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가운 빗(碑)돌은 세우지 말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
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
요점 정리
지은이 : 함형수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율격 : 내재율(각운 '∼라.')
성격 : 정열적. 낭만적, 상징적
어조 : 정열적 삶을 원하는 젊은이의 낭만적 목소리와 강렬하고 단호한 명령형의 어조
구성 :
1행 빗돌을 세우지 말라.
2행 무덤 주의에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
3행 보리밭을 보여 달라.
4행 해바라기는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
5행 노고지리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
수직적 상승 구조
공중 |
하늘, 태양, 노고지리 |
지상 |
해바라기, 보리밭 |
죽음과 생명의 대립
차가운 비ㅅ돌 |
해바라기, 보리밭, 노고지리 |
회색 |
노란색, 푸른 색 |
제재 : 해바라기
주제 : 정열적인 삶에의 의지, 죽음을 넘어선 예술혼의 추구, 죽음도 초월하는 삶에 대한 열정적 의지, 생명에의 강인한 의지, 해바라기를 통해 보는 생명에 대한 강한 의욕
특징 : 죽은 화가인 시적화자가 강렬하고 단호한 명령형의 어조를 통해 소망을 강화했고, 강렬한 생명의 호흡을 느끼게 함. 또한, 시각적, 회화적 이미지가 두드러짐.[5행의 짧은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각 행을 모두 '말라', '달라', '생각하라'는 명령형 어미로 맺고 있어 강렬하고 단호한 화자의 태도를 효과적으로 나타내고 있으며, 시의 의미는 시어의 대립을 통해 분명히 드러난다. '무덤, 빗돌'로 제시되는 '차가운 비생명의 세계'와 해바라기, 보리밭, 태양, 노고지리'로 제시되는 '밝고 정열적인 생명의 세계'가 대조되어 있는 것이다.]
출전 : <시인부락>(1936)
내용 연구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가운 비(碑)ㅅ돌(죽음의 이미지로 무덤 앞에 세워 놓은 비석으로 인습을 상징하는 것)은 세우지 말라.('비석'이 죽음을 상징하는 사물임을 감안하면, 이 시구는 죽음, 패배 등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강인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 죽음과 패배의 거부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차가운 비(碑)ㅅ돌'과는 대립적인 이미지를, '태양'과는 동일한 이미지를 지니고 있으며, 삶에 대한 강렬한 열정을 상징한다. 정열과 의지의 표상으로 비운의 화가 빈센트 반 고호의 그림 '해바라기'와 '보리밭'이 가져다 주는 강렬한 이미지를 문자화함. 정열적인 사랑)를 심어 달라. [제1행과 제2행의 이미지는 생명 없는 (이끼낀) 빗(碑)돌이 선 음산한 무덤과 정열적인 생명을 상징하는 노오란 해바라기로 둘러싸인 밝은 무덤의 이미지는 매우 대조적이다. 그리고 화자는 자신의 무덤 앞에 비석을 세우지 말고 해바라기를 심어달라고 말함으로써 삶에 대한 강렬한 의지와 열정을 드러내고 있음]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보리'는 추운 겨울의 시련을 이겨 내고 싹을 틔운다는 점에서 강인하고, 풍요로운 생명력을 상징하는 소재이다.)을 보여 달라.[자신의 정열적인 삶이 죽음을 초월하여 잊혀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노오란 해바라기[색채어를 통해 강한 생명력을 환기함]는 늘 태양같이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열정적으로 살고자 했던 시적 화자의 태도를 엿볼 수 있는 구절)이라고 생각하라.
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종다리로 생명을 가지고 날아오르는 꿈. 자유로움이며, 시적 화자의 감정 이입 대상, 김수영의 '푸른 하늘을'에 나오는 노고지리가 연상됨)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꿈을 간직하며 살던 자신의 삶이 영원하기를 소망하는 것임. 이 시의 어조가 강렬하고도 단호한 이유는 5행 모두 명령형 어미로 끝맺고 있기 때문이다.]
['해바라기 비명'에 나타난 시적 화자의 삶의 태도 : 이상은 그의 수필 '권태'에서 "이시의 화자는 정열적이고 생명력이 넘치는 삶을 지향한다. 따라서 이 시의 화자가 다음 글을 읽는다면 '무기력한 모습을 버리고 좀더 적극적이고 정열적인 삶을 살아라'고 촉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부나비라는 놈은 사는 방법을 아는 놈이다. 불을 보면 뛰어들 줄도 알고 평상에 불을 초조히 찾아다닐 줄도 아는 정열의 생물이니 말이다. 그러나 여기 어디 불을 찾으려는 정열이 있으며 뛰어들 불이 있느냐. 없다. 내게는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암흑은 암흑인 이상 좁은 방 것이나 우주에 꽉 찬 것이나 분량상 차이가 없으리라. 나는 이 대소 없는 암흑 가운데 누워서 숨쉴 것도 어루만질 것도 또 욕심나는 것도 아무것도 없다"라고 말했다.]
이해와 감상
정열적인 삶에 대한 의지를 5행의 짧은 글 속에 쏟아 넣은 작품이다. 5행을 모두 '말라, 달라, 생각하라'는 명령형 어미로 맺고 있어 시의 어조가 단호하고 힘이 있다. 화자는 젊은 화가다. 묘지의 모습은 한 폭의 살아 있는 그림이라 할 수 있다.
서정주, 김동리와 함께 '시인부락' 동인 활동을 하며 시를 쓰기 시작한 함형수는 심한 정신 착란증에 시달리다 해방 직후 30세로 요절하였다. 세상에 발표된 그의 시는 10여편에 불과하지만, 동경(憧憬)의 꿈과 소년적 애수를 주조로 하는 개성 있는 시인의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시적 화자 '나'는 부제 '청년 화가 L을 위하여'를 고려해 볼 때, 죽은 청년 화가 L로 추측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시는 이미 죽은 청년 화가 L이 자신의 죽음을 노래하는 형식을 취하여 죽음을 초월한 그의 삶에의 열정과 의지를 형상화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시행의 길이가 점차 길어지고 있다는 표현 특징뿐 아니라, 각 행이 '세우지 말라'·'심어 달라'·'보여 달라'·'생각하라' 등 단호한 명령형으로 끝맺는 종결 처리법도 결국 이와 같은 주제 의식과 깊은 관련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1행에서 화자는 '차가운 비(碑)ㅅ돌'을 세우지 말라고 한다. '비(碑)ㅅ돌'은 죽음을 뜻하는 비석이므로, 이는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 할 수 있다. 2행에서는 '비(碑)ㅅ돌' 대신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고 한다. 화자가 화가인 것을 생각하면 이는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 '해바라기'라는 작품을 연상하게 하는 구절이다. 해바라기는 향일성(向日性) 식물로 정열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1행에서 드러난 의지의 표명이 2행에서는 죽음을 초월한 삶에의 강렬한 의지 내지 정열을 해바라기를 통해 표출하고 있다. 3행에서는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고 한다. '끝없는 보리밭'은 풍성한 생명력을 표상하는 것으로, 이 구절 역시 생명의 충일함을 통해 죽음을 초월하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낸다고 하겠다.
4행에서는 자신의 무덤가에 심어 놓은 해바라기를 '늘 태양같이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으로 생각해 달라고 당부한다. 이것은 자신의 정열적인 사랑과 삶이 죽음을 초월하여 잊혀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5행에서는 보리밭 사이로 날아오르는 노고지리를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으로 생각해 달라고 당부한다. 이는 꿈을 간직하며 살던 자신의 삶이 영원하기를 소망하는 것으로, 결국 '노고지리'는 화자의 감정이 이입된 대상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이 시는 '차거운 비(碑)ㅅ돌'로 표상된 비생명적(非生命的)인 것을 거부하고, '노오란 해바라기'와 '끝없는 보리밭'을 통해 뜨거운 생을 향한 강한 의지를 표출하고 있어, 이른바 '시인부락' 동인들의 생명파적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해바라기는 화려하고 정열적인 사랑을, 보리밭은 생명의 터전을, 노고지리는 하늘을 날아오르는 꿈을 각각 상징할 뿐 아니라, 그것들이 지면과 지상, 공중에서 서로 대응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또한 노란색과 푸른색의 색채의 대조로 인하여 더욱 싱싱하고 강렬한 생명 의식을 느낄 수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므로 섬세한 수식 하나 없는 투박한 언어 사용으로 인해 다소 거칠다는 느낌을 갖게 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도리어 이 시인의 순수함과 젊음을 반증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심화 자료
'해바라기의 비명'에서 부제의 기능
'청년 화가 L을 위하여'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시인은 화자를 젊어서 죽은 화가로 설정함으로써 당대인들이 겪었음 직한 시대고와 동병상련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화가인 화자는 생활고에도 불구하고 불타는 예술혼을 추구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특히 빈센트 반 고흐 그림 '해바라기'와 '보리밭'이 가져다 주는 강렬한 이미지를 무자화함으로써 그의 생애가 화자의 생애와 겹치도록 배려되었다는 점이 이를 증거한다. 이러한 중첩은 죽음을 넘어선 예술혼에 대한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해바라기의 비명'의 시적 화자
이 시에 ' - 청년 화가 L을 위하여'라는 부제가 붙어있음을 감안하면 이 시는 제목만으로 보면 시적 화자인 '나'가 '청년 화가L'을 위하여 쓴 묘비명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작품의 내용은 '청년 화가 L'이 직접 쓴 자신의 묘비명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청년 화가 L'은 시인 함형수 자신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은 묘비명이라는 극한 상황을 설정하여 자신의 삶에 대한 열정과 의지를 강렬하게 표출한 작품으로 볼 수 있다. 묘비명, 즉 죽음이라는 상황 설정은 한 사람의 인생관이나 삶의 태도를 가장 절실하게 드러낼 수 있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유치환의 '바위'에 나오는 '내 죽으면 한 개의 바위가 되리라'는 시구나 '생명의 서'에 나오는 죽음이라는 상황 설정, 심훈의 '그날이 오면'에 나오는 죽음의 상황 설정 등이 모두 이와 맥을 같이한다.
함형수(咸亨洙)
1914∼1946. 시인. 함경북도 경성 출생. 고향에서 중등과정을 마치고 상경하여 중앙불교전문학교(中央佛敎專門學校)에 입학하였다. 이 때 서정주(徐廷柱)와 김동리(金東里)를 알게 되어 문학에 입문한 것을 계기로 ‘시인부락(詩人部落)’ 동인이 되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교를 중퇴하고 만주로 건너가 소학교 훈도시험에 합격하여 도문공립백봉우급학교(圖們公立白鳳優級學校)에 근무하기도 하였다. 광복 당시 고향에 머물러 있었으나, 심한 정신착란증으로 시달리다가 사망하였다.
살았을 때 시집은 출간하지 못했고, 동인지 ≪시인부락 詩人部落≫과 ≪자오선 子午線≫에 〈해바래기의 비명(碑銘)〉·〈형화 螢火〉·〈홍도 紅桃〉·〈그애〉·〈무서운 밤〉·〈조개비〉·〈해골(骸骨)의 추억(追憶)〉·〈회상(回想)의 방(房)〉·〈유폐행 幽閉行〉·〈손있는 그림〉·〈부친후일담 父親後日譚〉·〈성야 星夜〉·〈구화행 求花行〉·〈신기루 蜃氣樓〉·〈교상(橋上)의 소녀(少女)〉·〈자전차상(自轉車上)의 소년(少年)〉·〈어떤 애사략(愛史略)〉 등 17편이 실려 있는데, 이 중 〈해바래기의 비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소년행(少年行)’시편이다.
그밖에 ≪동아일보≫ 신춘문예당선작 〈마음〉(1940.1.)과 〈개아미와 같이〉(人文評論, 1940.10.) 등이 있다. 내 무덤 앞에 빗돌을 세우지 말고 노란 해바라기를 심어달라는 〈해바래기의 비명〉은 그의 대표작으로 문학사에 자주 인용되고 있다.
≪참고문헌≫ 朝鮮新文學思潮史 下(白鐵, 白楊堂, 1949), 詩人部落硏究(金容稷, 國文學論集, 단국대학교, 1970), 徐廷柱文學全集 3(徐廷柱, 一志社, 1973).(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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