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장독에 띄울 숯을 사러
읍내에 간다
나무 타다 만 게 숯인데
나무토막 태워서 쓰자고 해도
어디서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아내는 참숯을 써야 한단다
읍내 장터를 다 뒤져도 숯이 없다
가슴속 한 세상 더글거리는
타다 만 숯덩이들은 쓸모가 없겠지
육십릿길 더 달려간 도회지 시장통에서
가까스로 숯을 만난다
휘발유값이 몇 배는 더 들겠다
불길이 한참 이글거릴 때
바람구멍을 꽉 막아야
참숯이 된다고
참숯은 냄새도 연기도 없다고
숯가게 할아버지 설명이 길다
참숯은 냄새까지 연기까지
감쪽같이 태우나 보다
이글거리기도 전에 숨통이 막힌
내 청춘은 그나마 참숯이 되어 있는지
언제쯤 냄새도 연기도 없이 이글거릴지 어쩔지
간장독에 둥둥 떠서 한평생 이글거리지도 못할
까만 비닐봉지 속 숯토막들이
못 견디게 서걱거린다
요점 정리
지은이 : 정양
성격 : 반성적, 자성적
구성 :
1연 : 숯을 사러 읍내에 감
2연 : 도회지 시장통에서 숯을 만남
3연 : 냄새도 연기도 없는 참숯
4연 : 자신의 청춘에 대한 회한
주제 : 자신을 온전히 불사를 수 있는 삶에 대한 소망
출전 : <길을 잃고 싶을 때가 많았다>(문학동네)
내용 연구
간장독에 띄울 숯[나무를 숯가마에 넣어서 구워 낸 검은 덩어리. 연료로 함. 목탄(木炭).]을 사러
읍내에 간다
나무 타다 만 게 숯인데[시적 화자가 숯에 대한 참다운 인식 이전의 상태로 숯을 흔한 것으로 간주]
나무토막 태워서 쓰자고 해도
어디서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아내는 참숯[타다 만 숯덩이와 대조적임]을 써야 한단다
읍내 장터를 다 뒤져도 숯이 없다
가슴속 한 세상 더글거리는[때나 먼지 따위가 아주 많이 끼여 있거나 올라 있는]
타다 만 숯덩이들은[완전히 연소되지 못한] 쓸모가 없겠지
육십릿길 더 달려간 도회지 시장통에서
가까스로 숯을 만난다
휘발유값이 몇 배는 더 들겠다
불길[생명의 기운]이 한참 이글거릴 때
바람구멍을 꽉 막아야[생명의 기운이 빠져나가지 않게 해야 한다는 의미 / 열정적인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는 것]
참숯이 된다고
참숯은 냄새도 연기도 없다고
숯가게 할아버지 설명이 길다
참숯은 냄새까지 연기까지
감쪽같이 태우나 보다[참숯은 삶의 완전한 연소를 지향하고 있음을 나타냄]
이글거리기도 전에 숨통이 막힌[사랑이나 꿈 등을 위해 열정을 불사르지 못했다는 화자의 인식이 드러남]
내 청춘은 그나마 참숯이 되어 있는지
언제쯤 냄새도 연기도 없이 이글거릴지 어쩔지[미래에 대한 불확신]
간장독에 둥둥 떠서 한평생 이글거리지도 못할[화자가 자신을 완전히 연소하지 못한 상태, 즉 열정적인 삶을 살지 못한]
까만 비닐봉지 속 숯토막들이[화자의 모습과 닮아 있는 소재로 꿈을 이루기 위해 제 한 몸 불사르는 열정을 하나도 남김없이 불사르는 삶의 모습을 상징]
못 견디게 서걱거린다[사과나 연한 과자 같은 것을 씹는 소리가 자꾸 나다. 또는 그런 소리를 자꾸 내다./ 갈대 같은 것이 스치는 소리가 자꾸 나다. 또는 그런 소리를 자꾸 내다. [작은말]사각거리다.]
이해와 감상
안도현의 시 '연탄 한 장'에서 시인은 연탄 한 장을 바라보다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연탄의 속성에 대해 생각한다. 지금까지 자신은 타고남은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것이 두려워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 되지 못하였'던 삶을 살아왔구나 하고 반성한다. 안도현의 시처럼 이 작품 또한 자신이 지향하는 삶의 자세를 '참숯'을 통해 형상화한 작품으로 이 시의 화자는 냄새도 연기도 없이 완전히 연소시키는 참숯의 속성을 통해 자신도 열정을 바쳐 후회 없이 살고 싶다는 소망을 내비치고 있다.
심화 자료
정양
1942년 전북 김제에서 태어났다.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197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당선되어 등단했다. 제9회 모악문학상, 제1회 아름다운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시집 '까마귀떼' '수수깡을 씹으며' '빈집의 꿈' '살아 있는 것들의 무게' '눈 내리는 마을', 시화집 '동심의 신화', 판소리평론집 '판소리 더늠의 시학', 역서 '한국 리얼리즘 한시의 이해' '두보 시의 이해' 등이 있다. 현재 전주우석대학교 문예창작과에 교수로 재직중이다.
'참숯'의 상징
웬만큼 나이가 든 사람들 가슴속에는 타다 만 숯덩이들이 서걱거리게 마련입니다. 개인적인 것이든 사회적인 것이든 타다 만 사랑, 이루지 못한 열정, 무참히 꺾인 꿈과 욕망 같은 것이 그런 것이죠. 그 꿈과 욕망들이 탈만큼 타서 흔적도 없는 재가 되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렇지 못하더라도 냄새도 연기도 안 나는 참숯이라도 되어 있다면 그나마 얼마나 다행이겠어요. (중략) 비록 타다 말기는 했지만, 그래서 하마터면 사람을 영 미치게 만들 뻔도 했지만 그 고약한 콤플렉스들이 가까스로 삭아서, 다시 태우더라도 냄새도 연기도 안 나는 한(恨)으로 남아 있는 것이 바로 참 숯일 겁니다. 내 가슴속에서 지금도 시도 때도 없이 서걱거리는, 그 이글거리다만 고약한 숯덩이들을 냄새도 연기도 없이 감쪽같이 다시 태우고 싶다면 그건 내 지나친 욕심일까요?(작가의 시작 노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