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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여성조선3회대상 시

by 미스커피 2012. 4. 21.

순장자들의 눈을 보았는가

금시아

꽃 한 송이 없는 누런 상여들이 느린 걸음으로 능선을 오른다

얼어붙은 햇살의 속울음이 길게 줄을 잇고

이 곳 저 곳에서 나선 만장의 대열은 그저 커다란 눈만 껌벅거릴 뿐

적막이 느리게 느리게 뒤를 따른다

작은 모습으로 시작한 폭군의 바이러스는 거대했다

폭군이 서슬 퍼런 얼음의 날을 세울수록 파문은 빨랐다

소리 없는 쇠나팔은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메아리쳤고

메아리에 마비된 것처럼 소들은 무작정 묵묵히 폭군을 따랐다

그 옛날 왕의 출상 길을 따르던 순장자들처럼

자원도 징발도 아닌 젖은 눈망울은 무섭고 깊었다

아직 봄이 먼 언 땅에 몸을 누이는 그들 위에서 비릿한 향기가 훅,

돌뚜껑 같은 하루하루가 구덩이를 덮고 또 덮고......

폭군의 얼음칼이 천적인 햇살에 무릎을 꿇을 때까지

길고 긴 비릿한 날들이었다

봄의 기척에 전쟁은 끝났다

순장길에 올랐던 소들의 무덤들은 벌써 겨울을 잊는다

그 새 무덤위에는 무심한 새 풀들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누구도 일부러 기억을 회피하고 봄은 오고

화농진 흙더미만 더 붉어지고 있을 뿐이다

먹먹한 겨울이 뒤에서 그 큰 눈을 껌뻑, 껌뻑거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