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희덕 "비 오는 날에"(낭송하기 좋은 시)
내 우산살이 너를 찌른다면, 미안하다.
비닐 우산이여
나의 우산은 팽팽하고
단단한 강철의 부리를 지니고 있어
비 오는 날에도 걱정이 없었거니
이제는 걱정이 된다.
빗속을 함께 걸어가면서 행여
댓살 몇 개가 엉성하게 받치고 선
네 약한 푸른 살을 찢게 될까 두렵구나.
나의 단단함이 가시가 되고
나의 팽팽함이 너를 주눅들게 한다면
차라리 이 우산을 접어 두겠다.
몸이 젖으면 어떠랴
만물이 눅눅한 슬픔에 녹고 있는데
빗발이 드세기로
우리의 살끼리 부대낌만 하랴.
비를 나누어 맞는 기쁨,
젖은 어깨에 손을 얹어
따뜻한 체온이 되어줄 수도 있는
이 비 오는 날에
내 손에 들린 우산이 무겁기만 하다.
한계령을 위한 연가 / 문정희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뉴스는 다투어 수십 년 만의 풍요를 알리고
자동차들은 뒤뚱거리며
제 구멍들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
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긴 척 기꺼이 묶였으면.
오오, 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이윽고 날이 어두워지면 풍요는
조금씩 공포로 변하고, 현실은
두려움의 색채를 드리우기 시작하지만
헬리콥터가 나타났을 때에도
나는 결코 손을 흔들지 않으리.
헬리콥터가 눈 속에 갇힌 야생조들과
짐승들을 위해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시퍼렇게 살아 있는 젊은 심장을 향해
까아만 포탄을 뿌려대던 헬리콥터들이
고라니나 꿩들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자비롭게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나는 결코 옷자락을 보이지 않으리.
아름다운 한계령에 기꺼이 묶여
난생 처음 짧은 축복에 몸둘 바를 모르리.
신 록 / 서정주
어이 할꺼나
아, 나는 사랑을 가졌어라
남몰래 혼자서 사랑을 가졌어라
천지엔 이미 꽃잎이지고
새로운 녹음이 다시 돋아나
또한번 날 에워싸는데
못견디게 서러운 몸짓을 하며
붉은 꽃잎은 떠어져 내려
펄펄펄 펄펄펄 떨어져 내려
신라 가시내의 숨결과 같은
신라 가시내의 숨결과 같은
폴밭에 바람속에 떨어져 내려
올해도 내 앞에 흩날리는데
부르르 떨며 흩날리는데
아, 나는 사랑을 가졌어라
꾀꼬리처럼 울지도 못할
기찬 사랑을 혼자서 가졌어라
이 바람속에 / 김남조
누가 나를
잊으며 돌아서나 보다
이 바람속에
아슬한 옛날 흐느끼며 흐느끼며
그리운 이의 혼령을 박아 뉘었다는
그 구리거울을 본딴 무엇인가
생김새도 그림자도 가릴새 없이
선연히 비치며 돌아서 가는
이 분은 나의 누구입니까.
바람은 찢어진 피리의 소리
하 섧은 파적의 피울음이 아니고야
바람은 분면 찢어진 피리
나도 바람처럼 울던 날을 가졌더랍니다.
달밤에 벗은 맨몸과도 같이
염치 없고도 어쩔 수 없는 회상
견뎌낸 슬픔도 지나고
못견딘 슬픔도 지나고
모두 물처럼 흘러갔는데
잊어버리노라 죽을 뻔하고
잊혀짐에서 다시 죽을 뻔하는
왜 아직 이런 것이 남았답니까.
반생을 기울인
아쉽고 보고지운 마음이
지금에야 발효하여
술이되는 이 시간
쓰고 유익한 한약 같은
도무지 한약 같은 어둠만이
몰려듭니다. 그려
어머니에게 쓴 마지막 편지 /문진섭
어머니, 소생 먼저 갑니다
가슴에 지우지 못할 대못들을 박고
이승, 하직 인사입니다
땅을 친들 하늘에 외친들 어쩌겠습니까
이게 제 운명인 것을
먹구름을 내몰고 얼굴 환하던 햇살이
저 아니였습니까
저며 오는 이 피눈물 훈훈했던 어머니 손길
만감이 교차되는 시간입니다
어머니, 그리움은 꽃이 된다 했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어린 두 아이를 남겨 두고
가슴 속이 숯덩이뿐인 아내를 두고
총총 걸음 하는 이 길은 무엇입니까
목이 메이고 가슴이 찢어지는 오늘은
또 무슨 의미입니까
병상에서 시름에 겨울 어머닐 두고
발걸음이 천근인들 도리 없나 봅니다
이제 원망도 후회도 없이 다 날려 보냅니다
어머니, 부디 제 몫까지 천수를 누리십시오
먼 어느 날 비단 깔고 꽃잎 뿌리며
꽃가마 짊어지러 오겠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
오늘은 하염없이 어머니 곁이 따뜻합니다
마냥 이렇게 잠들고 싶습니다.
도반
향 명 김 상 경 (한국문협,현대시협)
여자는 만날 때 그랬다
허리가 아프다고
바다,
아니 숲의 내음에 미치겠다고
여자는 새벽 옹달샘 토기 처럼 떠났고
남자는 늙은 산지기 처럼 남아서 하얀 글을 쓴다
멀리서 변방의 북소리 들려온다
산 너머 어스름에 숨쉬기 괜찮다는 그쪽 소식을 전하는 것일까
둥둥둥... 작고 아스라한 파동
사념의 벌레들에 물어 뜯기는 가슴의 파노라마
봄날 손잡은 결연이 시리다
떠나야 할 자는 남고 남아야 할 자는 떠난 자리
가지 취 내음 살풋하다
여기 회색의 도시 운무로 가득, 콧등시린 오후
어머니의 호호 숨결이 묻혀 있을 툰드라의 땅
으로.. 날아가고 싶다
날개야 돋아라 돋아라
겨드랑이 빈 바람
간이역 향명 김상경
나의 사랑은 간이 역에
서 있었지
계절이 옷을 갈아 입을 때 마다
그리움의 웃음소리 플렛 홈에 가득 피어나고
그 웃음소리 희미해질 즈음
오래된 성 처럼 녹슬은
휘파람 소리 놀다 갔지
간이 역은 철거 된다고
해수병 앓는 역장은 휘어진
그림자의 끝에서 덤덤히 말했네
그림자 마저 떠나 버린 뒤
이름을 삼켜 버린 푯말하나
어둠이 눈을 가릴 때 까지
꼭 안고 서 있는 간이역
나의 삼십년 쯤 사랑은
거기에 서서
역 깃발 바람의 구멍 속에
오후의 신문지처럼 구겨져
백분처럼 희어 갔지
*김 상경
신석정 시인 문하, 문예사조 등단
한국문인협회
한국 현대시인협회 이사
양천문협 부회장
잃어버린 청춘 김은주
그 많은 열정을 가슴에 묻고
사람들 오가는 골목골목을
어찌 쉬이 누비고 다니겠냐고
끊임없이 넘실대다 스스로 무너지는
멀고 먼 바다에나 무심히
실어 보낼 일 아니겠냐고
시인이 건네 준 몇 마디 말에
폐선처럼 멈춰버린
얼룩진 청춘
봄볕은 따사로와 생명을 부르건만
경이로운 탄생 앞에
조각난 나의 일상
이율배반적 삶의 대립 속에서
극한의 오한으로 몸살을 앓아
폐 휴지처럼 구겨진 내 영혼이
봄 볕 창공에서 수없이 낙하한다.
하얗게 하얗게만 야위어 가는
창백한 내 입술 위 날카로운 키스
한 점 훈풍은
너와 나의 가슴에 뚜렷한 실선을 긋고.
그대에게 가는 길 김은주
일영(日影)에 빛나는 강물
저토록 흔들리는 것은
내 맘 속 그대
편히 머무르지 못함이련가
추상(追想)처럼 깔린
푸른 안개 어딘가
고운 그림자
나를 두고
차마 끊지 못한
그대 발자취
세월을 거슬러
그대에게 가는 길은
강물을 가르고
그림자를 지우나요
안개 속을 지나서
영원(永遠)으로 가나요
가끔은 비 오는 간이역에서
은사시나무가 되고 싶었다 /이정하
햇빛은 싫습니다.
그대가 오는 길목을 오래 바라볼 수 없었으므로...
비에 젖으며 난 가끔은
비 오는 간이역에서 은사시나무가 되고 싶었습니다.
비에 젖을수록 오히려 생기 넘치는 은사시나무,
그 은사시나무의 푸르름으로 그대의 가슴에
한 점 나뭇잎으로 찍혀 있고 싶었습니다.
어서 오세요, 그대.
비 오는 날이라도 상관 없어요.
아무런 연락 없이 갑자기 오실 땐
햇빛 좋은 날보다 비 오는 날이 제격이지요.
그대의 젖은 어깨, 그대의 지친 마음을
기대게 해 주는 은사시나무. 비 오는 간이역,
그리고 젖은 기적소리.
스쳐 지나가는 급행열차는 싫습니다.
누가 누군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빨리 지나가버려
차창 너머 그대와 닮은 사람 하나 찾을 수 없는 까닭입니다.
비에 젖으며 난 가끔은 비 오는 간이역에서
그대처럼 더디게 오는 완행열차,
그 열차를 기다리는 은사시나무가 되고 싶었습니다.
연 어 / 박민흠
굽잇길 돌고 돌아 물의 뼈를 부수며 이녁까지 왔다.
평생을 울고 웃던 이역 땅을 버리고 한 숨에 돌아왔다.
이날저날 다 떼어버리고 남은 졸가리 같은 귀향길
갓바다를 벗어나니 한세월 숨죽이던 본능이 꿈틀거린다.
세월 탓인지 깊숙한 물에 익숙하던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소금기 하나 없는 정결한 강물의 젖살을 더듬어본다.
물의 팽팽한 입자마다 제 몸을 터트리며 머릿골을 누른다.
밀교의 예언서에서도 고향 가는 길을 말해주지 않았다.
아침나절 비늘결처럼 몸 흔들던 물살이 거칠다.
강물의 발길질에 잔가시들이 부러진다.
살몸살에 어깨뼈가 와지끈 부서진다.
어제 얻어맞은 정강이가 시큰거린다.
말의 토막이 끊어지며 명치끝에서 숨이 멎는다.
간덩이에 숨겨놓은 힘을 꼬리에 모은다.
아등아등 물때설때의 흐름을 찾는 눈길이 바쁘다.
바다살이 몸때를 벗겨내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
철 지난 세월에 굳은 살이 박혀 고향 가는 길이 천리 길이다.
탄갈(殫竭)의 시간 점점이 흐르면서 몸 비늘 겹겹이 벗겨진다.
독 없는 몸 안에서 투명한 분홍빛 구슬들이 꿈틀거린다.
구슬 하나를 뽑아낼 때 마다 구부러진 주둥이, 사나운 이빨,
동료들은 눈 부릅떠 {악} 소리를 지르며 죽어갔다.
사랑을 위하여 서슴없이 자신의 몸을 내어주며
해골산 위에 깃발을 꼽던 신의 피사체처럼
생명의 신비를 가르치며 죽어간 동료들의 주검
세상의 거친 때를 벗기며 생살 타는 냄새가 비릿하다.
아프리카 흰 코끼리가 마지막 숨을 태우고 있다.
불콰한 단풍잎 하나가 허공을 태우며 떨어진다.
나를 벗겨내는 일이 이다지 힘드니 물도 불타고 있다.
황혼의 머릿결을 쓰다듬으며 선지자처럼 서있는
나무들의 눈가에 차란차란 이슬이 맺힌다.
사랑한다는 일은 저리도 불타는 일이다.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 한용운
그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어느 햇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내 안에서만 머물게
하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바람같은 자유와
동심 같은
호기심을 빼앗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내게만 그리움을 주고
내게만 꿈을 키우고
내 눈 속에만 담고픈
어느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내 눈을 슬프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 마음을 작게 만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만을 담기에도 벅찬
욕심 많은 내가 있습니다.
여 백 / 도종환
언덕 위에 줄지어 선 나무들이 아름다운 건
나무 뒤에서 말없이
나무들을 받아 안고 있는 여백 때문이다.
나뭇가지들이 살아온 길과 세세한 잔가지
하나하나의 흔들림까지 다 보여주는
넉넉한 허공 때문이다.
빽빽한 숲에서는 보이지 않는
나뭇가지들끼리의 균형
가장 자연스럽게 뻗고 있는 생명의 손가락을
일일이 쓰다듬어주고 있는 빈 하늘 때문이다.
여백이 없는 풍경은 아름답지 않다.
비어 있는 곳이 없는 사람은 아름답지 않다.
여백을 가장 든든한 배경으로 삼을 줄 모르는 사람은.
세상속에서 만난 인연 /이문주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당신을 만났다는 것이 신기하지만
찾아낸 당신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
더 신비로운 일입니다
한번도 만난 일 없고
한번도 생각해 본적 없는 당신이
다려 준 사람처럼 내 앞에서 있다는 사실
이 모든게 우연일까요
수 많은 사람들이 옥 가는 길 위에서
우리가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라 생각합니다.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 할 수 없는 인연들도 많고 많은데
우린 행운아인가 봅니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찾아낸
당신의 미소는
먼곳에 있어도 느낄수가 있고
이제 함께 가는길 위에서
나라니 걸어가는 연습으로
하루하루가 즐겁고 행복합니다
언제나 먼발치의 그리움으로
내 눈 속에 다 담을 수 없었던
그리움이 내 앞에 있어
이제까지 그 누구에게도
보일 수 없었던 나를 드러내 놓고
당신 사랑하기를 다하겠습니다
언젠가는 힘이 다해
내 손으로 당신을
이끌어 줄 수가 없겠지만
우리의 영혼이 따로따로
흩어지지 않고 한곳에 있다면
지금의 당신을 그대로 기억하며
죽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내 마음 아실 이 - 김영랑
내 마음 아실 이
내 혼자 마음 날 같이 아실 이
그래도 어데나 계실 것이면
내 마음에 때때로 어리우는 티끌과
속임없는 눈물의 간곡한 방울방울,
푸른 밤 고이 맺는 이슬 같은 보람을
보밴 듯 감추었다 내어 드리지.
아! 그립다
내 혼자 마음 날 같이 아실 이
꿈에나 아득히 보이는가.
향 맑은 옥돌에 불이 달아
사랑은 타기도 하오련만
불빛에 연긴 듯 희미론 마음은
사랑도 모르리, 내 혼자 마음은.
시낭송 할 때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시 낭송하기 좋은 시를 선택하는 겁니다.
너무 길어도 안 되고, 너무 짧아도 안돼요.
운율은 3음보나 4음보가 좋고요.
길이는 4연 12~16행정도가 알맞아요.
대단히 잘 쓴 시라고 해도 시낭송해서 들으면 별로인 게 있어요.
이 것 저 것 고를 여유가 없을 실지도 모르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제가 굳이 추천한다면 김영랑시인의 <내 마음 아실이>가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 위에 쓴 대로 길이도 맞고, 운율도 그렇고요.
선택이 끝나면 한 번 이 시를 읽어보세요.
내 마음 아실 이 - 김영랑
내 마음 아실 이
내 혼자 마음 날 같이 아실 이
그래도 어데나 계실 것이면
내 마음에 때때로 어리우는 티끌과
속임없는 눈물의 간곡한 방울방울,
푸른 밤 고이 맺는 이슬 같은 보람을
보밴 듯 감추었다 내어 드리지.
아! 그립다
내 혼자 마음 날 같이 아실 이
꿈에나 아득히 보이는가.
향 맑은 옥돌에 불이 달아
사랑은 타기도 하오련만
불빛에 연긴 듯 희미론 마음은
사랑도 모르리, 내 혼자 마음은.
한 번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이 시는 임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봐도 목소리에 그리워한다는 느낌이 젖어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누굴 보고 싶다고 말할 때 퉁명스럽게 ‘보고 싶다’고 한다면 그 ‘보고 싶다’라는 마음이 상대에게 전해지지 않겠죠. 그렇기 때문에 감정을 담는 것이 중요합니다.
감정을 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드라마에서 슬픈 장면이 나올 때 음악을 깔아주는 것처럼 님 또한 좋은 음악을 선곡하셔야 합니다. 여기서 좋은 음악이란 님에게 그리워하는 느낌이 전해지는 곡이 좋습니다. 이건 개인 각각이 틀립니다. 연기자들에게 눈물연기에 대해 물어보면 어떤 사람은 엄마 생각을 한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유년 시절 때 힘든 기억을 생각해 낸다고 합니다. 그런 것처럼 이건 개인이 틀립니다. 저 같은 경우엔 러프레터 ost 중에 있는 A Winter Story란 곡으로 했어요. 아시겠지만 러브레터라는 영화는 그리움에 대해 말해주는 영화입니다. 제가 왜 이 말씀을 들이냐면 시를 몇 번이나 읽어도, 여러 음악을 들어도 그리움에 대한 감정이 일지 않는다면 시낭송하려는 시와 같은 주제를 가진 영화를 보고, 그 영화에 나오는 테마음악을 들으면 좀 더 도움이 된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은 겁니다.
감정을 만드는 건 학습이 아니지만 각각이 얼개로 연결되어있어서 어떤 중추적인 것을 잘 만 찍어 낸다면 감정을 잡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란 걸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럼 시와 음악이 선택 됐으면, 시를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먼저 무대에 오르고 자세를 가다듬고, 마이크의 높이와 음향을 점검합니다. 검지랑 톡톡 쳐주시면 되겠습니다. 두 손을 가지런히 하고 인사를 합니다. 전주곡이 흐릅니다. 5초 정도 듣고 제목을 말하고 잠깐 사이 두고 다시 시인이름을 말합니다. 시인이름은 김. 영. 랑. 이런 식으로 하나씩 말합니다.)
내 마음/ 아실이//-김영랑
(그런 후 간격을 두고 2~3초 후 본문을 읽습니다. 본문낭독 시 유의 점은 시도 기승전결이 있다는 것입니다.)
내 마음/ 아실 이// (제목처럼)
내 혼자 마음/ 날 같이 아실 이// (위로가 된다는 뜻이죠)
그래도/ 어데나 계실 것이면// (행방을 찾고 싶은 마음)
내 마음에 때때로/ 어리우는 티끌과// (여기서 티끌할 때는 약간 또렷하게)
속임 없는 눈물의/ 간곡한 방울방울,// (방울방울 약간 사이를 띄워서)
푸른 밤/ 고이 맺는/ 이슬 같은 보람을//(푸른 밤이라 말하고 약간 여운을 남기고)
보밴 듯 감추었다/ 내어 드리지.//(드리지도 여운을 남기고)
아!/ 그립다//(여기서 ‘아’는 부드럽게 ‘그립다’는 단념하듯)
내 혼자 마음/ 날 같이 아실 이//
꿈에나/ 아득히 보이는가.//
향 맑은 옥돌에/ 불이 달아//(‘향 맑은’은->‘햐~앙 맑은’처럼 조금 천천히)
사랑은/ 타기도 하오련만//
불빛에 연긴 듯/ 희미론 마음은//
사랑도 모르리,// 내 혼자 마음은.//(끝은 호흡을 길게)
이런식으로 하시면 됩니다.
끝으로 말씀드리자면 시낭송회 때 떨리지 않는 방법은 연습 밖에 없습니다.
한 100번 정도 연습하시면 자신감이 붙으셔서 떨리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녹음해서 님께서 한 번 들어보세요. 그러면 어디가 어색하고 어디를 더욱 더
강조해야 하는 지 대략 판단이 오실 겁니다.
그날
빈 가슴 채우려
간만에 회포라도 풀려고
여러 차례 문자에 만남을 성사시켰다
언제부턴가 내게 한턱 낸다고 했던 말은
잊은 듯 연락 없던 사람
허공 속에 허허로운 마음 뿌리며
지냈던 시간 수습고자
우아한 식당에서 우아한 음식
먹고 싶었는데
어젯밤 술에 아직도 헤매며
해장국을 찾아 찾은 집 뼈다귀 해장국
어떻게 시켜도 내가 제일 싫어하는걸 시키는지
만남이 중요성을 음식에 비하랴 라는 마음에 흔케이 저녁은 해결했다
뼈다귀에 이슬 두어 잔
저녁이 잠자러 갈 즈음 길가 가로등 하나 둘 노래할 때
불빛에 취해 이슬 한 방울에 취해
발길 멈춘 것은 노래방
악을 쓰며 달래주던 단어들
모였다 훑어졌다 다시 모이는
먼지 알갱이들처럼
조여오는 숨소리 귓전에 다가오면 멀어져 버릴까 두려움으로 다가선다
이심전심 통하는 마음으로 언제 다시 만날 기약 없이 헤어져
그날이 가고 오늘이 오니 일상생활에
쿨 한 척 그날 잊으려 하네
봄날은 간다
안도현
늙은 도둑놈처럼 시커멓게 생긴
보리밭가에서 떠나지 않고 서 있는 살구나무에
꽃잎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자고 나면 살구나무 가지마다 다닥다닥
누가 꽃잎을 갖다 붙이는 것 같았다
그렇게 쓸데없는 일을 하는 그가 누구인지
꽃잎을 자꾸자꾸 이어붙여 어쩌겠다는 것인지
나는 매일 살구나무 가까이 다가 갔으나
꽃잎과 꽃잎 사이 아무도 모르게
봄날은 가고 있었다
나는 흐드득 지는 살구꽃을 손으로 받아들다가
또 입으로 받아먹다가 집으로 돌아가곤 하였는데
어느날 들판 한가운데
살구나무에다 돛을 만들어 달고 떠나려는
한척의 커다란 범선을 보았다
살구꽃 피우던 그가 거기 타고 있을 것 같았다
멀리까지 보리밭이 파도로 넘실거리고 있었다
어서 가서 저 배를 밀어주어야 하나
저 배 위에 나도 훌쩍 몸을 실어야 하나
살구꽃이 땅에 흰 보자기를 다 펼쳐놓을 때까지
나는 떠나가는 배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
연어 / 정호승
바다를 떠나 너의 손을 잡는다
사람의 손에서 이렇게
따뜻함을 느껴본 것이 그 얼마 만인가
거친 폭포를 뛰어넘어
강물을 거슬러올라가는 고통이 없었다면
나는 단지 한 마리 물고기에 불과했을 것이다
누구나 먼 곳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기는 쉽지 않다
누구나 가난한 사람을 사랑하기는 쉽지 않다
그동안 바다는 너의 기다림 때문에 항상 깊었다
이제 나는 너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가 산란을 하고
죽음이 기다리는 강으로 간다
울지 마라
인생을 눈물로 가득 채우지 마라
사랑하기 때문에 죽음은 아름답다
오늘 내가 꾼 꿈은 네가 꾼 꿈의 그림자일 뿐
너를 사랑하고 죽으러 가는 한낮
숨은 별들이 고개를 내밀고 총총히 우리를 내려다본다
이제 곧 마른 강바닥에 나의 은빛 시체가 떠오르리라
배고픈 별빛들이 오랜만에 나를 포식하고
웃음을 떠뜨리며 밤을 밝히리라
가끔씩 그대 마음 흔들릴 때는/이외수
가끔씩 그대 마음 흔들릴 때는
한 그루 나무를 보라
바람부는 날에는
바람부는 쪽으로 흔들리나니
꽃 피는 날이 있다면
어찌 꽃 지는 날이 없으랴
온 세상을 뒤집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밤에도
소망은 하늘로 가지를 뻗어
달빛을 건지더라
더러는 인생에도 겨울이 찾아와
일기장 갈피마다
눈이 내리고
참담한 사랑마저 소식이 두절되더라
가끔씩 그대 마음 흔들릴 때는
침묵으로
세월의 깊은 강을 건너가는
한 그루 나무를 보라
연탄한장/안도현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 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 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 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일 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네. 나는
부르면 눈물날것 같은 그대 /이정하
내 안에 그대가 있습니다
부르면 눈물이 날것 같은
그대의 이름이 있습니다
별이 구름에 가렸다고 해서
반짝이지 않는 것이 아닌 것처럼
그대가 내곁에 없다고해서
그대를 향한 내 마음이
식은 것은 아닙니다
돌이켜보면 우리 사랑엔
늘 맑은 날만 있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찌 보면
구름이 끼여 있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난 좌절하거나 주저앉지 않습니다
만약 구름이 없다면
어디서 축복의 비가 내리겠습니까
어디서 내 마음과 그대의 마음을
이어주는 무지개가 뜨겠습니까
내 안에 그대가 있습니다.
'연서' -프란체스카 리
이 세상에서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백 사람이 있다면
그 중에 한 명은 나입니다.
이 세상에서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열 사람 있다면
그 중에 한 명은 나입니다.
이 세상에서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한 사람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나입니다.
이 세상에서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면
그것은 내가 세상에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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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훤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삼고 피어 흥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방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청춘/사무엘 울만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기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그것은 장미 빛 뺨, 앵두 같은 입술,
하늘거리는 자태가 아니라
강인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는 열정을 말한다.
청춘이란
인생의 깊은 샘물에서 오는 신선한 정신,
유약함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를 뿌리치는 모험심을 의미한다.
때로는 이십의 청년보다
육십이 된 사람에게 청춘이 있다.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우리가 늙는 것은 아니다.
이상을 잃어버릴 때 비로소 늙는 것이다.
세월은 우리의 주름살을 늘게 하지만
열정을 가진 마음을 시들게 하지는 못한다.
고뇌, 공포, 실망 때문에 기력이 땅으로 들어갈 때
비로소 마음이 시들어 버리는 것이다.
육십 세이든 십육 세이든
모든 사람의 가슴 속에는 놀라움에 끌리는 마음,
젖먹이 아이와 같은 미지에 대한 끝없는 탐구심,
삶에서 환희를 얻고자 하는 열망이 있는 법이다.
그대와 나의 가슴속에는
남에게 잘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 간직되어 있다.
아름다움, 희망, 희열, 용기,
영원의 세계에서 오는 힘
이 모든 것을 간직하고 있는 한
언제까지나 그대는 젊음을 유지할 것이다.
영감이 끊어져 정신이 냉소라는 눈에 파묻히고
비탄이란 얼음에 갇힌 사람은 비록 나이가 이십 세라 할지라도
이미 늙은이와 다름없다.
그러나 머리를 드높여
희망이란 파도를 탈 수 있는 한
그대는 팔십 세일지라도 영원한 청춘의 소유자인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정호승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느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한 잎의 여자 / 오규원
나는 한 女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잎같이 쬐끄만 女子,
그 한잎의 女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잎의 솜털,
그 한잎의 맑음,
그 한잎의 영혼,
그 한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나는 정말로 한 女子를 사랑했네.
女子만을 가진 女子,
女子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안 가진 女子,
女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女子,
눈물 같은 女子, 슬픔 같은 女子,
病身 같은 女子,
詩集 같은 女子,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女子,
그래서 불행한 女子.
그러나 누구나 영원히 가질 수 없는 女子.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슬픈 女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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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백석이 되어 / 이생진
나는 갔다
백석이 되어 찔레꽃 꺾어 들고 갔다
간밤에 하얀 까치가 물어다 준 신발을 신고 갔다
그리운 사람을 찾아가는데 길을 몰라도
찾아갈 수 있다는 신비한 신발을 신고 갔다
성북동 언덕길을 지나
길상사 넓은 마당 느티나무 아래서
젊은 여인들은 날 알아채지 못하고
차를 마시며 부처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까치는 내가 온다고 반기며 자야에게 달려갔고
나는 극락전 마당 모래를 밟으며 갔다
눈오는 날 재로 뿌려달라던 흰 유언을 밟고 갔다
참나무 밑에서 달을 보던 자야가 나를 반겼다.
느티나무 밑은 대낮인데
참나무 밑은 우리 둘만의 밤이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울었다
죽어서 만나는 설움이 무슨 기쁨이냐고 울었다
한참 울다 보니
그것은 장발이 그려놓고 간 그녀의 스무 살 때 치마였다
나는 찔레꽃을 그녀의 치마에 내려놓고 울었다
죽어서도 눈물이 나온다는 사실을 손수건으로 닦지 못하고
울었다
나는 말을 못했다
찾아오라던 그녀의 집을 죽은 뒤에 찾아와서도
말을 못했다
찔레꽃 향기처럼 속이 타 들어갔다는 말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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