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여, 큰 나무여
신경림
이 큰 나무를 키워온 것은
비와 햇빛만이 아니었다.
뿌리를 타고 오르는
맑고 시원한 물줄기만은 아니었다.
뿌리를 몸통을 가지를 이루면서
얽히고 설켜 서로 붙안고 뒹굴면서
때로는 종주먹질 다툼질도 하는
수만 수십만의 숨결 있었으니.
비와 햇빛과 함께 물줄기와 함께
이 큰 나무를 키워온 것은
이 숨결이었다 이 뜨거움이었다.
이 숨결들의 등살에 몸부림에
나무는 자라면서 몸살을 앓기도 하고
아예 여러 날 몸져 눕기도 하고
잔가지를 수없이 잃기도 했으나
이때마다 나무는 새롭게 푸르고
한 뼘씩 한 발씩 더 자랐다.
보라, 숨결들은 굵은 몸통에
불거져 있다, 가지 끝에 우뚝 솟아 있다.
온 나무에서 아름다움으로
잔결의 아름다움으로 피고 있다.
어려서는 발길질에
이웃 도둑들의 욱박질음에
새싹 잘리고 가지 꺾여
앙상하게 뿌리만으로 버티기도 했고
또 전쟁통에는 뿌리째 뽑혀
심한 목마름에 헐떡이기도 했다.
이때마다 숨결들은 더욱 뜨거워지고
이때마다 숨결들은 더욱 단단해졌다.
비와 햇빛을 불러올 사람들이
오히려 그것을 막아 서고
물줄기를 빼돌릴 때도
숨결들은 더욱 올곧게 굳세어졌다.
이 숨결들이 만들어놓은
그 등살과 몸부림이 만들어 놓은
그 상채기 그 흠집과 함께
나무는 자라고 큰 나무가 되었다.
그리하여 이제 숨결들은
나무를 타고 하늘 끝까지 오르지만
아니다, 이 큰 나무 더욱 크게 하는 것은
하늘만도 땅만도 아니다.
짓궂은 장난질로 나무를 온통 뒤흔들고
때로는 휘청거리게 하면서
서로 얽히고 설켜 굳게 버티고 섰는
수만 수십만의 숨결이 있으니.
하늘과 땅과 함께
이 큰 나무 더욱 크게 하는
숨결들을 보라, 나무를 타고
하늘 끝까지 오르는 뜨거움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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