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서 아이들 공놀이에 갑자기 뛰어들어 손으로 마구 공 주무르는 건 철부지여서가 아니야 둥글기 때문
거리에서 골동상 유리창 느닷없이 깨뜨리고 옛 항아리 미친 듯 쓰다듬는 건 훔치려는 게 아니야 이것 봐, 자넨 몰라서 그래 둥글기 때문
거리에서 노점상 좌판 위에 수북수북히 쌓아 놓은 사과알 자꾸만 만지작거리는 건 아니야 먹고 싶어서가 아니야 돈이 없어서가 아니야 모난 것, 모난 것에만 싸여 살아 둥근 데 허천이 난 내 눈에 그저 둥글기 때문
거리에서 좁은 바지 차림 아가씨 뒷모습에 불현듯 걸음 바빠지는 건 맵시 좋아서가 아니야 반해서도 아니야 천만의 말씀 색골이어서는 더욱 절대 아니야 둥글기 때문
불룩한 젖가슴 도톰한 입술 새빨간 젖꼭지나 새빨간 연지 그 때문도 아니야 뚫어져라 끝내 마주 쳐다보는 건 모두 다 그건 딱딱한 데, 뾰족한 데 얻어맞고 찔려 산 내겐 환장하게 보드랍고 미치고 초치게 둥글기 때문
요점 정리 지은이 : 김지하 갈래 : 서정시, 자유시 구성 :
주제 : 둥근 것에 대한 추구(생명다운 생명의 추구)
내용 연구 거리에서 아이들 공놀이에 갑자기 뛰어들어 손으로 마구 공['둥근' 것의 이미지 : 보드라움, 가벼움, 밝음, 해맑음, 작음] 주무르는 건 철부지여서가 아니야 둥글기 때문[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는 것, 거대한 순환의 고리를 따라 흘러가는 것, 화자는 억압의 공간에서 벗어나 소생의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으로 둥근 것, 소생하는 것, 순환하는 것, 생명을 추구하는 것이다.]
거리에서 골동상 유리창 느닷없이 깨뜨리고 옛 항아리[둥근 것] 미친 듯 쓰다듬는 건 훔치려는 게 아니야 이것 봐, 자넨 몰라서 그래 둥글기 때문
거리에서 노점상 좌판 위에 수북수북히 쌓아 놓은 사과알[둥근 것] 자꾸만 만지작거리는 건 아니야 먹고 싶어서가 아니야 돈이 없어서가 아니야 모난 것, 모난 것[둥근 것과 대립 / 자연의 질서가 차단된 것]에만 싸여 살아 둥근 데 허천이 난['음식을 게걸스럽게 먹어 대다'의 의미를 가진 전라도 사투리로 '심하게 먹어 대다'에서 '심하게'라는 정도의 의미만 남아 강조적 표현으로 쓰임] 내 눈에 그저 둥글기 때문
거리에서 좁은 바지 차림 아가씨 뒷모습[둥근 것]에 불현듯 걸음 바빠지는 건 맵시 좋아서가 아니야 반해서도 아니야 천만의 말씀 색골[색을 즐겨 탐하는 사람. 또는 그런 생김새. 호색꾼]이어서는 더욱 절대 아니야 둥글기 때문[여성적, 곡선적 세계관, 모난 것이 없이 부드럽고 원만하여 모든 것을 두루 포괄하는 '완전성'의 세계]
불룩한 젖가슴 도톰한 입술 새빨간 젖꼭지나 새빨간 연지[둥근 것에 해당하지 않음] 그 때문도 아니야 뚫어져라 끝내 마주 쳐다보는 건 모두 다 그건 딱딱한 데, 뾰족한 데 얻어맞고 찔려 산[결핍의 상황에 있는 화자, 둥근 것을 지향하는 이유, 모난 것, 거대한 순환을 이탈한 것, 생명의 소실, 결핍의 공간] 내겐 환장하게[어떤 것에 지나치게 몰두하여 정신을 못 차리는 지경이 됨을 속되게 이르는 말] 보드랍고 미치고 초치게 둥글기 때문[선(線)적인 것에서 원(圓)으로 표상되는 둥근 것에의 지향]
이해와 감상 이 시에서 김지하 시인은 '둥근' 것들을 끊임없이 나열하며 그것과 '모난 것'들을 대치시킨다. 둥글다는 것은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는 것이며 거대한 순환의 고리를 따라 흘러가는 것이다. 이 시에서 시인은 둥근 것, 부드러운 것, 작은 것, 흐르는 것, 맑은 것 등에 대한 이미지를 강조하고 점점 더 많이 발견한다. 그는 작은 것, 연약한 것, 일상적인 것, 보통 사람의 세계로 눈을 돌리고, 그것의 가치, 오늘 이 자리에서의 가치를 긍정하려 했다. 시인은 가부장제와 봉건 시대의 남성적이고 제왕적인 것, 파시즘, 감옥과 같은 절망적인 상황의 대안으로 여성적이고 식물적인 것, 둥근 것을 향한 탐구를 택했다. 김지하 시인에게 여성적인 것, 즉 둥근 것을 찾는다는 일은 그 자체가 저항이었으며 그것은 곧 절망적인 상황에서 연명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살아나가는 생명다운 생명을 추구함을 뜻하는 것이다. 심화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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