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의 밤 /김동환

국경(國境)의 밤

제 1 부

1
"아하, 무사히 건넛슬가,
이 한밤에 남편은
두만강을 탈업시 건너슬가?

저리 국경 강안(江岸)을 경비하는
외투(外套) 쓴 거문 순사가
왓다     ---------   갓다 --------
오르명 내리명 분주히 하는데
발각도 안되고 무사히 건너슬가?"

소곰실이 밀수출(密輸出) 마차를  띄워 노코
밤 새 가며 속태우는 젊은 아낙네,
물네 젓던 손도 맥이 풀녀져
'파!' 하고 붙는 어유(魚油) 등잔만 바라본다.
북국(北國)의 겨울밤은 차차 깁허 가는데.


2
어대서 불시에 땅 밋흐로 울녀 나오는 듯
"어 ---- 이" 하는 날카로운 소리 들닌다.
저 서쪽으로 무엇이 오는 군호(軍號)라고
촌민(村民)들이 넉을 일코 우두두 떨 적에,
처녀(妻女)만은 잽히우는 남편의 소리라고
가슴을 뜯으며 긴 한숨을 쉰다.
눈보래에 늦게 내리는
영림창(營林廠) 산림(山林)실이 벌화부(花夫)떼 소리언만.


3
마지막 가는 병자(病者)의 부르짖음 같은
애처로운 바람 소리에 싸이어
어디서 '땅' 하는 소리 밤하늘을 짼다.
뒤대어 요란한 발자취 소리에
백성들은 또 무슨 변(變)이 났다고 실색하여 숨죽일 때
이 처녀(妻女)만은 강도 채 못 건넌 채 얻어 맞는 사내 일이라고
문비탈을 쓰러안고 흑흑 느껴 가며 운다.
겨울에도 한삼동(三冬), 별빛에 따라
고기잡이 얼음장 끄는 소리언만.


4
불이 보인다, 새빨간 불빛이
저리 강 건너
대안(對岸)벌에서는 순경들의 파수막(把守幕)에서
옥서(玉黍)장 태우는 빠알간 불빛이 보인다.
까아맣게 타오르는 모닥불 속에
호주(胡酒)에 취한 순경들이
월월월, 이태백(李太白)을 부르면서.


5
아하, 밤이 점점 어두워 간다.
국경의 밤이 저 혼자 시름없이 어두워 간다.
함박눈조차 다 내뿜은 맑은 하늘엔
별 두어 개 파래져
어미 잃은 소녀의 눈동자같이 깜박거리고,
눈보라 심한 강벌에는
외아지 백양(白楊)이
혼자 서서 바람을 걷어 안고 춤을 춘다.
아지 부러지는 소리조차
이 처녀(妻女)의 마음을 핫! 핫! 놀래 놓으면서.

(중략)

 

58.

[전략]

- 처녀

"가요, 가요. 인제는 첫 닭 울기.

남편이 돌아올 때인데

나는 매인 몸, 옛날은 꿈이랍니다!"

그러며 발을 동동 구른다.

애처로운 옛날의 따스하던 애욕에 끌리면서.

 

그 서슬에 청년은 넘어지면서

낯빛이 새파래진다. 몹시 경련하면서

"아, 잠깐만 잠깐만"

하며 닫아 맨 문살을 뜯는다.

 

그러나 그것은 감옥소 철비(鐵扉)와 같이 굳어졌다.

옛날의 사랑을, 태양을, 전원을 잠가 둔

성당을 좀처럼 열어 놓지 않았다.

"아, 여보 순이! 재가승의 따님

당신이 없다면 8년 후도 없고요, 세상도 없고요."

 

- 처녀

"어서 가세요. 동이 트면 남편을 맞을 텐데."

 

- 청년

"꼭 가야 할까요

그러면 언제나?"

 

- 처녀

"죽어서 무덤에 가면!"

하고 차디차게 말한다.

 

- 청년

"아, 아하, 아하……."

 

- 처녀

"지금도 남편의 가슴에 묻힌 산 송장

흙으로 돌아간대도 가산(家山)에 묻히는 송장

재가승의 따님은 워낙 송장이랍니다!"

 

- 여보시오, 그러면 나는 어쩌고?

- 가요, 가요. 어서 가요, 가요.

뒤에는 반복되어 이 소음만 요란하고 -

 

 

요점 정리

지은이 : 김동환

갈래 : 서사시(서사적 구조를 가진 시로 학자에 따라서는 이 시가 영웅의 업적을 칭송하는 서양의 서사시의 개념과는 달 라 단순히 서술시(narrative poem)라고 규정하기도 한다. 하여간 서사시는 인물과 사건이 있고, 역사적 사실과 관련이 있으며, 단순한 개인 감정의 토로가 아니고, 당대의 많은 사람의 삶을 대변하고, 노래체의 율문이며 비교적 긴 길이일 것). 자유시, 낭만시

성격 : 비극적, 서사적, 대륙적, 향토적, 북방적, 민족주의적

어조 : 북녘 사투리의 남성적 목소리로 화자가 있어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어투

제재 : 일제 시대 두만강 주변의 주민 생활

비극의 중층 구조, 1925년에 간행된 시집 '국경의 밤'에 수록된 3부 72장의 장편 서사시

남편을 기다림	남편의 죽음(외화 - 바깥이야기)
옛사랑의 비극	옛 애인과의 재회 갈등(내화 - 안이야기)

전체의 구성과 내용

   제 1부[사건의 발단] - 1∼27

 두만강 유역 국경 지대의 어느 마을, 한 해가 저물어가는 어느 겨울 저녁에 소금을 밀수하기 위해 나간 남편이 발각될까 걱정하는 아내의 대사에서부터 시작된다. 여인은 남편을 기다리며 불안해하는 가운데 잠시 옛 사랑에 대한 추억에 잠기는데, 이 때 한 낯선 청년이 나타나 아낙네가 있는 집에 와서 주인을 찾는다.

제 2부(사건의 전개-중심부) - 28∼57

 그 사람은 어릴 때의 소꼽 친구였다. 그들은 자라면서 차츰 연정을 느끼게 되어 사랑하는 사이가 되지만 재가승(在家僧)인 여진족의 후예인 순이(주인공)는 다른 혈통의 사람과 결혼할 수 없다는 인습에 따라 헤어져야 했고, 순이는 지금의 남편에게 시집을 가고 사랑을 잃은 소년은 마을을 떠나게 되었던 것이다. 이 소년이 이제 8년이 지나서 순이 앞에 나타난 것이다.

제 3부(사건의 결말) - 58∼72

 그 청년은 남의 아내가 된 순이와 재회의 기쁨은 나누고 다시 사랑을 이룰 것을 호소하지만, 순이는 남편에 대한 도리와 어쩔 수 없는 자신의 운명을 들어 이를 거절한다. 이 때 밀 수출 나갔던 남편이 마적의 총에 맞아 죽은 시체로 돌아온다. 이튿날 낮에 여인은 마을 사람들과 더불어 남편을 운구하여 매장한다.

주제 : 일제 강점기의 우리 민족의 애환, 식민지 백성의 불안한 현실과 소외된 삶, 비극적인 민족의 삶과 순이의 애정 행각, 망국민의 슬픔과 애절한 사랑['국경 지대에 사는 한 여인의 비련과 비극적인 삶'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일제 치하의 국경 지대의 어두운 분위기와 그 곳에서의 우리 민족의 비극적인 삶의 단면을 통해서 망국민의 삶의 애환을 그린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즉 국경 지대라는 소외된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어둡고 불안한 삶의 한 단면을 보임으로써 망국민의 한(恨)과 비애를 조명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배경 : 두만강변 국경 지방의 겨울밤

특징 : 이 시는 일제 치하의 두만강변의 S촌을 배경으로 세 인물, 곧 순이와 남편인 병남, 그리고 지난 날 순이의 애인이었던 청년 사이의 사랑의 삼각 관계에 따른 갈등과 비애, 그리고 국경 지방의 소외 계층의 삶의 애환과 비극성, 일제 치하의 어두운 현실을 노래한 작품이다. 이 시는 크게 세 개의 사건이 일정한 플롯에 의해 전개되고 있고, 대화와 서술이 적절히 구사되어 극적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

1. 스토리를 지닌 장시 형식의 시이다.

2. 민족 수난기의 비극적 삶을 형상화했다.

3. 바깥 이야기와 안 이야기의 중층 구조로 짜여 있다.

4. 북국의 이미지를 제시했고, 남성적 어조로 되어 있다.

의의 :  이 시는 한 시대의 폭 넓은 삶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서술한 서사시라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아야 할 것이다. 근대 서사시 형식을 시도한 대표적인 작품이다. '국경의 밤'은 낭만적 감정 분출의 서정시 시대를 정리하고 민족적 리얼리즘의 서사 양식(소설)의 출현을 예비하는 과도기적 문학 형태였다. 또한, '국경의 밤'은 그 의도나 스케일, 그리고 수사 혁신의 면에서도 주목할 만한 공적을 남겼다.

출전 : 시집 <국경의 밤>(1925.3)

 

 

내용 연구

 1

아하, 무사히 건넜을까,

이  한밤에 남편은

두만강을 탈없이 건넜을까?[서두를 감탄사로 시작하여 남편의 안전을 걱정하고 우려하는 아내의 심정을 독백으로 나타내고 있으며, '한밤'과 '두만강'이라는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제시함으로써 앞으로 일어날 전체 상황을 암시하고 있으며 긴장감을 불러 일으킨다.]

저리 국경 강안을 경비하는[당시의 삼엄하던 시대 상황과 음울한 시대 분위기를 나타내는 말로 일제 강점기 국경 지대에서는 밀무역을 하던 사례가 있었는데, 일제는 이를 철저하게 금했고, 이를 어길 시에는 가혹한 처벌을 내렸다.]

외투 쓴 검은 순사[일제 강점기 경찰관의 가장 낮은 계급으로 불안감을 가중하는 소재 - 잔혹하고 삼엄한 시대 상황]가

왔다--갔다--

오르명 내리명 분주히 하는데[긴박한 분위기를 나타내는 동적인 이미지]

발각도 안되고 무사히 건넜을까?

소곰실이 밀수출[密輸出 : 세관을 거치지 아니하고 몰래 물건을 내다 팖] 마차[소금을 싣고 국경을 넘어 밀수출하는 마차]를 띄어 놓고[어려웠던 경제 상황 - 목숨을 걸고 밀수를 할 수밖에 없었다.]

밤새 가며 속태우는 젊은 아낙네

물레 젓던 손도 맥이 풀려져[남편을 걱정하며 불안해 하는 아내의 심정이 묘사된 부분임.- 불안감, 초조감]

파! 하고 붓는 어유 등잔[남편의 위기를 암시하는 듯한 '어유등잔'의 흔들림은 생명의 위기.남편의 위태로움 - 초조감 ('어유등잔'은 물고기 기름으로 밝힌 등잔으로 아내의 초조한 심정이 감정이입되어 있는 부분)]만 바라본다.

 

북국(北國)의 겨울밤은 차차 깊어 가는데.

밤이 주는 분위기 불길한 예감을 암시함 - 암담한 현실을 상징하는 것으로 북국의 겨울밤은 1920년대의 암울한 이미지를 제시하고 있으며, 망각의 지대였고, 민족의 고통과 불안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2

어데서 불시에 땅 밑으로 울려 나오는 듯

어-이 하는 날카로운 소리 들린다.[불길한 분위기]

저 서쪽으로 무엇이 오는 군호[서로 눈짓이나 말 따위로 몰래 연락함. 또는 그런 신호]라고

촌민들이 넋을 잃고 우두두 떨 적에  [국경 지방 사람들의 불안한 삶 → 주민들의 불안감,

당시의 불안했던 시대 상황과 어떤 사건이 곧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을 암시한다. 그리고 국경 지방에 살던 우리 민족의 상황을 암시]

처녀(妻女)[處女와 다름. 여기서는 아내의 뜻으로 순이를 말함]만은 잽히우는 남편의 소리라고

가슴을 뜯으며 긴 한숨을 쉰다 - [밀수출을 함으로 발생하는 처녀의 불안감과 노심초사[(勞心焦思) : 몹시 마음을 쓰며 애를 태움]

눈보래에 늦게 내리는

                   

영림창[한말 삼림 일을 맡아 보던 관청] 산촌실이 화부(花夫 : 筏夫(벌부)가 맞는 것으로 원본의 식자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 것으로 벌부는 뗏목을 물에 띄어 타고 나는 일꾼) 떼 소리언만.[실제 상황을 알려주어 오해가 풀어짐, 안도감, 긴장 해소] - 특히 이 시의 분위기를 암시하는 구절은 외투 쓴 검은 순사, "어-이"하는 날카로운 소리, 촌민들이 넋을 잃고 우두두 떨 적에, 북국의 겨울 밤은 차차 깊어 가는데

          

3

마지막 길 가는 병자의 부르짖음 같은[애처로운 삶]

애처로운 바람 소리에 싸이어

어디서 땅 하는 소리[불길함을 전하는 소리] 밤하늘을 짼다.

뒤이어 요란한 발자국 소리에

백성들은 또 무슨 변이[불행한 일이 계속되는 상황] 났다고 실색하여 숨 죽일 때[국경지방의 불안한 삶]

이 젊은 처녀(妻女)만은 강도 채 못 건넌 채

얻어맞은 사내의 일[남편에게서 일어난 사고]이라고

문지방을 쓰러 안고 흑흑 느껴 가며 운다[남편이 사고를 당하고 있음을 짐작함]-

겨울에도 한 삼동 별빛을 따라

고기잡이 얼음장 끄는(깨뜨리는) 소리언만.[실제 상황]

 

4

불이 보인다 새빨간 불빛이

저리 강 건너

대안 벌에서는 순경들의 파수막[경비를 서기 위해 만들어 놓은 막사]에서

옥수수[옥서장 : 옥수숫대 ] 태우는 빠알간 불빛이 보인다.[국경 지방의 풍경]

까마앟게 타 오르는 모닥불 속에

호주[옥수수로 담가 만든 독한 중국 술]에 취한 순경들이[여인의 긴장감과 대조되는 외적 상황]

월월월 이태백을 부르면서[뭐라고 알 수 없는 소리로 이태백의 시를 노래하면서, 국경 이편의 긴장과 위기감과는 대조적으로 강 저편은 마치 잔치라도 벌이고 있는 듯 노골적으로 불을 피우고 떠들고 노래한다. 그럴수록 아낙과 마을 사람의 걱정은 깊어 가는 것이다.]

 

5

아아, 밤이 점점 어두워 간다.

국경의 밤이 저 혼자 시름없이 어두워 간다.[불행한 일이 일어날 것임을 암시함]

함박눈조차 다 내뿜은 맑은 하늘엔

별 두어 개 파래져

어미 잃은 소녀의 눈동자같이[서글픈 심정] 깜박거리고,[공포스러운 분위기에 질려 있음을 비유]

눈보라 심한 강벌에는

외가지[외줄기로 뻗은 나뭇가지] 백양이[불안감을 증폭시키는 소재]

혼자 서서 바람을 걷어 안고 춤을 춘다.[스산하고 음산한 분위기를 통해 불길함을 전함]

아지[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조차

이 처녀의 마음을 핫! 핫! 놀래 놓으면서─[작은 소리에도 놀랄 만큼 예민하게 남편의 일을 걱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음]

 

(중략)

 

58.

[전략]

- 처녀

"가요, 가요. 인제는 첫 닭 울기.

남편이 돌아올 때인데

나는 매인 몸, 옛날은 꿈이랍니다!"

그러며 발을 동동 구른다.

애처로운 옛날의 따스하던 애욕에 끌리면서.

 

그 서슬에 청년은 넘어지면서

낯빛이 새파래진다. 몹시 경련하면서

"아, 잠깐만 잠깐만"

하며 닫아 맨 문살을 뜯는다.

 

그러나 그것은 감옥소 철비(鐵扉)와 같이 굳어졌다.

옛날의 사랑을, 태양을, 전원을 잠가 둔

성당을 좀처럼 열어 놓지 않았다.

"아, 여보 순이! 재가승의 따님

당신이 없다면 8년 후도 없고요, 세상도 없고요."

 

- 처녀

"어서 가세요. 동이 트면 남편을 맞을 텐데."

 

- 청년

"꼭 가야 할까요

그러면 언제나?"

 

- 처녀

"죽어서 무덤에 가면!"

하고 차디차게 말한다.

 

- 청년

"아, 아하, 아하……."

 

- 처녀

"지금도 남편의 가슴에 묻힌 산 송장

흙으로 돌아간대도 가산(家山)에 묻히는 송장

재가승의 따님은 워낙 송장이랍니다!"

 

- 여보시오, 그러면 나는 어쩌고?

- 가요, 가요. 어서 가요, 가요.

뒤에는 반복되어 이 소음만 요란하고 -

 

활동의 취지와 지도 방법 :

 문학이 지닌 공동체 통합의 기능은 궁극적으로 민족의 역사적 삶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성찰을 동반한다. 제시된 작품은 일제 강점기에 쓰여진 서사시라는 점에서 그 시대, 그 민족의 현실적 삶에 대한 총체적 인실을 가능하게 한다. 학생들에게 가급적 작품 전편을 읽어 보도록 유도함으로써 서사시의 본질을 이해하는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지도한다.

(1) 이 시의 배경을 말해 보고, 시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과 관련지어 보자.

이끌어주기 : 제시문은 시 전체의 서장(序章)시작 부분에 해당한다. 이 부분이 서사적 사건을 진행시키기 위한 배경 제시의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고려하여 ‘국경의 밤’이 의미하는 작품의 현실적 공간을 파악하도록 유도한다.

예시답안 :

 작품의 공간적 배경은 두만강 유역인 국경 지방으로 일제 치하 한만 국경 지대 동포들의 생활상을 소재로 하고 있다. 이 작품은 일제의 강압에 의한 민족적 고난과 울분, 극복 의지를 노래하고 있기에 ‘민족의 서사시’로 평가받고 있다. 순이(順伊)는 풍습 때문에 청년(선비)을 빼앗기고, 역사적 상황(국경 지대의 삶의 조건) 때문에 남편 병남(丙南)과 사별하게 된다. 순이가 겪는 상실의 감정은 당시 우리 민족이 감수할 수밖에 없었던 상실감으로 확대시켜 볼 수 있다. 작자는 이러한 감정을 좀더 극화하기 위해 북극의 이미지와 겨울밤의 이미지를 보다 실감나게 제시하고 있다.

(2) 이 시는 일제 하 우리 민족의 삶을 그리고 있다. 시를 읽고 나서 ‘국가’와 ‘민족’의 의미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각자 말해 보자.

이끌어주기 : 일제 치하의 삶의 현실이 얼마나 참혹한 것이었는지를 이해하는 바탕에서, 그것이 지닌 문학적 의미가 공동체적 삶의 가치를 지향하는 문제와 연관된다는 점을 강조하도록 한다.

예시답안 :

  ‘국가’와 ‘민족’이라는 개념은 어느 한 개인을 의미하기보다는 ‘공동체’의 의미로 인식 할 수 있다. 우리 민족사를 살펴볼 때 민족(국가)이 고난에 처했을 경우, 개개인의 삶도 그와 비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학적으로 형성화된 이 시에서도 일제 하 우리 민족의 고난과 울분이 잘 표출되고 있다. 이렇듯 개인은 민족(국가)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는 존재이다. 지구촌 사회라는 21세기에도 그것은 예외 없이 적용되는 것으로, 우리는 개인적 삶과 더불어 민족(국가)적  삶도 항상 염두에 둔 채 삶을 계획하여야 할  것이다.

 

 

이해와 감상

 최초의 서사시로 평가되는 이 시는 전체 3부 72장 893행으로 이루어져 있다. 일제 강점기 하의 음산한 국경 마을 특유의 음산한 분위기를 배경으로 우리 민족의 참담한 현실과, 쫓기는 자, 소외된 자의 비극적 좌절 체험을, 국경 지방 한겨울 밤의 삼엄하고 음울한 분위기 속에서 극적인 상황 설정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다만 이 작품의 전편에는 순이, 병남, 청년(옛 애인) 간, 또는 순이와 상황 간의 갈등이  순이의 내부에서 관념적, 낭만적으로만 일어나고 있어, 서사시로서의 특징인 영웅화나 생동감이 결여되어 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의 제재나 주제가 개인 단위의 정서 표출에 있지 않고 민족사와 그 운명에 대해 치열한 관심을 보여, 1920년대 감상적(感傷的)인 서정(抒情)의 세계와 획을 긋는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두만강 유역의 국경 지대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한 해가 저물어 가는 겨울, 소금실이 밀수출 길에 남편을 내어 보낸 순이의 근심 어린 대사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날 저녁 이 마을에는 한 청년이 나타난다. (제1부)

   알고 보니 두 사람은 어릴 적 소꿉동무였다. 그들은 자라면서 서로 좋아하게 된 사이였으나, 여진족의 후예인 순이는 다른 혈통의 사람과 혼인할 수 없다는 인습 때문에 헤어져야 했다. 그렇게 해서 마을을 떠나야 했던 소년이 8년이 지난 뒤에야 다시 순이 앞에 나타난 것이다.(제2부)

   청년은 이제 남의 아내가 된 순이에게 다시 사랑을 간청한다. 그러나 순이는 남편에 대한 도리와 어쩔 수 없는 자신의 운명을 들어 이를 거절한다. 그때 밀수출 나갔던 남편이 마적떼의 총을 맞고 시체가 되어 돌아온다.(제3부) - 이상과 같이 요약될 수 있는 '국경의 밤'은 여러 모로 앨프레드 테니슨의 '이노크·아덴'이라는 시를 한국적으로 변용한 듯한 인상이 짙다. 테니슨의 시에는 남편이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아 죽은 것으로 믿고 어린 시절의 친구와 결합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옛 친구의 사랑을 거절하는 것으로 귀결되어 한국적 정절이 강조된 점이 특이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 재가승의 딸 순이의 '운명'이 의미하는 바에 대하여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옛날 함경도 북쪽에는 여진(女眞)의 무리가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고려 때 여진 정벌로 인해 이들의 평화는 깨어지고 종의 신분으로 전락하게 된다. 그 후 그들은 천민 집단으로 고립되어 재가승이라 불렀다. 순이는 바로 재가승의 딸이었다. 이러한 수난의 역사를 지닌 종족의 후예라는 특이한 신분을 지닌 순이는 곧 일제에 의해 나라를 빼앗기고 식민지로 전락한 우리 민족의 당대적 현실을 반영하는 인물로 이해된다.

 

 

심화 자료

이 시를 서사시로 볼 수 있는 이유와 없는 이유

 첫째, 시적 자아가 이야기꾼으로 등장하여 사건을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있으며, 둘째, 배경, 인물, 사건이 있고 일정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러나 이 작품을 민족 의식의 반영으로 보기도 하나, 완벽한 민족 서사시로 보기에는 다소 문제가 있다. 순이를 중심으로 하는 애정 문제는 민족 문제와는 거리가 멀 뿐만 아니라, 사회 의식과도 전혀 거리가 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갑자기 찾아온 남편의 죽음이라는 상황만으로 일제하 식민 지배의 통한과 비극을 암시하려 했다면 그것은 작위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오히려 '국경의 밤'은 통속적 애정 행각이 주를 이루는 장편 서술시로 평가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