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든 감정의 여과 없이 그려낸다는 것은 모험이다. 퇴고와 감정은 다르다. 퇴고는 내용을 점검하는 과정이고, 감정이입이란 자기 마음속에 울어나는 내면의식이다. 감정은 원인적인 것이고, 퇴고는 과정적인 것이다. 여기에서 문법적인 것은 형식적인 부분이다. 시가 일상언어에 의한 산물이기는 하나 어법적으로 일상생활용언으로 일정한 규칙에 맞춰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기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화산이 지하 지층을 뚫고 솟아나는 것에 비유 할 만한 산물이다. 인간의 심중(心中)에 지층을 뚫고 솟아나는 뜨거운 폭발감정 인것이다. 시의 소재는 본래 인간의 감정에 갇혀있는 산물이 아니라 외부로 부터 주어지는 환경영향에 의한 산물이라는 점이 지하 매장물과는 다른 원자재(原資材)의 양태(樣態)라 할 것이다.
서정시에 있어서 감정적 감각적이란 시적 행위의 중심 소지(素地)이고 그 형태를 구사하는 외피질(外皮質)이 되는 격의 메타포어가 시적 구성의 양상(樣狀)인 것이다. 그 모든 것이 완성되는 과정에서 퇴고의 과정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감정의 완성도 충족성에 따라서는 퇴고의 의미는 강조된다 할지라도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 할 것이다.
아래 정지용(芝溶)의 작품 등을 예시해 보기로 하자,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얼룩배기 황소가/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뷔인 밤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히리야//
흙에서 자란 내마음/파아란 하늘 빛이 그리워/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풀섶 이슬에 함초롬이 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傳說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랴//
하늘에는 섞은 별/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서리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흐릿한불빛에 돌아 앉아 도란도란 거리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랴//
-정지용(鄭芝溶)의 <향수(鄕愁)>-
이 시의 각연(聯) 한 행(行) 한 구절(句節) 마다에는 진한 감정의 엑끼스가 들어 있다. 그리고 이 시의 한 장면 한 장면마다에 선명한 이미지는 여과되고 영감적인 구슬이 주절이 주절이 맺혀 있다.
그러면서도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라고 하는 강조 짙은 행으로 시의 맥을 짚어가면서 흐르는 강물처럼 유유하게 만들어 가고 있다.
시 전체의 연속성을 유기적으로 맺어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이 시로서의 빈틈 없는 짜임새라고 보아야 한다.
시적 감정의 자연 발생적인 직감적 토로가 아니라. 지적(知的) 통제를 가하여 매끄럽게 처리되었다는 점에 주목 할 필요가 있다. 그러니까 감정을 함부로 낭비하지 않았다는 매우 꼼꼼함을 엿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각연 마다에 송이송이 맺힌 구슬이 듯 독특한 감각적 전환을 이어가는 시인의 달관한 표현기법이야 말로 인내력 있는 고뇌와 시인의 순수성임을 알 수가 있다.
생각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어떤 사물의 심오한 세계를 꿰뚫어보기 보다는 순수 시골 농촌의 촌가에 일어나고 있는 보편적 현실성을 부각함으로 마음속에 비춰진 감정을 이입시킨 사실화(寫實畵) 인 것이다.
정지용의 시가 이러한 반면에 당시에도 자연감정에 사로잡힌 시를 탈피하여, 일종의 의지(意志)의 시를 개척한 모더니즘적 사고를 가미한 <이상화>와 더불어 어깨를 나란히 한 경우가 있다.
내가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아예 애련에 물들지 않고/희노에 움직이지 않고/비와 바람에 깎이는대로/억년 비정의 함묵에/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며// -유치환(柳致環)의<바다>-앞에서도 언급 한 시이기 때문에 거듭 설명이 필요치는 않다. 그러나 이 시를 강조하는 것은 당시대에 대략 이런 과정이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하는 바이다.
시는 사상성-구조성-재료성-표현성-가치성-효용성을 전제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감정이입이라 할지라도 그 자체로서 소화해 내야 할 문제는 있는 것이다. 다시 설명하자면 건축물을 건조 하려 할 때 그 사용 목적에 해당하는 필요한 설계도면(구조성)이 떠 올라야 하고, 그러면 그 구성면에서 어떠한 재료를 써서 건조물은 완성 할 것이냐를 고려 해야 한다. 좋은 재료가 건축물의 견고와 미려를 감촉케 한다. 이런 연후에 사용 목적에 효과적인 것을 기대 할 수 있고, 그 가치를 평가 할 수 있듯이 시에 있어서도 이런 면밀성은 그저 무대뽀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물론 영감적인 사유에 의하여 축출되는 것이 시의 재료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시는 끊임없는 사유에 의하여 발생된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에는 서사시(敍事詩)에 대하여 비교해 생각해 보고, 다시 서정시(抒情詩)와 극시(劇詩에) 대한 비교 검토를 해보도록 하면서 서정시에 대하여 조금더 열거해 보도록 하겠다.
<우리는 서정시를 순한국식 서정에서만 주창하거나 고정된 서정주의를 찾을 것이 아니라 세계수준에 다다를 신감각적 인식수준에 올라서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세계화를 위해서 이지요. 우리문학이 세계화에 못 미칠 까닭이 없음에도 작금의 시학이 세계를 추월하지 못하는 안타가움이 있습니다. 이것이 한국시인으로서의 애타는 마음입니다.>이 말은 필자가 제3차 세계 시인대회에 참석 했을 때에 린환창(林煥彰) 대만 시인과의 환담에서 있었던 내용이다.
그런데 <오스카. 뢰르게>는 <시의 모험>이라는 시론(詩論)에서(1972/V-4/現代詩學에서 참고) 서정시(抒情詩)에 비교하여 다른 장르 즉 파괴적 시에 빗대어 말하기를 어떤 시의 <개운치 않은 감정>(das dumme geftihl)이라는 제하에, 서정시의 입장에서 볼 때 파괴성을 띈 전염성질병인 시작태(詩作態)들이 범람하는 까닭에 몇마디라는 글을 참고로 제시하면 <성서에 소금이 맛을 잃으면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고 현대시인들의 허탈한 면에 대한 자기 심정을 토로했다. 서정주의가 가져야 할 태도는 극히 서정적이어야 한다라는데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지적인 문학이라도 서정성을 탈피 할 수는 없다고 본다. 사실 서정은 시의 본질인 것이다. 서정을 바탕으로 다다이즘도 슈르도 그 여타의 시 장르도 지성주의도 주지주의도 반시주의도 서정을 도외시하고 존재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서정은 시의 모태반(母胎盤)과도 같은 것이라 할 것이다.
<시인이 시라는 표현을 찾아 서둘러대고 있으면서도 자기 자신의 세계를 그려낼 능력이 없다는 사실, 바로 이것이 개운치 않은 감정이 지닌 숙명인 것이다. 즉 표현의 대상을 찾아 손을 더듬는다든지, 말을 찾아 손을 마구 내 뻗기도 하고, 율동을 생각하는가 하면 얌부스(Jambus=抑揚格)또는 뒬루스(Daktylus=揚抑抑格)같은 운율(韻律)을 끌어내기도 하고, 화음을 찾고자 애를 쓰는가 하면 음절의 조화라는 것도 응얼거려 보지요.>-오스카. 뢰르게-
이같이 <개운치 않은 감정>이라는 작시행위에서 빚어지는 현상들 즉 마음에도 없는 시어를 끄짚어내어 시를 멋지게 쓰려고 하는 시인의 감정적 괴변성(怪變性) 또는 도에 넘치는 오만한 괴벽성(怪僻性)에 대하여 일침을 가한 셈이다. 무리한 감정을 벗어나 순수서정을 일탈 할 필요는 없다. 어느시에서도 서정격(抒情格)은 깔려있어야 한다.
위에서의 헝크러진 내용들을 정리하면, 필자의 얘기는 한국시의 서정성은 세계수준에 못 미칠 까닭이 없음으로 서정주의를 기반으로 다른 시(時調詩包含)의 지향점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고, 서정시가 서정적인 것을 일탈하고 다른 각도에서 시어를 찾거나 표현, 율동, 얌부스, 뒬루스, 운율,화음, 음절의 조화 등을 꺼짚어 낼려 한다면 이는 터무니 없는 모순이요 자가당착이라는 뜻이다라는 것을 강조한 말이다.
그러므로 시는 자기감정의 강제에서 울어나오는 것은 아니다. 감정의 자연스런 격양(激揚)에서 밀려오는 순수한 물결같은 것이다.
어느 먼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이 한밤 소리없이 흩날리느뇨//처마끝에 호롱불 여위어 가면/서글픈 엣자취인 양 흰 눈이 나려//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이 메어/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내 홀로 밤 깊이 뜰에 내리면//먼 곳의 여인의 옷벗는 소리/희미한 눈발/이는 어느 잃어진 추억이 조각이기에/싸늘한 추회(追悔) 이리 가쁘게 설레이느뇨//한 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호올로 차디찬 의상을 하고//흰 눈은 나려 나려서 쌓여/내 슬픔 그 위에 고이 서리다//-金光均의<雪夜>-
1930년대에 들어 와서는, 이 이전까지의 시와는 달라져서 감정의 자연발생적 현상을 그대로 처리하지 않고, 대체로 언어를 지적 여과를 통과하여 감정입이 재처리되어지는 과정적 경향의 시작태도를 보여주었다.
김광균은 서구적인 이미지즘의 차분한 수법으로 시를 써 온 시인이다. 그는 시의 종래에 있어 온 음악성을 배제하고 주지적인 특징을 자기 시로 살려나아갔다.
그러나 이 <설야(雪夜)>에서는 그런 면이 보이지 않고 다른 서정의 일면을 보여주는 특이한 현상이 뱔견된다.
눈의 흰 빛갈, 눈나리는 밤의 감정, "먼 곳의 여인 옷벗는 소리" 상당한 감각적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짜릿한 표현이야말로 시로서의 품위있는 서정인 것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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