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식료품 가게
케케묵은 먼지 속에
죽어서 하루 더 손때 묻고
터무니없이 하루 더 기다리는
북어들,
북어들의 일 개 분대가
나란히 꼬챙이에 꿰어져 있었다.
나는 죽음이 꿰뚫은 대가리를 말한 셈이다.
한 쾌의 혀가
자갈처럼 죄다 딱딱했다.
나는 말의 변비증을 앓는 사람들과
무덤 속의 벙어리를 말한 셈이다.
말라붙고 짜부라진 눈,
북어들의 빳빳한 지느러미.
막대기 같은 생각
빛나지 않는 막대기 같은 사람들이
가슴에 싱싱한 지느러미를 달고
헤엄쳐 갈 데 없는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느닷없이
북어들이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거봐,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귀가 먹먹하도록 부르짖고 있었다.
요점 정리
지은이 : 최승호
갈래 : 자유시, 참여시
성격 : 현실 비판적, 반성적, 상징적, 풍자적
어조 :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차분한 반성의 어조
제재 : 북어
주제 : 희망 없는 굴종의 삶에 대한 비판과 반성, 꿈을 잃은 현대인에 대한 비판, 비판 정신과 삶의 지향점을 잃고 무기력하게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의 초상
특징 : 일상적인 먹거리를 가지고 그 생생한 묘사를 통해 추상적 주제를 시각적 이미지로, 그 북어가 지니고 있는 속성을 통해 동시대의 굴종적인 삶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표현하고 형상화하고 있음.
출전: <대설주의보>, 최승호 시집 (민음사)
내용 연구
밤의 식료품 가게[암울한 사회/ 시대적 배경과 공간적 배경]
케케묵은 먼지 속에
죽어서 하루 더 손때 묻고
터무니없이 하루 더 기다리는[희망이 없는 무의미한 나날들]
북어들['북어'는 마른 명태를 의미하지만, 여기서는 부당한 권력에 굴종의 삶을 살아가는 시민들 혹은 '시적 화자'를 상징],
북어들의 일 개 분대가
나란히 꼬챙이에 꿰어져 있었다.[억압된 삶의 모습 / 획일화를 상징하는 말로 군사 문화에 대한 비판과 풍자임과 동시에 획일적인 지배 체제 하의 시민들의 상황을 말하고 있음]
나는 죽음이 꿰뚫은 대가리를 말한 셈이다.
한 쾌[북어를 묶어 세는 단위. 한 쾌는 북어 스무 마리를 이른다]의 혀가
자갈처럼 죄다 딱딱했다.
나는 말의 변비증을 앓는 사람들[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과
무덤 속의 벙어리[부당한 독재 권력에 대해 한 마디 비판의 말도 못하고 굴종의 삶의 살아가는 동 시대인들 -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현대인의 삶]를 말한 셈이다.
말라붙고 짜부라진 눈,
북어들의 빳빳한 지느러미.[사람들의 무감각하고 무기력한 삶의 태도를 형상화]
막대기 같은 생각[꼬챙이, 죽음이 꿰뚫은 대가리, 말의 변비증을 앓는 사람들, 빛나지 않는 막대기 같은 사람들, 헤엄쳐 갈 데 없는 사람들은 별다른 의미 없이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같은 의미임 / 문제 의식과 진지한 사고력을 상실한 생각]
빛나지 않는 막대기 같은 사람들이['북어'와 '헤엄쳐 갈 데 없는 사람들'과 같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인간들]
가슴에 싱싱한 지느러미를 달고
헤엄쳐 갈 데 없는 사람들이[꿈과 이상을 상실한 사람들]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느닷없이[돌발적인 시적 상황의 전환으로 독자에게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계기가 됨]
북어들이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거봐,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자신 또한 북어처럼 똑같이 굴종 속에서 희망 없는 삶을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음을 말함 / 북어의 모습이 곧 자기 자신의]
귀가 먹먹하도록 부르짖고 있었다.[시적 화자에게 환청으로 들리는 소리이지만 궁극적으로 굴종의 삶을 살아가는 자신의 삶에 대한 비판이자 고백임]
이해와 감상
최승호의 시는 진지한 명상을 바탕으로 한다. 그가 펼치는 시적 의장도 무겁고 절제된 운율을 가지고 있다. 그의 시는 노래하거나 읊거나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의 시는 들여다 보는 것이며, 독자는 명상하는 시인의 곁에서 함께 명상하도록 권유받는다. 그가 첫 시집 대설주의보에서부터 일관되게 명상하는 대상은 죽음과 도시화 현상에 겪는 일상적 경험들이다.
그는 그것에서 비정하고 절망적인 관찰자가 되어 현대인의 본질적 모순을 정확히 읽어낸다. 죽음에 관한 명상의 매개로 사용하는 소재들은 지하철, 자동 판매기, 자동차, 변기, 똥, 기계, 공해 등 다양한 도시적 물상들로, 그가 가진 비판적 세계관이 문명화 또는 산업화와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된다.
이러한 종말론적 위기감 속에서도 그는 결코 종교적 초월이나 내면 세계로의 도피를 꿈꾸지 않는다. 속악한 세계는 반드시 속악한 인물을 통해서만 비판할 수밖에 없다는 역설의 세계를 펼쳐 보이는 그의 시는 현대인들의 본질을 그 같은 모순으로 인식한 결과이다. 그러나 그의 시는 다른 도시(都市)시(詩)들처럼 경박하지도 유희적이지도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심각하고 진지한 어조로 나타난다. 이처럼 그의 시는 지성적 판단과 철학적 사유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이 작품 역시 '북어'라는 흔한 일상적 소재를 통해 시대적 현실에 입을 다물고 사는 '북어'와 같은 우리 자신들을 비판하고 있는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심화 자료
최승호(崔勝鎬)
1954년 강원도 춘천 출생
1975년 춘천교육대학 졸업
1977년 현대시학에 <비발디> 등이 추천되어 등단
1982년 제6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
1985년 제5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1990년 제2회 이산 문학상 수상
시집 : 대설주의보(1983), 고슴도치의 마을(1985), 진흙소를 타고(1987), 세속도시의 즐거움(1990), 고해 문서(1991), 회저의 밤(1993), 달맞이꽃에 대한 명상(1995), 반딧불 보호구역(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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