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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에게서 소년에게로/최남선

by 미스커피 2012. 1. 11.

해(海)에게서 소년(少年)에게

희망의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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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희망의 문학 요점 정리

희망의 문학 지은이 : 최남선(崔南善)

희망의 문학 갈래 : 신체시(시행 하나 하나는 자유로워 한 연만을 본다면 자유시 형태에 가까우나 각 장의 의미 구조 및 형식 구조가 동일하여 창가적 구성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였다. 일정한 의성어가 반복되는 것도 창가(唱歌)적 구성에서 탈피하지 못한 증거이다. 따라서 창가 가사와 근대시의 과도기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또한 관념이 정서로 승화되지 못하고 생경하게 노출되어 시의 맛을 살리지 못함), 서정시

희망의 문학 성격 : 계몽적, 낙관적, 과시적

희망의 문학 어조 : 웅장하고 힘찬 남성적 어조

희망의 문학 구성 : 전 6연 각 연 7행(1연부터 5연까지는 '바다의 웅대함'을, 6연은 민족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아갈 '소년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노래)

1연 바다의 위력 - 모든 것을 부수고 무너뜨리려는 기세

2연 바다의 위엄 -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음

3연 바다의 기개 - 모든 것을 굴복시킬 수 있음

4연 바다의 호통 - 개화에 부정적인 자에 대한 비판

5연 바다의 속성 - 바다와 유일한 짝이 되는 하늘과 같이 맑고 깨끗함

6연 바다의 소년 - 바다는 담 크고 순정한 소년을 좋아함(주제연)

희망의 문학 제재 : 바다(새로운 문물), 소년

희망의 문학 주제 : 소년의 시대적 각성과 의지, 새로운 문물의 도래와 소년의 시대적 각성 및 개화 실현의 의지.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과 기대

희망의 문학 표현 : 의인법, 의성법. 직유법. 반복법(율격을 느끼게 함)을 사용하고, 직설적 표현을 구사하고 있으며, 담화체(담화체 형식은 주제를 강조하는 효과는 거두고 있으나 시적인 긴장감을 떨어뜨려 산문적으로 확산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함)와 의성어가 쓰이고, 각 연의 같은 위치에 놓은 시행을 사이에는 율격적 공통점이 있음

희망의 문학 율격적 구조 : 외형률에 의존하던 고전 시가의 정형성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고 있음

각 연 1행

의성어구

각 연 2·4·6행

3·3·5조의 3음보

각 연 3행

4·3·4·5조의 4음보

각 연 5행

4·3·4·4·3조나 그 변조의 5음보

각 연 7행

의성어구

희망의 문학 의의 : 우리 문학사에서 최초의 신체시로 평가되고, 근대 자유시 형성에 영향을 준 작품으로 밀려드는 서구 문물과 새로운 세대에 의한 그 수용이라는 시대적 요청을 담고 있다.

희망의 문학 출전 : 출전 :<소년(少年)> 창간호(1908년 11월)

희망의 문학 참고 : Byron의 장편시 '소년 해롤드의 순례(Child Harold's Pilgrimage)'의 마지막 부분의 일본어 번역을 참조한 일종의 번안시라는 견해도 있고, 그로 인해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희망의 문학 내용 연구

1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청각적 심상, 파도 소리의 의성어로 의성법을 사용하여 파도처럼 밀려오는 신문명을 상징하고, 구시대의 잔재를 거부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망하는 작자의 의지가 드러난다. 소년의 씩씩한 기상 상징, 개화의 물결 상징, 생동감 있는 역동적 이미지, 작품에 형태적 안정감을 부여. 이 구는 각 연에 반복적으로 제시되면서 독특한 운율을 형성하는데, 각 연을 하나의 단위로 구획하는 역할을 하면서 바다의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환기시키고 다소 설명적인 내용에 생동감을 불어 넣고 있음]

때린다 부순다 무너 버린다.[개화 열망의 의지를 열거법으로 표현했고 점층적 전개했고, 반개화 세력 문화의 파괴도 불사할 수 있음을 암시]

태산 같은 높은 뫼, 집채 같은 바윗돌[신문명과 개화에 방해가 되는 수구 세력. 직유법, 대구법, 상징법]이나,

요것이 무어야, 요게 무어야.[아무 두려움 없는 바다의 기상으로 웅혼한 기상을 가지고 있는 소년배의 자세로 연결됨/ 6·5조의 창가의 영향을 받음]

나['나'로 의인화된 바다가 이 시의 화자로 설정됨]의 큰 힘[문명 개화의 새로운 세력] 아느냐 모르느냐[시적 자아인 '나'는 바다를 뜻하며, 무한한 희망과 힘을 지닌 소년과 대응된다. 그러므로 '나의 큰 힘'은 문명 개화를 이룰 수 있는 힘을 뜻한다.], 호통까지 하면서,

때린다 부순다 무너 버린다.[개화 열망의 의지를 반복해서 강조]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꽉.[소년의 씩씩한 기개를 의성어로 상징한 것이다. 곧 구시대의 잔재를 타파하고 새로운 개화 사상을 갈망하는 의지의 표현]

2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내게는 아무 것 두려움 없어,[바다가 한 말을 직서적(直敍的 : 상상이나 감상 따위를 덧붙이지 아니하고 있는 그대로 서술함.)으로 표현한 것으로, 바다가 지닌 기개를 노래함]

육상(陸上)에서, 아무런 힘과 권(權)을 부리던 자[육상과 힘과 권은 개화에 방해가 되는 수구 세력인 아무리 큰 힘과 권세를 부리던 사람일지라도. 지상의 힘과 권력을 압도하는 바다의 기개를 표현한 말로 시대 상황과 관련하여 '힘과 권을 부리던 자'를 일제로 해석할 수도 있다.]라도,

내 앞에 와서는 꼼짝 못하고,

아무리 큰 물건도 내게는 행세하지 못하네.[자긍심이 담긴 표현으로 경기체가 '한림별곡'의 일부와 유사]

내게는 내게는 나의 앞에는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꽉.

3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나에게 절하지 아니한 자[새로운 세력에게 호응하지 않거나 굴복하지 않는 자]가,

지금까지 있거든 통기(通寄)하고 나서 보아라.[바다로 상징되는 새로운 세력이 지닌 위엄을 과시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다시 말해서 아직도 나의 위력에 굴복하지 않는 존재가 있으면 기별하고 나서 보라는 뜻]

진시황(秦始皇), 나파륜[나폴레옹(Napoleon)의 음차], 너희들이냐.

누구 누구 누구냐 너희 역시 내게는 굽히도다.

나하고 겨룰 이[사람] 있건 오너라.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꽉.

4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조그만 산모[산모퉁이]를 의지하거나,

좁쌀 같은 작은 섬, 손뼉만한 땅을 가지고,

고 속에 있어서 영악한 체[잘난 척을, 약은 척을]를,

부리면서, 나 혼자 거룩하다 하는 자[우물 안 개구리. 좌정관천(坐井觀天), 정저지와(井底之蛙)/ 조그만 산모퉁이에 의지하거나, 좁쌀같이 적은 섬, 손바닥만한 땅을 가지고 잘난 체하고 혼자 거룩한 척하는 자. 우물 안의 개구리 식의 오만한 태도로 문명 개화를 꺼리는 모든 수구세력들, 또는 섬나라에 살면서 우리 나라를 삼키려고 드는 일본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음.],

이리 좀 오너라, 나를 보아라.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꽉.

5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나의 짝 될 이는 하나 있도다.

크고 길고 넓게 뒤덮은 바 저 푸른 하늘[바다와 마찬가지로 미지의 세계로 열려 있는, 문명의 바람이 불어 오는 공간].

저것은 우리와 틀림이 없어,[바다의 큰 뜻과 통하는 것은 푸른 하늘뿐이라는 뜻]

작은 시비, 작은 쌈, 온갖 모든 더러운 것 없도다.[소년의, 푸른 하늘 같은 깨끗한 기개를 나타낸 말로서, 오직 푸른 하늘 같은 깨끗함을 사랑함을 나타냄]

조따위 세상에 조 사람처럼.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꽉.

6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저 세상 저 사람 모두 미우나['소년'을 강조하는 효과/ 부정적 현실 인식],

그 중에서 똑 하나 사랑하는 일이 있으니,

담[담력, 겁이 없고 용감한 기운] 크고 순진한 소년배(少年輩)들[우호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인간 유형]이,['소년'에 대한 예찬과 격려는, 새 술은 새 포대에 담아야 한다는 의미로 '새로움'은 새로운 사람들에게 기대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의 결과]

재롱처럼 귀엽게 나의 품에 와서 안김이로다.[소년에 대한 애정과 기대감]

오너라 소년배 입 맞춰 주마.[바다와 소년이 지니는 공통점으로 담 크고 순정하다는 점을 들어 대응시키고 있다. 구시대를 개혁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데 소년을 주인공으로 삼자는 작자 의식을 드러낸 부분으로 새 시대의 주역이 될 소년들에게 입맞춰 준다는 것은 시대적 요청인 '문명 개화'를 이끌어 나갈 주역은 소년들이라는 것을 뜻함. 여기서 '나'와 '소년배'의 공통점은 높은 기개, 진취적 기상, 순정한 정신, 무한한 가능성]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꽉.[바다와 소년의 관계는 순진무구한 소년들이 바다와 같은 웅대한 포부를 갖기를 소망하고 있으며, '바다'는 새로운 세계와 문명 개화, 무한한 힘과 새로운 창조 능력을 상징하고 있으며, 그러한 바다와 짝할 수 있는 것은 소년을 상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바다는 자신의 희망과 미래를 소년과의 만남을 통해 성취시킬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소년과 바다가 지극히 화해 관계로만 설정되어 있어 육당 최남선이 의도하고 있는 힘과 순결성이 방향을 잃고 말았다는 비판과 동시에 계몽주의적 낙관론이 너무 짙게 깔림으로써 시적 긴장감을 상실하고 말았다는 일부의 지적도 있다.]

희망의 문학 시적 자아 :  시 속에서 시인의 서정을 드러내는 인물로서 시인과 세계를 매개하는 주인공이 된다. 서정적 자아라고도 하며, 시인의 메시지를 독자에게 전달하는 가공의 존재로서 시적 화자라고도 한다. 여기서는 '바다'가 시적 자아가 된다. 일명 시적 화자라고도 한다.

 

 

 

희망의 문학 이해와 감상

최남선(崔南善)이 지은 신체시(新體詩). 1908년 11월 ≪소년≫ 창간호에 발표되었다. 이 시는 서구 및 일본의 선진 문화 수용과 그를 통하여 힘있고 활기에 찬 새 사회를 건설하고자 하는 열망을 담은 작품이다.

전 6연으로 구성된 이 시에서 중요한 것은 ‘바다’와 ‘소년’의 이미지다. ‘바다’를 ‘나’ 또는 ‘우리’로 의인화(擬人化)하여 ‘소년’에 관련시킨 작자의 의도는 무한한 ‘힘’과 ‘새로움’의 창조에 있다.

세계를 향해서 열려 있는 바다의 광활한 공간을 통해서 밀려드는 개화의 세찬 물결과 소년의 대담하고 티없이 맑은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새로운 역사의 창조를 주제로 하고 있다.

‘바다’의 무한한 힘과 그 위용(偉容) 앞에 인간존재의 왜소함을 나타낸 것이 1∼4연까지의 내용이라면, 시기(猜忌)와 질투, 사악(邪惡) 일체를 초월한 의연한 자세와 무한한 가능성을 안고 새로움에 대한 희망과 동경(憧憬)을 노래한 것이 5∼6연의 내용이다.

아무튼 이 작품이 문학사에서 중요하게 거론되는 이유는 그것이 최초로 자유로운 형식을 취하였다는 점에 있는데, 실상 이 점에 대해서는 좀더 면밀한 검토가 요청된다.

이 시는 정형률을 크게 벗어난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제1행 2·2·3, 제2행 3·3·5, 제3행 4·3·4·5, 제4행 3·3·5 등 각 연의 시행수가 일정할 뿐만 아니라, 각 대응행(對應行)간에서도 서로 동일한 리듬의 반복으로 짜여져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이 시가 완전한 자유시가 아니라 노래의식이 작용한 준정형적(準定型的) 형태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거기다가 각 연의 앞뒤에서 ‘텨…?썩’, ‘쏴……아’, ‘튜르릉’, ‘콱’ 등과 같은 의성어(擬聲語)인 상징음이 반복되고 있는 점까지 고려한다면, 이 시는 역시 ‘노래’로서의 요소를 더욱 중시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과거의 창가(唱歌) 형식에서 진일보한 이와 같은 준정형적 형태가 더 이상 자유시로 발전하지 못한 것은 최남선 자신의 장르의식의 결여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형태면에서는 정형에서 준정형으로, 용어면에서는 율어체(律語體)에서 구어체로의 변모를 보인 것은 분명 획기적인 새로움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인식할 만한 장르의식이 없었기 때문에 이를 더 이상 발전시키지 못하고, 다시 창가체나 율어체로 되돌아가는 현상마저 나타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최남선은 1910년을 전후한 시기에 우리 시단의 제1인자인 동시에, 우리 문학사상 최초의 자유시 형식을 정립하는 선구자가 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한된 범위 내에서 과도기적 구실을 수행한 것에 그치고 말았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韓國現代詩文學史(鄭漢模, 一志社, 1974), 崔南善과 李光洙의 文學(申東旭 編, 새문社, 1981), 한국현대시작품론(金容稷·朴喆熙 編, 文章社, 1981), 韓國開化期詩硏究(金軟東, 詩文學社, 1981), 海에게서 불놀이까지(李商燮, 人文科學 22, 延世大學校, 1969), 바다〔海〕와 六堂의 詩心(洪一植, 국어국문학 61, 1973).(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해와 감상1

소년에 대한 기대를 바다에 비유하여 표현한 이 시는 전대의 시가 지닌 정형성을 깨뜨리고 자유로운 형태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신체시의 효시가 되었다.

'텨…ㄹ썩∼ 쏴…아.' 하는 장쾌한 의성어가 반복되는 이 시는, 거칠 것 없는 대담한 서술체에서 미래를 걸머질 소년에 대한 따뜻한 희망의 어투로 바뀌면서 시상을 종결짓고 있다. 이 시에서는 의인화된 바다가 시적 화자이다. 이 바다는 힘센 것과 순결한 것을 속성으로 하고 있다. 이 바다가 사랑하는 존재 역시 담이 크고 순수한 소년들이다. 바다와 소년이 그 속성에서 완전히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 시는 힘 있고 순결한 소년에 대한 믿음을 표현한 것이다. 이것을 시대와 관련시켜 본다면 바다는 세계이고, 소년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새 시대의 주인공으로 설정된 셈이다. 작품에서 드러나는 시어의 생경함과 구어식 산문투의 거친 표현은 신체시의 과도기적 한계를 보여 준다. 그러나 기존의 정형시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율조를 구사해 본 것, 의성어를 도입하여 새로운 느낌을 부여한 것 등은 참신한 시도라 할 수 있다.

이해와 감상2

근대 잡지의 효시인 {소년} 창간호 권두시로 발표된 이 작품은 서구 자유시의 영향을 받아 창작된 최초의 신체시(新體詩)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전대(前代)의 고전시가 형식인 3·4조 내지 4·4조의 엄격한 율격을 깨뜨렸지만, 각 연의 대응되는 행의 자수(字數)가 완전히 일치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여전히 창가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한 연씩 떼어놓고 볼 때는 정형적 자수율을 전혀 갖지 않은 자유시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아울러 독자에게 바다의 웅대함을 느끼게 하는 '처……?썩, 처……?썩, 척, 쏴……아'와 같은 의성음(擬聲音)까지 사용하는 파격적 (破格的) 리듬을 창조한 점에서는 근대적 성격을 어느 정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소년}지 창간 당시, 불과 17세이던 육당은 잡지명을 의도적으로 {소년}으로 택하여, 전통 문화와 고유 사상이 몰락해 가는 파산(破産) 직전의 국운(國運)의 현실에서, 조국의 희망과 새 시대의 상징으로서 소년이 나아가야 할 지표를 설정하였다. 그리하여 이 작품에서도 전래의 사고 관습에서 거의 제외되었던 소년과 바다를 함께 내세우고 대조시켜 망망대해에 도전하는 젊은이의 씩씩한 기상을 고무하는 내용을 역설함으로써 힘과 용기를 잃은 소년들에게 애국적 포부와 미래에 대한 강한 믿음을 심어 주었다.

모두 6연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시는 내용상 두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1연부터 5연까지의 첫째 단락은 '바다의 웅대함'을 노래하고 있으며, 둘째 단락인 6연은 민족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아갈 '소년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읊고 있다. 이 작품에서 바다는 권력이나 세속적 부귀 영화에 굴하지 않는 존재를 비유하고 있으며, 순진 무구(純眞無垢)한 소년들에 대한 애정과 함께 그들이 바다와 같은 웅대한 포부를 갖기를 소망하고 있다.

이렇게 바다는 새로운 세계와 문명 개화, 무한한 힘과 새로움의 창조 능력을 상징하고 있으나, 소년과 바다가 지극히 화해 관계로만 놓여 있어 육당이 의도하고 있는 힘과 순결성이 방향을 잃고 있다. 또한 계몽주의적 낙관론이 너무 짙게 깔림으로써 시적 긴장감을 상실하고 말았다는 지적과 함께 최초의 신체시가 아니라는 비판, 그리고 '바이런'의 시, <차일드 헤롤드의 순례>의 모방작이라는 비난도 받고 있지만, 이 시가 당시 국민적 계몽시로 등장하여 우리 현대시에 끼친 공로만큼은 높게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이해와 감상3

1908년 <소년>에 발표된 이 시는 신체시의 대표작이다. 이 시의 두드러진 특징은 그 형식의 과도기성, 불안정성과 내용의 계몽성에 있다. 형식면에서 볼 때 이 시는 한 연 단위로는 내재율에 지배받는 자유시처럼 보이지만 시 전체의 각 연에 대응되는 행마다 모두 일정한 자수율을 가진다는 점에서 정형성을 가진 '준자유시'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전통적 음수율에서 벗어난 새로운 리듬과 의성어의 효과적 사용, 구어체의 대담한 표현 등은 문학사의 새로운 면모이다.

그러나 시의식적 면에서는 전통시가처럼 계몽성이 강하고 근대시의 요건인 자아의 각성이나 서정성은 부족한 작품이다. 그것은 이 시가 인습타파, 문명추구, 개화지향 등의 시대의식을 강하게 내세우려 한 목적의식이 앞선 시였기 때문이다.

이 시의 화자는 '바다'이다. 구성을 크게 보면, 1연에서 4연까지는 바다의 무한한 힘을 노래하고 5연과 6연은 푸른 하늘과 소년에 대한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최남선 시의 중요한 두 소재가 바다와 소년이라는 것은 매우 특기할 만하다. 그는 <소년>지에 '바다'에 관한 서구의 다음과 같은 어록을 소개한 바 있다. "대양을 지휘하는 자는 무역을 지휘하고, 세계의 무역을 지휘하는 자는 세계의 재보를 지휘하나니, 세계의 재화를 지휘함은 곧 세계 총체를 지휘함이오." 이렇듯 '바다'는 민족사의 새 국면을 타개할 활동무대, 외래 선진문명과의 통로를 상징한다. 한편 '소년'은 바로 민족사의 신국면을 타개할 담당자로서, 새로운 사상을 가진 새로운 세대이다.

이 시에서 '바다'와 대비되는 육지의 모든 것, 지금까지 역사의 영웅호걸들은 모두 보잘 것 없는 존재들이다. 오직 소년, 그 중에서도 '담 크고 순정한 소년들'만이 '바다를 닮은 자'이다. 바다의 무한한 힘의 가능성이 소년의 희망과 이상에 연결되어 있다. 이 시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1연이다. 연의 앞과 뒤마다 배치된 의성어는 파도의 생생함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은 단순한 서경이 아니라 바다의 위용이 연상시키는 사상과 관념에 연결됨으로써 이 시의 교훈을 강렬한 감정의 파도에 실어 표현한 효과를 준다. 또한 '요것이 무어야, 요게 무어야'처럼 직접 말을 건네는 듯한 구어체의 사용은 이 시의 계몽성을 생경하지 않게 해주는데 기여한다. 이 시는 여러 면에서 미숙한 과도기적 시이지만 시사적(詩史的)으로 전환점으로서의 의미를 가진다고 하겠다.(출처 : 윤경갑 外, <현대시 연구> )

 

 


희망의 문학 심화 자료

희망의 문학 자유시로 볼 수 없는 이유

 개화 가사라든가 창가의 정형성을 깨고 새로운 형태의 시형을 취한 '해(海)에게서 소년(少年)에게' 이후의 신체시를 근대시의 전초(前哨)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나, 개화기 시가 속에 포함시키는 이유는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전체적 형식은 산문인 것 같으나 부분적으로 개화 가사와 창가의 전통적인 율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를 면멸히 관찰해 보면 의성어의 사용으로 장쾌한 기분을 형성하고 있으나 7·5조 또는 4·4조가 부분적으로 들어 있어서 개화 가사와 창가의 율조를 찾아볼 수 있다. 최초의 신체시로 그 산문적인 형태로 인해서 시가 사상 중요한 위치에 놓이고자 하나 창가적 정형성을 답습하고 있고 그 주제도 찬양조이며 개화기 시가의 특성인 계몽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개화기 시가의 변형으로 보며 근대시로 향한 전초 내지는 시도라고 봄이 타당할 것 같다.(출처 : 장덕순, <한국 문학사>)

희망의 문학 '바다'의 의미

 이 시에서 바다는 의인화되어 있고, 그 의인화된 바다가 화자(話者)로 되어 있다. 따라서, 바다는 사물로서의 그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 바다의 속성은 단지 두 가지로만 되어 있다. 하나는 힘이 세다는 것, 다른 하나는 순결성이다. 달리 말해 순결성과 위력을 가진 인격체로 바다를 파악하고 있을 따름이다. 지극히 센 힘과 지극히 순결한 바다라는 인격체가 오직 사랑하는 것은 '소년배'뿐이다. 담 크고 순정(純情)한 소년배와 힘세고 순결한 인격체(바다)는 이에 완전히 대응되고 있다. 이 도식에서 우리는 대번에 계몽주의자 육당의 의도를 읽어 낼 수 있다. 그것은 힘과 순결성만으로 집약된다. 그리고 그 밑바닥에는 계몽주의적 낙관주의가 너무 짙게 노출되어 있다. 소년과 바다의 대응은 화해 관계에 놓여 있다.(출처 : 김윤식, '한국 근대 작가 논고'에서)

희망의 문학 최남선이 신문화 건설에 미친 영향

 

(1) 민족 계몽 : 장래 역사의 주인공이 될 청소년들을 깨우칠 목적으로 <소년>, <붉은 저고리>, <아이들 보이>, <샛별>, <청춘> 등의 잡지를 간행했다.

(2) 현대문학에의 선구적 업적 : 창가, 신체시에서 자유시, 산문시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형태에 걸쳐 문학상의 새로움을 추구하였다. 문학사에서 1908년부터 1919년까지를 최남선, 이광수 '2인 문단 시대'라 할 정도이다.

(3) 신문장 운동 : 언문일치(言文一致) 운동을 전개하여 문장 개혁을 주도했다.

(4) 시조 부흥 운동과 근대 수필의 개혁 : 우리 나라 최초의 개인시조집인 <백팔번뇌(百八煩惱)>와 기행 수필 '심춘 순례(尋春巡禮)', '백두산 근참기(白頭山覲參記)' 등을 남겼다.

(5) 고전의 소개 : 춘향전 등 고전 소설을 '육전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펴내고, 광문회(光文會)를 통해 <열하일기> 등을 간행했다.

(6) 국사의 대중화에 기여 : <단군론(檀君論)>, <삼국유사 해제(三國遺事解題)> 등의 역사책을 써서 보급하였다.

신체시(新體詩)에 대하여

1. 개관 : ‘신시(新詩)’라고도 한다. 그 전의 창가(唱歌)와 이후의 자유시 사이에 위치하는 것으로, 종래의 고가(古歌)인 시조나 가사와는 달리 당대의 속어(俗語)를 사용하고, 서유럽의 근대시나 일본의 신체시의 영향을 받은 한국 근대시의 초기 형태이다.

일반적으로 신체시의 효시는 1908년 11월 <소년(少年)> 창간호에 실린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의 "해(海)에게서 소년(少年)에게"를 꼽으나, 이에 앞서 1905년 무렵 작자 미상의 신체시 "아양구첩(峨洋九疊)", "원백설(怨白雪)", "충혼소한(忠魂訴恨)"이 발표되었고, 1896년 이승만(李承晩)이 <협성회보(協成會報)>에 "고목가(枯木歌)"라는 신체시를 발표하였다는 주장도 있다. 육당의 일련의 신체시를 그 형태상으로 보면 대개 7·5조의 자수율(字數律)로서 이루어 놓은 정형시이다. 즉, 신체시는 창가적 정형성과 후렴이 있으나, 고전시가의 율문적(律文的) 표현을 지닌 준정형시(準定型詩)라고 볼 수 있다.

2. 정의 : 신체시란, 신시(新詩)라고도 하며, 고대 시가에 대해 갑오경장 이후에 나타난 새로운 형태의 시를 일컫는 말로, 창가의 정형적인 율조(律調)에서 벗어나 새로운 율조 속에 새로운 내용을 담은 시 형태를 말한다.

부분적으로 남아 있는 정형시의 잔재와 계몽성 때문에 완전한 자유시가 되기에는 미흡하지만, 우리 시문학사상 정형률(定型律)을 벗어났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3. 형성 : 개화 가사와 창가가 가지고 있던 정형적인 율조를 깨뜨리고, 근대적인 자유시로서의 새로운 면모를 보이며, 1908년 <소년> 창간호에 발표된 육당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최초의 작품이다.

4. 형식 : 3·4조가 기본이 되는 구형을 깨뜨리고 7·5조 내지 3·4·5조의 새로운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것은 부분적 정형률은 가졌지만 전체가 일률적인 율조(律調)로 된 것이 아니란 점에서 자유시에 한 발 다가선 형태이다.

5. 내용 : 개화 의식, 자주 독립과 민족 정신, 신교육, 남녀 평등 등의 사상을 담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6. 특징 : 신체시는 근대정신의 소산으로 전통적인 인습을 타파하고 서구문화를 수용하려는 근대화 운동의 표현이기 때문에 그 이전의 전통시가와는 다른 이질적인 것이다. 즉, 신체시는 이전까지의 가창을 전제로 한 고시가와 개화가사 혹은 창가의 율조에서 벗어나 산문화한 자유시에로 이행되는 과도기의 시적 형태의 하나이다.

·정형성(율문성)의 탈피, 구어체의 채용, 옛 시가와의 주제 의식의 변별 등은 이전 시가와 대비되는 신체시의 주요 특징들이다.

·개화 가사와 창가가 가지고 있던 정형적인 율조를 깨뜨리고, 근대적인 자유시로서의 새로운 면모를 보인다. - 자유시 탄생의 모태가 되었다.

·민족 사상의 고양, 소년의 기개와 포부 등 민족주의의 선양과 계몽을 주된 내용으로 하였다.

·신체시는 창가(唱歌) 가사와 근대시의 과도기적 형태이다.

7. 주요 작품
 

① 해(海)에게서 소년(少年)에게 : 1908년 최남선. 1908년 <소년>지 창간호 권두에 실린 작품으로 순결하고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소년에 대한 찬양과 기대를 통해, 구시대의 잔재를 청산하고 새로운 질서와 창조를 열망하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 최초의 신체시이다. 당시의 사람들은 '신체시(新體詩)’또는 '신시(新詩)’라고 불렀다. 4·4조나 7·5조, 또는 6·5조 등의 창가 형식을 깨뜨리고 완전한 자유시의 형태로 등장했다는 데에 문학사적 의의가 크다. 한국 근대시의 최초의 모습으로 평가되는 그 일부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② 구작 삼편 : 최남선 작

③ 꽃 두고 : 최남선 작

④ 막은 물 : 최남선 작

⑤ 우리 영웅 : 이광수 작

8. 용어의 유래

'신체시(新體詩)'라는 명칭은 일반적으로 일본의 명치 시대에 동경 대학 교수들이 중심이 되어 편찬한 <신체시초(新體詩抄)>(1883)에서 온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이 책은 5편의 창작시와 14편의 영미시의 번역을 수록하고 있는데, 동경 대학 교수들이 중심이 되어 간행했던 <동양학예잡지(東洋學藝雜誌)>(1881.10)에 이미 발표했던 작품들을 손질하고 몇 편을 더하여 서구의 우수한 시를 소개함으로써 재래의 진부한 시문학을 일신하자는 의도로 묶어 간행한 것이다.(시가혁신운동)

<신체시초>의 '신체'란, 편집책인 井上(정상)이 명명한 것으로 구체시(舊體詩), 즉 한시(漢詩)나 화가(和歌)를 의식해서 지은 명칭이라고 한다. 신체시가 'poetry'에 해당하는 개념에서 비롯된 것임은 <신체시초>의 권두 범례가 밝히고 있다.

주) 일본의 신체시가 형태상으로는 구태의연한 7·5조(일본 전통시가의 율조)를 답습하고 있으면서도 굳이 '신체'라 한 까닭은 일단 기본율조는 7·5조로 하되, 그 밖에 6·6조 같은 새로운 율격을 시험해 보겠다는 포부라든가, 혹은 옛체 장가(長歌) 가 5·7조의 줄글로 이어지는 데 비하여, 신체시는 7·5조로 하되 6구 1연으로 분절했다는 점, 새 시대의 서구 취향에 맞는 참신한 제재를 선택했다는 점, 박력 있는 시풍을 건설하겠다는 취지 등에서 찾고 있다.

일본의 명치 시가는 <신체시초> 간행 이후 <신체시사(新體詩歌)>, <명치신체시선(明治新體詩選)>, <신체시학필휴(新體詩學必携)>, <신체시선(新體詩選)> 등과 같이 '신체시'라는 명칭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우리의 경우 '신체시'라 하면 육당의 "해에게서 소년에게"(<소년> 창간호)로부터 "구작삼편"(<소년> 제2권 4호), "꽃 두고"(동 제2권 5호), "막은 물"(동 제2권 6호) 및 춘원이 '孤舟(고주)'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우리 영웅"(동 제3권), 그리고 현상윤, 김여제 등 1910년대 초에 발표된 일련의 시편들을 지칭한다.

그러나 이 '신체시'라는 용어는 당시의 신문이나 잡지에서 1910년대는 물론, 1930년대까지도 간혹 '신체시' 또는 '신시', '신시가', '신체시가'라는 표제 아래 작품을 모집한다거나 싣고 있어 그 당시에 일정한 시가 장르를 의식하고 그렇게 불렀다기보다는 옛 시가형에 대한 새로운 시가라는 뜻의 범칭으로 사용했었던 듯싶다.

다만, 최남선 자신이 그 장르 규정을 위해서 '신체시가'라 했던 점을 참고한다면 지금에 와서 그 장르명은 '신체시'로 부르는 것이 좀더 타당하다 할 것이다.

희망의 문학 신체시(新體詩)

개화기 시가(開化期詩歌)의 한 유형으로 한국 근대시에 이르는 과도기적인 시가 형식. ‘신체시’는 ‘신시(新詩)’라는 명칭과 함께 통용되어왔으며, 다 같이 그 전대의 고시가(古詩歌)나 애국가 유형(愛國歌類型), 개화가사(開化歌辭) 및 창가(唱歌)에 대한 새로움의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그 밖에 신시가(新詩歌) 또는 신체시가(新體詩歌)라고도 불린다. 1908년 11월 ≪소년 少年≫ 창간호에 실린 최남선(崔南善)의 〈해(海)에게서 소년(少年)에게〉를 기점으로, 1919년 ≪창조 創造≫ 창간호에 실린 주요한(朱耀翰)의 〈불노리〉 이전의 ≪학지광 學之光≫·≪청춘 靑春≫·≪태서문예신보 泰西文藝新報≫ 등의 잡지나 그밖에 발표된 이광수(李光洙)·현상윤(玄相允)·최승구(崔承九)·김여제(金輿濟)·김억(金億)·황석우(黃錫禹) 등의 초기 시들이 ‘신체시’ 또는 ‘신시’의 범주에 든다 하겠다.

신체시라는 용어는 일본의 ≪신체시초 新體詩抄≫(메이지 15)에서 메이지시가(明治詩歌)의 한 종류를 지칭하는 용어를 그대로 차용(借用)한 것이다.

우리의 경우에는 ‘조격수의(調格隨意), 즉 ‘어수(語數)와 구수(句數)와 제목은 수의(隨意)’라는 장르 개념을 의식한 ≪소년≫지의 ‘신체시가대모집(新體詩歌大募集)’ 광고와 ≪청춘≫지의 ‘현상문예모집’ 광고에서 ‘신체시가’라는 용어가 쓰이기 시작하였다.

‘신시’라는 용어는 최남선이 〈구작삼편 舊作三篇〉(소년, 1909.4.)의 창작 동기를 밝힌 후기(後記)에서 ‘신시의 형식을 시험하던 시초’라고 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오늘날 이 두 용어에 대한 논의가 일고 있는바, 일설은 일본의 신체시와 구별하기 위해서라도 ‘신시’로 하자는 것이고, 또 다른 이견(異見)은 신시라는 범칭(汎稱)보다는 장르 의식이 바탕이 되어 있는 ‘신체시’라는 용어가 보다 적합하다는 것이다.

신체시의 기점은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로 잡는 것이 통설이다. 여기에 몇 가지 이설들이 제기되고 있으나 학계에서는 아직 보편적으로 인정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대표적인 이설들로는 우선 조지훈(趙芝薰)의 경우에, 〈구작삼편〉이 실린 ≪소년≫의 ‘후기’에 〈구작삼편〉이 1907년의 작품이라는 내용을 근거로 하여 최초의 신체시로 〈구작삼편〉을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해에게서 소년에게〉와 바이런(Byron,G.G.)의 〈대양 The Ocean〉 사이의 영향 관계를 탐색하여 그 유사성의 추출을 근거로 이 작품을 최초의 신체시로 볼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즉, 최남선 스스로가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자신의 창작시라고 자처한 적도 없으며, ‘신체시’나 ‘신시’라고 명명한 적도 없고, 다만 권두시로 제시하였던 점으로 미루어 〈해에게서 소년에게〉는 〈대양〉의 번안시(飜案詩)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경우 신체시의 기점을 1909년 4월호에 실린 〈구작삼편〉과 〈爛두고〉에 두기도 한다. 신체시는 근대 정신의 소산으로 전통과 인습을 타파하고 서구 문화를 수용하려는 근대화운동의 표현이다. 따라서 그 이전의 전통시가와는 다른 이질적인 요소들을 바탕으로 한다.

이 때에 이질적인 요소라 함은 형태적인 면에서는 정형적인 율문성에서 일탈한 산문성을 뜻한다. 한 마디로 자유율화한 산문성이라고 할 수 있다. 신체시 이전까지의 고시가·애국가 유형·창가 등이 가창을 전제로 한 율조라면, 신체시는 산문화한 자유시(自由詩)로 이행되는 과도기적인 시가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애국가 유형과 개화가사가 3·4조, 4·4조의 음수율을 지키고 있고, 창가가 각 행간의 음수율을 7·5, 8·5, 6·5조로 일치시키고 있는 데 비해서, 초기의 신체시는 분련체(分聯體)로서 각 연 대응행에서만 음수율의 일치를 보인다.

신체시가 고시가의 율문적인 정형성에서 벗어나 ‘새로움’의 자유율화한 시가 형태인 산문적인 속성으로 변하는 과정은 근대시사에서 매우 큰 의의를 지닌다. 물론 이 경우의 신체시의 산문성은 ‘근대(近代)’라는 시대적 특수성에 비추어볼 때 그렇다는 것이며, 실제로 그 산문성의 한계는 매우 모호하다.

엄밀한 의미로 볼 때 〈해에게서 소년에게〉나 〈구작삼편〉 등 일련의 신체시들이 지닌 산문성은 극히 불안정하며, 창가의 율문성을 무의식적으로 답습하는 상태에 머무르고 있다. 그리하여 〈해에게서 소년에게〉의 산문성의 이면에는 부분적으로 애국가 유형이나 창가의 율격(律格)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구작삼편〉에서도 ‘그러나’와 ‘우리는’ 등의 삽입구를 제외하면 7·5조라는 창가의 음수율과 일치한다. 또한 이들 시의 분절법이나 후렴성도 거의 ‘창가적인 정형성’이라고 할 수 있다.

창가의 율문성과 자유시의 산문성의 과도기적인 혼합 양상은 신체시의 대표적인 형태적 특성으로, 조연현(趙演鉉)의 “엄격한 율문이나 정형으로 보기에는 파격적인 자유가 너무 강하며, 완전한 산문으로 보기에는 율문적인 정형성이 아직도 청산되지 못한 채 있다.”는 지적은 매우 적절한 표현이다.

그러나 이러한 반율문적이고 반산문적인 또는 이들 양자의 혼합으로 이루어진 신체시는 그 형태에서만 과도기적인 성격을 띠는 것이 아니다. 이에 대하여 정한모(鄭漢模)는 최남선이 장르 의식이 결여되어 있음을 지적하여 “시의식에 선행하는 민족의식이나 사회의식으로 말미암아 모처럼 시도된 형태적인 ‘새로움’을 발전시키지 못하였다.”고 역설하고 있다.

즉, 시 자체가 생명으로 삼아야 할 시정신(po─ sie)의 무자각 상태야말로 신체시가 근대시로 발전함에 있어서 그 형태면에서 보다 큰 저해 요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남선의 신체시는 자아의 각성이나 탐구를 지향하기에 앞서 작자 자신이 처한 시대 상황에만 역점을 두고 있다.

각 연 대응행에서 음수의 일치를 꾀하고 같은 연의 시행간에서는 음수의 변화를 보이는 신체시로는 〈해에게서 소년에게〉와 〈구작삼편〉이 있다. 이외에도 최남선의 〈신대한소년 新大韓少年〉·〈爛두고〉가 있으며, 이광수의 〈말듣거라〉와 현상윤의 〈웅커리로서〉 등이 있다.

〈해에게서 소년에게〉에서 각 연 1·7행의 반복구(反復句) “텨……?썩, 텨……?썩, 瞭, 쏴……아”(튜르릉, 콱, 7행)를 제외한 나머지 행에서는 각 행간의 음수가 완전히 일치된 것은 아니지만 2·4·6행은 3·3·5의 11음수로 이루어져 있고, 3·5행에서 각 행연간의 규칙적인 율격에서 몇 군데 변조를 보일 뿐이다.

이러한 각 행과 연간의 음수율은 〈구작삼편〉·〈신대한소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爛두고〉는 총 2연으로 외견상 그 정형률에서 완전히 벗어난 자유시인 듯하지만, 면밀히 검토해보면 각 연 대응행의 음수율이 보다 철저히 지켜져 있다.

그러나 각 행과 연간의 동음(同音)이나 유음(類音)의 배치법을 의도적으로 활용하고, 그 시적 형상력도 뛰어나 최남선의 초기 시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최남선의 초기 시가 근대시에 이르는 한 과정으로서 서구적인 위치에 놓여 있다면, 이광수의 초기 시는 그 한 측면의 변모를 시도하여 보다 높은 차원으로 이끌어갔다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최남선이 거의 외형적인 음수율에만 치우쳐 직설적인 토로에 머물렀다면, 이광수는 음수율의 변화뿐만 아니라 대상의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데에 기법적으로 어느 정도는 성공을 거두고 있다.

〈말듣거라〉에서도 ‘님’의 이미지는 역사의식이 보다 상징적으로 형상화된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현상윤의 〈웅커리로서〉도 신체시형이라고 할 수 있으나, 강렬한 민족의식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그러한 감정이 전혀 겉으로 표출되지 않은 채, 내적인 갈등으로 심화되어 형상화된 점이 특색이다.

요컨대, 현상윤에 이르러 시적 기교가 최남선이나 이광수에 비하여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전개되어갔다고 할 수 있으며, 1915년을 전후하여 김억·최승구·김여제·돌샘(石泉) 등에 이르면 자유시의 유형에 훨씬 가까운 산문시형이 시도되고 있다.

또한 개아(個我)의 서정성에다 발상법을 두고 있어 근대시에 이르는 전환기에 중요한 시적 변모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참고문헌≫ 韓國現代詩文學史(鄭漢模, 一志社, 1974), 韓國開化期詩歌硏究(金軟東, 詩文學社, 1981).(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희망의 문학 최남선(崔南善)

대몽최(大夢崔), 공륙(公六), 육당(六堂), 일람각주인(一覽閣主人), 한샘

1890년 서울 출생

1904년 일본 동경부립 제일 중학(東京府立第一中學) 입학, 2개월만에 귀국

1906년 와세다(早稻田) 대학 고등사범 지리역사학과 입학

1908년 종합 월간지 {소년} 창간

1914년 종합 월간지 {청춘} 창간

1919년 3·1 운동시 <독립 선언서> 기초. 체포되어 다음해 출옥

1922년 {동명} 발간

1938년 만주 신경(新京)에서 {만몽일보사(滿蒙日報社)} 고문 역임

1949년 해방 후 친일 반민족 행위로 기소, 수감되었다가 병으로 보석 출감

1957년 사망

시조집 : {백팔번뇌(百八煩惱)}(1926)

1890(고종 27)∼1957. 문화운동가·작가·사학자. 본관은 동주(東州 : 지금의 鐵原). 아명은 창흥(昌興). 자는 공륙(公六). 호는 육당(六堂)·한샘·남악주인(南嶽主人)·곡교인(曲橋人)·육당학인(六堂學人)·축한생(逐閑生)·대몽(大夢)·백운향도(白雲香徒). 서울 출신. 아버지는 전형적인 중인계층 출신인 헌규(獻圭)이며, 어머니는 강씨(姜氏)이다.

1895년(고종 32)부터 글방에 다니기 시작하였으며, 1902년 경성학당(京城學堂)에 입학하였고, 1904년 10월 황실 유학생으로 뽑혀 일본에 건너가 동경부립제일중학교(東京府立第一中學校)에 입학하였으나 석 달 만에 자퇴하고 귀국하였다.

1906년 3월 사비생(私費生)으로 다시 일본에 건너가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고등사범부 지리역사과에 입학하였으나, 같은 해 6월 이 학교에서 개최된 모의국회에서 경술국치문제를 의제로 내걸자 격분한 일군의 한국인 유학생들과 함께 이 학교를 자퇴하고 귀국하였다.

1907년 18세의 나이로 출판기관인 신문관(新文館)을 창설하고 민중을 계몽, 교도하는 내용의 책을 출판하기 시작하였다. 1908년 근대화의 역군인 소년을 개화, 계몽하여 민족사에 새 국면을 타개하려는 의도로 종합잡지 ≪소년 少年≫을 창간하고, 창간호에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실어 한국 근대시사에서 최초로 신체시를 선보였다.

이후 1919년 3·1만세운동 때는 독립선언문을 작성하였다. 문학과 문화·언론 등 다방면에 걸친 활동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신문관의 설립·운영과 ≪소년≫·≪붉은 저고리≫·≪아이들 보기≫·≪청춘 靑春≫ 등의 잡지 발간을 통하여 대중의 계몽·교도를 꾀하는 한편, 창가·신체시 등 새로운 형태의 시가들을 발표하여 한국 근대문학사에 새로운 시가 양식이 발붙일 터전을 닦았다. 당시까지 창가·신체시를 제작, 발표한 사람은 이광수(李光洙)가 있었는데 양과 질에서 그를 앞질렀던 것이다.

둘째, 그때까지 쓰여온 문장들이 대개 문주언종(文主言從)의 한문투가 중심이었는데 이것을 새 시대에 맞도록 구어체로 고치고 그와 동시에 우리말 위주가 되게 하여 여러 간행물과 잡지 매체를 통해서 그것을 선전, 보급하였다.

이로 인하여 그 이전까지 우리 주변의 지배적 경향인 문어체 문장이 지양, 극복되고, 아울러 낡고 고루한 말투가 없어지는 등 문장개혁이 이루어졌다.

셋째, 민족문화가 형성, 전개된 모습을 한국사·민속·지리연구와 문헌의 수집·정리·발간을 통해 밝히기도 하였다. 이것은 민족사의 테두리를 파악하려는 의도와 함께 그 바닥에는 한국민족의 정신적 지주를 탐구하고 현양하려는 속셈이 깔려 있었다. 나아가 민족주의 사상을 집약시킨 ‘조선정신(朝鮮精神)’을 제창하기까지 하였다.

한편, 여러 분야에서 방대한 양의 업적을 발표하였는데 이는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다섯 분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① 한국사에 대한 연구로, 이는 ≪청춘≫ 1918년 6월호에 발표한 〈계고차존 稽古箚存〉에서 비롯된다. 이 글은 당시로 보아서는 상당 수준의 논문으로 그 내용이 단군시대에서부터 부여·옥저·예맥 등에 걸치는 것이었다.

1920년대에는 〈조선역사통속강화 朝鮮歷史通俗講話〉·〈삼국유사해제 三國遺事解題〉·〈불함문화론 不咸文化論〉·〈단군신전(檀君神典)의 고의(古義)〉등을 발표하였고, 1930년대 이후에 ≪역사일감 歷史日鑑≫·≪고사통 故事通≫ 등 방대한 규모의 작업을 이룩하였다.

② 문화유산의 발굴·정리 및 그 평가 시도로 이는 다시 조선광문회(朝鮮光文會)·동명사(東明社)·계명구락부(啓明俱樂部) 등의 단계로 나누어볼 수 있다. 조선광문회 단계에서는 우리 고전소설인 〈춘향전〉·〈옥루몽〉·〈사씨남정기〉·〈흥부놀부전〉·〈심청전〉·〈장화홍련전〉·〈조웅전〉 등을 정리, 발간하였고, 동시에 ≪동국통감 東國通鑑≫·≪열하일기 熱河日記≫ 등 한문 고전들도 복각, 보급하였다.

동명사 때에는 ≪조선어사전≫ 편찬을 기도하였으며, 이는 계명구락부 때로 이어졌다. 이때 한글 연구가의 한 사람인 박승빈(朴勝彬)과 제휴하여 사전편찬사업을 구체화시켜나갔다. 또한, ≪삼국유사≫의 주석정리 해제를 하고 ≪금오신화≫의 보급판도 간행하였다.

③ 국토 산하 순례예찬과 그 현양 노력은 ≪심춘순례 尋春巡禮≫·≪백두산근참기 白頭山勤參記≫·≪송막연운록 松漠燕雲錄≫ 등으로 대표된다. 이 글들을 통하여 한반도 전역뿐만 아니라 만주와 몽고에 이르기까지 여러 명소·고적들을 더듬고 거기서 우리 민족의 옛날을 되새겼다.

④ 시조부흥운동을 중심으로 한 민족문학운동은 시조의 창작 활동과 그 이론을 다진 일들로 대표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민족적 시가 양식으로서 시조가 재정리, 창작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가지고 카프의 계급지상주의에 맞서 다수의 작품을 제작, 발표하였다.

이것의 집대성이 창작시조집 ≪백팔번뇌 百八煩惱≫이다. 또한, 〈조선국민문학으로서의 시조〉·〈시조 태반으로서의 조선민성(朝鮮民性)과 민속〉등을 발표하여 시조부흥운동의 논리적 근거를 세웠다.

⑤ 민속학에 대한 연구는 ≪동국세시기≫ 등 당시까지 사본으로 전해오던 것을 수집, 간행한 것을 비롯하여, 〈단군론 檀君論〉·〈신라 경문왕과 희랍의 미다스왕〉 등의 발표로 나타났으며, 〈불함문화론〉 등은 민속학적으로 주목되는 논문이다.

그는 단군을 건국의 시조인 개인이 아니라 원시사회의 신앙에 근거를 둔 종교적 제사장으로 이해하였다. 그가 불함문화권으로 주장한 동북아시아계의 여러 민족의 공통된 신앙, 즉 샤머니즘을 배경으로 단군신화를 이해하려고 한 것은 우리 신화와 문화에 대한 최초의 민속학적 연구 시도로 인정되고 있다.

이와 같이 다양한 활동으로 인하여 우리 민족문화운동사에 높은 봉우리의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3·1운동으로 구금 투옥되고 나서 석방된 뒤 계속 일제의 감시·규제를 받아 친일의 길을 걸었다.

그리하여 식민지정책 수행 과정에서 생긴 한국사 연구기구인 조선사편수회에 관계를 가졌고, 이어 만주 건국대학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뿐만 아니라 일제 말기에는 침략전쟁을 미화, 선전하는 언론 활동도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광복 후에는 민족정기를 강조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비난과 공격의 과녁이 되었다.

총체적으로 보면 유능한 계몽운동자였고, 우리 민족의 근대화 과정에 중요한 임무를 담당한 문화운동가의 한 사람이다. 죽은 뒤 1958년 말년에 기거한 서울 우이동 소원(素園)에 기념비가 세워졌고, 1975년 15권에 달하는 방대한 양의 ≪육당최남선전집≫이 간행되었다.

≪참고문헌≫ 六堂崔南善(趙容萬, 三中堂, 1964), 六堂崔南善全集(高麗大學校亞細亞問題硏究所, 玄岩社, 1975), 韓國의 民俗學硏究(李杜鉉, 韓國學入門, 學術院, 1983), 韓國近代詩史(金容稷, 학연사, 1986).(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희망의 문학 꽃 두고

나는 꽃을 즐겨 맞노라.

그러나 그의 아리따운 태도를 보고 눈이 어리어,

그의 향기로운 냄새를 맡고 코가 반하여,

정신없이 그를 즐겨 맞음 아니라

다만 칼날 같은 북풍(北風)을 더운 기운으로써

인정 없는 살기(殺氣)를 깊은 사랑으로써 대신하여 바꾸어

뼈가 저린 얼음 밑에 눌리고 피도 얼릴 눈구덩에 파묻혀 있던

억만 목숨을 건지고 집어 내어 다시 살리는

봄바람을 표장(表章)함으로

나는 그를 즐겨 맞노라.

나는 꽃을 즐겨 보노라.

그러나 그의 평화 기운 머금은 웃는 얼굴 흘리어

그의 부귀 기상 나타낸 성(盛)한 모양 탐하여

주책(主着)없이 그를 즐겨 봄이 아니라

다만 겉모양의 고운 것 매양 실상이 적고

처음 서슬 장한 것 대개 뒤끝 없는 중 오직 혼자 특별히

약간 영화 구안(榮華苟安)치도 아니고, 허다 마장(許多魔障) 겪으면서도 굽히지 않고,

억만 목숨을 만들고 늘어 내어 길이 전할 바

씨 열매를 보유함으로

나는 그를 즐겨 보노라.

({소년} 7호, 1909.5)

희망의 문학 이해와 감상

이 시는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통해 제기된 우리 시가의 근대성 획득 문제가 그대로 대두되고 있는 작품으로, 1·2연의 자수율이 동일할 뿐 아니라, 표현도 진부한 설명의 차원에 머물었으나, 시적 발상과 행간의 처리 등에 있어서는 전대에 비해 한결 발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분히 교훈적이고 계몽적인 내용의 이 시는 1연에서는 꽃을 즐겨 맞는 이유를, 2연에서는 꽃을 즐겨 보는 이유를 노래하고 있다. 시적 자아*가 꽃을 즐겨 맞는 이유는 '아리따운 태도'와 '향기로운 냄새'라는 꽃의 표면적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더운 기운'과 '깊은 사랑'으로 대표되는 꽃의 내면적 의미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꽃은 '칼날 같은 북풍을 더운 기운으로써' 대신해 주고, '인정 없는 살기를 깊은 사랑으로써 대신하여' 주는 존재로서 따스한 기운과 깊은 사랑으로 우주 만물을 소생시켜 주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꽃을 즐겨 보는 이유는 '평화 기운 머금은 웃는 얼굴', '부귀 기상 나타낸 성한 모양'이라는 꽃의 순간적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씨 열매'가 표상하는 꽃의 구원한 아름다움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꽃의 두 가지 속성, 즉 '아리따움'·'향기로움'·'평화로움'·'부귀함' 등이 갖는 현상적 아름다움과 '더운 기운'·'깊은 사랑'·'씨 열매' 등이 갖는 본질적 아름다움 중에서, 본질적이고 심층적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여기서 꽃이 새로운 서구 문명을 상징하고 있다면, 이 시의 주제는 새로운 문명에 대한 참다운 가치를 발견해야 한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개화라는 거센 물결에 편승하여 여과 없이 유입되고 있던 서구 문명에 대하여 시적 자아는 거의 무비판적으로 대응하고 있을 뿐 아니라, 나아가 최상급의 수식어로써 예찬하고 있다. 아울러 서구 문명의 수용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적극적으로 합리화하는 비주체적, 비역사적 시대 의식을 보여 주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육당이 가지고 있던 현실 인식의 수준을 가늠케 하는 잣대요, 육당을 위시로 한 그 당시 개화론자들의 한계를 짐작하게 해 주는 점이라 하겠다.

희망의 문학 한강을 흘리 저어

 

사앗대 슬그머니

바로 질러 널 제마다

삼각산(三角山) 잠긴 그림

하마 꿰어 나올 것을

마초아 뱃머리 돌아

헛일 만드시노나.

황금(黃金) 푼 일대장강(一帶長江)

석양 아래 누웠는데.

풍류(風流) 오백년(五百年)이

으스름한 모래톱을

긴 여울 군데군데서

울어 쉬지 아녀라.

깜작여 불 뵈는 곳

게 아니 노돌인가.

화룡(火龍)이 굼틀하니,

뇌성(雷聲)조차 니옵거늘

혼(魂)마저 편안 못 하는

육신(六臣) 생각 새뤄라.

('백팔번뇌', 1926)

 

희망의 문학 사앗대 : 상앗대. 삿대

희망의 문학 삼각산이 잠긴 그림: 삼각산이 강물에 비친 모습

희망의 문학 하마 : 장차의 옛말

희망의 문학 마초아 : 마침

희망의 문학 황금 푼 일대 장강 : 석양빛에 물든 한강

희망의 문학 모래톱 : 강가에 있는 모래 벌판

희망의 문학 풍유 오백 년이/울어 쉬지 아녀라 : 이조 오백 년이 멸망한 슬픔 때문에 강물이 끊임없이 울며 흐른다

희망의 문학 노돌 : 노량진의 옛이름(노들나루)

희망의 문학 화룡 : 기차

희망의 문학 뇌성 : 기차소리

희망의 문학 육신 : 사육신

희망의 문학 혼마저 편안 못하는 육신 생각 새뤄라 : 사육신에 대한 추모의 정(노량진에 사육신묘가 있음)

 

형식: 3수로 된 연시조 (구별 배행)

주제: 배를 저어 가면서 느낀 회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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