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 다오
섭섭하지 않게
옷은 입은 채로 전자 시계는 가는 채로
손목에 달아 놓고
아주 춥지는 않게
가죽 가방에 넣어 전세 택시에 싣고
군산(群山)에 가서
검색이 심하면
곰소쯤에 가서
통통배에 옮겨 실어다오
가방 속에서 다리 오그리고
그러나 편안히 누워 있다가
선유도 지나 무인도 지나 통통 소리 지나
배가 육지에 허리 대는 기척에
잠시 정신을 잃고
가방 벗기우고 옷 벗기우고
무인도의 늦가을 차가운 햇빛 속에
구두와 양말도 벗기우고
손목시계 부서질 때
남몰래 시간을 떨어뜨리고
바람 속에 익은 붉은 열매에서 툭툭 퉁기는 씨들을
무연히 안 보이듯 바라보며
살을 말리게 해 다오
어금니에 박혀 녹스는 백금 조각도
바람 속에서 빛나게 해다오.
바람 이불처럼 덮고
화장(化粧)도 해탈(解脫)도 없이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게 해 다오.
요점 정리
지은이 : 황동규(黃東圭)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주지시
제재 : 풍장
성격 : 서정적, 주지적, 관조적, 자연회귀적, 상징적
표현 : 반복법, 점층법
어조 : 담담하고 객관적인 어조
구성
1. 풍장에 대한 염원-풍장의 준비
2. 존재가 소멸되는 과정-풍장의 과정 => 존재의 소멸을 통한 자연과의 합일
3. 자연과의 합일에 대한 소망(완전한 소멸의 소망)-풍장의 의미
주제 : 자유스럽고 자연스런 삶을 향한 소망과 의지, 존재의 소멸을 통한 자연과의 합일(合一), 영원한 자연에로의 귀환 의지, 현실의 허무 의식과 초월 세계의 지향
특징 : 시적 화자는 자신이 죽은 후의 상황을 가정하여 남은 사람에게 자신의 장례 절차에 대해 장부의 말을 취하고 있다. 시신을 살아 있는 상태인 듯이 나타내고, 관조적인 자세와 단호한 의지가 나타나는 어조를 취함
출전 : <풍장> (1984)
내용 연구
풍장[(風葬) : ①시체를 태우고 남은 뼈를 추려 가루로 만든 것을 바람에 날리는 장사. 폭장(曝葬). ②시체를 한데에 버려두어 비바람에 자연히 없어지게 하는 장사법. 한뎃장사로 문학에서는 자유에 대한 근원적인 갈망과 귀환 의지를 상징]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 다오[자유로운 삶에 대한 소망이 담긴 시적 화자의 의지가 나타남]
섭섭하지 않게
옷은 입은 채로 전자 시계[현대 물질 문명의 상징인 세속적 타락]는 가는 채로
손목에 달아 놓고
아주 춥지는 않게
가죽 가방에 넣어 전세 택시[부자연스러운 삶의 공간에서 자유로운 공간인 무인도로 탈출시켜 주는 수단인 '통통배'와 같은 의미임]에 싣고[자신의 시신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표현하여 죽음과 삶이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풍장의 세계관을 반영하는 것으로 '고은'의 '문의 마을에 가서'라는 시 세계와 의식이 통하고 있음]
군산(群山)에 가서
검색이 심하면[시대적 현실 분위기 / 풍장을 거부하는 시대적 관습, 군사 독재 / '검색'은 자신이 원하는 풍장(風葬)을 방해하는 이 시대의 관습을 상징]
곰소쯤에 가서['곰소'는 전북 부안의 포구 이름으로 그러한 시대의 관습이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외진 곳을 의미]
통통배에 옮겨 실어다오[시인이 살고 있던 '육지'가 부자유스러운 삶의 공간을 나타낸다면, 풍장이 이루어지는 '무인도'는 자유로의 회귀의 공간이며, 육지와 무인도 사이의 '바다 또는 통통배'는 육지에서 무인도로 가는 탈출의 과정을 의미하는 공간] - 풍장의 준비
가방 속에서 다리 오그리고[형식적 구속에 아니면 현실적 시대적 상황에 불안해 하는 모습]
그러나[시상의 전환이 되는 곳으로 구속에서 자유로] 편안히 누워 있다가[억압적인 현실 공간을 벗어나니 좁은 가방 안에서도 편안히 누워 있을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현실 상황이 억압적임을 나타냄.]
선유도 지나 무인도 지나 통통 소리 지나['지나'의 반복 - 육지와의 정서적 거리감의 표현으로 육신의 진정한 자유를 획득할 수 있는 지향점]
배가 육지에 허리 대는 기척에
잠시 정신을 잃고[자신의 시신이 정신을 차리고 있다가 통통배를 댈 때의 충격으로 잠시 정신을 잃는다고 표현하여 시신이 살아 있는 것처럼 말하여 죽음과 삶은 단절이 아니라 하나의 연속적인 세계라는 시인의 의식이 담겨 있음]
가방 벗기우고 옷 벗기우고['가방'과 '옷'은 살아오면서 어쩔 수 없이 입은 허례(虛禮)와 가식(假飾), 혹은 자신의 죽음을 장식하고 있는 인위적인 사물을 상징하는 것으로 자신을 둘러 싸고 있는 모든 것을 떨쳐 버리고]
무인도[참된 자유를 획득할 수 있는 공간]의 늦가을[소멸의 시간을 상징] 차가운 햇빛 속에
구두와 양말도 벗기우고[속세의 인위적인 사물들로부터의 해방]
손목시계 부서질 때[세속적 시간과의 단절]
남몰래 시간을 떨어뜨리고[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과정을 제시하는 것으로 인간적인 시간의 질서에서 벗어나 영원한 우주의 질서로 복귀하는 것을 의미 / 세상과의 이별]
바람[모든 존재를 소멸시켜서 다시금 자연의 품으로 되돌아가게 만드는 자연의 순환을 돕는 풍화 작용] 속에 익은 붉은 열매에서 툭툭 퉁기는 씨[순수한 존재]들을
무연히[특별하게 관심을 표현하지 않고 멍하게라는 말로 초탈한 자세의 표현] 안 보이듯 바라보며
살을 말리게 해 다오[질곡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소망]
어금니에 박혀 녹스는 백금 조각도
바람 속에 빛나게 해다오[자연 앞에 소멸하는 존재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백금을 씌운 어금니는 물질적 구속을 의미하며, 그것이 바람 속에 빛난다는 표현은 풍화로 인한 분리이고 궁극적으로 물질과 소유가 가득찬 자본의 세계인 현실의 구속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지는 모습을 의미하는 것으로 시적 자아가 바라는 완전한 자유와 자연으로의 귀환을 바람 속에 빛나는 '백금 조각'으로 표현/ 풍화로 인한 분리] - 풍장의 과정
바람 이불처럼 덮고[죽음에 초연한 자세]
화장(化粧 : 죽은 자에게 얼굴과 몸단장을 시키는 의식으로 서양의 일부 종교에서 유래한 세속적 의식)도 해탈(解脫)도 없이[자신이 시신의 부패를 눈가림하는 화장이나 삶의 온갖 고뇌로부터 벗어난다고 말하는 '해탈'과 같은 정신적, 종교적 가식도 부여하지 않고 / 풍장을 바라는 이유가 드러남]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바람'과의 조화를 시각적으로 표현]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자신의 존재가 비바람 속에서 완전히 소멸되어 자연과 우주의 한 부분이 될 때까지.]
바람과 놀게 해 다오.[자신의 몸이 풍화하여 자연과 합일되는 것만을 바라고 있음. 자연으로 회귀 / 죽음도 삶과 같이 우주의 순환 과정의 일부로 여기는 것으로 '고은'의 '문의마을에 가서', '천상병'의 '귀천' 시와 연결시켜 공부하면 좋겠음] - 풍장의 의미
이해와 감상
황동규의 1980년대 시 세계를 대표하는 연작시 '풍장' 중 첫 번째 작품으로 완전한 자유로의 귀환 의지와 갈망이 상징적인 표현으로 선명하게 제시되어 있다. 이 시의 화자는 자신이 죽으면 시신을 풍장해 달라고 부탁한다. 아무도 살지 않는 무인도에서 바람과 놀면서 자연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 시는 삶과 죽음 사이에 절대적인 경계가 있다는 세계관을 반영하는 '매장'이나 내세 중심의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는 '화장'과는 차이가 있는데 풍장은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순환적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시적 화자는 풍장에 의해 바람 속에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시신처럼 자유롭고 자연스럽게 살고자 하는 소망을 표현하고 있다. 이 시에서 '바람'은 모든 존재를 소멸시켜서 다시금 자연의 품으로 되돌아가게 만드는 자연의 풍화 작용을 의미한다.
시인은 죽음에 덧붙여지는 인간적인 의미를 철저하게 거부하고 죽음 그 자체에 대해서도 냉철하고 객관적인 태도를 취하라고 요구한다. 이 때문에 이 시는 엄숙하지도 않고 비장하지도 않고, 그저 담담하고 객관적인 진술로 일관하고 있다. 심지어는 자신의 주검이 바람 속에서 풍화되어 가는 과정마저도 '바람'과 노는 것이라고 다소 장난스럽게 진술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진술은 풍장을 통해 자신의 본질로 돌아갈 수 있다는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믿음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시적 화자에게 있어서 죽음은 그저 담담함이다. 그는 죽음을 긍정적이고 낙관적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바람'과 '죽음'의 이미지를 결합하여 일상의 고달픔과 질곡을 벗어나 정신의 가벼움과 투명함을 성취하는 동시에 영원한 이상 세계인 '무인도'에 도달하여 무한한 자연으로 귀환하려는 의지가 아름답게 그려진 작품이다. 작가의 죽음은 상식으로는 파악할 수 없고, 죽음에 초연하다. 이와 같은 죽음관과 죽음에 대한 냉정하고도 객관적인 태도와 어조는 우리 시의 전통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다. 이는 삶에 대한 세속적인 편견을 극복하고 삶의 진상을 파악하려는 시인의 진지한 노력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는 동시에 삶에 대한 허무주의적인 태도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심화 자료
황동규(黃東奎, 1938~ )
1938년 서울 출생. 서울대 영문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 영국 에딘버러 대학, 미국 아이오와 대학, 뉴욕 대학에서 수학했다. 1958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래, '어떤 개인 날' '비가', '악어를 조심하라고', '풍장', '버클리풍의 사랑노래' 등 11권의 시집과 산문집 '겨울 노래' 등을 냈다. 현대문학상, 연암문학상, 이산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현재 서울대 영문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생각해 볼까요?
1. 이 시에서 비판하고자 하는 것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 현대 문명 사회의 물질 만능이 자아내는 모순을 풍자와 상징을 통해 비판하고 있다.
2. '순수'의 의미를 보여주는 시어를 찾아보자.
: 바람으로 바람은 자연의 순환을 돕는 것
3. '풍장'을 하려는 이유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 세속적 타락에서 벗어나, 자연과 합일하려는 자연순환적 사고
4. 이 시에 쓰인 소재들을 참고로 하여, '내 세상을 뜨면 풍장시켜 다오.'와 같이 말한 이유를 생각해 보자.
: 현대 문명 사회에서 물질 만능주의가 빚어내는 구조적 모순을 부정적으로 보고, 이 세속적 타락으로부터 순수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강렬한 바람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5. 이 시에서 시인이 옹호하고자 하는 가치를 시 가운데서 찾아보자.
: 순수 - 현대 문명사회의 물질 만능이 자아내는 모순을 풍자 상징을 통해 비판.
6. 시대적 현실의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시어를 찾아보자.
: 검색
7. '바람'에 담긴 의미를 생각해 보자.
: 소멸. 바람은 피와 살을 말리고 모든 것을 사라지게 하는 존재이다.
비교해 봅시다.
1. 다음은 유치환의 '바위' 중 일부이다. 이 시에 드러난 서정적 자아의 태도와 어떤 점에서 유사한지 살펴보자.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 현실에 대한 허무적 자각을 바탕으로 초월의 경지에 도달하려는 점에서 유사하다.
이것만은 알아야
1. 이 시에서 시인이 파악하고 있는 '죽음'의 의미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 인위적인 꾸밈도 종교적인 의미 부여도 필요없는 객관적 사실. 죽음에 대한 초연한 인식을 보이고 있다.
2. 이 시에서 삶에 대한 시인의 태도가 어떻게 드러나는지 살펴보자.
: 허무적
3. 서정적 자아가 원하는 '풍장'을 방해하는 이 시대의 제도와 관습을 상징하는 시어를 찾아보자.
: 이 시에서 서정적 자아가 말을 건네고 있는 대상은 세상이며, 가상적인 청자는 이 시대의 관습과 제도에 얽매인 모든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곰소지도
검색(檢索) : 검사하여 찾아봄.
곰소 : 부안 진서면 곰소. 곰소항이 있다. 천일염과 전국 제일의 젓갈 단지 곰소는 원래가 섬(熊女島)이었으나 일제가 군수물자와 농산물을 반출하기 위해 인공적으로 조성한 육지다. 아직도 200여 척의 어선들이 항구를 이용하고 있으며, 주변에 소규모 상가와 마을을 끼고 있고 나아가 천일염을 생산하는 염전이 있다.
선유도 : 약 20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고군산열도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섬. 군산항 에서는 약 50km 떨어져 있다. 선유도에는 선유팔경이 있다. 그중 으뜸 가는 절경은 망주봉으로 선유도의 상징물이다. 섬과 섬 사이로 지는 낙조로 유명하다.
무인도 : 사람이 살지 않는 섬. 현대적 삶에 있어서 누구나 단독자로 외롭게 살아가는 개인의 모습을 상징한 말. 신대철의 시집명이기도 함. (참고작품 - 이생진, '上白島 무인도', <섬에 오는 이유>, p. 65, 신대철, '무인도', <무인도를 위하여>, p. 24)
풍장
시체를 지상에 노출시켜 자연히 소멸시키는 장례법 또는 사체의 처리방법. 장법으로 세계에 널리 분포되어 있는 것은 토장(土葬)·화장(火葬)·수장(水葬)·수상장(樹上葬)·조장(鳥葬) 등이 있는데, 풍장도 옛날부터 세계적으로 널리 분포되어 있는 것 중의 하나이다.
사체처리방법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풍장은 사체를 지상이나 나무 위, 암반 등과 같은 자연상태에 유기하여 비바람을 맞아 부패되게 하여 자연적으로 소멸시킨다는 데 특징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장법은 민족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 이면에 사령(死靈)을 천계나 저승으로 장송하는 데 보다 유리한 방법이라는 인간관 내지는 영혼관·자연관이 숨어 있다. 흔히 풍장을 복장제(復葬制) 혹은 이중장제와 혼돈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엄격히 구분된다.
복장제 혹은 이중장제는 죽은 사람의 장례를 두 번 행하되 가장(假葬)으로 생각되는 제1차 장에서 시체를 완전히 썩여 가지고 탈육된 유골을 본장이라고 생각되는 제2차 장으로 처리하는 장법이다. 이러한 장법의 제1차 장이 풍장의 형태와 유사한 점에 착각하여 복장제를 풍장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풍장은 사체를 자연상태에 영원히 방치하여 버린다는 점에서 복장제와 구분이 된다.
우리 나라에서도 복장제와 구분되는 풍장의 사례가 서해안의 도서지방에 전래되고 있다. 그 내용을 보면, 마마에 걸려 죽은 아이들을 짚으로 짜서 나무에 높이 매달아 두고, 나중에 뼈를 다시 처리하는 일이 없이 방치한다. 아기의 사체를 풍장으로 처리하는 사례 외에는 전래되고 있지 않아서 우리 나라의 풍장법의 유래나 구체적인 내용을 알 길이 없다.
다만 사체를 나무 위나 산, 암반 위에 두었다는 기록이 ≪삼국유사≫나 ≪위지 魏志≫ 등에 있어서 풍장의 유례를 추측하게 하기는 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록이 복장제의 제1차 장을 말하는 것인지, 풍장을 말하는 것인지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풍장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참고문헌≫ 葬制와 關聯된 巫俗硏究(李杜鉉, 韓國文化人類學 6, 1973).(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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