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방/유명시212 변두리 /김광섭 변두리 흙을 벗고 시멘트를 입는 근대풍(近代風) 호박꽃 속에서 아기가 나던 조상의 밭은 큰 거리로 나가고 변두리만 남아서 대머리처럼 외로이 등성이로 슬슬 기어오른다 바람이 왔다가도 정둘 곳 없어 잡초와 놀다가 홧김에 구름을 몰고 와서 마구 깎아 낸 기슭 뻐얼건 황소 엉.. 2012. 1. 4.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김광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4·19가 나던 해 세밑 우리는 오후 다섯시에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불도 없는 차가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 뿜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정치와는 전혀 관계없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 결론 없는 모임.. 2012. 1. 4. 상행 /김광규 상행(上行) 가을 연기 자욱한 저녁 들판으로 상행 열차를 타고 평택을 지나갈 때 흔들리는 차창에서 너는 문득 낯선 얼굴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너의 모습이라고 생각지 말아 다오. 오징어를 씹으며 화투판을 벌이는 낯익은 얼굴들이 네 곁에 있지 않느냐. 황혼 속에 고함.. 2012. 1. 4. 식목제 /기형도 식목제(植木祭) 어느 날 불현듯 물 묻은 저녁 세상에 낮게 엎드려 물끄러미 팔을 뻗어 너를 가늠할 때 너는 어느 시간의 흙속에 아득히 묻혀 있느냐 축축한 안개 속에서 어둠은 망가진 소리 하나하나 다듬으며 이 땅 위로 무수한 이파리를 길어 올린다 낯선 사람들, 괭이 소리 삽소.. 2012. 1. 4. 이전 1 ··· 47 48 49 50 51 52 5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