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梧桐)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合掌)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요점 정리 지은이 : 조지훈(趙芝薰)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율격 : 내재율 성격 : 전통적, 고전적, 불교적, 선적(禪的 : 불교의 삼문(三門)의 하나.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통일하며 번뇌를 끊고 진리를 깊이 생각하여 무아(無我)의 경지에 드는 일), 율동적, 어조 : 고전적인 우아한 어조 표현 : 은유와 역설에 의한 표현, 우아하고 예스러운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살리고 있고, 섬세한 언어의 조탁이 돋보임, 춤의 시작과 진행, 종료에 따라 완급(緩急)의 변화, 우리말의 음악성과 회화성을 효과적으로 살리고 있음. 구성 : 수미쌍관(首尾雙關)
제재 : 승무, 여승의 춤추는 모습 주제 : 세속적 욕망과 삶의 번뇌를 종교적으로 승화함. 삶의 번뇌와 종교적 해탈(解脫)에의 염원 출전 : <문장>(1939)
내용 연구 얇은 사(紗 : 생견으로 발이 성기게 짜여 있으며 여름 옷감으로 쓰임 / 비단) 하이얀[시적 허용]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나비같구나).[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1연) : 이승(尼僧-비구니)의 아름다운 모습을 고깔만으로 표했다. 그녀는 아직 감추어져 있다. 다만 '날 듯이 가벼운 고깔'만 클로즈업된다. 특히 나빌레라는 예스럽고 우아하며 부드러운 말을 통해 여승의 아름다운 모습을 고양시키고, 음보율의 변화를 통해 시상 전개의 완급(緩急)을 조절하고 있다.]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 얇은 비단, 얇은 사) 고깔(승려가 머리에 쓰는 모자의 한 가지로 베 조각으로 접고 맞추어 세모지게 만듦)에 감추오고,[파르라니 깎은 머리 /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2연) : 박사 고깔 속엔 파르라니 깎은 머리가 감추어져 있다. 머리를 깎은 모습은 측은함을 유발한다. 그녀의 애련미를 화자는 느끼고 있다. 시적 허용]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두 볼에 흐르는 빛이 /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3연) : 아름다움은 심화된다. 두 볼은 흐르는 빛이 고와서 서럽다는 표현은 과히 압권이다. 이 역설은 한국적 미감의 특색을 잘 드러낸다. 2연의 가련미도 결국 역설적 아름다움이다. 너무나 고와서 서럽게 느껴지는 비극미(悲劇美)는 우리의 전통 정서이다. 다시 말해서 춤을 추려는 여승의 모습은 젊고 아름다우나, 그런 젊은 여인이 승려가 될 수 밖에 없는 사연을 생각하니 화자는 슬퍼진 것이고 따라서 '고와서 서러워라'는 승무를 추는 여인의 가련함에서 발생한 애련미라는 말이다.] - 춤추려는 찰나의 모습
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시간과 공간적 배경이 나타나면서 '눈물'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 빈 무대로 적막감, 공허감] 오동(梧桐)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 오동(梧桐)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4연) : 가을 달밤의 애상적 정서 / 무대의 배경을 제시했다. 1연에 배치하는 것이 서사적 구성에는 어울리지만 도치된 장면 배치는 비감(悲感)을 절실히 하는 효과를 준다. 이런 구성은 조지훈의 시에서 특징적으로 발견되는데, 시상이 전개되다 배경을 묘사함으로써 그 시상의 의미를 강조하는 표현법으로 일종의 돈강법이다. ] - 무대와 배경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긴 소매로 하늘을 휘젓는 춤사위]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춤 동작의 묘사 /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5연) : 춤사위와 의상의 표현이다. 휘젓는 소매 끝의 큰 동작이 허공을 가르는 모습. 돌아설 듯 머뭇거리다가 날아가는 발동작은 한국 춤사위의 기본 동작이기도 하지만, 이 시의 주제와도 관련되는 동작이다. 번뇌를 잊기 위해 내젓는 팔과 시름을 잊으려 훌훌 떠나려는 발동작의 단속(斷續)은 세사와 해탈의 경계 지점을 넘나드는 심적 상태와 통한다. '정(靜), 동(動) → 멈춤, 떠남 → 세속, 허탈'의 구조와 맞물려 있다는 의미이다.] 까만 눈동자[세속적 번뇌를 종교적으로 초월하고자 하는 염원을 시각적 이미지로 선명하게 제시]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소망, 동경의 대상 / 번뇌의 서러움을 극복한 종교적 승화를 의미]에 모두오고,[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6연) : 이승(尼僧-비구니)의 간절한 염원을 표상했다. 눈동자가 별빛에 향한 상태의 지고지순(至高至純)한 심경은 선미(禪味)를 불러일으킨다. 부처를 향한 정성스런 기도는 정적감과 함께 지상과 천상이 교감하는 순간의 긴장을 주기도 한다. 명상의 순간이자 진리를 향한 염원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부분에 와서 외면 묘사가 내면 표출로 전환되고 있다. 시적 허용]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속세의 인연에 대한 회한을 떨쳐 버리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마음에서 흘리는 눈물로, 정화(淨化)의 의미를 담고 있다. / 세속적 번뇌]이야 세사(世事 : 세상사)에 시달려도 번뇌(煩惱 : 마음이 시달려서 괴로움)는 별빛(세속의 번뇌를 초탈하고자 하는 염원과 의지가 '별빛'이라는 시어 속에 함축되어 있다. 역설법)이라.[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7연) : 기도 순간의 아름다운 모습을 나타내었다.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진 눈물 방울은 세사에 시달린 고통의 눈물이지만 그것은 정제된 눈물일 것이다. 그러기에 이 정제된 눈물이야말로 별빛처럼 아름다우면서도 해탈의 경지를 향한 여과된 눈물일 것이다. 따라서 짙은 번뇌만이 진정한 해탈로 가는 길임이 역설적으로 가능해진다. / 세상 일에 시달림으로써 겪는 온갖 번뇌는 별빛처럼 영롱한 해탈의 경지로 승화된다.] 휘어져 감기우고[시적 허용] 다시 접어 뻗는 손이[동적인 이미지 / 춤사위]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合掌)인 양하고,[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合掌)인 양하고,(8연) : 7연의 부연이다. 휘었다 감았다 하는 춤사위는 마치 간절한 마음의 합장(合掌)인 듯싶다고 화자는 생각한다. 그리고 거룩한 합장인 양하고라는 말은 불도에 정진에 하는 자세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세속의 번뇌를 넘어서고자 하는 마음가짐과 의지] - 춤의 동작 이 밤사(강조어를 배치하여 감흥이 심화되고 있다.) 귀또리[밤의 정밀감(靜謐感 : 고요하고 편안함)을 강조하는 소재이자 감정이입의 대상물이다.]도 지새우는 삼경(三更 : 밤 11시부터 새벽 1시까지의 동안, 한밤중)인데,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三更)인데, /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9연) : 밤이 깊었는데도 그칠 줄 모르는 춤사위에서 화자는 여승의 염원을 읽고도 남는다. 또한 첫 행이 화자의 시선을 강하게 사로잡은 하얀 고깔에 집중되어 있는 것에 비해, 마지막 행은 애벌레가 나비가 되듯이 번뇌를 이겨내고 순수하게 정화된 마음의 상태를 이룬 것을 상징하고 있다. 수미상관으로 작품의 균형감과 안정감을 줌] - 춤의 동작과 끝난 뒤의 감동
닮은 작품 감상하기 하늘을 날을 듯이 길게 뽑은 부연(附椽) 끝 풍경(風磬)이 운다. 처마 끝 곱게 늘이운 주렴에 반월(半月)이 숨어 아른아른 봄밤이 두견이 소리처럼 깊어 가는 밤 곱아라 고아라 진정 아름다운지고 파르란 구슬빛 바탕에 자주빛 호장을 받친 호장 저고리* 호장 저고리 하얀 동정이 환하니 밝도소이다. 살살이 퍼져 내린 곧은 선이 스스로 도라 곡선을 이루는 곳. 열두 폭 기인 치마가 사르르 물결을 친다. 치마 끝에 곱게 감추운 운혜(雲鞋) 당혜(唐鞋) 발자취 소리도 없이 대청을 건너 살며시 문을 열고, 그대는 어느 나라의 고전을 말하는 한 마리 호접(胡蝶) 호접인 양 사풋이 춤을 춰라, 아미(蛾眉)를 숙이고……. 눈 감고 거문고를 골라 보리니 가는 버들이냥 가락에 맞추어 흰 손을 흔들지어다. - (문장 3호, 1939.4)
요점 정리
지은이 : 조지훈 성격 : 고전적, 전통적, 감각적 심상 : 시각적, 정적 심상 운율 : 4음보의 산문율 특징 : 의고적(擬古的) 어투, 현재형 진술 시상 전개 : 시선의 이동.(수직적 순서) 구성 : ① 배경(1-3행) ② 저고리의 우아한 아름다움(4-7행) ③ 치마의 선의 미(8-10행) ④ 옷맵시와 춤사위의 은은한 아름다움(11-14행) ⑤ 화자의 도취감(감흥)(15-18행) 제재 : 고풍 의상 주제 : 우아한 고전적 아름다움의 추구.(전통 의상의 예스러운 아름다움)
내용 연구
부연(附椽) : 들연 끝에 덧얹는 짧고 네모진 서까래. 며느리서까래. 들연 : 오량(五樑)에서 도리로 걸친 서까래. 야연, 장연, 평연, 하연 오량 : 우리 나라의 전통 가옥 건축에서, 보를 다섯 줄로 얹어 넓이가 두 칸 넓이가 되게 집을 짓는 방식 도리 : 목조 건물의 골격이 되는 부재(部材)의 한 가지. 들보와 직각으로 기둥과 기둥을 건너서 위에 얹는 나무.(서까래를 받치는 구실을 함.) 들보, 보 : 건물의, 칸과 칸 사이의 두 기둥 위를 건너지른 나무. 호장 저고리 : 회장 저고리 운혜(雲鞋) : 지난 날, 여자가 신던 마른 신의 한 가지. 신발 앞코에 구름 무뉘를 수 놓았음. 당혜(唐鞋) : 우리 깊고 코가 작은 가죽신의 한가지. 앞뒤에 당초문(唐草紋-덩굴무뉘) 따위를 새김. 호접(胡蝶) : 나비 胡蝶之夢, 壯周之夢 아미(蛾眉) : (누에나방의 눈썹처럼) '미인의 아름다운 눈썹'을 이르는 말.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옛 여인의 옷과 춤사위의 아름다움을 예스런 말투와 가락으로 조화 있게 보여 준다. 그러나 단순히 고전적인 미(美)만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라져 가는 우리 것에 대한 시인 자신의 그리움, 서글픔 등을 작품의 내면에 담고 있다. 다음 두 작품을 읽고, 아래의 활동을 해 보자.
1. (가)에서 마음에 드는 연을 몇 개 골라서 암송해 보자. 지도 방법 : 이 활동은 학생들 개개인이 아름답다고 느낀 연을 선택하여 암송하게 함으로써 작품의 심미적 가치를 확인해 보기 위한 활동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연이 가장 아름다운 연인가를 확인해 보려는 것이 아니라 암송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이 읽어봄으로써 작품의 아름다움을 총체적으로 내면화하려는 것이다. 예시 답안 :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1연) 2. (가)에서 전통적인 미감(美感)을 느끼게 하는 요소들을 다음 항목을 중심으로 정리해 보자. (1) 이미지 : (2) 어조 : 지도방법 : 이 활동은 작품의 심미적 가치를 형성하는 요소들을 분석해 보기 위한 활동이다. 특히 활동 (1)의 경우 (가)에 등장하는 소재들이 대부분 한국적 아름다움을 잘 드러내 주는 요소이기 때문에 몇 개의 이미지로 한정해서 답변할 수는 없다. 따라서 가급적 여러 학생들을 발표시킴으로써 전체 이미지들이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작품의 심미적 가치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을 학생들 스스로 확인해볼 수 있도록 지도한다. 예시 답안 : (1) '하이얀' '고깔' '나비' '외씨' '보선' 등의 한국적 아름다움을 대변해 주는 이미지들을 구사하고 있다. 3. (나)의 화자에게서 민족적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이유를 다음 항목을 중심으로 설명해 보자. (1) 정서 : (2) 소재 : (3) 형식 : 지도방법 : 이 활동은 문학이 공동체 통합의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과 관련하여 학생들이 작품을 감상하는 과정에서 공동체 의식을 느낄 수 있는지 느끼게 된다면 그것은 무엇 때문인지를 확인해 보는 활동이다. 이 활동 역시 많은 학생들을 발표시켜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가운데 학생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도록 지도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예시 답안 : (1) 따뜻한 인정미와 풍류를 느낄 수가 있다. (2) 살구꽃 꽃 그늘 초당 등에서 향토적 정취를 느낄 수 있다. (3) 3장 6구 12음보의 시조 형식을 빌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있다.
이해와 감상 승무는 승려의 옷차림을 하고 추는 춤이다. 시인은 이 춤에서 번뇌를 이겨 내고자 하는 종교적 구도(求道)의 모습을 보았다. 그러므로 이 시는 단순히 춤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춤으로 나타나는 마음 속의 움직임에 초점을 두고 있다. 작품의 서두는 승무의 우아한 모습을 묘사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승무를 추는 이는 젊은 사람이다. `두 볼에 흐르는 빛이 / 정작으로' 곱다는 것을 보건대 그는 여자인 듯하다. 꽃다운 나이의 젊은 여인이 승복을 입고 있다는 것은 예사롭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시인은 그가 어떤 이유로 속세를 버리고 승려가 되었는가는 말하지 않는다. 이 시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알 수 없는 번뇌를 이기기 위하여 가다듬는 손길과 춤의 움직임이다. 춤의 시간은 아무도 없는 밤이다. 뜨락에 쓸쓸히 널린 오동잎 잎새마다 달빛이 비추는데 승무가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이 춤은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번뇌를 이겨 내기 위한 간절한 소망의 표현으로서 추어지는 것이다. 그 춤의 절정이 제6, 7연에 나타난다. 검은 눈동자를 살포시 들어 먼 하늘의 한 개 별빛을 바라보는 간절한 모습을 한 번 상상해 보자. 흰 고깔 아래 보이는 고운 뺨은 어떤 우수를 머금은 듯하고, 맑은 두 눈에는 어쩌면 고뇌의 눈물이 아롱질 듯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 세속의 세계를 떠나 모든 것에의 집착을 버리고자 한 터이기에 번뇌는 별빛처럼 아득히 멀리서 반짝인다. 그 다음 연에서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인 양'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란 바로 이 별빛 같은 번뇌마저 떨쳐버리려는 간절한 심경의 표현이다. 작품의 서두와 마지막에 되풀이되는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라는 구절은 이러한 내용과 더불어 음미할 때 이 작품의 독특한 분위기를 느끼게 해 준다. [해설: 김흥규] 이해와 감상1 조지훈(趙芝薰)이 지은 시. 두번째 추천작품으로 1939년 12월호 ≪문장≫에 발표되었다. 그 뒤 1946년에 발간된 ≪청록집 靑鹿集≫에 약간의 수정을 거쳐 수록되었으며, 1952년 ≪풀잎 단장(斷章)≫과 1956년 ≪조지훈시선 趙芝薰詩選≫에도 재수록되었다. 이 작품에는 그의 추천 시기의 주된 경향인 사라져 가는 민족정서에 대한 아쉬움이 그대로 표출되어 있다. 1연이 각 2행씩 9연으로 구성된 작품으로서, 승무를 추는 배경이 먼저 설정되고, 다음으로 승무가 진행되는 순서에 따라 동작이 변화되어 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또한 승무의 동작에 비례하여 그 어조와 정서가 상승되고 있다. 이 작품의 기법상의 두드러진 특색은 우선 시어의 세심한 선택과 감탄형 종결어미의 적절한 사용을 들 수 있다. ‘하이얀 고깔’, ‘파르라니 깎은 머리’, ‘복사꽃 고운 뺨’ 등과 ‘나빌레라’, ‘서러워라’, ‘별빛이라’ 등이 그 구체적인 예인데, 이것들은 관습적인 기교로 전락하지 않고 개성적인 표현으로 부각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율격도 처음부터 급박하지 않고, 조용하면서도 극적으로 차차 변화되어 가는 승무의 과정과 잘 어울리고 있다. 또한, 작중 화자의 태도가 완상자적 관점(玩賞者的觀點) 혹은 관조적 거리를 적절하게 유지하고 있는 점도 특징 중의 하나이다. 즉, 지나친 거리 조정이나 지나친 영탄은 피하면서 간간이 감탄과 탄성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작품이 갖는 구조의 긴밀성으로 보나 시론집 ≪시의 원리≫에서 작자가 밝히고 있는 바에 따르면 이 작품은 오랜 시일에 걸쳐 다듬어 완성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趙芝薰硏究(金宗吉 外, 高麗大學校 出版部, 1978), 現代詩硏究(國文學硏究叢書 9, 正音社, 1981), 韓國代表詩評說(鄭漢模·金載弘 編, 文學世界社, 1983).(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해와 감상2 이 시는 <문장>에 추천되어 발표되었다가 후에 <청록집>(1946)에 재수록된 작품으로 조지훈의 초기의 시 세계를 알 수 있게 해 주는 대표작이다. 이 시의 서정적 자아는 깊은 가을 달밤에 산사에 촛불을 밝히고 승무를 추고 있는 젊은 여승의 모습을 본다. 그런데 그 모습은 속세에서 느끼는 모든 번뇌를 초월하여 높은 곳을 지향하는 영혼의 아름다움으로 느껴진다. 따라서 이 시는 인간 번뇌를 종교적으로 초월하는 승화된 의식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시의 장면은 이승(尼僧-비구니)의 춤 광경이다. 배경은 고적한 밤, 황촉불과 고즈넉이 타는 빈 무대에서의 춤사위는 신비감과 동양적 아름다움을 전해 주기에 충분하다. 그녀의 춤사위는 춤을 위한 동작이 아니다. 세사에 찌들린 번뇌. 그 고뇌의 끝에서 그것을 초극(超克)하려는 강렬한 기구(祈求)의 몸짓이다. 그러기에 그녀의 춤사위는 우아함 저편에 인간적 고뇌가 짙게 깔려 있다. 즉 황홀한 춤사위 안에 젖어 든 여인의 상처를 감지하는 것이다. 감추어진 아픔. 그것을 우리는 한(恨)이라 부른다. 한국인에게 한의 정서는 뿌리 박힌 민족 정서이다. 그러한 한의 정체는 버림받음이다. 버림을 받는다는 것은 나의 의사는 아랑곳하지 않는 수동적, 타율적 속성의 것이다. 세상살이의 고단함이었든 연인과의 아픈 이별이었든 상실감에 기초하는 감정이다. 독자는 이런 한의 정서에 동감하며 그러한 세계에서 내면적으로 몸부림치는 한 여인의 애절한 기도를 엿듣게 된다. 슬픈 여인의 눈물에서 발견되는 비극적 아름다움, 인간에게 비극적 아름다움만큼 미감(美感)을 자아내는 것도 드물다. 비극의 시대가 갔다고는 해도 여전히 우리의 은밀한 가슴 속에 내려 앉은 비극 체험은 순수한 아름다움의 미감을 자극한다. 인간은 어쩌면 숙명적으로 이런 비극 체험을 즐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비감의 주인공이 바로 이승(尼僧)이며, 그녀가 흘리는 눈물은 분명 순수함과 아울러 관능적 미감도 자아낸다. 또한 불교적 소재의 차용은 한국의 전통적 문화 습속에서 가깝게 다가설 수 있는 전통 정서와 맥을 같이 한다. 이런 전통의 문제와 관련하여서는 불교라는 종교만이 아니라, 달밤이 주는 애상감, 복사꽃의 색채 심상, 다소곳한 여인의 자태, 한의 아픔 등과도 연관되어 있음도 물론이다. 인간은 누구나 고뇌를 안고 산다. 그 고통으로부터 해탈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기는 해도 누구나 해탈을 염원한다. 해탈 후의 느긋한 평화를 꿈꾸어서가 아니라 아픔 현실의 무게를 들어보자는 간절한 심정에서 그렇다. 이승(尼僧)의 해탈의 염원은 바로 이런 면에서 독자를 동감의 세계로 몰고 간다. 이 작품은 시적인 의장(장치)에서도 고전적 분위기와 순수 미감, 한국적 유장함, 선미(禪味)를 한껏 높이고 있다. '나빌레라'의 예스럽고 우아하며 부드러운 말은 이승(尼僧)의 아름다움을 고양시키고, 음보율의 변화는 시상 전개의 완급을 조절하면서 시의 의미와 적극적인 조화를 이루어낸다. 수미상관(首尾相關) 기법을 통한 감동의 재인식과 응결, 빛의 상징적 의미로 형이상학적 세계를 구상화하는 기법 등은 이 시를 그야말로 절창(絶唱)이게 한다. 그럼 이 시의 구조를 살펴본다. 이 시는 양방 구조(兩方構造)로 되어 있다. '하늘'의 세계를 향하는 상방 구조(上方構造)와 '땅'의 세계로 향하는 하방 구조(下方構造)가 그것이다. 하늘은 해탈의 세계이며 땅은 세속이다. 지상에서의 세상사는 번뇌로 표현되는 상실의 아픔과 삶의 고통을 주를 이룬다. 지상을 부정적으로 인식할 때. 인간이 안식의 공간으로 설정할 곳은 천상이다. 천상은 물론 추상적 세계이다. 지상의 반대 개념으로서의 천상인 만큼 그 곳은 구체적 세계가 아니라, 번뇌가 없는 곳으로 설정된다. 지상에서의 세속사에 지치면 지칠수록 하늘을 향한 염원의 크기는 더해질 수밖에 없다. 이 천상의 추상 공간을 화자는 '별빛'으로 상징했다. 이 때의 별은 천체로서의 구체적인 별이 아니라, 번뇌가 없는 해탈의 공간을 상징한 사물이다. 그녀의 눈동자가 그 별빛에 합일하여 상호 교감할 때, 별빛의 내면적 확립이 가능해질 것은 자명하다. 위 시의 구조를 살펴보면, 여승은 아직도 세속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춤을 추고 있는 한 세사는 여전히 고통으로 남는다. 이 고통을 잊으려는 것이 승무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므로 여승은 속세와 해탈의 경계면에 위치하며, 그렇기 때문에 고뇌와 염원의 크기가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화자는 그러한 여승의 번뇌를 읽고 있지만, 화자에게 다가오는 승무의 모습은 그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화자는 이 여승의 외형적 모습(비극적 모습)에 매료됨과 동시에 그의 고뇌에도 아픔을 함께 하는 것으로 보인다.
심화 자료 승무의 창작 과정 먼저 초고에 있는 서두의 무대 묘사를 뒤로 미루고 바로 춤추려는 찰나의 모습을 그릴 것, 그 다음, 무대를 약간 보이고 다시 이어서 휘도는 춤의 곡절(曲折)로 들어갈 것, 그 다음 움직이는 듯 정지(靜止)하는 찰나의 명상(冥想)의 정서를 그릴 것, 관능(官能)의 샘솟는 노출( 복사꽃 고운 뺨)을 정화(淨化)(별빛)시킬 것, 그 다음 유장한 취타(吹打)에 따르는 의상의 선을 그리고, 마지막 춤과 음악이 그친 뒤 교교(皎皎)한 달빛과 동 터 오는 빛으로써 끝맺을 것. 이것이 그 때의 플랜(계획)이었으니, 이 플랜으로 나는 사흘 동안 퇴고를 거듭하여 스무 줄로 된 한 편의 시를 겨우 만들게 되었다. 퇴고하는 데에도 가장 괴로웠던 것은 장삼(長衫)의 미묘한 움직임이었다. 나는 마침내 여덟 줄이나 되는 묘사를 지워 버리고 나서 단 두 줄로 요약하고 말았다. [조지훈, '나의 시 나의 시론'] '나는 한편의 시가 이루어지기까지에는 어떠한 과정을 밟는가 하는 데 대하여 졸시 '승무'의 작시 체험을 말함으로써 시의 비밀을 토로하겠습니다. 내가 승무를 시화(詩化)해 보겠다는 생각을 가지기는 열 아홉 때의 일이었습니다. 나는 이 '승무'로써 나의 시세계의 처녀지를 개척하려고 무척 고심하였습니다만 마침내 이 보다 늦게 구상한 '고풍의상'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나는 이 난산(難産)의 신(新)을 회태(懷胎)하기까지 나는 세 가지의 승무를 사랑하였습니다. 첫 번은 한성준(韓成俊)의 춤, 두 번째는 최승희(崔承喜)의 춤, 세 번째는 이름 모를 승려의 춤이 그것입니다. 나는 무용 비평가가 아니므로 그 우열을 논할 수 없습니다만 앞의 두 분 춤은 그 해석이 나의 시심에 큰 파문을 던지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나로 하여금 승무에의 호기심을 일으켜 몇 번의 기녀(妓女)가 추는 승무에까지 이끌어 갔던 것이니 승무를 시화케 한 최초의 모멘트가 된 것은 사실입니다. 내가 참 승무를 보기는 열 아홉 살 적 가을이었습니다. 그 가을 어느 날 수원(水原) 용주사(龍珠寺)에는 큰 재(齎)가 들어 승무밖에 몇 가지 불교전래의 고전음악이 베풀어지리라는 소식을 거리에서 듣고 난 나는 그 자리에서 수원으로 내려가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밤 나의 정신은 온전한 예술 정서(情緖)에 싸여 승무 속에 용입(溶入)되고 말았습니다. 그 밤 나의 정신은 온전한 예술 정서에 싸여 승무 속에 용입(溶入)되고 말았습니다. 재(齋)가 파한 다음에도 밤늦게까지 절 뒷마당 감나무 아래서 넋없이 서있는 나를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시정(詩情)을 느낄 땐 뜻 모를 선율이 먼저 심금을 부딪힘을 깨닫습니다. 이리하여 그 밤의 승무의 불가사의한 선율을 안고 서울에 돌아온 나는 이듬해 늦은 봄까지 붓을 들지 못하고 지내왔었습니다. 춤을 묘사한 우리 시가(詩歌)로 본보기가 될 만한 것이 아직 없을 때이라 나에게는 오직 우울밖에 가중(加重)되는 것이 없었습니다. 이와 같이 한마디의 언어 한 줄의 구상도 찾지 못한 채 막연한 괴로움에 싸여 있던 내가 승무를 비로소 종이 위에 올리게 된 것은 내 스무 살 되던 해의 첫여름의 일입니다. 예술전람회에 갔다가 김은호(金殷鎬)의 '승무도(僧舞圖)' 앞에 두 시간을 서 있은 보람으로 나는 비로소 우려 78자의 스케치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움직임을 미묘히 정지태(靜止態)로 포착한 이 한 폭의 동양화에서 리듬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지당한 발견이었으나 이 그림은 아까 기녀(妓女)의 승무를 모델 한 상 싶어 내가 찾는 인간의 애욕 갈등 또는 생활고의 종교적 승화 내지 신앙적 표현이 결여되어 그때의 초고(草稿)는 겨우 춤의 외면적 양자(樣姿)를 형상(形象)하는 정도의 산만한 언어의 나열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그림을 통해서 내가 잡지 못해 애쓰던 어떤 윤곽을 잡을 수 있었던 것만은 사실입니다. 나는 이 초고를 몇 날 만지다 그대로 책상 위에 버려둔 채 환상(幻想)이 가져오는 소위 시수(詩瘦)에 빠지게 되었으니 이 승무로 인하여 떠오르는 몇 개의 시상을 아낌없이 희생하기까지 하였으나 종시 뜻을 이루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용주사(龍珠寺)의 춤과 김은호의 그림을 연결시키고도 왜 시를 형성하지 못했던가? 이는 오직 춤을 세밀히 묘사하면 혼의 흐름의 표현이 부족하고 혼의 흐름에 치중하면 춤의 묘사가 죽는 말하자면 내용과 형식, 정신과 육체, 무용과 회화(繪畵)의 양면성을 초극하지 못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이것을 초극하고 한 편의 시를 만들기는 또다시 몇 달이 지난 그 해 10월 구왕궁(舊王宮) 아악부(雅樂部)에서 {영산회상(靈山會相)}의 한가락을 듣고 난 다음날이었습니다. 아악부를 나서면서 나는 몇 개의 플랜(plan)을 세우게 되었으니 이것이 곧 이 시를 이루는 골자(骨子)가 되는 것입니다. 먼저 초고에 있는 서두의 무대 묘사를 뒤로 미루고 직입적(直入的)으로 춤추려는 찰나의 모습을 그릴 것, 그 다음 무대를 약간 보이고 다시 이어서 휘도는 춤의 곡절(曲折)로 들어갈 것, 그 다음 움직이는 듯 정지하는 찰나의 명상의 정서를 그릴 것, 관능의 샘솟는 노출을 정화(淨化)시킬 것, 그 다음 유장(悠長)한 취타(吹打)에 닳는 의상의 선을 그리고 마지막 춤과 음악이 그친 뒤 교교(皎皎)한 달빛과 동터오는 빛으로서 끝막을 것, 이것이 그 때의 플랜이었으니 이 플랜으로 나는 사흘동안 퇴고(推敲)에 퇴고를 거듭하여 스무 줄로 된 한 편의 시를 겨우 만들게 되었습니다. 퇴고하는 중에도 가장 괴로웠던 것은 장삼(長衫)의 미묘한 움직임이었습니다. 나는 마침내 여덟 줄이나 되는 묘사를 지워버리고 나서 단 두 줄로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라 하고 말았습니다. 이리하여 나는 전편 15행의 다음과 같은 시 하나를 이루었던 것입니다.…시 전문 생략…오래 앓던 작품을 완성하였을 때의 즐거움은 컸다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처음 의도에 비길 때 너무나 모자라는 자신의 기법에 서글픈 생각이 그에 못지 않게 컸던 것도 사실입니다. 어떻든 구상한지 열 한달, 집필한지 일곱 달만에 겨우 이루어졌다는 이야기로써 나의 승무의 비밀은 끝납니다. 써 놓고 보니 이름 모를 승려의 춤과 김은호의 그림과 같으면서도 다른 또 하나의 승무를 만들게 되었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이 춤은 내가 준 승무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춤추는 승려는 남성이었드랬는데 나는 이승(尼僧)으로 그림의 여성은 장삼을 입은 속녀(俗女)였으나 나는 생활과 예술이 둘 아닌 상징으로서의 어떤 탈속한 여인을 꿈꾸었던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곧 이 승무는 나의 춤이 되는 까닭이 되기 때문입니다. 열 아홉의 아름다운 체관(諦觀)! 슬픔도 이렇게 즐겁고 볼 양이면 내가 어찌 시를 떠나서 살 법이 있으랴만 이러한 고심에 비하여 시가 얼마나 초라한가는 다시 말하고 싶지 않으니 이는 끝내 내가 시인이 아니고 말아도 서러울 리 없기 때문입니다. 뒷날 어느 선배는 나의 시에서 언어의 생략을 충고하였으나 유장(悠長)한 선을 표현함에 구슬같이 밝고 가벼운 언어만으로서는 도저히 뜻할 수 없어 오히려 리듬을 위하여 부질없는 듯한 말까지 넣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자연(自然)한 해조(諧調)를 이루는 빈틈없는 부연(敷衍)은 생략보담도 어렵다는 것을 나는 여기서 절실히 느꼈습니다." - 조지훈의 <시의 원리>(珊瑚莊刊, 1956)에서 승무는 승려가 추지 않는다 http://blog.daum.net/bero1966/?t__nil_login=myblog 국악작곡가 김정희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글로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실린 승무를 소개한다.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민속춤의 하나.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본래는 지역에 따라 각기 양식과 구성을 달리하면서 그 고장의 광대(廣大)들, 특히 판소리꾼에 의해 추어져왔으나, 구체적인 것은 알려진 것이 없다. 1900년대 초 협률사(協律社)의 조직에서 비롯하여 광무대(光武臺)·단성사(團成社)·원각사(圓覺社)로 이어지는 동안, 당시 ‘국고(國鼓)’라고까지 칭송되었던 한성준(韓成俊)이 그 때까지 무작위적 즉흥형식으로 추어지던 춤의 사위와 가락을 1934년 조선음악무용연구소(朝鮮音樂舞踊硏究所)의 창립과, 1936년 제1회 무용발표회를 계기로 집대성하고 체계화시켰다. 따라서 이를 많은 문도(門徒)들에게 수습시키는 한편, 손녀인 한영숙(韓英淑)에게 계승하였다. 그 가운데 1969년에 이르러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로 지정되었던 〈승무〉만이, 비교적 소상하게 그 계보를 밝혀주고 있을 뿐이다. 이 밖에 박금슬(朴琴瑟)의 〈경기승무 京畿僧舞〉 계열과, 1987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이매방의 〈호남승무 湖南僧舞〉 등이 널리 추어지고 있다. 〈승무〉의 기원을 말해주는 것으로는, ① 천부의 미모와 능수능란한 풍류솜씨를 빌려, 지족선사(知足禪師)로 하여금 파계의 지경으로까지 몰고 가게 한 것이 시작이라는 황진이초연설(黃眞伊初演說)이라든가, ② 상좌승의 기거범절(起居凡節)이나 독경설법(讀經說法)의 모습을 사미승들이 희화시킨 것에서 나왔다는 동자기무설(童子起舞說), ③ 육관대사(六觀大師)의 제자 성진(性眞)이 탁발수도에 나섰다가 깊은 계곡에서 8선녀(八仙女)를 만나, 한때 그 미색에 현혹되어 번민하였으나 광대무변한 불도의 참을 깨달아 해탈의 법열을 체험하게 되었던 과정을 무용화한 것이라는 구운몽인용설(九雲夢引用說), ④ 〈산대가면극〉 가운데 노장춤에서 따왔다는 노장무유래설(老杖舞由來說), ⑤ 파계로 환속한 자가 가책을 이기지 못하는 오회(悟悔)의 심정을 춤에 담아본 것이라는 파계승번뇌표현설(破戒僧煩惱表現說) 등이 있다. 한편으로는 ⑥ 악신(樂神)·건달바(乾達姿)가 〈영산회상 靈山會相〉의 장엄하고 엄숙한 광경을 묘사한 것이라든가, ⑦ 위(魏)의 조자건(曺子建)이 천태산(天台山)에 올랐다가 범천(梵天)에서 들려오는 오묘한 소리에 고기떼가 춤을 추는 모습을 보고 춤으로 옮긴 것이라는 등의 불교문화사적 기원설까지 나오고 있다. 이 밖에 탁발승이 포교과정에서 군중을 모으기 위해 법무(法舞)를 속화시켜 추었던 것이 항간에 번지게 되었는데, 억불숭유 이후 민간에 의해서 재연된 것이 이 춤의 발상이라고 보는 불교무용유래설이 있어 그런대로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이 또한 추측의 단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붉은 가사에 장삼을 걸치고, 백옥 같은 고깔과 버선코가 유난히 돋보이는 차림으로, 염불·도드리·타령·굿거리·자진모리 등 장단의 변화에 따라 일곱 마당으로 구성되는 춤을 추는데, 신음하듯 번민하듯 움틀거리는 초장의 춤사위에서부터, 열반의 경지에서 범속을 벗어날 수 있었다는 하염없는 법열(法悅)이 불법의 진리와 더불어 표상된다는 말미의 춤사위에 이르기까지, 뿌리고 제치고 엎는 장삼의 사위가 서로 혼화(渾和)를 이루어가며, 소쇄(瀟灑:기운이 맑고 깨끗함)함 속에 신비로움이, 역감 속에 정교로움이 감도는 조화의 극치야말로, 가히 정중동(靜中動)의 산 증표라고 하겠다. ≪참고문헌≫ 韓國傳統舞踊(成慶麟, 一志社, 1982)
청록파 시인들의 자연관 박두진, 조지훈, 박목월이 공동으로 간행한 <청록집>(1946)의 시들은 대부분 일제 말기에 씌어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시들은 어떤 질적 공통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 시집의 발간으로 이 세 시인을 '청록파'라는 명칭으로 부르게 되었다. 이들이 <청록집>에서 보여 준 공통점 중 가장 중요한 것은'자연'을 소재로 한 시들을 통해 가혹한 시대를 견디려는 의지를 엿보게 해 준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전통 시가에서 흔히 조화로운 이상 세계의 상징으로 등장하는 자연에 대한 지향을 계승하고 있다는 점도 이들이 지닌 공통적인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시적 지향이나 표현의 기교면에서는 서로 다른 양상을 보여 준다. 즉, 조지훈의 경우는 회고적, 민속적인 제재를 통해 민족적 정서와 전통에 대한 향수 및 불교적 선미(禪味)를 그려 낸 데 비해, 박목월은 향토성이 짙은 토속적인 언어, 정형적인 율격, 간결한 이미지와 섬세한 서정성을 특징으로 하며, 박두진은 기독교적 생명 사상에 입각한 자연과의 친화를 노래하였던 것이다 청록파 시인의 시세계 1939년 이후 문장을 통하여 정지용의 추천으로 시단에 나온 박두진, 조지훈, 박목월은 해방 후 함께 합동 시집 '청록집'을 냄으로써 '청록파' 또는 '3가 시인' '자연파' 등으로 불리게 되는데 이들의 주요 관심은 자연이었다. 박목월은 흔히 향토적인 시인이라고 불린다. 그의 시의 소재는 흔히 자연이되 그는 그 자연 속에서 향토색이 짙은 용어 또는 사물을 찾아내어 그것을 서로 연결함으로써 그 배면에서의 이미지의 연결을 꾀한다. 그의 시에서는 동사가 거의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시는 더욱 정물화라는 느낌을 준다. 사람의 숨결이 스며 있지 않음도 볼 수 있다. 조지훈은 문화적 보수주의에 바탕한 대표적인 시인으로 일컬어질 수 있다. 그가 시에서 그리고자 하는 것은 잃어버린 옛 질서요 옛 풍물이다. 그 옛 질서 옛 풍물에 대한 그리움이 때로 그를 우국적으로 되게도 하고 지사적인 풍모를 지니게도 만든다. 또는 그의 반근대화주의는 일본 제국주의에 대하여 반항하는 꼴을 취하게도 만든다. 박두진은 이 둘에 비하여 더욱 관념적이다. 그의 시는 언젠가 올 메시아에 대한 찬미로 차 있다고 볼 수 있다. 박두진의 자연은 메시아의 도래에 의해 완성될 수 있을 뿐이며 이점에 있어 그의 자연은 조지훈, 박목월의 자연을 노래한 지난날의 자연인 것과 전혀 다르다. 그런 면에서 그는 이상주의자요, 뒤에 그가 사회적 불의에 항거해서 사회 정의를 부르짖는 시를 쓰게된 사실도 이 문맥에서 이해된다. 청록파의 작품 경향과 문학사적 의의
1) 시풍
조지훈 : 지사의 기풍을 지니고 고전적인 소재를 취재하여 회고적인 시정에 젖어들었다. 동양적인 선관(禪觀)을 보여 줌 박두진 : 자연에 대한 신선한 생명력과 기독교적 신앙을 바탕으로 하여 자연과 친화한 시를 보여줌. 기독교적인 자연관을 지님 박목월 : 민요적 가락에 짙은 향토색을 가미하여 자연에 대한 관조를 보여줌. 전통적인 정관(情觀)을 보여 줌.
2) 시정(詩情)
조지훈 : 선미(禪美)가 깃들인 고아한 풍류 박두진 : 기독교적인 정결한 갈망이 착색된 자연 박목월 : 향토색 짙은 정결한 산수의 서경
3) 시형과 운율
조지훈 : 선운(禪韻)이 감도는 내재율 박두진 : 가쁜 호흡, 약동하는 생명의 호흡을 가진 내재율 박목월 : 전통적인 민요조의 율조가 혼연 일체를 이룬 연연한 비애의 가락
4) 문학사적 의의
자연의 실체 표현 : 한국의 신문학사를 통해서 한국의 자연이 실재 그 자체로서 부각된 것은 청록파의 공적이다. 이들에 의해 자연이 자연 그 자체로서 독립된 의미와 정서를 가지고 표현되었다. 시사적 맥락의 이음 : 순수한 우리말과 글의 특질을 잘 살려서 이를 통해 운율에 새로운 차원을 가져왔다는 점과 공백으로 남을 뻔했던 광복 전후의 시사적 맥락을 잇게 해준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