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
거기까지 닿은 길이
몇 갈래의 길과
가까스로 만나는 것을.
죽음은 죽음만큼 길이 적막하기를 바란다.
마른 소리로 한 번씩 귀를 닫고
길들은 저마다 추운 쪽으로 뻗는구나.
그러나 삶은 길에서 돌아가
잠든 마을에 재를 날리고
문득 팔짱 끼어서
먼 산이 너무 가깝구나.
눈이여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는가.
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
죽음이 삶을 껴안은 채
한 죽음을 받는 것을
끝까지 사절하다가
죽음은 인기척을 듣고
저만큼 가서 뒤를 돌아다본다.
모든 것은 낮아서
이 세상에 눈이 내리고
아무리 돌을 던져도 죽음에 맞지 않는다.
겨울 문의여 눈이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요점 정리
지은이 : 고은
성격 : 명상적, 주지적, 관념적, 철학적, 사색적
어조 : 담담하게 절제된 어조
구성 :
① 죽음과 삶의 길에 대한 구분된 인식 - 죽음은 죽음만큼 길이 적막하기를 바란다.(1연)
② 죽음과 삶의 길이 하나라는 깨달음 - 죽음이 삶을 껴안은 채 / 한 죽음을 받는 것을(2연)
제재 : 장례 의식
주제 : 죽음과 삶의 상거(相距)와 합일(合一) / 죽음을 통하여 깨달은 삶의 경건성, 죽음과 삶은 하나라는 깨달음
표현상의 특징 : '문의 마을'이라는 실제 공간을 삶과 죽음이 소통하는 공간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삶의 여정이자 죽음에 이르는 과정인 '길'을 통해 삶과 죽음이 하나라는 인식과 명상적이고 독백적인 어조를 통해 화자의 깨달음을 담담히 표현하고 있음
출전 : (문의 마을에 가서, 1974)
내용 연구
겨울 문의[죽음과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해 주는 공간]에 가서 (한 사람의 죽음)보았다.
거기[문의, 죽음의 세계]까지 닿은 길[화자가 문의로 가는 길이지만 속뜻은 죽은 자가 지금까지 살았던 인생의 길]이
몇 갈래의 길[삶과 죽음을 만나는 곳 / 죽음에 이르는 길]과
가까스로 만나는 것을.
죽음[일반적인 죽음]은 죽음만큼 길이 적막[화자가 느끼는 죽음 / 죽음의 모습]하기를 바란다.
마른 소리[비정함, 쓸쓸함]로 한 번씩 귀를 닫고[외부(삶)와의 단절 / 박목월의 '하관'에 비슷한 이미지가 있음]
길들은 저마다 추운 쪽[죽은 자들의 공간]으로 뻗는구나.[삶의 여정이 죽음으로 뻗어 있음]
그러나[반전으로 '죽음'으로 집중되는 시의 흐름을 '삶'으로 전환하고 있다] 삶은 길에서 돌아가
잠든 마을[삶]에 재를 날리고[살아 있는 사람들이 마을로 돌아가 고인의 유품을 태우는 광경을 표현]
문득 팔짱 끼어서
먼 산이 너무 가깝구나.[먼산 즉 죽음의 세계와 삶의 세상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인식]
눈[생사를 모두 포용하는 존재]이여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는가.
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
죽음이 삶을 껴안은 채
한 죽음을 받는 것을[삶과 죽음의 합일로 인한 경건성]
끝까지 사절하다가[죽음을 거부함]
죽음은 인기척[적막과 상대어로 삶의 모습]을 듣고
저만큼[심정적 거리이자 죽음과 삶의 물리적 거리] 가서 뒤를 돌아다본다.[생과 사는 하나일 수밖에 없다는 인식 / '죽음'과 '삶'이 상거(相距)와 합일(合一)의 모순적 관계에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시행]
모든 것은 낮아서[삶에 대한 겸허함]
이 세상에 눈[죽음과 삶의 의미를 다시 돌아보도록 만들어 준 매개물]이 내리고
아무리 돌을 던져도 죽음에 맞지 않는다.[죽음은 피할 수 없는 숙명적인 것임]
겨울 문의여 눈이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죽음과 삶의 동질성에 대한 철학적 통찰 - 죽음과 함께 삶도 흰 눈에 뒤덮여 간다. 다시 말해서 '눈'은 죽음과 삶과의 경계를 지우는 숙명적 존재로 이해할 수 있음.]
문의 마을 : 충북 청원군 대청 호반(湖畔)의 마을
이해와 감상
고은의 네 번쩨 시집 문의(文義)마을에 가서'(1974)의 표제시다. 이 시는 시인이 50-60년대 초기시의 허무주의에서 벗어나 작가가 사회적, 역사적 책무를 절감하고 민중적 각성의 시인으로 변신한 중기시의 서두를 장식한 것이다. 이 시는 모친상을 당한 신동문 시인의 고향인 충북 청원군 문의마을에 가서 장례식을 주관했던 사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전기적 사실이야 어떻든 시에 드러난 바로는 '문의 마을'은 이 시에서 죽음과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시적 공간으로 이해될 수 있다. 두 개의 연으로 이루어진 이 시의 첫 연에서 죽음은 길이 '적막'하기를 바라고, 삶은 길에서 돌아가 잠든 마을에 재를 날리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어, 죽음과 삶의 길이 어떻게 다른 것인가를 느끼게 한다.
그러나 둘째 연에 가면 죽음이 삶을 껴안은 채 한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또한 죽임이 '인기척'을 듣고 저만큼 가다가 뒤를 돌아보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어, 죽음과 삶의 길이 궁극적으로는 하나로 만날 수밖에 없다는 깨달음에 이르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첫 연과 둘째 연이 서로 대립적이면서도 상응하는 구조인 바, '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 거기까지 닿은 길이/ 몇 갈래의 길과/ 가까스로 만나는 것을'이라는 구절은 '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 죽음이 삶을 껴안은 채/ 한 죽음을 받는 것을'이라는 구절과 대응하는 것임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한편, 제2연 6행의 '저만큼 가서 뒤를 돌아다본다'는 구절에서는 기묘하게도 죽음과 삶의 상거(相距)와 합일(合一)을 함께 읽을 수 있다. 죽음과 삶의 길은 서로 모순된 것이면서도 하나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시인의 생각일 터이다.
그러므로 살아 있는 자가 아무리 돌을 던져 죽음을 쫓고자 하여도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숙명임을 깨닫게 된다.
심화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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