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현대시란 무엇인가?
주요한(朱耀翰)의 시<불 놀이>를 살펴보면-아아 꺾어서 시들지 않는 꽃도 없건마는 가신 님 생각에 살아도 죽은 이 마음에야 에라 모르겠다. 저 불길로 이 가슴 태워 버릴까, 이 설움 살라버릴까, 어제도 아픈 발 끌면서 무덤에 가 보았더니 겨울에는 말랐던 꽃들이 어느새 피었더라마는, 사람의 봄은 또 다시 안돌아오는가,/이하생략*주요한의 <불 놀이> 이 시는 감정표현으로 일관되어 있다. 그러니까 이 글은 시라기 보다는 감정표현의 산문화에 가까운 시이다.
애초부터 자기 감정의 설명문에 지나지 않는다. 시의 중요한 속성이라고 하는 부분을 망각한 것이다. 시의 중심 속성이 메타포어야 하는 데 반하여 엣세이적 호소에 지나지 않는다. 다분히 직설적 표현방법인 것이다.
이에 반하여 국외의 독일시를 한번 훝어보자, 독일의 시인 칼.크로로우(1940-대 후반 시인들) 인독일의 서정시인으로 명성이 있는 시인이다.
그의 작품<1950년 송가>-앞연생략--그러나 생존이라는/굼뜬 폭력 앞에서/이모저모로 꾀를 쓰면서 푹 쉴 수 밖에/달리 무슨 길이 남아 있을까,/가폿한 신발을 신고/우화의 모습을 찾아 달아난다./-중략-그러기에 또 심연이야기를 하자는 말인가.----아니야. 심연이란 없는 걸세.오히려 시련이 낫지./이의 시에서는 느릿느릿한 련과 행을 바꿔가면서 시적 메타포어를 충실히 이어간다. 이러한 작시법은 충실하고 깔끔한 방식이다. 긴 여운을 남기면서 압축공간을 만들어 낸다. 이는 독일시에서 가장 전통이 있는 시맥을 이어가는 굳은 줄기이다.
이른바 자연시의 대표적 원로 오스카.뢰르게(Oskar Loerke=1884-1941). 그리고 빌헬름.레만(Wilhelm Lehmann=1882-)의 영향을 받은 시인이다.
이의 시는 다공성(多孔性) 즉 메타포어의 함축성을 내세운 시인이다.
초기에는 순수자연시와 풍경시를 썼는 데 배후에는 으례히 의미가 깔려있기 마련이다.
은유(隱喩=Metapher)는 <시의 살이기도 하지만 감각중추이기도 하다>고 주장한 시인이다.
나중에는 은유를 벗어나 슈르적인 성향으로 넘어 서기도 하였으나 하여튼 이 시인의 주장 역시 메타포어는 시의 근육질이라고 할 정도로 시에 있어서의 비유적 배경의식을 중요시한 것이다.
물론 위의 주요한 님 등의 이 시인들의 정서나 문학사적 위치는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나 이미지를 형성하는 메타포어적 시작에는 미숙했다는 지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점에 대하여는 오늘의 우리 시인들에게 있어서도 깊히 반성해 볼 만한 문제이다.
이에 따라서 우리 나라의 시인 정지용(鄭芝溶) 님의 시를 살펴보기로 한다. 그의 시는 아래 지적해 보면 상당히 이미지스트의 결정체 메타포어를 구사하는데 충실하였다. 그 시가<백록담에서>인데 아래와 같이 설명해 보기로 한다.
그러면 정지용(鄭芝溶)의 시적 흐름을 살펴보자,
시인들의 정서(情抒)나 시적방식이 각기 다른 것은 어쩔 도리 없다. 그러나 시란 해박한 지식이나 폭넓은 사고를 장항하게 나열해 내는 장문(長文)이 아니라. 단축되고 미려화된 언어의 숙고된 감성의 세공품이라 할 수 있다.
시가 산문식으로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다 설피 한다고 한다면 이는 시적 산문일 뿐일지는 몰라도 진정한 사상사유의 함축물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정지용의 시,백록담에서>를 보면/가재도 기지 않는 白鹿潭 푸른 물에 하늘이 돈다. 불구에 가깝도록 고단한 나의 다리를 돌아 소가 갔다. 쫓겨온 실구름 一沫에도 白鹿潭은 흐리운다./나의 얼굴에 하나절 포긴 白鹿潭은 쓸쓸하다. 나는 깨다 졸다 祈禱조차 잊었느니라./
다음에는 오일도(吳一島)의 시이다. 제목은 가을은/가을은 /낙엽과 슬픔을/또 한아름/내 가슴에 안아다 주고/등을 넘는다.//잎잎/비에 젖어/서늘한 地殼위에/이제 나는 누웠나니./세월이여!/어느 새 날/예까지/끌어왔느뇨?/................/............../가을은 낙엽과 슬픔을/또 한아름/내 가슴에 안아다 주고/등을 넘는다./위의 시 중에서 정지용의 시는 산문식으로 되어 있다. 정서나 의식이 비유를 통해서 그가 뜻 하고자 하는 이미지가 뚜렷하다.
또한 오일도의 시 역시 단축된 메타포어를 통해 가을을 소재로 한 산문형식이 아닌 운율적 형식을 띄었다.
각기 다른 형식을 취했음에도 이들 두편의 시는 메타포의 착시(着視)를 정확히 한 작품들이다.
극히 시적이라는 뚜렷함을 읽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더 깊숙히 유의해야 할 점은 어떠한 형식만으로 시라고 할 수는 없다. 일단 시의 조건을 갖추기 위해서는 역시 시적 구조성 내용성 정신의 맥락이 중요하다.
말하자면 포에트리(poetry)는 포엠(poem)에 의해서 시적 가치로 접근된다. 여기까지 도달되어질 때 말의 뜻이 시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시적인 것이 시를 전달하는 과정이고, 시에 시적 내용을 포함 시켜주는 것이 포에트리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명확히 말하자면 시의 내용과 형식의 일치화를 기해야 한다는 점인데, 시에 도달하려는 극치점은 두말 할 나위 없이 시적심리현상(詩的心理現狀)에 이르는 시정신적 주체가 시의 형식을 결정하는 것이지 주체가 없는 외형상태의 껍질이 시로 형성되거나 성립된다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일정한 틀에다가 내용물을 맞추어 넣는 형식이 아니라. 내용을 우선 전제로 한 외형적 형식을 색깔적 조화를 입히는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시적 정신이 우선 존재하는 가운데 그 겉에 형식을 구성하는 외피질이 존재 한다는 것으로 설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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