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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스크랩] 제1회 여성조선 시 문학상

by 미스커피 2012. 4. 21.

대상

 

젖다 / 신소라

 

 

시닥나무 잎이 물속으로 낙화하며 동그랗게 파문을

내며 붉어진 꿈처럼 젖는다. 젖꼭지의 돌기가 멈추고

꽃 속의 꽃이 오랜 시간 간구해 온 나뭇잎이 나뭇잎을

 만지듯 풀이 풀의 어깨에 기대오듯 햇발에 바르르

불붙은 푸른 물줄기는 마르지 않아 밤낮 없는

머구리배 소리로 퉁퉁거려도 해가 지고 나는지 달이

뜨고 는지 마를 새 없이,

 

폐경 후, 나는 자궁이 낮달처럼 말라버린 것을

알았다. 늙어가는 것은 사위어는 그믐날 캄캄하게

젖은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는 걸 배에는 시린

바람이 들고 낡아버린 무릎에는 사근사근

바람소리를 내며 저리다는 것, 마치 공원묘지의 이마

위에 비로소 젖은 내 살과 뼈처럼 아릿아릿 비릿하게

초경의 꿈 나비처럼 하얗다.

 

 

우수상

 

형광등 /유현서

 

 

양쪽 눈 밑이 검게 변해가던 형광등

며칠 전부터 깜박임이 심상찮다

천장에 바짝 드러누워 꼼짝 못하고

어머니, 말기 암의 거친 숨 몰아쉰다

 

너무 뜨거운 제 몸을 든 채

거꾸로 매달려 살면서도

투정 한번 않던 그녀가

死力을 다해 깜박거린다

그 짧은 순간,

 

반들반들 닦이는 무쇠 솥이며

아침 마당을 쓸던 소리

장독대 옆 봉숭아처럼 터지는

아버지 기침소리까지 함께 다가온다

 

미안타는 눈빛들이 가득 모인

어둠 속의 안방

한동안 그 방엔 默默不答.

불이 켜지지 않았다

불을 켤 수 없었다

 

 

우수상

 

물 자르는 여자 / 손라희

 

 

저 여자

이안과 피안을 자르고 있다

탁탁탁

나뭇가지를 주워

물을 내리친다

수평으로 누워 있던 물이 부셔지며

반짝인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인연의 단단함

갈라지려야 갈라지지 않는 물을 자르고 있다

진저리 친다

 

송곳 같은 바람이 분다

그녀의 속을 후빈다

 

어둠으로 이루어진 언어들이 일어선다

꺽 어억 꺽 어억

울음을 몰고 오는 울음

저수지 옆 오래 산 나무들 그림자만큼이나 길다

 

서성대는 내 머리 위

조각만 남은 낮달이

파르하다

 

 

가작

 

 

휘슬 / 최한숙

 

 

대학로 좁다란 길모퉁이

마지막 가족처럼 밤이면 섬 몇 개 떠오르고

가슴 속 심연에서 심연으로

사람들의 바다를 유영한다

 

그 섬에서 매일매일 조금씩

늙어가고 있는 포장마차는

오늘도 바다를 씹고 있는 중이다

속이 텅 빈 소라껍데기 두 개가

포장마차의 구석지에서

제 몸 비워낸 곳에 소리를 모으고

토막 난 해삼 몇 토막 아릿하게 아릿하게 꿈틀거리면

낯모르는 여자의 조각난 바다는

고단한 삶을 잠시 내려놓은

사람들 입 안에서 또 한번

출렁이는 바다가 된다

 

주름지고 불친절한 이야기를 파는 포장마차

내 마음속 외딴 섬에서 섬까지

열리는 깊은 바다

그 언저리에서 다친 꿈들이 하나 둘

소라껍데기 속으로 밀려들어와

한 번씩 소라 고동을 불러댄다

다시, 가보라는 고마운 휘슬처럼

 

 

가작

 

엄마를 두고 왔다 / 양연이

 

 

엄마를 두고 왔다

 

커다란 아궁이 옆 돌더미 속에

장작불 지피는 모습을 홀깃 보다

그냥 그곳에 엄마를 두고 왔다

 

여러 층 쌓인 장작나무 옆에

긴 빗자루를 들고 나무 위

눈을 쓸어내리시던

엄마를 두고 왔다

 

꽝꽝 얼린 옥수수와 산밤이 가득한

냉장고 문을 열고 서 있는 딸에게

얼른 고구마 한 냄비를 쪄 주시는

엄마를 두고 왔다

 

언제 간다 할까

딸 눈을 피하시던 엄마의 눈을 보고

곧 다시 올 거라며

서둘러 말하고는

엄마를 두고 왔다

 

그래서 엄마는 지금 여기에 없다

내가 엄마를 그곳에 두고 왔기 때문에

나만 여기에 있다

 

 

 

 

 

 

 

 

 

 

출처 : jsh 과메기
글쓴이 : 과메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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