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터 관전이네 머슴 대길이는 상머슴으로 누룩도야지 한 마리 번쩍 들어 도야지 우리에 넘겼지요. 그야말로 도야지 멱 따는 소리까지도 후딱 넘겼지요. 밥 때 늦어도 투덜댈 줄 통 모르고 이른 아침 동네길 이슬도 털고 잘도 치워 훤히 가리마 났지요. 그러나 낮보다 어둠에 빛나는 먹눈이었지요. 머슴 방 등잔불 아래 나는 대길이 아저씨한테 가갸거겨 배웠지요. 그리하여 장화홍련전을 주룩주룩 비 오듯 읽었지요. 어린아이 세상에 눈 떴지요. 일제 36년 지나간 뒤 가갸거겨 아는 놈은 나밖에 없었지요.
대길이 아저씨더러는 주인도 동네 어른도 함부로 대하지 않았지요. 살구꽃 핀 마을 뒷산에 올라가서 홑적삼 큰아기 따위에는 눈요기도 안하고 지게 작대기 뉘어 놓고 먼데 바다를 바라보았지요. 나도 따라 바라보았지요. 우르르르 달려가는 바다 울음소리 들었지요.
찬 겨울 눈 더미 가운데서도 덜렁 겨드랑이에 바람 잘도 드나들었지요. 그가 말했지요. 사람이 너무 호강하면 저밖에 모른단다. 남하고 사는 세상인데
대길이 아저씨 그는 나에게 불빛이었지요. 자다 깨어도 그대로 켜져서 밤새우는 불빛이었지요.
요점 정리 지은이 : 고은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성격 : 민중적, 회고적, 토속적 어조 : 소박하고 친근한 이야기투 구성 1연 - 힘세고 근면하며 나에게 한글을 가르쳐 준 대길이 2연 - 인격적이고 생각이 깊은 대길이 3연 - 가난하지만 남과 함께 사는 대길이 4연 - 나의 영원한 스승 대길이 제재 : 머슴 대길이. 진솔한 민중의 삶 주제 : 머슴 대길이를 통해 깨닫는 함께 사는 삶의 아름다움 / 민중의 삶의 건강성과 더불어 사는 삶의 아름다움 특징 : 세계 최초로 사람만을 노래한 연작 시집으로 유명한 '만인보'에 실려 있는 작품으로 화자에게 올바른 삶의 지향점을 제시해 준 '대길이 아저씨'의 특징적 삶을 친근한 이야기체의 어조로 형상화하고 있으며, 구체적 지명과 대사를 인용하여 내용의 사실성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또한, 민중적이고 토속적 정서가 구체화되었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내용 연구 새터 관전이네[구체적 지명으로 사실성 강조] 머슴 대길이는 상머슴[일 잘 하는 장정 머슴]으로 누룩도야지 한 마리 번쩍 들어 도야지 우리에 넘겼지요. 그야말로 도야지 멱[목의 앞쪽] 따는 소리[울음 소리]까지도 후딱 넘겼지요. 밥 때 늦어도 투덜댈 줄 통 모르고[사려 깊고 너그러움] 이른 아침 동네길 이슬도 털고 잘도 치워 훤히 가리마[동네길] 났지요.[깨끗한 길 / 대길이의 근면성] 그러나 낮보다 어둠에 빛나는 먹눈이었지요.[밝게 깨어서 남의 어둠을 비추어 주는 존재로 대길이의 총명함을 표현함 / '먹눈'은 '소경'의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여기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무지를 벗어나게 하려는 의지를 나타낸다.] 머슴 방 등잔불 아래 나는 대길이 아저씨한테 가갸거겨 배웠지요. 그리하여 장화홍련전을 주룩주룩 비 오듯 읽었지요.['한글'과 '옛날 이야기책'을 가리키는 대유법] 어린아이 세상에 눈 떴지요.[한글을 깨우치고 세상을 알게 됨] 일제 36년 지나간 뒤 가갸거겨[한글] 아는 놈['한글'은 단순한 우리말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현실과 우리 민족 정신을 의미한다. 이러한 이유로 대길이는 시적 화자에게 큰 의미를 갖는다.]은 나밖에 없었지요.[시적 화자는 자신의 어린 시절 '불빛처럼 인생의 지침을 준 인물을 소개하며 과거를 회상하고 있다.]
대길이 아저씨더러는 주인도 동네 어른도 함부로 대하지 않았지요.[대길이는 미천한 신분이었지만, 인격이 훌륭하고 큰 뜻을 품고 있어서 어른들도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는 의미] 살구꽃 핀 마을 뒷산에 올라가서 홑적삼 큰아기[마을 처녀] 따위에는 눈요기[보는 것만으로 어느 정도 만족하는 일]도 안하고[세속적(이성)인 것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인격과 도덕적 품성이 높음] 지게 작대기 뉘어 놓고 먼데 바다를 바라보았지요[뜻과 포부가 큰 인물]. 나도 따라 바라보았지요. 우르르르 달려가는 바다 울음소리 들었지요.[대길이에 의해 눈을 떴듯이, 대길이의 깊은 뜻과 높은 포부를 시적 화자도 가지게 되었음을 의미함]
찬 겨울 눈 더미 가운데서도 덜렁 겨드랑이에 바람 잘도 드나들었지요.[대길이의 가난한 삶을 구체적으로 표현] 그가 말했지요. 사람이 너무 호강하면 저밖에 모른단다.[이기적으로 살아가려고 함] 남하고 사는 세상인데[공동체적 삶을 살아가려고 함 / 모든 인간들과 함께 평화롭게 살아가고자 하는 대길이의 사상 ] 대길이 아저씨 그는 나에게 불빛[깨우침을 준 스승]이었지요. 자다 깨어도 그대로 켜져서 밤새우는 불빛[대길이를 비유한 말로 '불빛'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음 / 삶의 본보기이자 삶의 방향을 제시해 해주는 존재, 삶의 나침반 / 어린 시절 우상]이었지요.
이해와 감상 '만인보(萬人譜)'는 '만인의 삶에 대한 시적 기록'이란 뜻으로, 고은의 시 작품 가운데 장편서사시 '백두산'과 짝을 이루는 대형 연작시이다. 1986년부터 책으로 간행되기 시작했다. 어릴 적 알게됐던 가족, 친지, 이웃들에 대한 인상을 시로 옮기는 작업에서 시작, 역사 속의 인물로 지평을 넓혀 고주몽, 이황, 정여립, 김구, 걸인 독립단 등을 다루기도 했으며, 머슴 대길이, 따옥이, 화양댁, 땅꾼 도선이처럼 이름없이 살다 간 민중들의 삶의 애환도 기록했다. 2004년 출간된 16~20권은 '사람과 사람들'이라는 부제로 묶이며, 크게 식민지시대-해방공간-한국전쟁 전후의 인간군상을 다룬다. 격변의 시대를 통과한 사람들 가운데 '김일성', '이휘소', '이승만', '선우휘', '임화', '노천명' 등의 이름이 눈에 띈다. 야만의 상황 아래 서로가 서로를 죽고 죽이는 끔찍한 장면들이 시인의 냉정한 시선 아래 그려진다. 김병익은 <만인보>라는 민족사적 벽화를 통해 "고통스러운 역사를 되새김질하고 그에 짓밟힌 만상의 인간들을 사랑하며 껴안고 뺨 비비며 삶의 진의와 세계의 진수를 손가락으로 끄집어내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 거대한 '벽화-민족사'는 그러므로 '절망 이후의 연대기'이며 '나와 타자들이 자유를 낳는 사회순환을 위한 마당'이 된다. 제목 그대로 여러 사람의 행적을 그린 시들로 채워져 있다. 역사적 인물에서부터 소외당한 하층민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온갖 인물 군상들을 대상으로 삼았다. 서정시의 장르적인 특성을 여러모로 생각하게 하는 이러한 연작 형식의 시들은 단순화되기 쉬운 서정시에 극적인 요소를 도입함으로써 우선 재미있게 읽힌다. 주변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삼으면서 풍자에서 호소에 이르는 서술 방식을 폭넓게 도입하고, 다양한 부류의 화자를 통해 관념을 다채롭게 제시하면서 읽는 이로 하여금 시에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만들고 있다. 이 시집에 실린 많은 시 가운데 이채를 띠는 것은, 시인에게 삶의 올바른 지향을 감동적으로 일깨워준 사람들에 관한 몇 편의 성장시이다. 가장 강렬하게 각인된 인물은 꿈과 모험의 이미지로 각각 대표되는 '아버지'와 '외삼촌'이며, '세상을 보는 안목을 길러준 또 하나의 인물로 '머슴 대길이'를 들 수 있다. 시인에게 '가갸거겨'를 가르쳐준 친구네 집 머슴 '대길이'는 곧고 바른 인격의 소유자로 그려진다. '사람이 너무 호강하면 저밖에 모른단다 / 남하고 사는 세상인데' 라는 말을 통해 시의 주제 의식을 드러내기도 한다. 풍족하게 가지고 누리면서 오만을 떨고 감사하며 살 줄 모르는 인간들의 이기적인 삶의 모습을 꼬집는다. 인간과 인간, 더 나아가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며 더불어 살아가는 삶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참다운 삶임을 힘주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의 주인공인 대길이와 같은 머슴은 우리 사회에서 소외 받고 박해받는 계층에 속하는 인물로, 고단한 삶을 이겨 나가려는 민족적인 삶, 민중적인 삶의 원초적인 모습으로서의 전형성을 지닌다. 머슴 대길이야말로 수난의 역사를 이겨온 원동력이며, 시인이 지향하는 바람직한 인간상일 것이다.
심화 자료 만인보 '서시' 너와 나 사이 태어나는 순간이여 거기에 가장 먼 별이 뜬다 부여땅 몇 천 리 마한 쉰네 나라 마을마다 만남이여 그 이래 하나의 조국인 만남이여 이 오랜 땅에서 서로 헤어진다는 것은 확대이다 어느 누구도 저 혼자일 수 없는 끝없는 삶의 행렬이여 내일이여 오 사람은 사람 속에서만 사람이다 세계이다 고은의 시 경향과 만인보 초기 시들은 주로 삶의 허무함과 무상함을 탐미적 감각으로 그려냈고, '문의 마을에 가서'(1974) 이후에는 어두웠던 역사적 상황과 맞물리면서 현실에 대한 치열한 참여 의식과 역사 의식으로 무장함을 볼 수 있다. 1980년 5월 이후 투옥과 고문의 경험은 80년대 중반 고은의 시세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만인보(萬人譜)'에는 제목 그대로 여러 사람의 행적을 그린 시들로 채워져 있다. 역사적 인물에서부터 소외당한 하층민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온갖 인물 군상들을 대상으로 삼았다. 서정시의 장르적인 특성을 여러모로 생각하게 하는 이러한 연작 형식의 시들은 단순화되기 쉬운 서정시에 극적인 요소를 도입함으로써 우선 재미있게 읽힌다. 주변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삼으면서 풍자에서 호소에 이르는 서술 방식을 폭넓게 도입하고, 다양한 부류의 화자를 통해 관념을 다채롭게 제시하면서 읽는 이로 하여금 시에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만들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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