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박스를 보낸다 / 이향숙
뿌리를 키우는 일이 단순한 욕망이 아님을
베란다 종이 박스 안
감자는 이미 알고 있었지
제 몸 쪼그라드는 줄 이미 알고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 있으니
뿌리를 키우는 일이 단순한 인연이 아님을
마른 젖무덤을 택배로 대신한
어미들은 이미 알고 있었지
사는 일이란 굳이
자기를 먹여 뿌리를 키우는 일.
제 몸 어딘가로부터
간지럼처럼 돌아 난 입술들이
어그적 어그적 거칠어지는 동안
온몸을 쪼글쪼글 비틀어서까지
마지막까지 비워진 영혼들은
날카로운 뿌리 끝조차 애틋이 쓰다듬고
철없는 뿌리는 어느새
조랑조랑 새로운 열매를 잉태하니
뿌리를 키우는 일이 단순한 인연이 아님을
이미 한 세상이 알고 있어
감자는, 오늘도
박스 안에서 기껍게 시름시름 앓고
세상의 모든 어미들은 비워 낸 제몸 뿌리 끝을 찾아
도시로 도시로
감자 박스를 보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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