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두 야 간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 거냐. 나 두 야 가련다.
아늑한 이 항구인들 손쉽게야 버릴 거냐. 안개같이 물 어린 눈에도 비치나니 골짜기마다 발에 익은 묏부리 모양 주름살도 눈에 익은 아아 사랑하든 사람들.
버리고 가는 이도 못 잊는 마음 쫓겨 가는 마음인들 무어 다를 거냐. 돌아다보는 구름에는 바람이 희살짓는다. 앞 대일 언덕인들 마련이나 있을 거냐.
나 두 야 간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 거냐 나 두 야 가련다.
1연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화자의 결연한 의지) 2연 눈물 어려 비치는 슬픈 화자(화자의 안타까운 미련) 3연 바람마저 돌아다보는 구름을 훼방함(화자의 의지의 동요) 4연 '떠나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반복(현실의 극복 의지)
여기서 '배'는 서정적 자아를 나타내는데 정처 없이 떠난다는 것을 의미하며, 시적 자아가 절박한 현실 상황에 놓여 있음을 암시함 나 두 야 간다.[떠남에 대한 망설임을 띄어 쓰기를 통해 나타내면서 심적 갈등을 보여주고, 한편으로는 '나'만 혼자 있을 수 없다는 뜻을 강조하기 위해 한 음절씩 띄어 쓴 것으로 봄- 호흡이 느려짐)] 나의 이 젊은 나이를[두운법 '나'] 눈물로야 보낼 거냐.[설의법을 사용해서 암담한 현실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음] 나 두 야 가련다.[ 암담한 현실에서 탈출하고 싶은 욕망. 그러나 실상 방향도 목표도 정해지지 않은 채 막연히 떠나고 싶어할 뿐이라는 점에서 주관적이고 감상적인 소망이라고 할 수 있다. ]
아늑한 이 항구인[사랑하는 고향을 말하는 원관념으로 시적 자아를 '배'로 나타냈기 때문임]들 손쉽게야 버릴 거냐.[떠나고 싶지 않은 마음] 안개같이 물 어린 눈[막상 고향을 떠나려 하니 이 뿌옇게 흐려오는 것을 의미]에도 비치나니 골짜기마다 발에 익은 묏부리 모양 주름살도 눈에 익은 아아 사랑하든 사람들[일제 강점하의 우리 민족].[ 안개같이 물 어린 눈에도 비치나니 - 주름살도 눈에 익은 아아 사랑하든 사람들. : 떠나야 한다는 이성적 판단과, 정든 고향과 사랑하던 사람들을 두고 차마 떠나지 못하는 감성적 행동 사이에서 빚어지는 서정적 자아의 고뇌와 갈등이 형상화되었다.]
버리고 가는 이도 못 잊는 마음[고향에 대한 그리운 심정으로 떠나기 싫어하는 마음] 쫓겨 가는 마음[일제의 수탈로 인해 유랑하는 우리 민족의 슬픔과 북간도로 이주하는 당시의 상황이 시적 화자의 의식 구조에 담겨 있음]인들 무어 다를 거냐. 돌아다보는 구름에는 바람이 희살짓는다(헤살부린다. 짖궂게 훼방한다).[바람이 훼방을 놓아 구름을 쫓아 버려 고향 생각에 잠길 수 없다는 말로 고향을 제대로 돌아다볼 수 없는 상황/ 망운지정(望雲之情 : 자식이 객지에서 고향이나 고향에 계신 어버이를 생각하는 마음.] 앞 대일 언덕인들 마련이나 있을 거냐.['앞 대일 언덕'은 항구라는 뜻으로 쉴 곳이나 정해진 목적지, 혹은 지향해야 할 목표를 가리킨다. 시적 자아는 자신을 배에 비유하고 있으며 '앞 대일 언덕'이란 배를 댈 항구로서 정해진 목적지를 의미한다. 즉, 정해진 목적지도 없이 정처 없이 떠난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이 대목은 일단 쉴 곳도, 정처도 없이 유랑해야 할 험난한 미래를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시 전체의 감상적인 분위기와 연관해서 생각하면 이 구절은 지향해야 할 목표도 없으면서 막연하게 어디론가 가고 싶어하는 시적 자아의 심정을 드러내 주는 구절로 이해하는 것이 옳음. ]
나 두 야 간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시적 화자가 미래 지향적 의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행동으로 실천할 수 없는 갈등이 구체적으로 '눈물'로 형상화됨]로야 보낼 거냐 나 두 야 가련다.['간다'는 구체적 행동의 의미가 담겨 있지만, '가련다'는 앞으로의 계획과 생각을 표현한 것임]
김영랑과 함께 1930년대 시문학파를 이끌었던 박용철은 이 시를 자신의 문학의 출발점이라 했다. 1925년에 쓰여진 이 시는 당시 문단의 절망과 허무의식을 그대로 담고 있다. 1920년대의 허무와 절망이란 식민지 현실과 3·1운동 실패라는 시대적 배경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박용철은 첫 연과 마지막 연을 동일한 어구로 반복하는 것과 동시에 `나 두 야 간다'라고 의도적으로 띄어 쓰기로 떠나가는 자신의 안타까움과 비장함을 강조했다. 화자가 떠나가는 이유는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지 않으나, 떠나가지 않으면 화자는 젊은 나이를 눈물로 보낼 수밖에 없는 현실의 절박함이 있다는 것은 시를 통해 알 수 있다. 눈물로 가득한 절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떠나가는 화자의 마음이 편할 수 없는 것은 `쫓겨가기' 때문이다. 남아 ,있는다는 것은 절망의 눈물로 젊음을 보내는 것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조국강토와 민족을 버리고, 즉 `아늑한 항구를 버리고, / 주름살도 눈에 익은 아 -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는' 것은 결국 절망적 상황에 쫓겨가는 것과 다름 없다. 게다가 떠나가서 닿는 곳도, 의지가 되어 줄 `앞 대일 언덕'도 없이 암담한 곳이기 때문에 `안개같이 물 어린 눈'으로 눈물을 흘리며, `발에 익어 정든 산골짜기'뿐 아니라 바람에 모양 변하는 구름마저 화자에게는 정겹고 슬프게 보이는 것이다. 희망도 없는 곳으로 어쩔 수 없이 떠나가는 젊은이의 비장한 각오와 심정을 `나 두 야 간다'라고 띄어 쓴 시행에서 엿볼 수 있다. 마치 희망적이지 못한 상황으로 쫓겨가는 슬픔과 회한 속에서도 그것을 극복하리라는 의지를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듯하다. 이 시에 나타난 비애는 당대의 현실이나 삶의 표랑 의식과 관계가 있다. 절망적인 현실을 벗어나려는 노력과 떠남에도 `앞 대일 언덕' 같은 희망이 없는 당시의 상황에 대한 비애가 바로 이 시를 포함한 박용철 시의 주제적 특징이다. [해설: 이상숙] 이해와 감상2 이 시는 경향파의 대항하여 순수 서정시를 고집한 박용철의 대표작 중의 하나로, 그 율격은 4음보격(2음보도 보임)으로 되어 있다. 또 제 1,4연에서 '나'의 반복과 제 2연 1-2행의 첫음절 '안-'의 반복은 두운적(頭韻的) 요소로 음위율을 형성하기도 한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제 2연 3-4행의 '-에 익은', 제 3연 2,4행에서의 '-인들, -거냐'의 반복도 일종의 운율적 요소로 이 시의 음악성을 형성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시는 암울한 일제 강점의 현실로 앞에서 젊은이가 눈물로만 세월을 보낼 수 없다는 강변(强辯)을 보여 주고 있다. 가혹한 일제 치하에서 갖은 억압과 수모를 당하면서 나라 잃은 원한을 가슴에 가득히 안은 이 땅의 젊은이들이 헐벗고 굶주린 채 사랑하는 조국, 정든 고향을 버리고 뿔뿔이 흩어져야 했던 민족사의 한 단면을 보여 주고 있는 시이다. 일제 강점하의 암담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심정을 노래한 작품인 셈인데 어디론가 떠나지 않을 수 없는, 절박한 상황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시의 시적 자아는 표면상으로는 미래 지향적인 의지를 지니고 '나 두 야 가련다'고 외치지만 그 내면에는 떠나지 못하는 심정이 진하게 깔려 있다. 이러한 갈등은 마지막 연에 와서 눈물로 변해 버린다. 암울한 일제 강점하에서 젊은이가 눈물로만 세월을 보내고 있을 수 없다고 강변하면서도 자신은 먼저 울어 버리는 반어(反語), 이것이 바로 일제 강점하의 암담한 시대를 살아가던 청년들의 모습이었다.
1904∼1938. 시인. 본관은 충주(忠州). 아호는 용아(龍兒). 전라남도 광산(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출신. 아버지 하준(夏駿)과 어머니 고광 고씨(高光高氏, 혹은 長澤高氏)의 4남매 중 장남이다. 1916년 광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 휘문의숙(徽文義塾)에 입학하였다가 바로 배재학당(培材學堂)으로 전학하였다. 그러나 1920년 배재학당 졸업을 몇 달 앞두고 자퇴, 귀향하였다.
시문학파는 <시문학> 발간에 참여한 김영랑, 박용철, 정지용, 신석정, 이하윤 등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흔히 순수시의 대명사처럼 사용된다. 이들은 20년대 경향시의 이념성에 반발하여 시의 예술성을 높이는 데 관심을 기울였다. 이들은 시가 언어의 예술이라는 점에 착안, 시어의 조탁에 힘썼고 시의 음악성에 관심을 기울였으며 영롱하고 섬세한 서정성을 표현하는 데 주력했다. 그러나 이러한 시문학파의 순수시는 본래적인 의미의 순수시와는 자소 차이가 있다. 프랑스 상징주의에서 비롯된 순수시는 말의 뜻만으로 포착할 수 없는 미묘한 정신의 상태를 시어의 음악적 기능을 통해 표현하려 했던 것으로 신비적이고 초월적인 세계를 상징하는 데 주력했다. 이에 비해 시문학파의 시는 시의 음악성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런데 최근에 박용철의 글이 발굴되었는데 평소 생각하는 것처럼 정치에 무관심했던 것은 아니라고 보인다.
1930년대 시전문지 ≪시문학 詩文學≫을 중심으로 순수시운동을 주도했던 유파. 그 핵심인물은 박용철(朴龍喆)과 김영랑(金永郎)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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