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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방/유명시

떠나가는 배 /박용철

by 미스커피 2012. 1. 4.

떠나가는 배

희망의 문학

나 두 야 간다.희망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 거냐.

나 두 야 가련다.

 

아늑한 이 항구인들 손쉽게야 버릴 거냐.

안개같이 물 어린 눈에도 비치나니

골짜기마다 발에 익은 묏부리 모양

주름살도 눈에 익은 아아 사랑하든 사람들.

 

버리고 가는 이도 못 잊는 마음

쫓겨 가는 마음인들 무어 다를 거냐.

돌아다보는 구름에는 바람이 희살짓는다.

앞 대일 언덕인들 마련이나 있을 거냐.

 

나 두 야 간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 거냐

나 두 야 가련다.

 

 

희망의 문학 요점 정리

희망의 문학 지은이 : 박용철

희망의 문학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순수시

희망의 문학 율격 : 내재율. 4음보격 바탕

희망의 문학 어조 : 독백적 어조, 격정적이고 의지에 찬 어조

희망의 문학 성격 : 낭만적(우수적) 감상적. 서정적, 의지적

희망의 문학 구성 : 수미상관의 구조[선언 - 미련 - 불안 - 의지의 다짐]

   1연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화자의 결연한 의지)

   2연  눈물 어려 비치는 슬픈 화자(화자의 안타까운 미련)

   3연  바람마저 돌아다보는 구름을 훼방함(화자의 의지의 동요)

   4연  '떠나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반복(현실의 극복 의지)

희망의 문학 제재 : 이별

희망의 문학 주제 : 고향과 정든 사람들을 두고 떠나는 우울한 심정, 일제 강점하에서 조국을 떠나는 울분과 비애

희망의 문학 특징 : '나 두 야'를 띄어 써 의미상의 효과를 거두고, 의문형 어미를 통해 감정을 표출하였고, 특이한 띄어쓰기로 정서를 표현하였다.

희망의 문학 출전 : <시문학>(1930)

 

 

희망의 문학 내용 연구

여기서 '배'는 서정적 자아를 나타내는데 정처 없이 떠난다는 것을 의미하며, 시적 자아가 절박한 현실 상황에 놓여 있음을 암시함

나 두 야 간다.[떠남에 대한 망설임을 띄어 쓰기를 통해 나타내면서 심적 갈등을 보여주고, 한편으로는 '나'만 혼자 있을 수 없다는 뜻을 강조하기 위해 한 음절씩 띄어 쓴 것으로 봄- 호흡이 느려짐)]

나의 이 젊은 나이를[두운법 '나']

눈물로야 보낼 거냐.[설의법을 사용해서 암담한 현실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음]

나 두 야 가련다.[ 암담한 현실에서 탈출하고 싶은 욕망. 그러나 실상 방향도 목표도 정해지지 않은 채 막연히 떠나고 싶어할 뿐이라는 점에서 주관적이고 감상적인 소망이라고 할 수 있다. ]

 

아늑한 이 항구인[사랑하는 고향을 말하는 원관념으로 시적 자아를 '배'로 나타냈기 때문임]들 손쉽게야 버릴 거냐.[떠나고 싶지 않은 마음]

안개같이 물 어린 눈[막상 고향을 떠나려 하니 이 뿌옇게 흐려오는 것을 의미]에도 비치나니

골짜기마다 발에 익은 묏부리 모양

주름살도 눈에 익은 아아 사랑하든 사람들[일제 강점하의 우리 민족].[ 안개같이 물 어린 눈에도 비치나니 - 주름살도 눈에 익은 아아 사랑하든 사람들. : 떠나야 한다는 이성적 판단과, 정든 고향과 사랑하던 사람들을 두고 차마 떠나지 못하는 감성적 행동 사이에서 빚어지는 서정적 자아의 고뇌와 갈등이 형상화되었다.]

 

버리고 가는 이도 못 잊는 마음[고향에 대한 그리운 심정으로 떠나기 싫어하는 마음]

쫓겨 가는 마음[일제의 수탈로 인해 유랑하는 우리 민족의 슬픔과 북간도로 이주하는 당시의 상황이 시적 화자의 의식 구조에 담겨 있음]인들 무어 다를 거냐.

돌아다보는 구름에는 바람이 희살짓는다(헤살부린다. 짖궂게 훼방한다).[바람이 훼방을 놓아 구름을 쫓아 버려 고향 생각에 잠길 수 없다는 말로 고향을 제대로 돌아다볼 수 없는 상황/ 망운지정(望雲之情 : 자식이 객지에서 고향이나 고향에 계신 어버이를 생각하는 마음.]

앞 대일 언덕인들 마련이나 있을 거냐.['앞 대일 언덕'은 항구라는 뜻으로 쉴 곳이나 정해진 목적지, 혹은 지향해야 할 목표를 가리킨다. 시적 자아는 자신을 배에 비유하고 있으며 '앞 대일 언덕'이란 배를 댈 항구로서 정해진 목적지를 의미한다. 즉, 정해진 목적지도 없이 정처 없이 떠난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이 대목은 일단 쉴 곳도, 정처도 없이 유랑해야 할 험난한 미래를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시 전체의 감상적인 분위기와 연관해서 생각하면 이 구절은 지향해야 할 목표도 없으면서 막연하게 어디론가 가고 싶어하는 시적 자아의 심정을 드러내 주는 구절로 이해하는 것이 옳음. ]

 

나 두 야 간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시적 화자가 미래 지향적 의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행동으로 실천할 수 없는 갈등이 구체적으로 '눈물'로 형상화됨]로야 보낼 거냐

나 두 야 가련다.['간다'는 구체적 행동의 의미가 담겨 있지만, '가련다'는 앞으로의 계획과 생각을 표현한 것임]

 

 

희망의 문학 이해와 감상

 김영랑과 함께 1930년대 시문학파를 이끌었던 박용철은 이 시를 자신의 문학의 출발점이라 했다. 1925년에 쓰여진 이 시는 당시 문단의 절망과 허무의식을 그대로 담고 있다. 1920년대의 허무와 절망이란 식민지 현실과 3·1운동 실패라는 시대적 배경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박용철은 첫 연과 마지막 연을 동일한 어구로 반복하는 것과 동시에 `나 두 야 간다'라고 의도적으로 띄어 쓰기로 떠나가는 자신의 안타까움과 비장함을 강조했다. 화자가 떠나가는 이유는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지 않으나, 떠나가지 않으면 화자는 젊은 나이를 눈물로 보낼 수밖에 없는 현실의 절박함이 있다는 것은 시를 통해 알 수 있다. 눈물로 가득한 절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떠나가는 화자의 마음이 편할 수 없는 것은 `쫓겨가기' 때문이다. 남아 ,있는다는 것은 절망의 눈물로 젊음을 보내는 것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조국강토와 민족을 버리고, 즉 `아늑한 항구를 버리고, / 주름살도 눈에 익은 아 -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는' 것은 결국 절망적 상황에 쫓겨가는 것과 다름 없다. 게다가 떠나가서 닿는 곳도, 의지가 되어 줄 `앞 대일 언덕'도 없이 암담한 곳이기 때문에 `안개같이 물 어린 눈'으로 눈물을 흘리며, `발에 익어 정든 산골짜기'뿐 아니라 바람에 모양 변하는 구름마저 화자에게는 정겹고 슬프게 보이는 것이다. 희망도 없는 곳으로 어쩔 수 없이 떠나가는 젊은이의 비장한 각오와 심정을 `나 두 야 간다'라고 띄어 쓴 시행에서 엿볼 수 있다. 마치 희망적이지 못한 상황으로 쫓겨가는 슬픔과 회한 속에서도 그것을 극복하리라는 의지를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듯하다.

 이 시에 나타난 비애는 당대의 현실이나 삶의 표랑 의식과 관계가 있다. 절망적인 현실을 벗어나려는 노력과 떠남에도 `앞 대일 언덕' 같은 희망이 없는 당시의 상황에 대한 비애가 바로 이 시를 포함한 박용철 시의 주제적 특징이다. [해설: 이상숙]

이해와 감상2

 이 시는 경향파의 대항하여 순수 서정시를 고집한 박용철의 대표작 중의 하나로, 그 율격은 4음보격(2음보도 보임)으로 되어 있다. 또 제 1,4연에서 '나'의 반복과 제 2연 1-2행의 첫음절 '안-'의 반복은 두운적(頭韻的) 요소로 음위율을 형성하기도 한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제 2연 3-4행의 '-에 익은', 제 3연 2,4행에서의 '-인들, -거냐'의 반복도 일종의 운율적 요소로 이 시의 음악성을 형성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시는 암울한 일제 강점의 현실로 앞에서 젊은이가 눈물로만 세월을 보낼 수 없다는 강변(强辯)을 보여 주고 있다. 가혹한 일제 치하에서 갖은 억압과 수모를 당하면서 나라 잃은 원한을 가슴에 가득히 안은 이 땅의 젊은이들이 헐벗고 굶주린 채 사랑하는 조국, 정든 고향을 버리고 뿔뿔이 흩어져야 했던 민족사의 한 단면을 보여 주고 있는 시이다.

 일제 강점하의 암담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심정을 노래한 작품인 셈인데 어디론가 떠나지 않을 수 없는, 절박한 상황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시의 시적 자아는 표면상으로는 미래 지향적인 의지를 지니고 '나 두 야 가련다'고 외치지만 그 내면에는 떠나지 못하는 심정이 진하게 깔려 있다. 이러한 갈등은 마지막 연에 와서 눈물로 변해 버린다. 암울한 일제 강점하에서 젊은이가 눈물로만 세월을 보내고 있을 수 없다고 강변하면서도 자신은 먼저 울어 버리는 반어(反語), 이것이 바로 일제 강점하의 암담한 시대를 살아가던 청년들의 모습이었다.

 

희망의 문학 심화 자료

희망의 문학 박용철(朴龍喆)

 19041938. 시인. 본관은 충주(忠州). 아호는 용아(龍兒). 전라남도 광산(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출신. 아버지 하준(夏駿)과 어머니 고광 고씨(高光高氏, 혹은 長澤高氏)의 4남매 중 장남이다. 1916년 광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 휘문의숙(徽文義塾)에 입학하였다가 바로 배재학당(培材學堂)으로 전학하였다. 그러나 1920년 배재학당 졸업을 몇 달 앞두고 자퇴, 귀향하였다.
그 뒤 일본 동경의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 중학부를 거쳐 1923년 동경외국어학교 독문학과에 입학하였으나, 관동대진재(關東大震災)로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하였다. 이어서, 연희전문학교(延禧專門學校)에 입학하였으나 몇 달 만에 자퇴하였다. 16세 때 울산(蔚山) 김씨 회숙(會淑)과 혼인하였다가 1929년 이혼하고, 1931년 5월 누이동생 봉자(鳳子)의 이화여자전문학교 친구였던 임정희(林貞姬)와 재혼하였다.
재학 중 수리과목에 재능을 보였는데, 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아오야마학원 재학 때에 사귄
김영랑(金永郎)과 교우로 관계하면서 비롯되었다. 문단 활동 이외의 경력은 전혀 없다. 1930년대에는 사재를 털어 문예잡지 시문학 詩文學 3권, 1931년에는 문예월간 文藝月刊 4권, 1934년에는 문학 文學 3권 등 도합 10권을 간행하였다.
또한 그가 주재하였던 시문학사에서 1935년 같은 시문학동인이었던
정지용(鄭芝溶)의 정지용시집과 김영랑의 영랑시집을 간행하였다. 문단 활동으로는 자신이 주축이 된 시문학동인 활동과 해외문학파, 극예술연구회 회원으로 참여하여 입센(Ibsen,H.) 원작의 인형의 집 등 연극공연을 위한 몇 편의 희곡을 번역하였다. 정지용 등과 시집과 문예지를 간행하는 등 문학 활동에 전념하면서도 자신의 작품집은 내지 못하고 1938년 서울에서 후두결핵으로 사망하였다.
그의 시작 활동은 1930년 3월
시문학 창간호에 떠나가는 배〉·〈밤기차에 그대를 보내고〉·〈싸늘한 이마〉·〈비내리는 날 등 5편의 시를 발표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는데, 그 뒤로 문예월간≫·≪문학 및 기타의 잡지에 많은 시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발표되지 않고 유고로 전하여지다가 뒤에 전집에 수록된 작품도 상당수에 달한다.
나 두 야 간다/나의 이 젊은 나이를/눈물로야 보낼거냐/나 두 야 간다로 시작되는 대표작 떠나가는 배는 어딘가 정박지를 찾아 떠나가는 에다 인생을 비유한 작품이다. 즉, 인정과 고향을 되돌아보는 현실과 의 행정(行程) 속에서 아무런 마련도 없이 또 다른 정박지를 향하여 떠나가는 이상과의 내적 갈등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1938년
삼천리문학 三千里文學에 발표된 시적 변용에 대해서는 지금도 널리 읽혀지는 그의 대표적인 평론으로서 그의 시작이론(詩作理論)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의 시는 같은 시문학동인인 정지용이나 김영랑의 시를 못 따르지만, 시문학≫·≪문예월간≫·≪문학 등 문예지를 간행하였고, 방대한 역시편(譯詩篇) 등을 통하여 해외문학을 소개하는 역할을 하였다는 점은 한국 근대문학사에서 큰 공적이 되고 있다.
지나치게 서구문학사조에 편향되어 혼류를 이루었던 1920년대 문단을 크게 전환시켜
의 결정으로 이루어진 보다 높은 차원의 시창작, 즉 민족언어의 완성이라는 커다란 과제를 제시하였던 것이다. 유해는 고향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동 우산리에 안장되었고, 광주공원에 영랑의 시비와 함께 그의 시비도 건립되어 있다. 시비에는 대표작 떠나가는 배의 한 절이 새겨져 있다.
유작집으로
박용철전집 2권이 각각 1939·1940년 동광당서점에서 간행되었고, 대표적 평론으로 효과주의비평론강 效果主義批評論綱(1931)·〈문예시평 文藝時評(1931) 등이 있다.

참고문헌 韓國現代文學史探訪(金容誠, 國民書館, 1973), 韓國現代詩人硏究·其他(鄭泰榕, 語文閣, 1976), 韓國現代詩人硏究(金東, 民音社, 1977), 韓國作家傳記硏究(李御寧, 同和出版公社, 1980), 朴龍喆의 人間性과 藝術(金珖燮, 朝光, 1940.8.), 朴龍喆과 나(金永郎, 自由文學, 1958.6.), 龍兒朴龍喆硏究(金允植, 學術院論文集 9, 1970).(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희망의 문학 시문학파와 순수시(純粹詩)

 시문학파는 <시문학> 발간에 참여한 김영랑, 박용철, 정지용, 신석정, 이하윤 등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흔히 순수시의 대명사처럼 사용된다. 이들은 20년대 경향시의 이념성에 반발하여 시의 예술성을 높이는 데 관심을 기울였다. 이들은 시가 언어의 예술이라는 점에 착안, 시어의 조탁에 힘썼고 시의 음악성에 관심을 기울였으며 영롱하고 섬세한 서정성을 표현하는 데 주력했다.

 그러나 이러한 시문학파의 순수시는 본래적인 의미의 순수시와는 자소 차이가 있다. 프랑스 상징주의에서 비롯된 순수시는 말의 뜻만으로 포착할 수 없는 미묘한 정신의 상태를 시어의 음악적 기능을 통해 표현하려 했던 것으로 신비적이고 초월적인 세계를 상징하는 데 주력했다. 이에 비해 시문학파의 시는 시의 음악성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런데 최근에 박용철의 글이 발굴되었는데 평소 생각하는 것처럼 정치에 무관심했던 것은 아니라고 보인다.

희망의 문학 시문학파

 1930년대 시전문지 시문학 詩文學을 중심으로 순수시운동을 주도했던 유파. 그 핵심인물은 박용철(朴龍喆)과 김영랑(金永郎)이다.
 여기에
정인보(鄭寅普)·변영로(卞榮魯)·이하윤(異河潤)·정지용(鄭芝溶)의 참여로 시문학 창간호가 발간되었고, 뒤에 김현구(金玄鳩)·신석정(辛夕汀)·허보(許保)가 새로 참가하였다.
엄밀한 의미에서 시문학파는 이들만을 지칭해야 할 것이나, 시문학파의 범위를 넓게 보는 입장에서는 이들과 경향을 같이하는
문예월간 文藝月刊≫·≪문학 文學≫·≪시원 詩苑에 참여한 문인들까지도 포함시켜서 시문학파를 해외문학파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하려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문예월간이나 문학은 범문단적인 종합 문예지였던 만큼 여기에 작품을 발표한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동인적(同人的)결속이나 이념적 유파 의식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따라서 시문학 동인들만으로 범위를 축소시키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KAPF)의 정치적 경향시(傾向詩)에 반발하여 문학에서 정치성이나 사상성을 배제한 순수 서정시를 지향하고자 한 점이 가장 중요한 특색이다.
 1920년대의 감상적 낭만주의 시나 민요시 또는 카프의 경향시가 모두 자유시의 특성에 대한 명백한 자각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에 시로서의 현대성을 논하기에 미흡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시문학에 실린 김영랑·정지용·박용철 등의 작품에서는 내용과 형식의 유기적 조화에 의한 자유시가 쓰여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시에서 언어의 조탁(彫琢)이라는 면에 그들이 의식적인 노력을 경주하였다는 것은 주목할만한 사실이다.
시의 언어가 산문이나 일상적인 언어와 다르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이 현대시의 중요한 특성 가운데 하나라면, 김영랑을 중심으로 한 시문학파가 이 방면에서 거둔 성과는 괄목할만한 것이다.
 또 뒤에 오는 시인들에게 많은 자극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시의 구문(構文)이란 음성 구조와 의미 구조의 적절한 조화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인데 대체로 1920년대의 시는 의미 구조 쪽으로만 치우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김영랑의 시에서는 의도적인 호음조(好音調)
·음성상징(音聲象徵)·압운법(押韻法)·음보율(音步律) 등 음성 구조에 대한 세심한 배려를 찾아볼 수 있다.
 또 음성 구조와 의미 구조 사이의 조화와 긴장을 통한 창조적 리듬을 찾아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김영랑의 시는 김소월의 민요시보다도 한 걸음 발전된 형태라고 할 수 있고 그만큼 현대성을 지니게 된다.
 또 다른 중요한 특색으로 시문학파의 시에서 은유와 심상이 비로소 제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물론, 그 이전(1920년대)의 시에도 은유나 심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시문학파의 그것과는 근본적으로 질적인 차이를 보이고 있다.
 즉, 1920년대의 은유나 심상은 자연발생적인 것이 대부분인 데 비하여 시문학파의 은유나 심상은 시의 중요한 자산으로서 의식적으로 활용하고자 한 흔적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
이와 같은 특징은 정지용 등의 시적 성과를 통하여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의 시문학사에서 시문학파를 현대시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은 상당히 타당한 근거를 가진 입론(立論)이며, 시창작 이외에도 박용철의 시론이나 서구 시 번역 분야에서의 이하윤의 활동도 이들의 현대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참고문헌 詩文學派硏究(金容稷, 西江大學校 人文科學論集 2, 1969), 龍兒朴龍喆硏究(金允植, 近代韓國文學硏究, 一志社, 1973).(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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