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늦은 아침이다
아들과 전철을 탔는데 두자리가 비어 있는 행운을 잡았다
맞은편에 연세가 지긋하신 분이 졸고 계신다
어디선가 시끄러운 사내 소리가 난다
잠시 후 졸고 계신 어르신앞으로 시끄러운 사내가 다가 섰다
"형님 기도하고 계시는군요"
시끄러운 남자는 자기보다 어른이라고 생각되었는지
형님이라고 하면서 기도는 좋은거라고 중얼거린다
보아하니 앞니는 빠지고 머리는 하얗게 되었어도
기도하신 어르신 보다는 짐짓 10년은 젊어 보인다
졸고 있던 어르신은 어안이 벙벙하여 눈만 껌뻑거리더니
이내 다시 눈을 감아 버린다
시끄러운 남자는 졸고 있는 형님이 재미없는지
기도는 좋은것이니까 열씸히 기도하라며 자리를 이동했다
젊은 사람이 졸고 있는 앞에 가서 무어라 중얼거리는데
들리지 않지만 젊은 사람이 자리를 떠나는 것이 보인다
시끄러운 사내는 다시 돌아오더니 앞 자리가 비어 있는 걸 보고 털썩 주저 앉는다
아마도 술에 취한듯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무스탕을 입은 외투 속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모양이다
배꼽위에까지 속살이 훤히 드러나 보이니 보기에도 흉하다
시끄러운 사내가 갑자기 노래를 부른다
♬목이메어 불러 보는 내 마음을 아시나요 사랑했던 내님은 철새따라 가버렸네♬
그 사람의 얼굴을 무심히 바라 보았다
비록 앞니는 빠지고 머리는 하얘 모자로 가리워졌지만
얼굴은 잘 생긴 편인것 같다
시끄러운 사내의 얼굴에서 웬지 서글픈 모습이 그려졌다
"저 사람도 한때는 잘 나갔겠지...지금은 후회의 수렁에서
헤쳐 나오지 못할 뿐 일거야" 라고 생각하며 망상에 잠겨 있는데
갑자기 내 앞으로 시끄러운 사내가 다가 온다
듬직한 아들이 있어 다소 침착하게 마음을 가라 앉혔지만
가슴은 두 방망이질로 벌써 내 딛고 있었다
예전에 전철에서 일이다
맹인으로 보이는 젊은 사람을 도와 주었는데 다짜고짜 손목을 잡고
끌어 내리려 하는 것이다
전철에는 사람들이 가득한데도 누구하나 도와주려하지 않았다
그 일이 있은 후로는 이상한 낌새만 보여도
나는 경계태세로 돌변하는 습관이 생겼다
시끄러운 사내는 무어라 하는데 알아 들을 수 없을 뿐더러
놀란 가슴때문에 들리지도 않았다
한번 놀란 가슴은 아들이 옆에 있어도 진정되지 않았고
그 사람이 옆으로 비껴 설 때 아들 손잡고 그 자리를 벗어 나야 했다
한쪽에서 다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저쪽 끝에서 젊은 사내와 실갱이를 벌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지만
우린 목적지에 다 왔으므로 전철에서 내려야 했다
무엇이 그를 이른 시간부터 술을 먹게 했을까!
무엇이 그를 저토록 슬프게 하였을까!
전철 개찰구를 빠져 나오는 순간 많은 생각은 주머니 속 먼지를 털어 내듯
내 머리속에서 털어 버려야 했다
아들과 데이트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