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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방/유명시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황지우

by 미스커피 2012. 1. 11.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희망의 문학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群)을 이루며

갈대 숲을 이륙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자유로운 비상

희망의 문학 요점 정리

희망의 문학 지은이 : 황지우

희망의 문학 갈래 : 자유시

희망의 문학 율격 : 내재율

희망의 문학 성격 : 현실 비판적, 풍자적

희망의 문학 어조 : 냉소적 어조

희망의 문학 특징 : 반어법, 반복법을 사용하고, 애국가의 시작과 끝에 맞춘 구성을 취함

희망의 문학 대비적 상황 설정 : 새 - 우리, 자유 - 억압

희망의 문학 구성 :

   1-2행    : 애국가 경청 - 암울한 현실의 모습

   3-10행   : 이상향을 향한 새들의 비상 - 현실에 대한 환멸

   11-16행  : 현실 극복의 소망

   17-20행 : 화자의 이상과 현실적 좌절

희망의 문학 제재 : 새

희망의 문학 주제 : 암울한 현실을 벗어 나고 싶은 소망과 그 좌절감. 군사 정치 문화에 대한 냉소적 태도와 무력감, 현실적 삶의 위선과 억압에 대한 비판과 자유로운 삶에 대한 희구를 드러냄

희망의 문학 출전 :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1987)

 

 

희망의 문학 내용 연구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80년대 독재 정권하의 일반 대중을 의미)

일제히 일어나(획일적 군사 문화) 애국가를 경청한다(강요된 애국심으로 반어적 표현 - 강요에 의해 들을 수밖에 없는 현실 / 끼룩끼룩거리면서, 낄낄대면서와 대조되는 행위. 예전 군사 독재 시절에는 극장에서 영화를 상영하기 전에 애국가를 들려 주었다. 시적 화자는 그 때를 떠올리면서 당시의 억압적인 시대 상황을 그리고 있다. '애국가'는 강요된 조국애의 상징, 박정희 군사 독재 치하에서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으로 이어지는 획일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사회 분위기가 엿보이는 부분이며, 이 같은 분위기에 대한 화자의 비판적이고, 냉소적인 태도를 알 수가 있고, 이러한 애국가 연주는 독재 정권들이 그들의 정통성 없음을 무마하기 위한 도구의 하나로, 국민을 하나로 묶어 주고 국가관이나 민족 의식을 고취시켜주는 노래로 이용되곤 했다. 다시 말해서 군사독재 정권하에서 국민들의 애국심을 이용하여 그들의 통치의 정당성을 얻고자 했다. 애국가만 나오면 모든 사람이 그 자리에서 멈추고 애국가를 경청해야만 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이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비애국자로 취급하는 분위기와 그리고 그 당시  애국가는 반체제 인사들을 탄압하던 어두운 시절을 상징하는 말이었다.애국가를 경청한다는 말은 반어적인 표현으로 화자는 애국심을 가지고 애국가를 공손하게 듣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이고, 냉소적인 태도로 애국가를 듣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시적 화자는 극장에까지 와서 애국가를 들어야 하는 현실은 결코 '화려 강산'이 아니고, 도리어 민주주의가 없는 사랑하고 싶지 않은 조국일 따름이다. 이 시에서 애국가의 경청 장면의 삽입은 애국심의 고취라는 애국가의 본래 의도와는 달리 현실에 대한 환멸과 냉소를 느끼게 할 뿐이다. 흔히 이런 것을 신성모독이라고 하는데 이런 애국가에 대한 불경스러운 자세를 통해서 반어적 효과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가장 사적인 공간에까지 국가주의가 침투했던 1980년대의 억압적인 사회 현실을 드러낸 표현]

삼천리 화려 강산(옛날부터 '우리나라'를 지칭한 미화법이다. 하지만 여기서 시적 화자는 극장에까지 와서 애국가를 들어야 하는 현실은 결코 '화려 강산'이 아니고, 도리어 민주주의가 없는 사랑하고 싶지 않은 조국일 따름이라고 말한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조국을 반어적으로 풍자했다고 볼 수 있다.  /  . 언어 표현이라는 측면에서 '아이러니 irony - 반어법(사실과 반대되는 말을 쓰는 표현법)-'는 진술 자체에는 모순이 없으나 진술된 언어와 그것이 지시하는 대상 혹은 숨겨진 의미 사이에 모순이 생기는 경우를 가리키며, '역설 paradox - 일반적으로는 모순을 야기하지 아니하나 특정한 경우에 논리적 모순을 일으키는 논증. 모순을 일으키기는 하지만 그 속에 중요한 진리가 함축되어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 '은 진술 자체가 모순인 경우를 가리킨다. 시에서 쓰이는 역설은 작품 전체 구조에서 역설적인 상황이 드러나게 하여, 그것을 통해 독자는 세계와 인간 자신의 모순을 발견하고 삶의 진리가 무엇인가를 반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을숙도(낙동강 하구에 있는 섬으로 대규모 철새 도래지로 유명한 곳)에서 일정한 군(群)을 이루며

갈대 숲을 이륙하는 흰 새떼들이(자유로운 존재로 화자의 처지와 상반된 부러움의 대상 / 암울한 현실과 대조됨, 흰 새떼는 어둡고 절망적인 현실 세계에서 벗어나고 싶은 시적 화자의 욕망과 동일시되는 존재)

자기들끼리(우리와 달리) 끼룩거리면서(철새들이 날아가면서 내는 소리를 '끼룩거리면서'로 표현한 뒤 다시 '낄낄대면서'로 바꿈으로써 새들 나름의 즐거운 자유를 누린다는 생각을 언어화한 표현으로 새들이 자유를 만끽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자신들을 보고 있는 인간들을 야유한다는 의미도 담겨 있음 / 현실에 대한 냉소적 태도)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애국가가 울릴 때 극장의 배경 화면으로 비춰지고 있는 새떼들이 도리어 '엄숙하게' 애국가를 부르고 있는 자기들을 비웃고 있는 것처럼 느끼고, 새떼들이 낄낄대면서 웃는 것처럼 들리는 것은 화자가 이 상황에 대해 야유를 퍼붓고 싶기 때문이며, 이러한 자신에 대한 자조적인 심경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삼천리 화려 강산'이라는 표현 역시 반어적이고, 냉소적인 어조로 말해지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왜냐하면 화려 강산이라고 말하기에는 우리 나라의 정치적 현실이 너무도 암담하고 어두웠기 때문이리라.)

일렬 이열 삼렬 횡대(획일화를 상징하는 말로 군사 문화에 대한 비판과 풍자)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자유를 억압하는 현실]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자유와 이상의 세계 - 화자가 지향하는 세계] 어디론가 날아간다( '일렬 이열 삼렬 횡대'에서는 군사 문화의 획일성, 무력성, 맹목성이 담겨 있고, 화자가 처해 있는 세상은 군사독재정권하의 자유가 없는 세상에 대한 환멸을 느끼고 있고, 어디론가 벗어나고 싶은 마음의 반영으로 새떼들이 살맛 안 나는 세상을 벗어나 '자기들의 세상'을 떼어 메고 날아가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자유의 이미지와 '이 세상'에 대한 조롱과 조소의 성격이 담겨 있는 중의적 표현 )

[새의 웃음은 자유를 구가하는 웃음이고, 우리의 웃음은 현실에 대한 비판과 냉소의 웃음이다.]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화자가 지향하는 이상향)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이라는 표현에서 시적 화자의 자유에 대한 소망이 제시되어 있다. 이 억압의 현실을 벗어나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속뜻은 현실에 대한 냉소적, 조롱하는 태도) '우리들'만의 세상을 떼어 메고 탈출하고 싶은 것이다.)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애국가의 끝 구절로 현실에 순응할 것에 대한 강압적 주문]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영화 화면과 연관된 시상이 마무리되고 객석의 현실로 돌아오는 부분]

주저앉는다(현실에 대한 좌절 / 애국가가 끝나면 화자의 이런 환상은 끝이 나고 그는 다시 자신의 자리에 앉는다. 그의 환상은 실현되지 않았으며,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화자 역시 '현실'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주저 앉는다'라는 표현에 화자의 짙은 좌절감이 나타나 있음과 동시에 실천하지 못하는 지식인의 한계를 엿볼 수 있다. 여기서 '대한 사람 대한으로' 시구에서는 구호로 대변되는 군사 문화의 정치적 획일성과 횡포의 상징을 엿볼 수 있다. '주저앉는다'는 힘에 의한 종속으로 시적 화자의 현실적 무력감, 또는 현실을 벗어날 수 없는 좌절감과 절망감 혹은 자괴감이 담겨 있다.)

 

희망의 문학 문학 작품 속에서 새

 새는 자유, 순수, 희망, 평화 등의 관념적이면서도 긍정적인 의미의 형상물로 자주 등장한다. 이 작품에서 새는 지상적인 삶의 구속에서 벗어나려는 화자의 갈망, 소망을 드러내는 소재인데 황지우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에 등장하는 새들 역시 이러한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또 박남수의 '새'라는 작품에서 새는 순수의 결정체로 등장하는데 이 시에서 새는 비정한 인간 세계의 대척점에 존재하는 순수의 세계 그 자체를 의미한다. 그리고 '성북동 비둘기'의 비둘기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자연의 세계를 뜻하면서 물질 문명의 파괴적 속성을 경고하는 시의 소재로 등장한다.

이 시는 어떤 상황을 표현하고 있는지 설명해 보자.

 이 시는 영화 상영 전에 극장에서 치르는 의식, 즉 화면을 통해 애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연주가 끝날 때까지 숨죽인 채 있어야 했던 80년대 당시 우리 삶의 왜곡된 사회상을 전제로 쓰여진 일종의 풍속도이다.  각자 내면에는 답답한 현실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욕망을 꿈꾸지만, 연주가 끝나면 허무하게 다시 자리에 앉아 버리는 어색한 순간을 장면화하여 그리고 있다. 그러한 답답한 현실을 만든 장본인 중의 하나인 전두환은 지금 비자금 문제로 사회적 관심을 받고 있다. 그런 그가 지금 자신의 전재산이 28만원이라는 웃지 못할 말을 하고 있고, 평소에는 돈 없다는 그가 많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조폭처럼 거들먹거리며 골프를 치고 다니는 者다. 이런 이들이 바로 우리 사회의 지도자들이었고, 우리 사회 지도자들의 면면의 한 단면을 보여 주고 있으며 이런 비양식적인 자들이 만들어 낸 80년대의 초상화를 그린 작품이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이다. 사족을 붙이자면 전두환 같은 자들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활개를 치는 이유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인물과 사상'을 보시라.

2. 시적 화자의 심리 상태를 염두에 두고, 다음 시구가 함축하는 의미는 무엇인지 말해 보자.

 우선 시적 화자는 침묵한 채 극장 화면의 영상만을 응시해야 하는 입장에 있음을 파악하도록 하고, 화자의 심리 상태는 억압된 현실에 대한 울분과 답답함이 교차되는 상황일 것이다. 이러한 경우 화자는 현실적 절망감으로 인해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비판적인 관점을 가지게 된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 새들이 끼룩거리는 장면을 바라보는 일반 대중들 역시 자신들만의 자유로운 소통을 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 굴레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누리고 싶다는 화자의 내면적 욕망을 표출하고 있다.

주저앉는다 : 당대 현실의 암울한 상황에 무기력함을 느낀 채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버리는 허무 의식을 드러낸다.

3. 작자가 이 시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이 시는 작자의 주제 의식을 암시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의도적인 표현 방법과 언어 구사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파악하도록 하고, 특히 문장의 서술 구조에 유의하여 화자가 발화상황에서 어떤 의식을 가지게 되었는가를 생각하면서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 시의 화자는 자신이 처한 현실이 혐오스럽고, 치욕적인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이런 오욕스러운 조국의 삶은 치유 불가능한 절망적인 상태에 놓여 있고, 이러한 조국과 부끄러운 삶을 버리고 떠나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다.

4. 이 시는 매우 일상적인 언어로 쓰였지만 시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자.

 이 시의 표현은 아이러니한 상황 인식과 역설적 표현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데에 초점을 맞추도록 한다. 즉 작자는 독자와, 화자는 시적 상황 혹은 대상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음을 파악한 다음, 이로 인해 시에서 작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암시적으로 드러나게 된다는 것을 이해한 다음 접근해야 한다.

 이 시의 화자는 자신을 포함해 행위 당사자의 입장에서 상황을 주관적으로 서술하면서도 시적 상황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즉 냉소와 조소, 비꼼과 같은 어조를 동반하여 평범한 말의 이면에 작자의 날카로운 풍자 의식이 스며들 수 있도록 냉정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이 시는 일상적인 언어 속에 함축적이고 의도적인 주제 의식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독자는 세상과 삶에 대한 모순을 발견하고, 삶의 진리가 무엇인지를 반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된다.

 

 

희망의 문학 이해와 감상

  시를 '당대에 대한, 당대를 위한, 당대의 유언으로' 쓰고자 했던 시인이 바라본 1980년대는 죽음과 절망으로 가득 찬 곳이자, 차라리 초월해 버리고 싶은 환멸의 공간이었다. 이 작품은 바로 그러한 현실 인식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폭압적 현실 상황에 대한 극도의 좌절감을 풍자적 수법을 통해 보여 주고 있다. 즉 자신이 태어난 조국이 정말로 살고 싶지 않은 곳이라는 환멸적 인식과 함께,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살고 있다는 자괴감(自愧感)이 형상화되어 있다.

 지금은 아니지만, 한때 본 영화가 상영되기 전에 애국가가 울려 퍼졌던(?) 시절이 있었다. 바로 군사 정권의 폭압적인 정치 속에서 숨죽이고 살던 시대로, 정부의 그 같은 조치는 군사 정권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에게 애국심을 일깨워 주자는 의도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다.

 '삼천리 화려 강산'을 떠나 줄지어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 가는 흰 새떼들의 모습을 보며 화자 역시 대열을 이루어 어디론가 날아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이는 고통스런 폭압적 정치 현실로부터 멀리 떠나고 싶다는 생각일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삼천리 화려 강산'이란 풍자의 대상인 조국이 더 이상 '화려 강산'일 수 없다는 역설의 의미로 쓰인 것이다.

 애국가의 끝 구절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가 나오면 사람들은 서둘러 다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화자는 이를 '주저앉는다'라고 표현하였다.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주저앉는다'는 것은 암울한 현실에 대한 화자의 깊은 절망감을 표현한 것이다. 즉 이 작품은 현실을 통해 보고, 듣고, 느낀 삶에 대한 회의와 절망을 노래한 것으로, 화자는 이런 피곤하고 역겨운 현실을 탈피해 좀 더 바람직하고 인간다운 삶을 살고자 하는 희구(希求)를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이해와 감상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영화관에서는 본 영화를 시작하기 전 '애국가'와 '대한 뉴스'를 상영했었다. 을숙도 철새 도래지를 배경으로 철새들이 현란하게 날아오르는 모습은 자유를 갈망하는 우리의 가슴을 후련하게 해 주었다. 그러나 객석에서 서서 침묵한 채 그것을 멀뚱히 바라보아야 한는 그 시간만큼 자신이 바보스럽게 느껴지는 때도 없었다. 이것은 분명 삶의 아이러니요 역설이다. 이 시는 당시 군사 정권의 억압적인 사회 현실 속에서 자유로운 삶을 바라는 지식인의 비판적 태도와 현실적 절망감을 영화관 속의 한 상황을 묘사함으로써 암시하고 있다.

 

 

희망의 문학 심화 자료

희망의 문학 세상을 뜨고 싶은 욕망과 주저앉는 좌절 사이

 시의 구조상에 있어, 이 시는 영화 시작 전의 애국가의 울림으로부터 출발하여 애국가가 끝나는 순간에 끝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시 중간에 나오는 새들은 아마도 애국가가 불려지면서 보이는 화면에 등장하는 새들일 것이다. 화면에는 새들이 날고, 이것을 배경으로 하여 애국가가 울려 퍼지고, 이 때 일어나서 다시 앉는 과정 중에 시인은 자신의 사유를 전개하고 있다. 새들이 자신의 대형(隊形)을 이루어 날아가는 모습을 시인은 이 세상 밖으로 날아가는 것으로 인식한다. 이는 시인이 항상 이 세상을 떠나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 소망의 원천을 탐색하기란 이 작품만으로는 곤란하다. 그럼에도 추측해 본다면, 삼천리 화려 강산이라는 이곳에서 영화가 시작될 때마다 애국가를 듣기 위해 일어섰다 앉았다 해야 하는 나라란 올바른 곳이 아닐 것이다. 일종의 강제 동원 체제라는 인식이 저변에 흐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자유롭게 보아야 하는 영화관에서조차 애국가를 울려 대며 나라를 사랑하라 외쳐 대는 그런 엄숙주의 속에서 시인은 갑갑하다. 그래서 시인은 '낄낄대면서 / 깔죽대면서' 날아가고 싶은 것이다.

 이 세상을 뜨고 싶었던 시인은, 애국가 후반부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의 시구에 다시 가로막힌다. 이 나라를 길이 보전하리라는 말은 시인에겐 아무런 탈출구도 없는 상황 인식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시인은 자기 자리에 앉는다. 이 주저 앉음은 시인을 극도로 괴롭히는 것일 텐데, 왜냐 하면 이 세상을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는 극도의 절망을 안겨 주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빠져 나갈 수 없으며 여기에 주저앉아야 한다는 생각은 시인으로 하여금 이곳 이 나라에서의 시적 저항의 길을 터놓는다. 그것이 황지우 시인이 계속적으로 시를 써나가는 매개가 되는 것이다.(출처 : 한계전, 한계전의 명시 읽기)

희망의 문학 황지우 시의 풍자 정신과 모더니즘

  아마도 오늘의 독자들이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때는 사전의 어떤 의식 없이 곧바로 시작을 알리는 벨소리와 함께 영화를 관람할 것이다. 그러나 이 시가 쓰여진 80년대의 정치적 권위주의 시대에는 그렇지 않았다. 영화를 감상하기에 치르는 의식이 있었다. 애국가의 연주 소리가 시작되면 모든 관객들은 일시에 의자에 일어나 스크린에 방영되는 영상을 보며 애국가의 연주가 끝날 때까지 기립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좋은 의미에서 국가에 대한 충성과 사랑을 헌정하는 의식 또는 경배라 할 수 있다. 대개는 조국의 번영과 국토의 아름다움, 그리고 미래에 대한 꿈을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의 애국심을 의식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들이지만, 이 작품과 관련하여 주목되는 것 가운데 하나는 낙동강 하류의 철새 도래지 을숙도의 경관을 보여 주는 영상이다. 수만 마리의 아름다운 철새들이 을숙도의 갈대밭을 차고 푸른 가을 하늘로 날아오르는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며 우리 국토의 아름다움과 조국의 번영과 평화를 상징적으로 나타내 보여 주는 데 유감이 없는 것들이라 할 수 있다.

 시인은 바로 이와 같은 영화 감상의 풍속을 시적 공간으로 끌어들여 독특한 풍자로서 당대의 우리 삶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클라크(A.M.Clack)에 의하면 풍자란 진지한 것과 경박한 것, 사소한 것과 교훈적인 것, 극히 유치한 것과 고도로 세련되거나 우아한 것 사이를 왕복하면서 우행(愚行)의 폭로와 사악(邪惡)의 징벌을 기도하는 언술이며 넓은 의미로 위트, 아이러니, 비꼬기, 조소, 냉소, 욕설 등이 이 영역에 들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는 풍자의 기법으로 쓰여진 것이 분명하다고 말할 수 있다.

 시의 화자는 객석에서 기립하여 애국가의 경청과 함께 스크린에 떠오르는 영상을 본다. 그의 눈에는 마침 을숙도에서 철새들 수만 마리가 하늘로 비상하는 장면이 들어온다. 그러나 이 광경에서 화자는 본 영화 상영 전의 이 같은 의식이 의도하는 바, 국토의 아름다움이나 조국의 번영, 혹은 안식이 느껴지기보다는 문득 비상하는 저 철새들처럼 자신도 자유롭게 이 땅을 버리고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은 충동에 빠진다. 시적 진술인 까닭에 직접적인 언급은 나타나고 있지 않지만 화자의 이와 같은 의식에는 조국에 대한 사랑이나 충성심보다는 혐오감이나 배신감이 팽배해 있음을 독자들은 쉽게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출처 : 오세영, '20세기 한국 시의 표정')

희망 작자의 현실 인식

 시를 '당대에 대한 당대를 위한, 당대의 유언으로' 쓰고자 했던 작자가 바라본 1980년대는 죽음과 절망으로 가득 찬 곳이자, 차라리 초월해 버리고 싶은 환멸의 공간이었다. 이 작품은 바로 그러한 현실 인식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폭압적 현실 상황에 대한 극도의 좌절감을 풍자적 수법을 통해 보여 주고 있다. 즉 자신이 태어난 조국이 정말로 살고 싶지 않은 곳이라는 환멸적 인식과 함께,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살고 있다는 자괴감(自愧感)이 형상화되어 있는 것이다.

풍자적 기법

 애국가의 가사를 인용하여 진지해야 할 행위를 경박한 행위로 바꿔 놓으며, 영화 관람이라는 일상적이고 사소한 행위를 시대와 현실에 대한 인식이라는 엄숙한 교훈성으로 확대시켜 놓음으로써 현실의 왜곡된 면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풍자를 보여 준다.

시적 아이러니와 역설

 언어 표현이라는 측면에서 '아이러니'는 진술 자체에는 모순이 없으나 진술된 언어와 그것이 지시하는 대상 혹은 숨겨진 의미 사이에 모순이 생기는 경우를 가리키며, '역설'은 진술 자체가 모순인 경우를 가리킨다. 시에서 쓰이는 역설은 작품 전체의 구조에서 역설적인 상황이 드러나게 하여, 그것을 통해 독자는 세계와 인간 자신의 모순을 발견하고 삶의 진리가 무엇인가를 반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아이러니irony

 

낱말이 문장에서 표면의 뜻과 반대로 표현되는 용법이다. 어원은 그리스어의 에이로네이아(eironeia:위장)이다.

 

소크라테스가 무지(無知)를 가장하고 논적(論敵)에 접근, 지자(知者)로 자부하고 있는 상대방에게 질문하는 형식으로 상대방 입장의 내적 모순을 폭로하고, 그 무지를 자각하게 하는 문답법으로 사용한 일이 알려져 있는데 이것을 '소크라테스적 아이러니'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진의(眞意)와 반대되는 표현을 말하는데, 표면으로 칭찬과 동의를 가장하면서 오히려 비난이나 부정의 뜻을 신랄하게 나타내려고 하는 등의 예를 들 수 있다.

 

그것은 지적인 날카로움을 갖는 점에서 기지(機知)에 통하고, 간접적인 비난의 뜻을 암시하는 점에서는 풍자와 통하며, 표리(表裏)의 차질에서 생기는 유머를 포함한다.

 

19세기 독일낭만파에서는 예술창작상의 지속적인 정신태도의 뜻으로 쓰여 '모든 것 위에 떠들면서 모든 것을 부정하고, 초월하는' 정신적 자유를 뜻하였으며, 키르케고르는 미적(美的) 존재에서 윤리적 실존으로의 이행(移行)을 부정적으로 매개하는 것으로 사용하였다.

 

한편, 말하는 사람이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을 충분히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들으면 뜻하지 않은 의미를 포함할 경우, 이것을 '비극적 아이러니' 또는 '소포클레스적 아이러니'라고 하여 비극적 인물의 대사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다.(출처 : 동아대백과사전)

 

역설 paradox

 

배리(背理) 역리(逆理) 또는 이율배반(二律背反)이라고도 한다. 명확한 역설은 분명한 진리인 배중률(排中律)에 모순되는 형태로 인도하는 것이 보통이다. 예부터 알려진 역설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거짓말쟁이의 역설로는 신약성서 가운데 《디도에게 보낸 편지》(1:12)에 "그레데인(人) 중에 어떤 선지자가 말하되,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쟁이며"라는 말이 있다. 선지자 자신이 그레데인이므로 이 경우 '그레데인은 항상 거짓말쟁이'라는 말을 긍정하거나 부정하거나 간에 모순을 낳는 것이므로 역설이다.

 

이 역설은 옛날부터 많이 논해 왔지만, 전칭명제(全稱命題)의 부정은 특칭명제(特稱命題)가 되는 점에 의문의 여지가 있다. I.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의 이율배반도 역설의 형태를 취하여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수학의 집합론에 관련하여서는 다음과 같이 역설이 지적되며, 이것을 조정하고자 하여 수학 기초론이 발달하였다. 리처드의 역설은 '18자 이내로 정의할 수 없는 최소의 자연수'라고 말할 때, 이 자연수는 정의할 수 없다면서, 사실은 상술한 말(바로 18자로 된 말)로 정의되었다. B.러셀의 역설은 자기 자신을 포함하지 않는 집합만을 모두 모은 집합을 M이라고 하면, M은 자기 자신을 포함하였거나 포함하지 않았거나의 어느 쪽이다. 그러나 M이 자기 자신을 포함하였다고 하면, M은 M 안에 있는 집합이므로 자기 자신을 포함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M이 자기 자신을 포함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M 안에 들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즉, M은 자기 자신을 포함시킬 수도, 포함시키지 않을 수도 없다. 그 밖에 집합론에서는 순서수(順序數) 전체의 집합에 관한 부랄리포르티(Burali-Forti)의 역설 등이 알려졌다.

 

이들 역설에 빠지는 것을 막는 수단으로서, 개념에 단계를 붙이는 러셀형(型)의 이론, 공리주의(公理主義) 집합론의 유(類)와 집합의 구별, 또는 말의 의미를 이중으로 사용하는 일의 금지 등 여러 가지 연구가 행해진다.

 

배중률만큼 명확하지 않은 기성 학술 또는 경험적 사실에 대하여, 이것을 부정하는 목적을 내포하는 역설을 배리 또는 역리라고 하는데, 배리와 역리는 엄밀하게 구별되는 것이 아니며 동의어로도 사용한다.(출처 : 동아대백과사전)

희망의 문학 황지우(黃芝雨 1952- ) :

 시인. 전남 해남 출생.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연혁(沿革)"의 입선과 <문학과 지성>에 "대답 없는 날들을 위하여" 등을 발표하면서 등단하였다. 1983년에 첫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를 간행하고 그 해 제3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 후 제2 시집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제3 시집 <나는 너다>, 제4 시집 <게눈 속의 연꽃>을 냈다. 황지우의 작품들은 대체로 회화적이면서도 감각적 이미지들이 현실의 상황을 아파하는 시인의 심정을 드러내고 있다.

희망의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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