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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시화작품방/여성문학회

(19집)밧줄,나는야노인,시어머니,몸빼바지,아카시아

by 미스커피 2012. 11. 8.

 

*밧줄

죽을 힘을 다해 버텨라

머리속이 까맣다

발작을 일으켜도

놓지 않을

이 손

떨어지지 않게

쇠사슬로 꽁꽁 묶었으면

놓아도 그만인것을

온 몸 숯검댕이 날리우고

깨문 입술 선혈낭자한데

등산화 끈  풀어헤치라

신발 요동친다

굽이굽이 돌아온 길

산자락 요염히

걸터 앉은 운무

쉬어가라  속삭였을진대

귀 막고

저 멀리 내다버렸네

 

어이 저 길을 걸어왔을꼬!

 

 

*나는야 노인

지팡이 흔들흔들

고개는 설레설레

열심히 턱을 놀리지만

씹지 않아도 고드름 하나

짝발 질질 끌며

무작정 걷다가도 꽥 소리한번

고사리 앞에 쪼그리고 앉아

어른보면 인사를 해야지

참견하며 껄껄껄

 

백발에 역겹다고?

동네마다 폐휴지 동나고

자식들 민폐될까 반 벙어리

피할 수 없는 외길 인생

방향은 하나

아름다운 흠뻑적신

그렇게 가는거야

 

 

 

 

*시어머니

옥천에 가야 한다

 

어머니가 훔쳐 가신 봄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햇살이 따갑다고 느꼈을 때

빈자리는  흐물거렸다

목젖이 타들어 간다

손 끝에서 흔들리는 이름표는

치매걸린 시어머니 명찰이었다

 

 

 

*몸빼바지

바지가랭이 사이로  옥구슬 굴러 간다

숨이 멈출 듯 고쟁이는 할딱거리고

어둠 속에 묻히고 헹가래에 묻히고

잠시 고요해짐을 느낄 때

손바닥에 털썩 주저 앉는다

바보 아닌 바보는 2%천재

허리 살들이 파도를 치고

신발 밑창이 불을 지펴도

홍조를 띤 몸빼바지는

대한민국 아줌마 스타일...

 

 

 

 

*아카시아

한 숫가락  

너를 마신다

갈증은 여전한데

입속에서 나를 지배하려 든다

호리병에서 배고플 때마다

꺼내 먹을 수 있다면

회심의 미소를 잡고 싶다

해가 바뀌면 찾아 올 너

거부하는 몸짓에 눈쌀만 찌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