에게 제사를 지낸 기사가 처음 보인다. 이 설화는 신앙과 함께 우리 나라 전국에 전승되어 있다.

원래 직녀는 하느님〔天帝〕의 손녀로 길쌈을 잘하고 부지런했으므로, 하느님이 매우 사랑하여 은하수 건너편의 하고(河鼓)라는 목동(견우)과 혼인하게 했다. 그러나 이들 부부는 신혼의 즐거움에 빠져 매우 게을러졌으므로 하느님은 크게 노하여 그들을 은하수를 가운데 두고 다시 떨어져 살게 하고, 한 해에 한 번 칠월칠석날만 같이 지내도록 했다.

은하수 때문에 칠월칠석날도 서로 만나지 못하자, 보다 못한 지상의 까막까치들이 하늘로 올라가 머리를 이어 다리를 놓아 주었다. 그 다리를 ‘까막까치가 놓은 다리, 즉 ‘오작교(烏鵲橋)’라 하며, 칠석이 지나면 까막까치가 다리를 놓느라고 머리가 모두 벗겨져 돌아온다고 한다.

또한, 이날 오는 비는 ‘칠석우(七夕雨)’라 하여, 그들이 너무 기뻐서 흘리는 눈물이라고 하며, 그 이튿날 아침에 오는 비는 이별의 눈물이라고 전한다.

견우직녀설화는 예로부터 동양권에서 무수히 많은 문인들의 시문의 주제로 사용되어 왔다. 우리 나라의 경우, 일찍이 고려 때 이인로(李仁老)의 〈칠석우〉, 이제현(李齊賢)의 〈칠석〉, 이곡(李穀)의 〈칠석소작 七夕小酌〉, 조선시대 정철(鄭澈)의 〈차광한루운 次廣寒樓韻〉, 김정희의 〈칠석칠률 七夕七律〉, 여류 시인들의 것으로 이옥봉(李玉峯)의 〈칠석가〉, 삼의당(三宜堂)의 〈칠월칠석〉, 운초(雲楚)의 〈강루칠석 江樓七夕〉, 정일헌(貞一軒)의 〈칠석〉 등을 들 수 있다.

그 밖에 〈춘향전〉을 비롯한 여러 고전소설, 〈규원가 閨怨歌〉·〈해조가 諧嘲歌〉·〈과부가〉·〈농가월령가〉·〈화조가〉·〈사미인곡〉과 같은 가사, 또는 시조·민요들에도 견우직녀설화가 주제로 되어 있는 것이 많다.

이 설화는 칠월칠석의 민속과 함께 오랜 세월 동안 우리 민족 정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이야기로 평가된다(참고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 시는 견우직녀설화를 차용해서 시적 소재로 사용하고 있는데, 시 속에 놓여 있는 견우와 직녀의 상황은 설화 속의 주인공들의 상황보다도 훨씬 가혹하다. 더구나 직녀가 처해 있는 죽음과도 같은 상황은 이러한 절박한 상황을 더욱 강화하는 구실을 하고 있다. 여기서 시적 화자는 인간의 모든 것이 상실된다고 해도 '우리는 만나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것은 이 두 연인이 견우직녀의 설화의 단순한 사랑을 넘어서는 보다 절실한 만남을 갈구하고 있다. 직녀가 처한 비극적 상황 인식과 신념을 연정에 빗대어 읊은 것으로 이 시를 남과 북의 이데올로기 정치적 상황이나 남한의 독재 정권의 가혹한 철권 통치까지 연상할 수 있는 문학적 함의를 담고 있으면서, 우리 사회의 아픔이 하루 빨리 사라지기를 염원하고 있는 작품이고, 민주화 시절 재야 운동권에서 노래로도 작곡되어 즐겨 애송되던 작품이었다.

그리고 미당 서정주의 '견우의 노래'하고는 같은 설화를 차용하고 있지만 시인들의 세계관의 차이점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희망의 문학 심화 자료

희망의 문학 '직녀에게' 노래로 듣기

 

희망의 문학 미당 서정주의 견우의 노래

 우리들의 사랑을 위하여서는

이별이, 이별이 있어야 하네.


높았다 낮았다 출렁이는 물살과

물살 몰아 갔다 오는 바람만이 있어야 하네.

 

오! 우리들의 그리움을 위하여서는

푸른 은핫물이 있어야 하네.

 

돌아서는 갈 수 없는 오롯한 이 자리에

불타는 홀몸만이 있어야 하네.

 

직녀여, 여기 번쩍이는 모래밭에

돋아나는 풀싹을 나는 세이고……

 

허이연 허이연 구름 속에서

그대는 베틀에 북을 놀리게.

 

눈썹 같은 반달이 중천에 걸리는

칠월 칠석이 돌아오기까지는

 

검은 암소를 나는 먹이고

직녀여 그대는 비단을 짜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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