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정형시(定型詩)란 어떤 형태의 시인가? 일정한 외형적 운율에 맞추어 쓰는 맞춤형식의 시를 칭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정형시에서는 대부분이 음수율을 주로 하고 있는 데 평시조(平時調), 4.4조(調),7,5조(調) 민요풍의 정형시, 조선말기의 창가 애경송가(哀慶頌歌)등이 있다. 즉 말하자면 정형시란? 외형상 어떠한 규칙에 의해서 별도의 운율을 갖춘 시를 말한다. *이 시풍의 태동은 옛 선비들이 서로 시를 주고 받으면서 읇을 적에 상대방에게 제(題)를 주고 재(材)는 작자 자신이 이끌어내어 즉흥적이거나 숙고(熟稿=과거시험 형태)의 본을 딴 것이 최초유래라는 견해가 있다. 그러니까 정형시는 자유시 와는 정면적으로 반대적인 것이며 일정한 규격을 정해 두고 그 정해진 격율(格律)안에서 창작된 시를 일컷는다. 언어의 운율적 생성과정을 통한 창조형태이다. 이는 서정시의 표현을 유효적절하게 고조시키는 방법이다. 정형시라고 해도 국어(國語) 성질의 상이(相異)에 따라서 반드시 똑같지는 않으나 대부분의 정형시는 음성율, 음위율, 음수율 세가지로 분류되는 현상이다. -趙芝薰의 <詩의 理해>에서 일부분 참고- 시의 운율에 대하여는 따로 구체적으로 언급 할 생각이다. 어쩌커나 정형시는 엄격한 규격화의 창작물이라는것을 이해 해야 한다. 그리고 우라나라의 고유한 정형시풍(定型詩風)으로는 시조(時조)가 있다. 이밖에도 민요(民謠), 창가가사(唱歌歌辭) 등이 정형시 형태를 본따고 있다. 본래 시조라는 것은 옛 궁정(宮庭)에서나 선비학자층에서나 일어난 시풍인데 이는 엄격한 왕실에서 내용의 제제하에(후에는 변화됨) 주어진 시류풍(時流風)으로 찬미 칭송 민간계층의 탄식, 양반계층의 송가(頌歌) 등의 형식에서 비롯 유래된 것이라고 하는 견해가 있다. (2)자유시(自由詩)란 어떤 형태의 것인가? 자유시(自由詩=Free Verse)란 일정한 외형율 즉 정형적 형태가 아니고, 내재율(內在律)만 가지고 있는 형태의 시를 지칭한다. 내재율이란 -인간 감정의 음율, 즉 리듬과 하모니- 곧 마음속의 리듬이다. 인간의 정신 상태의 의식에서 출현,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상(象)에 의한 파문(波汶)과 같은 것들이다. 이것은 이미지네이슌의 파동(波動)이며 영감적 소산(素産)이기도 한 데 이것은 어떤 일정한 형식에 구애됨이 없는 마음 안의 의식에서 출발, 음율적인 의미 만을 띄우고 있는 것이다. 시인의 사상이나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 할 수가 있는 것이 자유시의 형태이다. 이렇듯이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생성의 호흡이 리드미컬하게 자연적 언어로서 형성하는 미적 조화(美的 造化)의 구성언어(構成言語)인 것이다. 여기에서 호흡(呼吸)이란 이런 것이다. 고저 장단, 이완 완급, 생각의 강.약(强弱) 등의 언어적 형성을 의미한다. 때문에 자유시란 규격적인 정형물과는 정 반대되는 형성과정인 것이다 자유시를 무제한 급 시라한다면 정형시는 유제한급 시라고 하면 어떨까? 그러면 산문시란 서정시류에서 어떤 류라고 호칭을 붙였으면 좋을까? 적당한 호칭을 생각해 보니 무질서파라 했으면 좋을 것같다. 그렇다고 해서 문장법(文章法)을 무시한다는 뜻은 아니다. 산문시에는 흐트러진 질서 즉 질서속에 무질서가 있다. 정형적인 형식도 자유적인 형태도 모두 거침 없이 수용할 수가 있는 것이 산문시의 영역이다. 섞어서 쓸 수가 있고 쓰다가 방향 전환도 마음 대로 할 수가 있다. 이것이 산문시의 영역이다. 어느 시가 이 분야를 통제 할 수가 없다. 이것은 형식이라고 한다면 그 형식 자체가 산문형식이라 하면 될 것이다. 이것은 자유시에서 찾아 볼 수 없는 내재율의 구속도 받을 필요가 없다. 그런까닭에 행(行)이나 연(聯)의 분활도 필요치 않다. 산문시에 있어서는 내재율의 구속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일반적 산문처럼 묘사나 설명으로 끝나는 문장과는 달리 시적 음운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어야 한다. 즉 말하자면 시적 창조성을 가지고 있어야한다. 꽃밭은 그 향기만으로 볼진대 漢江水나 洛東江 上流와 같은 隆隆한 흐름이다. 그러나 그 낱낱의 얼굴들로 볼진대 우리 조카딸년이나 조카딸년의 친구들의 웃음판과도 같은 굉장히 즐거운 날판이다. 세상이 이렇게도 타고난 기쁨을 찬란히 터뜨리는 몸둥아리들이 또 어디있는가. 더구나 서양에서 건너온 배나무의 어떤 것들은 머리나 가슴패기 뿐만이 아니라 배와 허리와 다리 발꿈치에 까지도 이쁜 꽃숭아리들을 달었다.-중략- 저것들을 축복하는 떼까치의 어느 것, 비비새의 어느 것, 벌나비의 어느 것, 또는 저것들의 꽃봉오리와 꽃숭어리의 어느 것에 우리가 행용 나즉히 서로 주고 받는 슬픔이란 것이 깃들어 있단 말인가. 이것들의 초밤에의 完全歸巢가 끝난 뒤, 어둠이 우리와 우리 어린 것들과 山과 냇물을 까마득히 덮을 때가 되거든 우리는 차라리 우리 어린 것들에게 제일 가까운 곳의 별을 가르쳐 볼 일이요. 제일 오래인 종소리를 드릴 일이다. -서정주의 산문시<上里果樹園>- 위의 未堂詩를 누가 단순한 산문시라 할 것인가? 형식면에서는 완전한 산문형식이다. 그러나 이 시가 갖고 있는 산문적 운율이 비유와 신선감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느낄 것이다. 위의 시를 보면 자유시와 산문시의 엄격한 구별이 없을 것 같이 느껴진다. 그러나 산문시는 본질적으로 산문보다는 엄격한 암축적인 형태를 갖추고 있으며 운문적 형태 즉 자유시의 형태에서는 좀더 철저히 산문적인 형태를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상상 할 수 있는 것은 <보들레르>의 <파리의 우울>이나 19세기 러시아의 소설가 <뜨르게네프>의 산문시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또한 朴龍來 시인의 산문(散文)이라는 산문을 보면 이 시인의 산문은 산문이라기 보다는 시적 산문이라하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한 것들로 구성되어져 있다. 우선 박용래의 글을 참고해 보자, 그는 <호박잎에 모이는 빗소리(1)/<나루터>를 그림에서 이 산문은 산문이라기 보다는 산문시에 가까운 운치를 드러내고 있다. <거리엔 자동차의 소음이 피지만, 변두리는 언제나 적막강산> 토요일 오후는 길을 닦고 새로 잇어낸 시내버스 종점을 찾는다. 차를 내려 한 십분 쯤 점어 들면, 망춧대가 비치는 물논이 전개되고 납짝한 능선이 눈앞에 온다. 산허리를 끼고 한참을 돌아서면, 거기 이렇다 할 푯말 하나 없이 몇 발자국 안에서 저쪽은 전라도 땅. 이 쪽은 충청도 땅이다./-하략(모두 1972 v-4-1-5까지의 "현대시학"朴龍來 散文)-거의 시심을 갖고 쓴 산문으로 보인다. 7월의 마지막 날, 천리 사방은 러시아- 그리운 고향. 온통 파랗게 물든 하늘, 그 위에 외로히 떠 있는 구름 한점, 흐르지도 않고 녹아내리지도 않는다. 바람 한점 없는 따사로움......대기(大氣). 갓 짜낸 우유만 같다!-중략- 둥근 얼굴의 젊은 여인이 창문에서 밖을 내다보고는 젊은이들의 말 때문도 아니고 건초더미 속의 애들의 장난 때문도 아닌 영문 모를 웃음을 짓고 있다.-중략- 노파는 햇볕에 탄 오른 손 손가락을 편 채, 방금 움에서 가지고 나온 뚜겅이 덮인 우유항아리를 들고 있다. 항아리 거죽은 온통 유리구슬 같은 이슬로 뒤덮여 있다. 노파는 아직도 따스한 큰 빵조각 하나를 왼 손에 손바닥 위에 얹어 놓고 나에게 권한다. "자, 어서 드시오. 길가는 손님, 몸을 위해서!" 별안간 수탉이 꼬꼬댁 울어대며 부산스럽게 날개를 퍼드득이기 시작한다. 거기에 대답하여 외양간의 송아지가 <음메에>하고 길게 목청을 뺀다. -뜨르게네프의 <마을> 金鶴洙 譯에서- |
출처 : 포엠스퀘어 [문학광장]
글쓴이 : 雲岩/韓秉珍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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